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81화
081. 돈으로 주쇼(1)
“흐음.”
차라락
상혁은 마나석과 마정석을 얻었지만 예상을 깨고 던전에 곧바로 처박히지 않았다. 대신 상혁은 평소와는 다르게 생활 패턴을 약간 바꿔 안 가던 곳에 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과학은 흥미롭네.”
상혁은 책장을 연신 넘기며 쏟아져 들어오는 지식의 홍수에 순수하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예전에 스무 살이었을 때야 이런 공부들을 억지로 했지만 지금은 이런 지식들에 순수하게 놀랄 정도가 된 셈이다.
마법학의 정점에 도달했던 대종사인 상혁의 경험과 지식은 과학과도 통하는 곳이 분명히 있었다.
만류귀종이라는 말처럼 마법학의 궁극은 결국 과학과도 상당히 같은 개념을 공유한다는 것을 도서관에서 과학 관련 전문 서적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다.
물론 책으로만 보고 깨달을 수 있는 건 이론서까지만이다.
실질적으로 과학이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이 되는지는 공장에 직접 가거나 연구소를 가지 않는 이상 수식으로만 설명이 되기 때문에 제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터득하는 데는 무리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상혁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과학자가 될 것도 아니고.”
공돌이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상혁이 도서관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마법으로 채우지 못하는 기술의 공백을 지구의 과학 기술과 이론을 빌어 채울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상혁은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 책 표지에 손을 얹고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러고는 의식을 네 개로 분리해 개념들을 뒤섞고 마법을 그에 결부시키면서 실질적으로 현실화 가능한 방안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사서가 신기하게 보고 있다는 걸 상혁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뭘 그렇게 봐?”
“그냥 신기한 사람이 와서요.”
“또 뭐. 진상이야?”
사서 10년 차인 선배 사서는 인상을 찌푸렸다. 공립도서관은 소정의 출입 절차만 해 놓으면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시골에 속하는 이 천안 아산, 그리고 그 안의 온양에서는 도서관의 규모도 작고 도서관이라는 최초의 기능보다는 가끔 어르신들이 찾아와 더위와 추위를 피해 가는 공간으로 쓰이곤 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꼭 진상이 한둘씩 있기 마련이었다.
책을 그냥 가져가려 한다거나, 떠들면서 음식을 꺼내 놓고 수다를 떤다든가 하는.
하지만 후배 사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기, 저 사람이요.”
“젊은 사람이네?”
지금 시간은 오전 열한 시. 한창 사회 초년생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도서관에 오기에는 무리가 있는 시간이었다. 애당초 도서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서들은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했다.
“백순가?”
“엊그제부터 나오더니 전문 서적들을 쌓아 놓고 읽더라구요.”
“전문 서적?”
“네. 그것도 전부 과학이론이나 기술에 관련된 것들이요.”
서울에 있는 큰 도서관에 비하면 이곳 도서관은 보유하고 있는 장서의 양이나 수준이 미흡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것이 그런 전문 서적이기 때문에 다른 도서보다 더 빈약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 분야의 책들만 골라 보는 사람이라니.
“기계공학 쪽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더라구요.”
“공돌인가? 공돌이들은 취업도 잘된다던데 사지 멀쩡해 보이는 양반이 왜 이 시간에 도서관이야?”
“휴가 썼겠죠.”
“끙. 그건 그렇고. 오늘 새로운 도서 들어온다던데. 분류란 등록 작업하려면 빡셀 거야.”
“으아.”
그들을 잠시나마 흥미롭게 해 주었던 상혁에게서 떠나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상혁은 표지 위에 얹고 있던 손바닥을 떼고는 눈을 슬며시 떴다.
“됐다. 기초는 잡혔어.”
상혁은 사흘 만에 기계공학과 로봇공학에 필요한 기초지식과 이론들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고시 공부할 때 이랬으면 바로 붙었겠네.”
공부의 재미를 왜 젊었을 적에는 몰랐는지 그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특히 공부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곳이 대한민국인데 말이다.
마법사가 되면서 그쪽에 재미를 붙인 상혁은 입맛을 다셨다.
“지식의 대중화라. 가나안에서 귀족 나리들이 이 말을 들었으면 뒤집어졌겠지.”
아마 상혁을 나라의 근간을 뒤흔들려는 반역자로 몰아붙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나안에서는 귀족들이 평민들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식을 평민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다.
반면 대한민국은 누구나 다 관심만 있으면 이런 곳에서 무료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로봇형 서번트라. 이제 좀 감이 잡힐 것 같기도 하고.”
상혁은 어쨌거나 20년만 지구에 살고 나머지 50년을 가나안에서 살았다고는 해도 지구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에서 지구의 것들을 접목시키려 노력을 많이 했다.
냉장고나 화장실, 상하수도 같은 개념들 도입하기도 했는데 그중 실패한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로봇이었다.
“로봇은 남자의 로망이지.”
어릴 적 로봇 만화를 좋아했지만 보육원에서 자라느라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걸 그냥 부러워만 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로봇은 남자의 로망이란 것처럼 상혁은 가나안에서 서번트와 골렘을 만들 때 로봇처럼 만들려고 노력했다.
만화나 영화에서 봤던 로봇들.
하지만 그중 성공한 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지식의 부재.
그저 모양만 기억하고 있지 구동 원리 같은 건 하나도 모르는 상혁은 대마법사라고 해도 만들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드워프가 만든 부품으로 로봇 비슷한 것을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애초에 로봇이란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이 상혁 빼고는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었다.
그냥 골렘이나 서번트를 만들면 될 것을 왜 굳이 로봇의 형태로 만들려고 하는지 드워프들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멍청한 난쟁이 똥자루들.”
괜히 드워프들을 욕한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혁은 가져온 책들을 제자리에 돌려 둔 후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이제 만들어 보면 되겠지.”
상혁은 손바닥을 슬슬 비볐다. 이제 남자의 로망을 현실로 이룰 차례였다.
“변신 로봇이다.”
로봇의 꽃은 바로 변신 로봇. 차로 변했다가 로봇으로 변했다가 하는 그 변신 로봇을 만들어 낼 꿈을 가진 지훈의 눈이 반짝거리면서 빛났다.
* * *
딸랑!
문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상혁이 나타나자 멍하니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전광철이 우당탕탕 소리를 내면서 일어섰다.
“상이 왔는가?”
“…….”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여 보인 상혁은 옆걸음질로 스윽 전광철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전광철이 상혁의 옆에 다가왔기 때문에 그런 상혁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잘 지냈나? 생각해 보니까 지난번에 상이 너한테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말이야. 변호사님이 서울에 상이를 보내서 아영이를 데려왔다지?”
이선호가 그런 식으로 전광철에게 설명한 모양이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고마워. 자네도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아닙니다.”
아마 상혁이 전아영을 구해 왔다는 것을 알았다면 전광철은 절이라도 했을 기세다. 그나마 이게 다행이라고 생각한 상혁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래. 이번에는 또 뭘 찾으러 온 건가?”
상혁이 실소를 지었다.
“이런 것들을 좀 구하려고 합니다.”
지난 사흘 동안 전문 서적을 붙들고 씨름을 한 덕분에 기계공학과 로봇공학 쪽에서 어느 정도 기초적인 성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걸 마법과 연결지어 서번트를 만들 예정이었고 거기에 필요한 공구들과 재료들이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엄선해서 만든 리스트였기 때문에 전광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기다리시게.”
“예.”
전광철은 안으로 들어가 상혁이 말한 것들을 하나씩 구해다가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상혁은 주변을 죽 훑다가 사진 한 장에 시선이 닿았다.
어린 시절의 전아영.
상혁은 전아영의 뇌까지 침투한 독성물질을 빼내다가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첫사랑.
상혁은 전아영의 첫사랑이었다.
‘그 꼬마라고.’
상혁도 부모님과 행복하게 이곳에서 살 적에 자신과 함께 논이고 밭이고를 뛰어놀았던 어린아이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게 여자애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코찔찔이에. 머리는 밤톨이고. 얼굴은 까무잡잡했으니까.”
딱 저 사진 속의 전아영이 그랬다. 사진 속 전아영은 영락없는 사내아이였다. 피식 웃은 상혁에게 전광철이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아닙니다.”
“집에 와서 아영이라도 보고 가지. 밥도 먹고 가고. 반찬도 좀 챙겨 줄 테니까.”
‘괜찮다’라고 말하려고 했던 상혁이지만 전광철의 음식을 떠올리자 입에 군침이 돌았다. 전광철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손맛이 있었다.
그가 만들어 준 반찬이나 김치가 전부 다 맛있었음을 떠올린 상혁이 멈칫했다.
“가끔 아영이가 자다가 자네를 찾아. 아마 무의식중에 자네가 있었다는 걸 안 모양이지. 그러니까 한 번 와서 보고 가.”
전광철의 말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 공구는 여기 다 있고. 재료들도 다 있네. 뭐 공예 하나? 참. 가져갈 수는 있고?”
전광철이 챙겨다 준 자재들의 무게는 최소 한 손에 20kg은 돼 보였다. 상혁은 아무 말 없이 값을 치른 뒤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한 손에 20kg 각 40kg과 넘는 자재들을 휴지 박스 들 듯 가볍게 들고 나가는 상혁을 보면서 전광철이 감탄했다.
“역시 젊음이 좋아.”
* * *
양손에 한가득 짐을 지고 나간 상혁은 40kg이란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듯 걸었다. 당연했다. 보기에는 손으로 짐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염력으로 짐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은 그냥 장식품 정도?
늘어난 근력 덕에 손으로 들어도 아마 가뿐했겠지만.
그렇게 휘파람을 불며 걷고 있던 상혁의 귀가 쫑긋했다. 그러더니 기다렸다는 듯 상혁의 바로 옆으로 아주 비싼 세단이 다가와서는 스윽 멈춰 섰다.
멋들어지게 생긴 세단의 조수석 창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지난번 SG호텔에서 봤던 백성철 회장의 비서실장인 김대엽이었다.
“상혁 님. 저는…….”
멋들어지게 차를 세우고 조수석 창문을 연 김대엽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혁이 그냥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차를 상혁의 옆으로 가져다 댔다.
“상혁 님.”
“하.”
상혁은 고개를 휙 돌려 김대엽을 쳐다봤다. 상혁과 눈이 마주친 순간 김대엽이 헛숨을 들이켰다. 상혁의 한쪽 눈이 순간 빛을 번쩍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보니 빛이 사라졌다. 상혁이 그런 김대엽에게 말했다.
“뭡니까? 그리고 누구신데요?”
“아, 저는.”
김대엽이 뭐라고 하려는 순간 상혁이 발로 그 비싼 세단의 옆구리를 퉁퉁 쳤다.
“일단 됐고. 차나 빼요.”
“차요?”
빠앙-!!
김대엽의 뒤에서 빠앙거리는 소리가 났다. 룸미러로 뒤를 보자 버스가 빵빵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상혁은 김대엽에게 퉁명스레 말했다.
“여기, 버스 정류장입니다. 그러니까 차 빼시라고요.”
“자, 잠깐만요!!”
상혁이 버스를 타려고 뒤로 가자 김대엽이 다급히 상혁을 붙잡았다.
“왜요. 나 저 버스 타야 하는데.”
“제 차를 타고 가시죠. 드릴 말씀이…….”
“할 말 없습니다.”
휙.
상혁은 그냥 뒤로 가서 버스에 올라탔다. 김대엽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대로 굳었다. 상혁의 반응이 자신의 예상과 한참 달랐기 때문이다.
‘뭐지?’
그 누구도 SG그룹의 비서실장인 김대엽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단 김대엽이 누군지 몰라도 그가 풍기는 기운에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상혁은 아니었다.
‘그냥 길에서 만난 아저씨 대하는 것처럼 하네.’
헛웃음을 지은 김대엽은 상혁을 대하는 것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빠앙-!!
그때 버스가 한 번 더 정류장에서 나가라고 김대엽의 귀에 클랙슨을 박아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