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80화
080. 마법사도 모르는 게 있다(5)
“아영아!!”
전아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맞이하는 부모님의 태도가 너무나도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자기 쓰러진 자신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전아영은 전광철과 최영숙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니다. 아니야. 이렇게 건강하게 돌아왔는데 그럼 된 거지. 암, 그렇고말고.”
특히나 감성적인 전광철은 전아영을 품에 꼭 끌어안고 놔주지 않을 것처럼 말했다. 상혁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땅바닥을 운동화 앞코로 슬슬 문질렀다.
아마 저들은 무척이나 불안하고 걱정이 됐을 것이다.
제 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생업을 내팽개친 채 병원에 왔지만, 딸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상대가 거대한 그룹의 지원을 받는 병원이란 것도 부모를 무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자식이라면 제 살도 떼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 중환자실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그들이 느꼈던 무력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난 모르는 감정이긴 하지.’
상혁은 그것이 얼마나 큰 감정일지 알 수 없었다. 상혁은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흔 살이 넘도록 살았고, 사랑하는 여자도 있었지만 가정을 꾸리진 않았다.
그때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흔 살이 될 때까지도 상혁은 자신이 가나안 사람이 아니라 지구인이고, 지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놈을 참 아꼈고.’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외로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쩌면 상혁은 자신이 모셨던 왕의 자식을 총애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사랑이 삐뚤어지게 되돌아왔지만 말이다.
상혁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과거에 지난 일을 길게 품고 사는 성격이 아니다. 물론 인체실험을 당했을 때처럼 가끔 이런 식으로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긴 하지만 그래도 상혁은 잘 이겨 낸 편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때 이선호가 슬쩍 다가와 상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분명 전아영은 SG병원에 있었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런 전아영을 상혁이 서울에서 데리고 왔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SG와 정체 모를 누군가 사이에 밀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밀약이요?”
상혁은 간략하게 상황을 요약해 이선호에게 알려 주었다. SG병원에서 비밀리에 빼돌린 무연고 환자 등이 평택에 있는 미군 기지로 이송됐고, 그 안의 비밀 실험실에서 인체실험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자 이선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그건 오랫동안 SG를 상대해 왔던 이선호로서도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충격이었다. 사람을 팔아넘기는 대기업이 있을 줄이야.
이선호는 자신이 알았던 SG의 어두운 면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몰랐던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이란 것도 말이다.
거악(巨惡)이다.
이선호는 분노에 턱을 푸들거리며 떨다가 금세 진정했다.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습니다. 화가 나서 죽을 것만 같습니다.”
상혁의 말에 이선호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럼에도 상혁이 빤히 쳐다보자 이선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럴 때는 분노를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숙이 묻어 두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나중에 복수의 기회가 생길 때 꺼내 들라고요.”
“스케일이 크기는 하죠?”
“미국이란 나라가 가지는 힘을 상혁 씨는 잘 모를 겁니다.”
그는 마법사다. 그렇기에 이선호는 상혁이 가끔 생각하는 것이 일반인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힘이 있으니까.’
힘이 있는 자는 힘이 없는 자의 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인이 SG그룹과 싸우는 것만 해도 벅찬데 거기에 이제 미국까지 끼어들었다.
이선호는 감당하지 못할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말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막막합니다.”
“이해합니다.”
“이걸요? 상혁 씨가?”
상혁은 피식 웃었다. 그는 이선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살아온 칠십 년이란 세월은 그냥 딱지치기해서 딴 것이 아니다.
“나라고 처음부터 마법사고, 대마법사였겠습니까?”
“아.”
이선호는 상혁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본 상혁은 처음부터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혁은 스무 살이다.
‘그럼 언제? 마법을 배우면 애늙은이가 되는 건가?’
하지만 그런 배경에 대해서 상혁은 별로 설명해 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를 마법사라고 밝히는 것도 딱 두 부류에만 하는 행동이었다.
“아군이거나 적이거나.”
상혁은 적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이 마법사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는 적은 그의 손을 못 벗어나거나 내일 살아서 눈을 뜨지 못할 이들이란 것을 이선호는 눈치채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군.
그 사실을 아무 데서나 떠벌리지 않을 아군에게만 마법사란 것을 밝힌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왜, 어떻게 마법사가 됐는지는 자세하게 말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막막할 때는 말입니다.”
상혁은 그런 이선호에게 말했다. 상혁도 막막할 때가 많았다. 인체실험을 당하며 고문을 당하고 있을 때도 그랬고 마법을 익혀나가면서도 막막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배신을 당했을 때도 막막했다.
그러나 상혁은 결국 그것들을 뛰어넘었다. 비록 말년이 좋지는 않았어도 적어도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살진 않았다.
“바로 앞에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결하는 겁니다.”
“바로 앞에 있는 거요?”
“백정연 씨한테 연락해 보세요. 그럼 할 일이…… 어후.”
상혁은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휘휘 가로저었다. 이선호와 백정연. 백도현이라는 공공의 적을 둔 둘이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상혁이 준 힌트에 이선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 그러면 되겠군요.”
이선호는 지금까지 홀로 싸워 왔다. 하지만 굳이 아군이 있는데 홀로 싸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 건 나 같은 대마법사나 하는 거고.’
그렇게 중얼거린 상혁이 이선호의 등을 툭 쳤다.
“서울로 이송된 건 백 대표님이랑 잘 말 맞춰서 저 가족에게 설명해 주세요. 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이선호가 제 가슴을 탕탕 두드려 보인 후 전광철과 최영숙에게 가서 뭐라고 말했다. 그러자 전아영이 고개를 돌려 상혁을 쳐다봤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인 상혁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여기서 이제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면 상혁은 할 일을 다 하는 셈이다.
공치사?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다. 사람들 눈에 확 띄는 것은 딱 질색이다. 상혁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유령처럼 사라졌다.
“저기 상혁 씨가…… 어?”
이선호가 전광철과 최영숙에게 말을 하다가 상혁을 찾았지만 상혁이 없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갔어요.”
“가셨다고요?”
“네.”
전아영이 이선호에게 그렇게 말해 주자 이선호는 난처하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어쨌거나 일단은 그렇게 된 겁니다.”
이선호가 그들에게 해 준 말은 간단했다. SG병원이 전광철, 최영숙 부부에게 딸인 전아영을 보여 주지 않자 이선호는 백정연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백정연과 상혁이 작은 인연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이선호가 상혁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백정연이 전아영을 서울로 이송해 자신이 아는 병원에 입원시킨 뒤 검사를 받게 했다더라.
자세히 들어 보면 여기저기 구멍이 많았지만 당장 못 만날 줄 알았던 딸을 만난 기쁨에 전광철과 최영숙은 그 구멍을 알아채지 못했다.
단 한 명만 빼고.
‘거짓말.’
전아영의 두 눈에 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건 분명히 상혁 오빠였어.’
전아영이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어이구 깜짝이야.”
병원에 슬쩍 빠져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온 상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눈앞에 떠오르는 퀘스트 창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퀘스트 : 원인불명의 기형
내용1 : SG충청병원에서 비밀리에 불법 수거업체를 통해 매장하는 약품 1,000t 소각(완료)
내용2 : 약품이 매장된 토양 18 헥타르 정화
보상 : 마나석 1, 마정석 10]
[퀘스트 : 숭고한 희생
내용 : 인체실험에 끌려온 죄 없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구하라.
보상 : 차등 지급]
첫 번째 퀘스트의 내용 1은 완료로 바뀌었다. 아마 뉴스에 날 정도로 큰불이 평택 미군기지에 났다는 것을 보니 1,000t을 소각해야 하는 퀘스트는 확실히 완료된 모양이었다.
마나로 인한 불.
그렇게 피어난 불길은 일반 자연의 불과는 성질이 달라서 약품을 소각하더라도 그 오염물질이 남지 않는다.
그것마저 마나로 된 불이 끝까지 연소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쓰레기나 다름없는 폐기물을 마나로 된 불로 태우면 정화작업까지 한 방에 끝난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나 흡수를 못 하는 게 아쉽지만.’
대신 그렇게 되면 오염물질 속에서 마나를 뽑아내진 못한다. 하지만 그건 다음이고 퀘스트 보상이 우선이다.
“내놔.”
상혁은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차등 지급으로 지급이 된다는 보상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상혁은 되도록 지금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나오기를 바랬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툭!
상혁의 발치에 웬 나무 상자 같은 것이 하나 툭 떨어졌다. 여느 게임이라는 것에서 본 보급 상자를 축소시켜 놓은 것 같은 모양새를 한 나무 상자를 상혁이 발로 툭 건드렸다.
“음. 살아 있는 건 아니네.”
다행히 상자는 미동도 없었다. 상혁은 여는 곳도 없이 사방이 밀봉된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콰직!
염력 마법으로 간단히 상자를 내려쳐 부수자 상자 안에 있던 내용물이 상혁의 발치로 또르르 굴러 왔다.
그리고 상혁의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서렸다.
“이건…….”
투명한 수정체 안에 검은색과 푸른색의 연기가 뒤섞이며 갇힌 듯한 형태의 주먹만 한 보석 하나와 엄지손톱만 한 보석 하나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가치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보석을 손에 든 상혁의 입가에 선연한 미소가 맺혔다.
“마나석이랑 마정석이네.”
마나석과 마정석. 마법 인형인 서번트와 골렘, 혹은 아티팩트나 마법진을 설치하는 데 있어 필수라고 할 수 있는 마나석과 마정석이 데굴데굴 굴러 나왔다.
그 안에서 일렁이는 마나를 감지한 상혁이 엄지손톱만 한 마나석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말했다.
“최하급.”
1서클 정도밖에 안 되는 마나가 든 마나석이었지만 정제를 할 필요가 없이 바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 마정석은 정제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쓸데없는 기운이 떨어져 나가며 크기가 줄어들게 된다.
“이것도 최하급.”
마정석 역시 마나석으로 정제하면 1서클 수준의 마나석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드디어, 드디어 이 귀찮은 삶에서 해방될 수 있다!”
상혁은 서둘러 아래 던전으로 뛰어 내려갔다. 한시라도 빨리 서번트를 만들어 이 지긋지긋한 살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서번트는 말 그대로 마법사에게 복종하는 마법 인형.
골렘과는 달리 마법사의 일상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시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 서번트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뼈대.
“인간 형태여야겠지.”
다른 사람의 눈에도 사람으로 보여야 하니 인간 형태여야 한다. 그렇다면 골격의 크기는 정해진 셈이다.
“굳이 내가 안 만들어도 되지.”
골렘이야 지구에 없는 크기의 마법 생명체이니 상혁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만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인간 사이즈의 서번트는 아니다.
상혁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인간 사이즈의 서번트. 그거라면 지구에 차고 넘치는 것이 인간 사이즈의 골격이다. 상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스마트폰으로 쇼핑 어플에 접속했다.
“마네킹이 하나에 얼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