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48화
148. 복수는 차갑게 먹어야 제맛(3)
“라이트.”
상혁의 손끝에 희미한 마나가 맺혔다. 상혁은 손끝에 맺힌 마나를 수십 갈래로 나누었다. 그러고는 수십 갈래로 나눈 마나를 허공에 배열했다.
파아아앗-!
그러자 어둡던 통로에 환한 빛이 떠올랐다. 상혁은 손짓 한 번으로 한 번에 스무 개가 넘는 광구를 만들어 냈다.
1서클 마법인 라이트의 술식이 가장 간단한 축에 속한다고 하지만 동시에 스무 개가 넘는 광구를 만들어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마나를 분열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라이트 마법을 시전할 각기 다른 스무 개의 좌표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성-사출이면 끝나는 공격 마법과 라이트 같은 유지 형태의 다중 술식의 난이도는 다르다. 상혁은 사람의 손이 탄 흔적이 분명한 통로의 벽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콘크리트인가.”
차가운 콘크리트의 냉기가 손끝을 통해 느껴졌다. 하지만 지하인 점을 감안해도 습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렇다는 건 환기 장치가 잘 되어 있다는 뜻이다.
톡톡.
“디텍트 오브젝트.”
파아앗-!
상혁은 손끝으로 콘크리트 벽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곳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파문이 이는 것처럼 마나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감지 마법은 다양한 형태로 개발, 발전했다.
마나를 보유한 것을 감지하는 디텍트 마나, 초음파처럼 마나에 걸려드는 물체를 탐지해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디텍트 오브젝트, 신성력을 사용하는 신관들이 마기를 지닌 삿된 것들을 탐지하는 데 쓰는 디텍트 이블까지.
마법사에게 있어 디텍트 마나와 디텍트 오브젝트는 기본기나 마찬가지인 마법이다. 상혁의 마나가 통로를 타고 길게 뻗어 나가며 상혁의 머릿속에 가상의 지도를 그렸다.
‘한참을 내려가는군.’
상혁은 이 통로의 길이가 거의 1km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만하게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는 형태인 통로의 끝에 마나가 부딪히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5서클에 도달한 상혁의 디텍트 오브젝트의 반경은 1km다. 원래라면 그 절반 수준이겠지만 상혁이 가진 8서클 대마법사의 경륜과 6서클에 육박하는 마나 덕분에 탐지 범위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그걸로도 고작 문에 도달하는 것이 고작이다.
“불필요하게도 길게 만들어 놨네.”
아마 원래라면 이 안을 오가는 운송 수단이 있었을 것이다. 바닥에 홈이 패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걷는 것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었다.
“헤이스트.”
상혁은 제 몸에 보조 마법을 걸었다. 근육을 혹사시키는 마법이지만 시간이 더 중요했다. 밖에 재워 둔 마이클을 언제까지고 그대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바밧!!
공기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며 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1km의 거리를 순식간에 주파한 상혁의 눈에 두툼한 문에 눈에 들어왔다.
“쇼크.”
파지직!
상혁은 이쪽을 향하고 있는 CCTV를 향해 쇼크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파직 소리가 나면서 CCTV가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아직도 감시하고 있는 CCTV가 있으려나?”
만약 위의 시설만 비웠고, 지하의 시설은 철거 전이라면 감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상혁은 곧바로 문에 손을 얹었다.
“홍채, 지문, 음성 인식이군.”
문 옆에 달린 개폐 장치를 보면 그 정도는 간단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상혁에게는 그중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언락.”
티딕, 티디딕!
드르륵!
고전적인 잠금쇠로 작동하는 문이 아니다. 아마 전자식 장치로 작동이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락 마법에 문 안쪽에서 스파크가 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문이 스르륵 열렸다.
“이 정도면 핵도 막겠군.”
그렇게 열린 문의 두께는 거의 30cm가 넘었다. 유사시에는 벙커나 방공호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인지 두께가 장난 아니었다.
후욱!
문이 열린 순간 상혁에게 안쪽의 공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더욱 강한 독기다. 상혁의 두 눈에 희열이 서렸다.
불룩, 불룩.
독기가 섞인 공기가 닿은 상혁의 피부가 붉어졌다 퍼렇게 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얼굴이 울긋불긋 핏줄이 솟아올랐다.
중독 증상이었다.
“스으으읍!”
하지만 상혁의 입에서 바람 새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자 중독 증상을 일으키던 것이 싹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상혁이 시커먼 가래를 내뱉었다.
“번.”
치이익!
가래를 마법으로 태워 버린 상혁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냥 이 공간에 발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독기라니.
“디텍트 오브젝트.”
상혁은 곧바로 디텍트 오브젝트를 시전했다. 감지 마법이면 숨겨 놓은 공간도, 상혁이 가장 찾아 헤매는 것도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상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무언가 이상한 것이 마법이 감지된 것이다. 상혁은 다시 한번 더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나 상혁이 느낀 위화감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상혁은 몸을 일으켜 재밌다는 듯 히죽 웃었다.
“디텍트 마나.”
상혁의 손끝을 중심으로 마나가 사방을 헤집었다. 잠시 뒤 상혁은 몸을 일으키면서 재밌다는 듯 빙긋 웃었다.
“사람이 있었네?”
아무도 없다 생각했던 지하 시설에는 사실 사람이 있었다.
* * *
쉬익.
중사 파울로는 방독면에서 나는 소리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평소에 방독면을 쓸 일이 거의 없었을뿐더러 개인 장비를 쓰지 못하도록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 길들여지지도 않은 방독면을 쓰느라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좋은 것 좀 쓰자니까.’
그렇게 투덜거린 파울로지만 상부의 지시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 특정 부대나 특정인임을 지정할 수 있는 증거가 최대한 적게 움직여야만 하는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부스럭부스럭.
움직일 때마다 방호복이 부스럭거리면서 걸리적거렸다. 방호복은 마치 미쉐린 타이어 캐릭터가 된 것처럼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방호복을 입고 있는 건 파울로뿐만이 아니었기에 그는 불만을 속으로 삼켰다.
콸콸콸.
“조심해서 부어. 염소 더 붓고. 빨리빨리 움직이자! 이 냄새 나는 곳에 있기는 싫잖아 다들?”
파울로는 자신의 부하들을 독려했다. 파울로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사령관. 휴가라고 하더니.”
이런 곳에서 이런 뒤처리나 하고 있어야 한다니.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다른 일에 비해서는 비교적 휴가라고 부를 수 있는 축에 속했다.
파울로는 ‘제피렐리’라고 쓰인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밀폐 용기를 손바닥으로 건드렸다. 파울로는 염소와 그 안에 섞인 정체불명의 액체들이 서로 섞이는 것을 보며 코를 막았다.
“방독면을 써도 냄새가 들어오는 것 같네.”
저 수상한 액체가 어떤 건지 파울로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냥 시키니까 일을 하는 것뿐이다. 그는 그런 군인이었다.
“다 섞었습니다.”
“용량 맞춰서 잘 섞었어?”
“예.”
“그럼 부어 버려.”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철거 대상이다. 그러나 지상에 비해 늦어진 이유는 비밀 시설이었기 때문에 내부의 자료를 몰래 반출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설들도 그냥 파기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에서 이뤄진 실험으로 만들어진 이 액체들은 사실상 실패작들이다.
이 실패작들을 그냥 방류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염소를 섞어 중화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했다.
이 정도만 해도 된다고 위에서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알려 준 비율에 따라 염소를 통째로 붓고 섞은 것이다.
“이게 마지막인가?”
“예. 그렇습니다.”
“고생들 했다. 이 일 끝나면 앞으로 복귀할 때까지는 사령관이 임무 없다고 했으니 휴식이다.”
“좋죠.”
파울로와 그 부하들은 몇 달 전 한국으로 전출당했다.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특수 목적을 띤 임무를 완수한 뒤 휴가 개념으로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들의 진짜 정체와 소속에 대해서는 주한미군 사령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이번 작전에 동원된 것은 더 윗선의 입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파울로와 그의 부하들은 잘 알고 있었다.
“방류 준비해.”
“예썰!”
부하가 경례한 뒤 개폐 버튼에 손을 올렸다. 이곳에서 한강으로 향하는 하수도관이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곧바로 그곳에 부으면 된다.
자신들이 무단으로 방류하는 이 정체불명의 액체들로 인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그들은 관심이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그들이 지켜야 할 조국이 아닌 외국 땅이었기 때문이다.
“개폐!!”
부하가 버튼을 꾹 눌렀다. 하지만 개폐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부하가 얼빠진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어?”
“왜 그래?”
“안 열립니다.”
“뭐? 갑자기 왜 안 열려. 다른 거 누른 거 아니야?”
“아닙니다!”
파울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수월하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결국 일이 생기고 말았다. 파울로는 버튼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부하를 옆으로 밀었다.
“비켜 봐.”
꾸욱.
그러고는 버튼을 눌렀지만, 개폐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파울로는 한숨을 내쉬면서 방독면 위를 벅벅 긁었다.
“이거 왜 이래?”
파울로가 한탄을 하듯 그렇게 말했지만 주변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파울로는 부아가 차올라 상체를 뒤로 휙 돌렸다.
“대답 안 해? 머리란 게 있으면 생각들을 해서 말을…… 어?”
상체를 뒤로 돌린 파울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각자 자리를 사수하며 할 일을 하고 있었던 부하들이 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 너머에 방독면도 쓰지 않고 방호복도 입지 않은 채 활보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오, 오오오오. 이 황홀한 향기. 끝내주잖아. 이 정도면 온양 반도체 공장보다 몇 배는 더 진한 향인데…….”
파울로는 웬 어린 동양인 하나가 방금 수상한 액체를 왕창 섞어 버린 커다란 특수 제작 용기에 손을 얹고 쓰다듬는 것을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부하들이 다 쓰러졌다. 정황상 저 어린 동양인이 부하들을 다 쓰러뜨렸다는 뜻이다.
그렇다는 건 적이라는 소리다.
철컥!
“누구냐!”
파울로의 동작은 신속 정확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생각이 끝난 순간 0.01초의 반응 속도로 몸이 기계처럼 움직여 총을 뽑아 남자에게 겨눴다.
“나? 저거 닫은 사람.”
남자, 상혁은 손을 들어 개폐구를 가리켰다. 잘 열리던 개폐구가 갑자기 열리지 않은 건 상혁이 한 짓이다.
간단했다.
“공돌이 마법사들이 쓰는 것 중에 접착이란 게 있거든. 그걸 쓰면 막 15층짜리 돌탑도 알아서 턱턱 붙어. 성벽에 쓰이는 돌도 그런 애들이 있으면 더 튼튼하게 지을 수 있고.”
“……?”
미끄러지게 하는 마법이 있으면 안 미끄러지게 딱 붙이는 마법도 있었다. 상혁이 사용한 건 그 마법이었다. 마법도 2서클 수준이라 부담 없이 쓰기에 딱 좋았다.
“뭔 개소리야! 흡!”
탕! 타다당!
그 순간 총구가 불을 뿜었다. 파울로는 고민하지 않았다. 상대가 적이란 확신이 선 순간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머리 두 발, 몸통 세 발.
상대를 일격에 사살하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겨냥한 그대로 총구가 불을 뿜었다.
쨍그랑!
하지만 목표가 된 상혁은 피를 뿜고 쓰러지지 않았다. 대신 상혁 주변으로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을 뿐이다.
“총알은 다섯 발 정도인가 보네.”
상혁은 부서져 내리는 3서클 실드 마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운동 에너지를 품은 총알을 다섯 방 막으니 실드 마법이 깨졌다.
그 정도면 아주 준수한 방어력이다.
“실드가 이 정도면 배리어는 한 탄창은 거뜬히 버티겠네.”
방어 마법의 견고함은 이런 실전이 아니라면 실험해 볼 일이 없었다. 덕분에 좋은 자료를 얻은 상혁은 당황해 하고 있는 파울로를 향해 손을 까닥했다.
“윽! 으윽!!”
꽈악!
파울로의 몸이 보이지 않는 포승줄에 묶인 것처럼 팔과 다리가 묶인 채 버둥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혁이 손가락을 까닥이자 파울로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위험한 건 나 주고.”
상혁은 그의 손에서 권총을 받아 들었다. 파울로는 절망과 경악이 섞인 눈으로 상혁을 바라봤다. 상혁은 빙긋 웃었다.
“아, 이거? 마법이야. 속박 마법이랑 염력 마법. 신기하지?”
파울로의 눈이 흔들렸다. 상혁은 커다란 비밀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한 가지다. 파울로가 자신의 비밀을 들어도 입을 막으면 된다는 뜻, 즉 죽이겠다는 뜻이다.
상혁은 힐끗 ‘제피렐리’라 쓰인 특수 용기를 쳐다봤다.
“네가 알고 있는 게 궁금하니까. 우리 복잡하게 돌아가지 말자. 알았지?”
상혁의 손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왔고 그 마나는 파울로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저항하는 듯하던 파울로의 몸에서 기운이 빠졌다.
상혁은 바인드 마법을 푼 뒤 그를 내려놓으며 파울로에게 물었다.
“모든 것을 설명해라. 원탁의 제피렐리와 이곳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지까지 모두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