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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67화 (66/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67화

067. 진정한 마법사의 시작(2)

‘제기랄. 내가 너무 얕봤어.’

박선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어젯밤부터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입안이 마치 모래를 머금은 것처럼 푸석푸석했다.

거기에 밤새이고 다닌 노트북과 장비들의 무게로 배낭의 끈이 어깨를 파고드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박선웅은 쉴 수 없었다.

‘언제 또 놈들이 나타날지 몰라.’

개인적으로 박선웅은 검찰에 억하심정이 많았다. 뭐 다들 그렇듯 검사들에게 엮인 힘없는 소시민의 최후가 그렇듯이 말이다.

피해자인 자신의 형은 돈이 없고 빽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에서 한순간에 가해자가 되었고, 그렇게 감옥에서 죽었다.

그 이후로 박선웅은 그의 장기이던 프로그래밍을 살려 검찰의 비리를 세상에 폭로하는 데 쓰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박선웅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이 있다고 해도 그는 어디까지나 혼자였고, 혼자의 힘으로 여러 손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박선웅은 일단 힘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돈을 버는 데 썼다.

해킹.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박선웅의 해킹 실력은 금세 음지에 그 명성이 퍼져 나갔다. 박선웅은 단 한 번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들어온 의뢰는 그와 의뢰인 단 두 명밖에 모르는 비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박선웅에게 들어오는 일들이 위험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는 자신의 비밀이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은 으레 의뢰가 끝난 뒤 박선웅을 노렸다.

그렇게 목숨이 경각에 처한 찰나 나타난 것이 바로 오승택.

당시 특수부대 소속이던 오승택은 상부의 명령을 받고 박선웅을 프리랜서로 영입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의 목숨을 구해 주면서 박선웅과 안면을 튼 것이다.

물론 박선웅은 그런 군 세력에도 금세 염증은 느꼈다.

애국을 위해 만들어진 군은 어느 조직이 그렇듯 소의 희생을 너무나도 쉽게 강요했고 딱딱한 명령 체계 등에 결국 견디지 못한 박선웅은 오승택이 군을 떠났을 즈음해서 군을 떠났다.

그러고는 얼마 전 오승택과 만난 것이다.

한덕광.

농약 막걸리 사건을 제 승진을 위해 한낱 이벤트로 써먹으려고 했던 스타 검사를 추락시킨 박선웅은 상혁이 건네준 불법 약물 봉투로 검찰을 정조준했다.

마약 봉투가 검찰 자료실에 있다는 것에 검찰 측 누군가 마약을 유통시키고자 하는 세력과 손을 잡고 그런 짓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식의 음모론을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퍼뜨린 것이다.

‘무시무시했지.’

그리고 박선웅은 SG그룹의 숨겨진 힘을 일부 엿보았다.

지금껏 그 어떠한 의뢰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추적당하지 않았던 박선웅을 SG그룹에서 포착하고 추격자를 보낸 것이다.

박선웅이 여러 루트로 뿌려놓은 미끼에 그들이 걸려들지 않았더라면 박선웅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사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걸리기 직전 미끼에 그들이 걸려들면서 SG그룹의 추격자를 눈치챈 박선웅은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 길로 온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오승택에게 마약 봉투를 건네준 상혁.

그 둘이 자신의 동아줄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온양으로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잡은 것이다.

상혁의 주소는 오승택과 상혁의 관계를 수상히 여긴 박선웅이 발신자 추적을 해 놨기 때문에 미리 알아 놓은 상태였다.

‘받아 줄까?’

박선웅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자신이 살고 싶어서 오기는 했지만 그들이 받아 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백상혁이라고 했나.’

특히 박선웅은 오승택이 백상혁이라 불린 스무 살짜리의 명령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만만찮아 보이지 않았다.

스윽.

박선웅은 조심스럽게 골목길에 세워진 탑차 뒤에 몸을 숨겼다. 언제 어디서 추격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가 숨을 돌리려는 찰나 탑차 아래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와 박선웅의 발목을 낚아챘다.

“악!”

쿵!!

발목을 잡아채는 힘이 얼마나 억셌던 것인지 박선웅이 그대로 자리에서 넘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전자기기가 든 가방이 바닥에 부딪혔지만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지이익!

언제 나타난 것인지 추격자가 탑차 아래로 보이는 박선웅의 발목을 붙잡고 질질 끌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박선웅은 버티기 위해 바닥을 긁었지만 손톱만 부러져 나갔다. 그렇게 끌려 나간 박선웅은 추격자가 시퍼런 칼날을 치켜들고는 자신을 향해 휘두르는 것을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돼!’

자신이 이대로 죽으면 형의 원통한 죽음은 그 책임을 대체 누구에게 묻는다는 말인가.

‘SG까지 간신히 닿았는데.’

한덕광과 불법 약물을 건드리니 SG가 튀어나왔다. 그렇다는 건 비슷하게 한덕광이 했던 것처럼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평범한 나이트클럽의 웨이터이던 자신의 형이 죽은 것의 배경에도 SG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제부터 시작하면 됐는데, 가까스로 몇 년 만에 그 실마리를 잡았는데 이렇게 죽게 되다니.

퍼억!!

하지만 박선웅의 귀에 추격자의 머리통이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박선웅이 눈을 번쩍 뜨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승택아!”

“박선웅.”

오승택이 발로 추격자의 머리통을 후려 차 기절시켜버린 것이다. 박선웅은 지금만큼 오승택의 얼굴이 그렇게 반가워 보일 수가 없었다.

“너, 여기서 왜…….”

쿠르르.

그때 골목길 한쪽에 차가 들어왔다. 박선웅이 숨으려고 하자 오승택이 그런 박선웅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안 숨어도 돼.”

잠시 뒤, 도착한 차에서 이선호와 상혁이 내렸다. 상혁이 오승택의 손에 붙잡혀 있는 박선웅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또 뭐야?”

* * *

“구해 왔습니다.”

“오, 어떻게요? 시간이 꽤 늦었는데?”

“근처에 전광철 씨가 이 동네 유집니다. 아는 사람이 많으셔서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아.”

전광철이면 오지랖 넓은 그 전아영네 집이다. 전아영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도 한번 봐야 하는데.’

별다른 큰 인연은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오지랖으로 상혁을 돌봐 주려는 선의와 호의를 내보였던 전아영이다.

전광철도 비슷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약간의 호의를 상혁은 베풀 의향을 가지고 있었다.

전아영의 몸에서 느껴지던 마나.

지구에선 사람의 몸에서 마나가 느껴진다는 것이 별로 좋은 신호가 아님을 확실하게 알게 된 상혁이었다.

그리고 그걸 상혁은 해결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 그럼.”

상혁이 손을 펼친 순간 옆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슥 돌렸다. 그곳에는 눈을 반짝이는 이선호가 나가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뭐 하십니까?”

“그거 아닙니까? 마법?”

“그런데요.”

“구경하려고요.”

상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무슨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마법 쓰는 걸 구경하겠다니.

“안 됩니다. 집중 안 돼요.”

“후, 정말 힘들었는데.”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상혁은 딱 잘라 말했다. 아티팩트를 만드는 공정은 아주 정밀한 작업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옆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으면 그 작업이 수월할 리 없다.

그렇게 이선호를 쫓아낸 상혁은 염력 마법으로 이선호가 구해 온 것들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뽀르르.

초아가 머리카락을 헤집고 튀어나와 공중에 떠오른 것들 주변에 자신의 가지를 비비고 다녔다.

초아가 관심을 가질 법도 했다. 이선호가 이 시각에 힘들게 전광철을 통해 구해 온 것은 금은방을 통해 살 수 있는 보석류였기 때문이다.

보석 중 으뜸인 다이아몬드는 없지만 루비나 사파이어, 옥과 금 같은 패물들이 열 개도 넘게 있었다.

“후우. 힘 좀 써야 하겠네.”

상혁은 나지도 않는 땀을 닦는 척했다. 160억이 들어오면 상혁은 이 집을 통째로 마법사에게 걸맞은 장소로 바꿀 생각이었다.

단지 그 작업을 지금부터 시작할 필요성을 느꼈을 뿐이다.

사람이 갑자기 세 명이나 늘어났기 때문에 방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부를 불러 맡길 순 없었다. 원래 마법사의 던전이나 마탑은 마법사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제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마법사에게 친화적인, 마법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가나안에서는 그냥 해 버리면 되지만 여긴 지구다.

그래서 불필요한 사전작업들이 필요했다.

“인식장애 마법 걸고. 소음은 어떻게 한다. 바람? 침묵 마법은 힘들 것 같은데…….”

가지고 있는 마나를 최소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 상혁이 머리를 굴렸다. 잠시 뒤, 계산이 끝난 뒤 상혁은 자신의 의식을 네 개로 분리했다.

쿼드러플 캐스팅.

가나안에서도 오직 상혁만이 가능했던 쿼드러플 캐스팅이 지구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순간이었다.

그와 동시에 허공으로 공중에 떠오른 패물들의 표면 위가 불로 지진 듯 까맣게 타오르더니 그 사이로 또렷한 노란빛의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비서실장님, 사장님께서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뭔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예?”

이기철은 식은땀으로 흥건한 이마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면서 박정철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질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박정철은 입을 꾹 다물었다.

“사장님께서 직접 설명드릴 겁니다.”

“병원에서의 일은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부디, 부디 한 번만 용서를…….”

박정철은 이기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기철의 말을 듣고 그의 처우를 결정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백도현이었다.

똑똑.

“이기철 원장님 모셔왔습니다.”

[들어오세요.]

박정철이 옆으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이기철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여기서 백도현 앞으로 가 죽건 살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달칵.

쿵.

이기철은 문이 열리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사장님!!”

백도현이 특별 관리를 부탁한 사람을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잃어버렸다. 물론 당시 자신은 병원에 없었지만, 총괄책임자가 자신이니 백도현이 자신에게 잘못을 물으면 그 벌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 원장님이 너무 긴장하셨군요. 일어나세요.”

하지만 백도현은 이기철이 예상한 것처럼 화를 낸다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손수 그를 일으켜 세워서는 의자에 앉혔다.

“예……?”

“괜찮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법이지요. 물 한 잔 드세요.”

백도현은 그런 이기철을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만약 이기철이 조금만 똑똑했다면 지금 자신의 목을 조여 오고 있는 목줄의 존재를 알아챘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기철은 그저 백도현이 당장 분노하지 않았다는 것에만 안도했다.

“가, 감사합니다.”

꿀꺽꿀꺽.

이기철은 냉수 한 잔을 쉬지 않고 들이켰다. 차가운 냉수가 들어가자 잘하면 자신에게도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덧없는 바람이 이기철의 마음속에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오늘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원장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섭니다.”

“예?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사장님.”

군기가 바짝 든 이기철을 보면서 백도현이 빙긋 웃었다.

“이렇게 열의가 넘치셔서 다행이네요. 안 그렇습니까 대령님?”

백도현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은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였다. 이기철은 그제야 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미군복을 입은 날카로운 인상의 백인이 앉아 있었다.

“요한 대령님이십니다. 주한미군 소속이시죠. 그리고 여긴 SG충청병원의 이기철 원장님.”

그렇게 서로를 간단하게 소개한 백도현이 자리에 앉아서는 다리를 꼬고는 깍지를 꼈다. 백도현이 요한 대령에게 말했다.

“요청하신 사항을 저희가 충족시켜 드린다면 무엇을 저희에게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백도현에게 있어 실패는 또 다른 기회였다. 백도현은 그 실패에 매몰되어 책임자를 색출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그 실패를 다른 기회로 바꾸는 것이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SG충청병원에서 일어난 일은 뼈 아팠지만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이기도 했다.

“1년 동안 SG전자의 관세를 50퍼센트 이상 낮춰 드리겠습니다.”

관세를 낮출 수 있는 전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요한 대령이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백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웃으며 이기철을 쳐다봤다.

“원장님께서 저희 SG그룹을 위해 아주 큰 일을 해 주신다고 하니, 정말 잘됐습니다.”

“예?”

“원장님. SG충청병원에 무연고자나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 환자들이 얼마나 됩니까?”

백도현의 두 눈이 뱀의 그것처럼 비열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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