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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114화 (113/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14화

114. 왕따(4)

“조 부장님. 밖에 붙은 공고문 보셨어요?”

“공고문?”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조진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공고문이라니. 그는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진만 팀의 과장이 조진만에게 말했다.

“위에서 공고문이 하나 내려왔는데, 재단으로 임시 파견을 나갈 사람을 구한다는 공문이 붙었던데요.”

“그걸 왜 여기서 찾아?”

조진만은 더욱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은 파운드리 사업부다. 그런데 왜 이곳에서 재단에 파견할 사람을 찾는다는 말인가.

“직급도 안 정해져 있고 자원자를 받는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제 동기한테 들으니까, 이번에 기획팀에 웬 신입 하나가 특채로 들어왔는데, 거기로 바로 간다고 하던데. 뭐 연관이 있지 않겠어요?”

“음…….”

SG그룹의 규모는 방대하지만 동시에 좁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소문 하나만 돌아도 순식간에 회사 안에 퍼졌다. 조진만도 그 신입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진짜 회장님의, 그러니까. 뭐 그런 거 아닐까요? 그게 아니고서야 본사 비서실에서 신입이 내려오냐구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 쓸데없는 데 기울일 관심이 있으면 가서 일이나 해.”

“예, 예 알겠습니다.”

조진만은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자신의 뱃속에 이상한 벌레를 집어넣은 괴인, 백상혁이 백성철의 조카라는 것 때문이었다.

‘나를 쓰겠다고 했는데. 언제 부를 거지?’

사실 과장이 전해 준 소식보다 더 큰 일이 회사 내에는 있었다. 바로 오늘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로열 패밀리가 등장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진만은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어디로 가게 되려나.’

조진만의 앞날은 꽤 밝았다. 그는 자기 동기들을 모조리 제치고 부장에까지 앉았고, 이대로만 쭉 처세술을 이어 나간다면 그 위로 올라가는 게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큰 장애물이 나타났다.

백상혁.

그가 자신을 원한다면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조금 전에 말을 걸었던 과장이 입을 막는 소리가 들렸다.

“헙!”

“또 왜!”

원래부터 여기저기 발이 넓어 잡소문을 많이 듣고 다니는 과장이었다. 조진만이 신경질적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자 과장이 벌떡 일어나 조진만에게 속삭였다.

“지금 방금 동기가 알려 줬는데, 새로운 도련님 있지 않습니까.”

“백상혁?”

“어! 이름까지 아셨습니까? 하긴 부장님이시니까 저보다 많이 아시겠죠.”

조진만은 과장이 뭐라고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백상혁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과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글쎄 그 새로운 도련님이, 한국대 이사장으로 가신다고 하시지 뭡니까.”

“대학교? 그 한국대?”

“예. 한국대요. 그러니까 밖에 붙은 공고문이…….”

벌떡.

조진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과장이 하는 말을 그는 끝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한국대를 후원하는 건 바로 SG재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밖에는 재단으로 갈 사람을 모집하는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하아.”

조진만은 그 공고문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빼박이었다. 자신은 저기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청춘을 바쳤던 곳을 떠나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후회라면 돌아갈 수 없는 그 과거에 상혁과 얽히면 안 됐다는 것뿐이었다.

“내 업보다. 내 업보야.”

조진만은 터덜터덜 걸었다. 그런 그가 향하는 곳은 그의 부서가 아니었다. 그는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장실로 향했다.

“비서실장님 좀 뵈러 왔습니다.”

그런 조진만은 사장실에 도착해 비서들에게 박정철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 * *

이창엽은 황당했다.

그는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나름 본사 비서실에서 촉망받는 비서로 능력도 좋다고 자부했는데, 상혁을 만난 순간부터 자신이 철저하게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됐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체 뭐지?’

자신보다 열 살은 어린 상혁을 보면서 이창엽은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비서실장이 자신을 상혁을 보좌하라고 보내면서 내린 명령은 백상혁이란 사람에 대해서 파악하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파악할 수 없었다.

‘함부로 끼어들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상혁은 딱 그 나이대처럼 보였지만 또 어떤 면으로는 백성철 회장이나 김대엽 실장처럼 묵직한 위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나 아무것도 하지 말고 따라다니며 감시나 하라고 했을 때는 이창엽은 속된 말로 상혁에게 쫄아서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사자의 새끼라는 건가?’

20년 동안 그의 존재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그래도 백성철 회장의 핏줄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닌 모양이라고 이창엽은 생각했다.

이창엽은 상혁의 뒤를 조금 떨어져 걸으며 상혁을 힐끔거리며 관찰했다.

‘사람들을 부리는 게 익숙하다. 그리고 대체 어떻게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는 거지?’

상혁에게는 아무런 세력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상혁이 갑자기 자신의 변호사와 비서, 경호원이라면서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는데 그들의 충성심이 놀라울 정도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일호라는 비서와 일영이라는 경호원은 진짜 비서와 경호원이 맞나 싶을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능력은 아직 알 수 없고. 하지만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사이인 것 같은데.’

보육원 출신에 검정고시를 거쳐 고시생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상혁에 대해 알려진 것의 전부.

하지만 그런 상혁이 어떻게 저런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는 미지수였다.

‘이래서 그런 명령을 내리신 건가.’

아주 짧게 상혁을 관찰했음에도 이창엽은 그런 상혁에게서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를 발견했다.

아마 김대엽이나 백성철은 자신보다 먼저 이 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이창엽을 굳이 상혁의 옆에 붙여 놓으려 한 것이다.

“차는 있나?”

“예?”

“보다시피 차에 탈 자리가 한정돼 있어서.”

“아…… 그게.”

이창엽에게도 당연히 차가 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창엽은 당연히 자신이 상혁과 같은 차에 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혁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없으면 택시 타고 와. 한국대에 가 있도록 하지.”

“그, 이사장님.”

상혁을 더 이상 도련님이라 부를 순 없었다. 그건 사적인 호칭이고 밖에서 상혁은 이제 한국대의 이사장이다.

“아. 그러면 감시를 못 하나?”

“그, 그런 것이 아니라.”

이창엽은 상혁의 저런 태도를 먼저 부드럽게 바꾸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다. 그는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을 위해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니 상혁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그래야 상혁이란 인간에 대해 관찰을 하기가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끼익!

그때 커다란 봉고차 한 대가 SG본사 바깥에 끼익하고 섰다. 그리고 그곳의 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더니 오승택과 김태양이 내렸다.

“상혁 님.”

“빨리 데려왔군.”

상혁이 김태양을 보면서 씩 웃었다. 김태양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어, 그게, 그…….”

오라고 한 곳으로 왔더니 그곳이 SG본사인 것만 해도 놀라 자빠질 지경인데 상혁의 뒤에 누가 봐도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상혁의 신분이 김태양이 생각도 하지 못한 수준이라는 것을 뜻한다.

“설명 안 했어?”

“예. 굳이 하지 않았습니다.”

오승택은 나름 비밀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게 충성심의 발로였기 때문에 피식 웃은 상혁은 김태양에게 말했다.

“백상혁이다. 구면이지?”

“그, 구면이 아니라…….”

김태양은 하소연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어디 가서 함부로 떠들고 다닐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혁이 마음에 든다는 듯 씩 웃었다.

“요즘 뭐 하고 있지?”

“뭐, 그냥저냥 회사 나와서 작은 사무실 차렸습니다.”

“작은 사무실이라.”

상혁이 일호를 슥 쳐다보자 일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국정원에서 정직 처분을 당한 뒤 사표를 내고 나와 흥신소를 차렸습니다. 국정원에서 견제한 탓에 아무런 소득 없이 지낸 것이 몇 달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는데?”

“……그걸 어떻게?”

김태양이 벙 찐 표정으로 일호를 쳐다봤다. 일호는 잘생긴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진짜 인간다운 감정 표현까지 ‘배운’ 일호가 됐다.

‘성장하는 서번트라. 마법의 이론이 뒤집힐 만한 대사건이군.’

상혁은 그 모습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 그간 일호를 분석하려고 했지만 지금 수준으로는 불가능이란 결과만을 얻은 상혁이다.

하지만 저 비밀을 찾을 수 있다면 마법 패러다임의 대전환임과 동시에 상혁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마법 생명체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건 더 이상 마법 생명체가 아닌 또 다른 생명체가 되는 거겠지. 마법의 궁극에 다가가게 되는 셈인가.’

생명체를 창조한다는 건 신의 영역이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일호는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한다. 일호는 주식에 관심을 보였고 그다음으로 관심을 보인 것이 바로 인터넷이었다.

방대한 또 다른 세상.

일호는 스스로 자신이 상혁을 도울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기를 원했고 그것이 바로 자본금융의 정점인 주식 시장과 인터넷이었다.

“회사에서 정직 처분을 받게 된 것도 도련님과 얽힌 사람 공장 때문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런 일호의 능력은 벌써 국정원의 보안망을 뚫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특급 기밀은 아니고 가장 기본에 속하는 기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일호가 그 정도로 실력을 키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진짜야?”

“엄…….”

김태양은 민감한 주제가 나오자 화제를 슬쩍 피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상혁의 질문에 대답을 한 셈이 된다. 상혁은 씩 웃었다.

“잘됐네. 사람이 필요했는데. 나를 위해서 일해라. 보수는 섭섭지 않게 주도록 하지.”

국정원에 비밀 요원, 소위 블랙이라 부르는 그 정도 급의 요원 출신이다. 그리고 그런 김태양 밑에는 비슷한 처지의 요원 출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자 김태양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런데 정확히 누구십니까?”

상혁은 김태양과 요원들의 몸에 이상한 것을 심은 괴인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목숨줄을 잡고 있는 적으로 규정해야 하지만 살고 죽는 문제에 어제의 적은 오늘의 아군이 될 수 있었다.

능력만 있다면 말이다.

어차피 회사에서도 나왔고, 부하들을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국정원의 방해로 일감 하나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 범상치 않아 보이는 상혁이 손을 내밀면 잡아야 한다.

김태양은 본능적으로 지금이 기회란 것을 느꼈다.

“백상혁. 백성철 회장의 조카. 이 정도면 됐나?”

상혁이 그렇게 말하자 김태양의 눈이 커졌다. 범상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무려 SG의 로열 패밀리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혁은 고개를 돌려 이창엽을 쳐다봤다.

“저 차 타고 와. 한국대에서 보도록 하지.”

상혁은 당연히 김태양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김태양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일영이 열어 주는 문으로 차에 올라탔다.

부우웅!!

그리고 덩그러니 남은 이창엽은 김태양을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이 사람들은 또 뭐고.’

대체 어디서 사람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지 이제는 신기해질 따름이었다. 흥신소라고 했던가, 하지만 이창엽은 그걸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내 편견을 버려야 한다.’

상혁은 이창엽이 생각하는 상식 바깥의 인물이다. 그러니 김대엽이 자신을 그에게 붙인 것이다. 그때 김태양이 허탈하게 웃었다.

“하. 이거 벗어날 수가 없겠네. 그냥 따르라고 해도 따라야 할 판에 SG 도련님이시라니. 안 그렇습디까?”

김태양은 이창엽에게 말했다. 이창엽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태양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에게 말했다.

“뒤에 타쇼. 그런데 아마 애들이 많아서 불편하긴 할 겁니다. 예.”

김태양도 이창엽이 상혁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대충 눈치챈 듯했다. 블랙 요원 출신이라면 그 정도 눈치는 기본이다.

“얘들아. 우리 물주가 생겼다. 한국대로 오시란다.”

“물주요? 진짜? 드디어 월세 낼 수 있게 되는 겁니까?”

“우오오!!”

이창엽은 봉고차의 뒤에 자리가 비좁아 어깨를 딱 맞대고 있는 덩치들을 보고서는 순간 질린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겠는가.

저걸 타고 오라는데.

‘까라면 까야지.’

구슬픈 월급쟁이의 푸념은 어깨 사이에 묻혀 금세 사그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사람을 가득 태운 봉고차가 탈탈거리면서 한국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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