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15화
115. 왕따(5)
한국대는 SG재단에 의해서 운영이 되는 사립대학이다.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인 QS에서는 작년 전 세계에서 30위를 기록했고 미국의 주간지가 발행한 세계대학순위에서는 29위를 기록한 세계적인 대학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단연코 과학기술대학 등을 제외한 종합대학 중에는 1위로 5년 전에 근 반세기가 넘게 최고로 꼽혔던 서울대를 누르고 한국대가 1위로 올라섰다.
정확히 말하자면 10년 전 SG재단이 한국대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가파르게 전 항목에 대한 점수가 오르기 시작하더니 5년 만에 서울대를 누르고 대한민국의 최고 대학이 된 것이다.
서울대를 누르고 한국대가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된 것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SG그룹.
대한민국에서 그 어떠한 기업도 SG와는 견줄 수 없었다. 재계 서열 2위부터 4위가 전부 합쳐도 1위인 SG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SG는 세계 시장에서 기업의 명성이 오를수록 더 좋은 양질의 인재가 필요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에서 원석을 골라내는 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과 자금을 소모했다.
그래서 백성철이 떠오른 것이 바로 대학교에 대한 투자였다.
즉, SG에서 원하는 최고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SG가 직접 대학교에 투자를 하고 운영을 함으로써 안정적인 인적 자원을 제공받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런 SG의 결정에 대한민국 정부와 교육청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그리고 SG재단이 한국대를 맡게 되면서 한국대는 말 그대로 환골탈태했다.
원래도 서울에서 10위권 내에 드는 대학이었지만 SG재단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기 시작하면서 SG의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유명한 교수들을 초빙하여 석좌교수로 모시기 시작했고, 캠퍼스를 확장하고 공학 연구소 등을 설립하면서 굵직한 투자들을 이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당연히 대학교에서 내놓는 결과물들의 질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름만 대면 알 몇몇 석학들이 한국대 이름으로 낸 논문들이 세계 유수의 과학 잡지 등에 실리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대학 순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피인용 논문의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며 서울대를 따라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투자가 이뤄진다면 10년 내 20위권 이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대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 바로 한국대였다.
그런데 그곳에 갑자기 스무 살짜리 백성철의 조카가 이사장으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차 안에서 상혁은 피식 웃었다.
“뒤집어지겠군. 교육청이랑 학교가.”
“무엇보다도 원래 이사장이 꽤 인격자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따르는 교직원들과 교수의 수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그자가 해임당하고 도련님이 오시게 되었으니 잡음이 나올 겁니다.”
일호의 논리는 완벽했다. 서번트인 일호가 달변을 쏟아 내자 상혁은 신기한 표정으로 일호를 다시 한번 더 쳐다봤다.
‘마나안.’
쏴아아!!
그런 상혁의 오른 눈에 마나안이 깃들었지만 여전히 일호에게서는 처음 관찰했던 그 이질적인 기운을 제외하고는 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련님.”
상혁이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일호가 상혁을 일깨웠다. 상혁의 오른 눈에 서렸던 서기가 빠지자 일호는 상혁에게 말했다.
“이대로 이사장 자리에 앉으신다고 해도 원활한 경영은 힘들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일호는 상혁을 보좌하는 비서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지에 따라 일호의 행동 역시 달라질 것이다.
이선호는 옆에서 턱을 쓰다듬었다.
“쉽지 않겠군요. 안 그래도 근래 한국대의 이미지가 괜찮아진 편이라 아마 생각보다 저항이 격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인격자라는 이사장은 왜 자른 거랍니까?”
상혁은 백성철이 자신을 위해 일부러 일을 잘하던 이사장을 잘랐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백성철은 원래부터 그 이사장이란 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힐만한 사람이 없어 고민하던 찰나 상혁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니 좋다고 상혁을 그 자리에 앉히기로 한 것이겠지.
“백성철과 SG로 쏟아질 비난을 받아 내라고 날 고기방패로 쓴 것 같은데.”
이선호는 상혁의 말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이선호는 수긍했다. 그가 아는 SG라면 그러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조카인데도 봐주는 게 없군요.”
“그렇게 무른 양반이었다면 그 자리에 앉지도 못했을 겁니다.”
동시에 제 핏줄인 상혁의 아버지도 그렇게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혁은 속 안에 한 줄기 냉소를 품고는 이선호를 쳐다봤다.
“그걸 상혁 씨가 찾기를 원하는 겁니까.”
“아무래도요.”
백성철은 철저하게 상혁을 이용해 먹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 이사장이 백성철의 눈 밖에 나게 된 계기가 있을 것이다. 그걸 상혁이 찾아내도 좋고, 그게 아니더라도 고기 방패를 할 테니 상관없다는 뜻이다.
“아마 왜 이사장이 회장에 의해 쫓겨났는지를 찾아내는 게 첫 단계가 되겠군요.”
한국대를 장악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견제가 심할 겁니다. 보아하니 백이현과 백도현도 한국대에 얽힌 게 있는 모양이더군요. 열심히 저를 포섭하려고 하던데.”
백이현과 백도현이 기겁한 이유. 그리고 두 아들을 견제하고 싶은 백성철이 상혁을 한국대로 보낸 이유까지.
대학교 하나에 많은 것이 얽혀 있을 것이 대충 짐작이 갔다.
“복잡하군요, 재벌의 삶은.”
오늘이 첫날이지만 그 일면을 들춰 본 것 같은 이선호는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저게 정상이었다.
피가 이어진 가족끼리 서로를 견제하고 더 많이 손에 무언가를 쥐기 위해 눈치를 보는 건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삶이다.
하지만 상혁에게는 아니다.
‘이제 좀 피가 도는 것 같달까.’
가나안.
그곳에서 이 정도의 정쟁은 매일 밥 먹듯이 해 왔던 상혁이다. 상혁에게는 오히려 이런 곳이 더 편했다.
평온한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상혁에게는 이런 곳에 몸을 던져야 할 이유와 명분도 있었다. 그러니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이 상혁의 목적을 이루는 데는 더 도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호.”
“예, 도련님.”
“한국대에 도착하는 즉시 교직원에 대한 것을 파악하도록 해. 할 수 있지?”
“맡겨만 주십시오.”
서번트는 본래 마법사를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체다. 그리고 일호는 가나안에서 상혁이 하는 모든 것을 보고 들었다. 그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학습하는 서번트, 아니 서번트가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무언가가 된 일호는 상혁이 원하는 바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일영. 일호를 도와라.”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거기에 상혁은 일영까지 붙였다. 둘이 함께 다니면 어딜 가든 그림이 된다. 상혁은 일영에게 말했다.
“예쁜 척을 해.”
“예?”
일영이 순간적으로 삐그덕거렸다. 오승택과 이선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혁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찐하게 웃었다.
“미인계를 쓰란 말이다. 일호와 함께.”
미인계.
그건 일호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이다. 저 둘의 외모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경계를 무너뜨리거나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 것이다.
딱, 딱.
상혁은 손가락을 두 번 튕겼다. 그러자 반짝거리는 빛이 일호와 일영에게 스며들었다. 그 순간 일호와 일영의 얼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넌 한눈팔면 안 되지.”
상혁은 백미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넋을 놓으려는 오승택에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오승택의 눈에 빛이 돌아오면서 그가 황급히 핸들을 꺾었다.
빠앙-!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했다. 피식 웃은 상혁이 말했다.
“참 마법이야. 너희 둘의 외모와 합쳐지면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하겠지.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아 와라. 사소한 것도 좋다.”
“예, 도련님.”
참 마법은 3서클의 정신계 마법이다. 매혹이라는 뜻의 참은 몽마로 일컬어지는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라는 인간의 유혹하여 정혈을 뽑아 먹는 두 마족에게서 파생된 마법이다.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는 인간뿐만 아니라 이종족에게도 그들이 원하는 이상형을 보여 주는데 하필이면 드래곤 손에 잡혀 이리저리 실험을 당하다가 탄생한 것이 바로 참 마법이다.
타인이 매력을 느끼도록 하는 마법.
정신력이 강하다면 통하지 않을 마법이지만 사실 많은 마법사들이 참 마법을 애용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마법도 아니고 외모 때문에 자존감이 낮은 마법사들은 참 마법이 없으면 외출을 하지 않는, 여자의 메이크업과 같은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마법은 일호와 일영처럼 외모가 뛰어난 이에게 사용하면 효과가 훨씬 더 증폭된다.
“오승택. 어떠냐?”
“죄, 죄송합니다.”
하마터면 자신이 사고를 낼 뻔했다는 것을 안 오승택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지만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당장 이선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선호는 눈이 풀린 채 일영을 보고 있었다.
따악-!
상혁이 손가락에 마나를 담아 튕기자 이선호의 눈에 눈빛이 돌아왔다. 그는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상혁을 쳐다봤다.
“변호사님 표정을 보아하니 이 정도면 문제가 없겠네요.”
“지, 지금 이게…….”
“마법이죠.”
피식 웃은 상혁의 눈에 교문이 들어왔다. 웅장하게 선 교문은 차가 동시에 여섯 대는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
“5년 전에 인근 부지들을 매입해서 확장했다는 거죠?”
“예.”
“SG건설에서 했겠네요?”
“그렇습니다.”
SG가 한국대의 운영을 맡은 뒤 가장 먼저 한 것은 주변의 부지를 매입하여 허물고 한국대의 캠퍼스를 늘린 것이었다.
지방에 분원으로 해서 캠퍼스를 늘려도 되지만 그런 부분은 학과 특화로 남겨 놓았고 일단 서울 내에 있는 캠퍼스 크기를 늘린 것이다.
그 사업을 맡은 곳이 바로 SG건설, 백이현이 맡고 있는 사업체다.
“도착했습니다.”
상혁이 탄 차는 돈이 있어도 한국에서는 웬만하면 구하지 못하는 고급 세단이다. 백이현이 선물로 준 것인데 그 덕분에 사방에서 시선을 받았다.
호기심 넘치는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도착한 상혁은 밖을 슬쩍 내다보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없네요.”
“예?”
“제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텐데 나온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겁니다.”
무려 백성철의 조카다. 그런 상혁이 이사장으로 취임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무도 나와 있지 않다는 건 상혁에 대한 반항이다.
동시에 존경하는 전 이사장을 해고한 것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것이기도 했고.
“왕따라. 재밌네요.”
상혁의 한국대 생활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지만 상혁은 웃었다. 왕따라니, 상혁에게는 그다지 낯선 경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가 아니라 남을 괴롭힐 수 있는 왕따다.
그럼 여기서 문제.
“상혁 씨한테 왕따를 가하는 게 가능이나 합니까?”
남을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을 따돌린다? 이선호가 근본적인 질문을 하자 상혁이 씨익 웃었다.
“보면 알겠죠.”
* * *
“저희 이래도 되는 겁니까?”
총무부장이 손톱을 잘근 물어뜯으면서 조바심을 드러냈다. 그러자 기획조정처의 처장인 한덕술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최 이사장님이 저희에게 얼마나 잘해 주셨습니까. 그런데 그런 분을 말 한마디로 해고시키다니요.”
“어, 엄밀히 말해서 해고당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 전 이사장인 최만금은 엄밀히 말하면 직무 해제 상태였다. 새로운 이사장이 온 다음에 거취가 정해질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권한도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인수인계할 시간도 없이 이러는 건 아닙니다. 다들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SG에서 우리 전부 다 해고하라고 했을 때 이사장님이 막아 주신걸요.”
기획조정처는 한국대 행정기관의 중추신경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의 처장인 한덕술의 발언권은 한국대 월급을 받는 사람들 중 가장 컸다.
그리고 이것들도 전부 다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획이었다.
“어차피 우리의 협조 없이는 회장 조카가 아니라 조카의 할애비가 오더라도 안 됩니다. 그걸 알아 두고 그다음에 우리 의견을 관철시켜야 합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SG인데.”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입니다. 한국대가 최고의 대학이 되기까지 우리의 공이 없다고 할 순 없어요. 총장님도 우리를 지지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당연했다. 현 한국대 총장은 이사장의 사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한국대에서 가장 최근에 지은 건물인 새천년홀 행정본부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수행원들이 죽 들어왔다.
그런데 그 수행원들의 눈매가 사나운 것이 꼭 조폭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사이로 허여멀겋게 생긴, 딱 신입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나이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걸어 나오는 것만으로 주변이 바짝 긴장했다.
마치 화살이 튀어 나가기 전에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 것 같은 그런 긴장감. 그 긴장감을 조성한 상혁은 본부 내의 직원들을 슥 둘러봤다. 그냥 둘러보는 것 같았지만 상혁과 눈이 마주한 사람은 몸이 굳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상혁이 한마디만 하면 모가지가 다 날아갈 것만 같은 그런 팽팽한 긴장감.
상혁은 내부를 쭉 둘러봤다. 그러고는 입술을 달싹이자 긴장감이 폭발할 것처럼 팽팽해졌다.
“새로 온 이사장입니다. 이사장실이 어딥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