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68화
068. 진정한 마법사의 시작(3)
마법사는 시간을 뛰어넘는 존재다.
그 말이 무엇인가 하면, 보통 사람이 해서는 한 달, 1년이 걸릴 일을 하루, 열흘로 압축하는 것이 바로 마법사라는 존재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사는 귀한 인재고 모든 귀족들과 왕국이 두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을 영입하려는 이유다.
하지만 그런 마법사들 중 정작 귀족이나 왕국에 투신하여 귀족가의 마법사나 왕궁 마법사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들은 탐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일을 해 주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연구를 하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마법사가 정말로 제대로 마음먹고 두 팔을 걷어붙이면, 몽매한 이들에게 마법사는 정말 신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없던 것을 창조해 내는 신.
그들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이 시간을 뛰어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무슨…….”
지금 이선호가 딱 그랬다. 이선호는 겉에서 보기에는 그냥 매번 보든 허름하기 짝이 없던 파란색 대문을 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선호는 자신이 다른 차원에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집…… 이네요?”
“집이죠. 사람 사는 집.”
가장 먼저 이선호를 대표로 데리고 들어온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상혁이 이선호를 가장 먼저 데려온 이유는 간단했다.
‘세입자잖아.’
상혁의 집에 기생하는 사람들 중 이선호만이 유일하게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 제 돈을 내고 살고 있기에 가장 먼저 볼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자신이 나중에 또 설명하기 귀찮아 가장 설명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을 데려온 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방이 최소한 다섯 개는 필요하지 않습니까. 제 방, 변호사님 방. 오승택이랑 오승환 형제 방, 그들 어머님 방, 박선웅 씨 방까지.”
다섯 개.
웬만한 30평대 아파트도 방이 3개인 걸 떠올려 보면 그보다 더 큰 집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선호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서 원래의 집을 하나도 떠올리지 못했다.
“돌로 만든 집입니까?”
“네. 아직 보수가 더 필요하긴 하지만요.”
돌벽.
시멘트나 벽돌이 아닌 통짜 돌로 만들어진 돌벽이 사람 키만 하게 솟아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건축공학적인 측면은 깡그리 다 무시해 버린 그냥 통짜 돌벽이었다.
방음이나 방열, 방한 같은 대비는 하나도 공학적인 처리를 해 놓지 않은 그냥 돌벽. 그리고 그 위에 돌판을 얹어놔서 그냥 언뜻 보기에는 고인돌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집이었다.
거대한 돌로 만들어진 박스가 엎어져 있는 듯한 모양새. 그럼에도 이선호가 놀랐던 것은 이것이 불과 하루 만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돌 같은 게 없었을 텐데. 대체 어떻게 만드신 건지.”
저런 거대한 돌의 출처가 이선호는 궁금했다. 마법이란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마법이죠. 마법. 흙에서 돌을 만드는 마법.”
“흙이요? 지반 높이는 비슷한데…….”
“비밀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돌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흙이 필요로 했다. 그러나 지반 높이가 같다는 것은 땅에서 파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선호가 눈치챘다는 뜻이다.
‘눈치 빠르네. 지하 던전은 아무래도 모르는 게 낫겠지.’
당연히 저 돌벽을 만든 흙은 땅을 파서 나온 것이다. 원래 스톤월로 저렇게 돌벽으로 된 집을 만드는 건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만으로도 충분한 일이다.
그러나 하루가 걸린 건 상혁이 땅 위보다는 땅속에 더 집중을 했기 때문이다.
던전.
‘마탑을 세울 형편은 안 되니.’
땅속과 땅 위. 어느 곳이 더 좋냐고 따져 본다면 당연히 땅 위였다. 마나가 순환하며 마나가 모이는 곳은 땅속이 아니라 땅 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사실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마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
밤새 마나를 써 댄 것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 때문에 다른 4서클 마법사 못지않게 거의 5서클 후반에 육박하는 마나를 자랑하던 상혁의 마나 고리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식장애 마법을 유지할 수 있는 물을 끌어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냄새 안 올라오게 차단하고 스톤월 유지에 휴.’
스톤월이나 아티팩트를 통해 발동시킨 인식장애 마법은 그곳에 담긴 상혁의 마나가 동이 나는 순간 사라진다.
그러니 마나를 계속해서 공급해 줄 공급원이 필요했다.
가나안이라면 마나석을 구하면 된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그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상혁은 꾀를 냈다.
오염물질이 가득한 물.
바로 인근 논에서 끌어온 농약이 흐르는 물길을 집 주변으로 튼 것이다.
오염물질 속에 들어 있는 마나가 마법진에 공급될 수 있도록 몇 가지 조치를 취한 것인데 그것 때문에 공사 난이도가 한 세 배쯤은 더 어려워진 듯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던전을 구성했으니까.’
이 땅만 한 크기의 지하 던전을 확보했다. 그곳은 이제 상혁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나중에 서클이 올라가서 더 큰 공간이 필요하면 계속해서 아래로 파고 내려가면 되니 공간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기에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큰 수확은 땅속에도 마나가 가득하다는 거였지.’
엄밀히 말하면 토양이 오염되어 땅속에도 오염물질이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오죽하면 초아가 기겁해서는 뛰어나와 사방의 흙을 나뭇가지로 찰싹거리며 때리고 다녔으니 말이다.
“저는 어디를 쓰면 됩니까?”
상혁은 그전에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던 집을 세 동으로 나눴다.
상혁의 집이 있는 한 동, 그 옆에 다른 두 동을 2층으로 세워 1, 2층으로 방 두 개를 나누었다.
“그거 정하시라고 불렀습니다.”
“제, 제가 먼저 골라도 되는 겁니까?”
“세입자시니까요.”
상혁의 말에 이선호는 감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상혁이 자신을 특별대우해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은 별다를 게 없는 집이어서 그런 것이지만 상혁은 굳이 이선호의 오해를 풀어 주지 않았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좋지 뭐.’
이선호는 상혁의 집에서 가까운 한 동의 1층을 자신의 집으로 찜했다. 안에 들어가서 둘러보던 이선호가 황급히 뛰쳐나왔다.
“저, 상혁 씨.”
“네.”
“그. 화장실이나 전기는…….”
스톤월로 만들어진 집이다. 원래 살던 폐가는 싹 밀어 버리고 새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마탑 출신인 상혁이 현대의 복잡한 건축기술을 알 리 없었다.
그래서 그냥 공간만 만들어 두었다.
“혹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거 없으십니까?”
“…….”
나머지 편의를 위한 시설은 이들이 알아서 직접 몸으로 때워야 한다. 이선호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
“화장실 작업은 제가 하겠습니다.”
오승택, 오승환 형제, 박선웅이 차례대로 돌집에 입주했다. 현대 과학을 버리고 마치 선사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돌집이었다.
아무런 편의 시설도 없었지만, 사람이 여럿 모이니 어떻게든 방법은 나왔다.
“역시 군인이야.”
상혁은 아무 말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오승택은 군인 출신답게 이런 잡다한 작업에 빠삭했다.
지하에 매설된 수도관 같은 것들을 없애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재만 있으면 자신이 만들 수 있다며 오승택이 나선 것이다.
그 덕분에 화장실이 해결됐다.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자재들을 시키면 그걸 오승택이 설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기가 들어오게 하기 위한 배선 작업도 문제없었다.
“하아아아…….”
박선웅.
필요한 놈이 우물을 판다고 프로그래머이자 해커인 박선웅에게 전기와 통신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박선웅은 그쪽 지식에 해박했다. 혹여라도 문제가 생기면 남에게 보여 줄 수 없는 설비들 때문에 자신이 직접 그쪽 분야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박선웅이 죽을상을 하고는 배선 작업에 들어갔다. 전선을 끌어오는 건 위험했기 때문에 상혁이 직접 해 주었다.
빠지직.
“됐지?”
고압이 흐를 것이 분명한 전선을 맨손으로 붙잡는 상혁을 보고 박선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혁은 그렇게 자신의 새로운 세입자들이 돌집에 입주하는 것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자기가 필요한 건 자기가 구해서 해결해야지.”
상혁의 돌로 만든 집은 완벽했다. 가나안의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 온갖 마법으로 떡칠해 놓은 그 집은 현대 과학이 필요 없었다.
저절로 온도를 조절해 주는 마법이 깔려 있어 따뜻한 공기가 착 깔려 있었고 때가 되면 클린 마법으로 청소까지 한 큐에 이뤄졌다.
거기에 워터와 파이어 마법으로 완벽하게 설비된 화장실에서는 온수와 냉수가 콸콸 나왔고 냉장고를 본떠 만든 키만 한 석함 안은 차가운 냉기가 가득 넘쳤다.
거기에 천장을 수놓은 라이트 마법으로 인해 전구가 없이도 밝은 내부까지.
“역시 마법이 짱이야.”
상혁은 자신의 마법으로 돌침대임에도 시몬X급의 푹신함을 자랑하는 매트리스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런데 그때 상혁이 눈썹을 꿈틀했다.
“알람?”
* * *
“엄…….”
전아영은 집에서 싸 온 김치통을 든 채 대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그냥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면 될 것을, 괜히 이 앞까지 오자 괜스레 쭈뼛거리게 된 것이다.
“아후. 무거워.”
전아영은 손에 들고 있던 김치통을 내려놓았다. 예전에는 이 정도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무게였는데.
“요새 무리했나.”
요새 회사를 다녀서 그런지 여기저기 쑤시고 피곤하고 몸이 안 좋았다. 몸이 무겁고 피곤이 가시질 않았기 때문에 체력이 영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공장에서 일어난 큰 사건 때문에 일하는데 보안 검색이 심해져 더 힘든 것도 있었다.
“집에 있으려나?”
최근 며칠 새 상혁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같은 동네면 오다가다 만날 법도 한데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잘살고 있는지 김치까지 들고 찾아왔다.
“나도 미쳤지.”
아무리 어렸을 때 첫사랑이라고 해도,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신경 쓰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오지랖이 넓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그냥 돌아가자.”
전아영은 이것까지는 오바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만나서 쿨하게 인사를 해 줄 것이다. 김치통까지 싸 들고 오는 건 자신의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도 얼마나 사정이 안 좋으면 이런 집에 내려와서 다시 살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폐가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집으로 내려온 상혁을 떠올려 보면 지금 굶고 있을지도 모른다. 21세기 대한민국에 굶는 사람이라니.
“에이.”
전아영이 다시 들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문이 저절로 열렸다.
끼익
“누구…… 어? 동네 주민?”
“동네 주민이 아니라 전아영이요.”
상혁이 번지르르한 얼굴로 자신의 이름조차도 기억하지 못하자 전아영이 자신도 모르게 톡 쏘아붙였다. 하지만 상혁은 전혀 상처받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요. 동네 주민. 여긴 어쩐 일로요?”
“김치요. 아버지가 가져다드리라고 해서.”
전아영은 아버지 이름을 팔았다. 사실 전광철은 집에 김치가 사라진 것도 모를 것이다. 얼마 전 농약을 세 박스나 잃어버린 것에 이어 김치까지 도둑맞았다고 할지도 모른다.
“아, 김치. 감사합니다.”
상혁은 날름 김치만 받고는 다시 들어가려고 했다. 전아영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상혁에게 말했다.
“그것만 받고 끝이에요?”
“그럼요?”
상혁은 멀뚱한 표정으로 전아영을 쳐다봤다. 그냥 날름 가져간 것도 아니고 고맙다고도 했는데 이 여자는 대체 뭘 더 바란다는 말인가.
“아, 커피라도 사요.”
“커피?”
“이 동네에도 카페 생긴 거 몰라요?”
“……굉장히 쓸데없는 게 생겼네요.”
사람이라고 해 봤자 대부분 농사일하는 노인들만이 사는 마을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 카페라니. 전아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농촌 정비 사업인지, 재개발인지 뭔지 몰라도 젊은 사람 좀 유입시키겠다고 이것저것 한 대요. 카페도 그중 하나고. 거기서 사요.”
“음…….”
상혁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오늘 안 그래도 할 일이 산더미였다.
‘차라리 돌려줄까?’
이걸 돌려주고 그냥 귀찮은 일을 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상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 됐어요. 내가 커피 사 줄게요. 와요.”
전아영은 그 침묵을 다르게 해석한 것인지 앞장서서 걸었다. 상혁은 전아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마나가 더 커졌다?’
상혁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