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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82화 (81/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82화

082. 돈으로 주쇼(2)

양손에 들린 자재와 공구들이 덜그럭거렸다. 뒤를 돌아본 상혁은 슬금슬금 자신을 쫓아오고 있는 검은 세단을 쳐다보고는 인상을 썼다.

“안 가십니까?”

“제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말씀도 드릴 기회를 안 주셨습니다만.”

김대엽은 인내심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백성철 옆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만큼 상혁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해서 화가 난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묵묵히, 그리고 끈질기게 따라왔을 뿐이다.

처음 상혁이 자신을 거절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말을 붙이지 않은 채 그냥 상혁이 걷는 속도에 맞춰 느릿느릿 그 뒤를 차로 따른 것이 전부였다.

상혁은 그런 김대엽을 보고 그와 대화를 나누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끈질기기가 쇠심줄보다도 더 끈질긴 사람이다.’

저런 유형의 사람이 가장 피곤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없으면서 주변을 불편하게 사는 사람. 상혁에게는 김대엽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상혁은 대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양손에 든 자재와 공구를 내려놓았다. 한 쪽에 20kg씩 되는 무게를 내려놓은 상혁이 허리를 쭉 폈다.

“타시겠습니까?”

“꼭 그 안에서만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겁니까?”

“다른 사람이 들어서 좋을 이야기는 아닌지라.”

상혁은 끓어오르는 성깔을 한 번 눌렀다. 김대엽 같은 사람은 그냥 허튼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단지 듣는 사람이 짜증이 날 뿐이다.

하지만 그 짜증을 애먼 김대엽에게 풀 정도로 상혁의 정신 수양이 얕지는 않았다. 따지려면 이건 백성철에게 따져야 하는 일이다.

하는 수 없이 상혁은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팔짱을 탁 낀 채로 뚱한 표정으로 김대엽을 쳐다봤다. 그런 눈빛을 받으면 당황할 만도 하건만 김대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백성철 회장님의 비서실을 맡고 있는 김대엽이라고 합니다.”

그는 시종일관 상혁에게 정중하고 공손했다. 상혁은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김대엽의 눈을 통해 읽어 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속에 구렁이를 품은 노인네였다.

“내 이름은 알고 찾아왔겠고. 내가 여기 있다는 것도 그 잘난 SG에서 파악한 겁니까?”

“사람의 얼굴과 이름만 알고 있다면 SG에서 못 알아낼 건 없습니다.”

“잘나셨수다. 남 뒷조사했다는 걸 이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일인가.”

상혁은 줄곧 공격적이었다. 거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상혁의 심기가 좋지 않다는 것도 한몫하고 있었지만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뒷조사했으면 상혁이 불과 스무 살밖에 안 됐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혁이 툴툴대는 것도 모자라 거의 모욕적으로 받아들여도 될 정도의 태도로 계속해서 말을 한다면 상대의 심리를 흔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랑은 아니었습니다. 불쾌했다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김대엽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손자뻘인 상혁의 태도에도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사과까지 하는 여유를 보인 것이다.

‘알아낼 수 있는 건 없겠네.’

상혁은 그의 태도나 표정으로 유추할 수 있는 정보가 없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고는 그에게 말했다.

“피차 바쁘니 빨리 용건을 주고받고 끝내죠. 원하는 게 뭡니까?”

“혹시 아버님 이름이 백 성 자, 운 자 되십니까?”

백성운.

상혁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 인간이 어떻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있지? 아니, 그 이름을 꺼내는 이유는 뭐지 싶었기 때문이다.

“맞습니다만.”

“역시.”

그렇게 물은 김대엽은 상혁을 아련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 눈빛에 상혁이 묘한 불쾌감을 느끼려는 순간 김대엽이 그에게 말했다.

“어머님 성함은 김 성 자 미 자가 되시구요?”

뒷조사했다면 그에 대해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상혁은 SG그룹의 비서실장이나 되는 사람이 왜 자신에게 찾아와 이런 것을 묻는지에 대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런데요.”

“역시.”

똑같았다.

상혁이 확 이 노친네의 이지를 제압하고 아는 것을 다 토해 내라고 해야 하나 고민할 무렵 그가 상혁에게 말했다.

“회장님께서 보고 싶어 하십니다.”

“누가요. 그 할배가?”

상혁은 백성철을 떠올렸다. 눈빛이 선하지 않은 인간이었다. 딸인 백정연과는 다르게 관상에서부터 욕심이 머리끝까지 들어찬 노인네였다.

그런 인간이 나를 왜.

“SG그룹 회장님이 백수인 나를 왜요.”

“그건 그분의 뜻…….”

“아. 됐고.”

상혁은 백성철의 뜻이니 뭐니 하면서 또 군소리를 늘어놓으려는 김대엽의 입을 딱 틀어막았다. 김대엽은 백성철의 성실한 충복이다.

그런 충복에게는 가타부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안 갑니다. 관심 없어요.”

“함께 가신다면 이런 다 허물어져 가는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걸 얻으시게 될 겁니다.”

“그 욕심 많은 할배가 나한테 뭘 준다구요?”

상혁은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가 피식 웃었다. 무슨 사탕 주면 따라가는 애새끼도 아니고.

“그런 거 잘못 먹었다가 탈 납니다. 나 혼자서도 잘 먹고 살 수 있는데 무려 회장씩이나 되시는 할배한테 뭘 받는다고.”

상혁은 일부러 백성철을 할배, 할배 부르며 김대엽을 자극했다. 하지만 김대엽은 무슨 돌하르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상혁에게 김대엽이 말했다.

“인생이 바뀌게 될 겁니다.”

‘차원이동 한 것보다 더?’

큭큭, 하고 상혁이 웃었다. 웬만한 것으로는 상혁을 이제 놀라게 할 수 없었다. 그게 대기업 회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핵이 떨어지는 정도의 충격이라면 모를까.

“안 가요 안 가.”

상혁은 마치 잡상인을 내쫓는 것처럼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내리겠다는 의미로 차 문에 달린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제가 왜 상혁 씨가 고의적으로 저를 흥분시키기 위해 회장님을 할배라 불렀는데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던 것인지 아십니까?”

상혁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김대엽의 말에 상혁은 내리려던 것을 멈추고 고개만 돌려 그를 쳐다봤다.

“왜요?”

“그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뭐가. 그 회장이 할배라는 거? 그건 세 살짜리 애도 알겠던데?”

욕심 많은 할배. 자기 딸 앞에 딸보다 어린 여자를 데려와 놓고 방을 내놓으라며 소리를 치던 그게 추악한 노인네라는 것을 몰라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대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상혁 씨가 그분을 할배라고 부르는 게 맞는 표현이라 그렇습니다. 뭐, 엄밀히 말하면 조손 관계는 아니시지만.”

“호?”

“그분은 상혁 씨의 큰아버지시니까요. 거의 할아버지뻘쯤 되는.”

“……!”

그 말을 들은 상혁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 * *

[충격이 크신 모양이군요.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회장님께서 상혁 군을 부르셨습니다. 자신의 옆에 두시겠다면서. 그게 어떤 뜻인지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럼 이만.]

김대엽이 남기고 간 말이 상혁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듯 계속해서 휘몰아쳤다. 상혁은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있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니. 이게 무슨 소설 같은 일이야.”

차원이동으로 대마법사가 되어 회귀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로열패밀리?

무슨 막장도 이런 개막장이 있단 말인가. 상혁은 뒤통수에 깍지를 끼고는 다시 벌러덩 드러누워 돌집에 난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달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진짭니까?’

상혁은 돌아올 대답이 없을 하늘을 향해 속으로 중얼거렸다. 혹시나 어머니나 아버지가 들으면 대답이라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두 분께서는 돌아가셨고, 저는 보육원으로 갔던 겁니까?’

다른 대기업도 아니고 무려 1위 대기업인 SG그룹의 로열패밀리란다. 그런데 왜 자신의 부모님은 이런 시골에 은거하듯 숨어 살 듯이 지내시다가 돌아가셨던 걸까.

그리고 그런 왜 자신은 보육원으로 갔던 것일까.

친척이 저리 번듯하게 살아 있는데.

“정상은 아니지.”

상혁은 다시 벌떡 일어나 양반다리를 하고 매트리스 위에 앉았다. 옆의 돌집을 보니 연기가 모락모락 창문을 통해 피어오르는 것이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불빛을 보면서 상혁은 무언가 구린내를 맡은 듯 코를 킁킁거렸다.

“구린내가 난단 말이지.”

그래. 재벌 3세가 경영권을 마다하고 시골에 처박혀 사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왜 죽었는지, 그리고 자신은 왜 고아가 되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기사 한 줄 나지 않았어.”

상혁은 핸드폰을 백성운이란 이름을 검색해 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SG그룹 백성운에 대한 기사는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재벌 3세가 비명횡사했는데 기사 한 줄 나지 않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막았다는 이야기지.”

그것밖에는 설명되지 않았다. 가나안에서 온갖 권모술수를 경험하고 온 상혁의 촉이 딱 그쪽으로 꽂혔다.

“후계 구도 다툼?”

권력이란 건 자신이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아버지는 그걸 피하고 싶으셨지만 결국은 피하지 못한 듯싶었다.

그리고 그 원흉은 지금 SG그룹에 있을 것이고.

“회장이거나. 아니면 그 비서실장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회장 할배 따까리거나.”

큰아버지라니. 상혁은 비릿하게 웃었다. 자신에게 큰아버지 따위는 없었다. 부모님이 그렇게 돌아가시고 자신이 고아가 된 날 자신은 이 세상에 혼자가 됐다.

상혁에게 피로 이어진 가족은 없다.

아니, 있어도 자신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감히 누가 있어 이 대마법사 백상혁 님의 혈족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상혁은 가슴팍에 뜨끈한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건 헛되이 돌아가신 부모님의 죽음이 사실 누군가의 살해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에서 오는 일종의 분노였다.

나이가 일흔이 되었어도 부모님은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물론 10년밖에 함께 지내지 못한 부모고, 자신보다 한창 어렸을 때 돌아가신 부모님이지만 그래도 부모님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했던 시절.

그걸 앗아 간 놈이 SG에 있다?

“그냥 대충 백도현이란 놈만 조져놓고 스윽 빠지려고 했는데.”

SG라는 대한민국 1위 대기업과 괜히 대놓고 척 지면 귀찮을 것이 뻔해 피하려고 했던 상혁이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게 됐다.

부모님의 죽음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그 똥물 안에 아주 깊숙하게 뛰어 들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똥물 좋지. 내가 쪽쪽 빨아먹고 마나로 삼켜 버리면 되니까. SG그룹도 전부 다 내가 삼켜 버리면 되는 일 아니겠어?”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상혁이 코를 킁킁거렸다.

“거 구린내가 난다. 아주 악취가 나. 누군지 모르겠지만 내일부터 두 발 뻗고 편히 못 자게 만들어 주지.”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오승택이 들어왔다.

“구린내요? 어떻게 아셨어요? 청국장 끓였는데. 어서 오세요.”

상혁이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노는 분노고 밥은 밥이다.

* * *

백도현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김 실장님이?”

“예.”

박정철이 굵은 땀을 흘렸다. 지금 방금 상혁을 감시하던 감시조에게서 김대엽이 상혁을 만나고 갔다는 걸 전해 듣고 그걸 보고한 것이다.

그러자 백도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회장님이라고?”

“설마. 회장님이 견제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지금껏 상혁은 그의 배경을 생각하면 연루되면 안 될 모든 일들에 연루되어 있었다. 잠시 관심에서 멀어졌던 때도 있었으나 어떻게 된 것이 백도현이 벌이는 일마다 상혁이 걸려 있었다.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에 백성철 회장이 있었다면?

“안 하실 분도 아니지. 자기 동생도 내치신 분이신데.”

“설마, 아무리 그래도 아드님이신데…….”

백도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성철이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보다는 적의 실체라도 있는 것이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것이 백성철 회장이라면?

“힘들겠지만 넘지 못할 벽은 아니지. 최근에 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니까 권력에 욕심이 많으신 회장님은 나를 견제하시는 거고.”

백도현의 두 눈이 반짝거리면서 빛났다.

“그렇다면 백상혁과 회장님이 곧 만나겠군. 그 안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간 건지 알고 싶은데. 백상혁에게도 다시 사람을 보내 봐. 이중 첩자로 딱이겠어.”

“예, 사장님.”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백도현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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