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55화
55. 발 담근 마법사(5)
“하하하하하하!!”
백도현은 창밖을 바라보면서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런 백도현의 주먹은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백도현은 주먹을 자신의 와이셔츠에 슥 닦아 냈다. 그러자 와이셔츠 위로 붉은 자국이 죽 그어졌다.
탁, 탁
백도현은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고는 주머니 안에서 싸구려 담뱃갑을 꺼내 그 안에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는 그 안에 들어 있던 싸구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우!!
희뿌연 연기가 모락거리며 허공으로 사라졌다. 백도현은 맛있다는 듯 담배 몇 모금을 더 피운 뒤 몸을 휙 돌렸다.
“자. 잠깐 쉬었으니 다시 시작해 볼까요? 우리 쓰레기 여러분들?”
창고 안은 뒤로 양손이 묶인 채 얼굴이 심하게 부풀어 올라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을 한 남자가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부어오른 눈두덩이 사이로 보이는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이익현 씨. 그리고 이양송 씨.”
그리고 또 다른 남자, 기절한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쓰러져 있는 이양송의 옆에서 이익현은 두 무릎을 꿇은 채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마치 가련한 아기새인 듯한 모습이었지만 백도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이양송 씨. 이양송 씨?”
이양송은 정신을 잃어 백도현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이익현은 뭐라 중얼거리며 히익거리는 소리를 냈다. 빙긋 웃은 백도현은 이양송에게 다가가 자신이 손에 들고 있던 담뱃불을 이양송의 눈꺼풀에 대고 꾸욱 눌렀다.
치이익.
“끄아아아악!!”
정신을 잃었던 이양송이 발버둥을 쳤다. 치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노릇한 고기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익현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욱, 우웨에에엑!!”
피와 위액이 뒤섞인 질퍽한 액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액체가 백도현의 반질거리는 구두 위로 탁하고 튀었다.
“자. 우리 쓰레기 여러분들. 내가 주는 걸 받아먹기만 하고 내뱉는 건 없었으니 그걸 바로 쓰레기통이라 한답니다. 쓰레기통은 비울 때 말고는 들어간 게 나오는 일이 없으니까.”
백도현은 자신의 손에 들린 보고서의 사본을 들고는 피식 웃었다.
“환경 조사 결과, 아무 이상 없음이다?”
환경부 장관 이양송이 SG호텔의 환경 평가서 조작 혐의로 재조사를 위해 조사팀을 꾸려 보낸 지 닷새가 흘렀다.
시료를 채취한 뒤 그것의 오염도를 분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닷새고, 그사이 결과가 나왔다.
[이상 없음.]
분명 이상이 나와야 하는데 이상 없음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것을 받아 든 백도현은 아무 말 없이 사람을 보내 이양송과 이익현을 잡아 왔다.
“자. 이 상황에 대해서 저한테 일목요연하게 육하원칙에 따라 설명해 주실 수 있는 분? 이 일의 담당자들이셨으니 그 정도는 알아내셨겠지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살려 달라며 비는 짐승 같은 두 남자의 울음소리뿐이었다. 백도현은 빙긋 웃었다.
“아이구, 답답해라. 어쩜 이렇게들 무능하실까. 그렇게나 내가 기회를 드렸고, 필요한 것도 다 지원해 드렸는데 말입니다.”
백도현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박정철이 백도현의 손에 권총을 건네주었다.
한국은 총기 소지가 불가능하지만 백도현 정도 되는 재벌은 어두운 루트로 구할 여건이 충분했다.
또한 이 창고는 최소 몇 키로는 사람이 지나다닐 일이 없는 외진 곳에 있었다.
백도현이 권총을 들어 이익현과 이양송의 미간을 겨눴다.
“히이익!”
“사, 살려 주십쇼. 저,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타앙-!!
이양송의 고개가 뒤로 덜컥 넘어갔다.
머리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며 팔과 다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이익현은 이양송이 죽는 것을 코앞에서 보고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 버렸다.
“히이이익!!”
노란 액체가 이익현의 다리 사이로 흘러나왔다. 백도현은 그런 이익현의 미간을 겨눴다.
“이익현 씨는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이미 충분히 들어서 이해했으니까.”
분명 이해했다. 백도현은 분노와 광기가 일렁거리는 눈으로 이익현을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이양송과 겹쳐 보여 이익현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 한 가지 아시면 좋을 일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백도현은 이익현의 이마에 대고 있던 총구를 이익현의 심장 쪽으로 낮춰 들었다. 심장에 총을 맞아도 죽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마에 총구를 대고 있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그, 그 호텔에 이선호와 동거인인 백상혁이 있다고 합니…….”
탕!
백도현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이익현의 이마에 구멍을 냈다. 그러고는 총을 옆으로 내밀자 박정철이 다가와 두 손으로 받았다.
“백상혁이라…….”
백도현은 공장의 일부터 계속해서 용의선상에 오르는 백상혁이란 이름에 살짝 인상을 썼다.
하필이면 이때 또 호텔에 이선호와 그가 있었다?
“이선호는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건 알고 있고.”
이선호가 백도현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백도현도 이선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백상혁에 대해서는 모른다.
“이 모든 게 우연일까요?”
상혁은 박정철이 내민 손수건으로 주먹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면서 물었다. 박정철은 조용히 대답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 하더군요.”
“찜찜하니 한번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직접 만나 보시려는 겁니까?”
“네. 제 눈으로 한번 봐야겠어요.”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고 믿는 백도현이다. 무슨 일이든 다 필연적인 원인과 결과가 있을 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자리 만들어 주세요.”
“예, 사장님.”
박정철이 고개를 숙였다. 백도현은 와이셔츠에 묻은 피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의 핏자국이다.
자신의 손으로 이 핏자국 주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에 백도현은 짜릿함을 느꼈다. 그는 마치 신이 된 기분으로 손을 뻗었다.
“사장님. 하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박정철이 다가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백도현이 말하라고 허락하자 박정철이 말했다.
“회장님께서 충남으로 내려가셨다고 합니다.”
“또?”
“예.”
백도현의 눈이 빛났다.
“확실히 뭔가 있는 모양이네요. 그곳에.”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백도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SG그룹의 회장인 백성철이 벌써 세 번째 충청도로 향했다. 목적지는 늘 같았다.
SG충청병원.
무언가 백도현이 모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백도현이라고 해도 백성철 회장의 행적을 추적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기에 그 이상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백도현은 강한 호기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괜히 허술한 사람들로 보냈다가는 걸립니다.”
“흑태양파에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음…….”
흑태양파는 국정원의 비밀조직이다. 국정원이라고 하면 허술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조심히 접근합니다. 회장님 주변은 미국 국방성 수준의 보안을 자랑하니까 괜히 무리하지 마세요.”
“예.”
* * *
“끄읍.”
상혁의 이마 위로 굵은 땀방울이 쏟아져 내렸다. 상혁의 다리는 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끕.”
쿵!
일자로 곧게 폈던 상혁이 곧바로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쿵 소리와 함께 바닥이 작게 진동했다.
“훅, 훅.”
피가 얼굴로 쏠려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상혁은 숨을 규칙적으로 내쉬며 천천히 호흡했다.
방금 상혁은 데드리프트 260kg에 성공했다. 운동 구력이 10년 이상 넘어가거나 현역 보디빌딩 선수여도 쉽게 들 수 없는 무게다.
물론 세계 신기록은 500kg가 넘어가나 상혁이 운동이란 것을 한 것이 닷새 남짓이란 것을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무게다.
그러나 이것도 상혁의 전력이 아니었다.
‘더 들 수 있겠는데.’
상혁은 아직 힘이 남아 있었다. 상혁은 지금 늘어난 근민체를 몸에 적응시키기 위해 닷새 동안 거의 헬스장에서 살고 있었다.
호텔에 딸린 이 헬스장은 많은 호텔이 피트니스에 공을 들이지 않는 것과 비교해 최고급 설비로 갖춰져 있었다.
파워리프팅이 가능한 존도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백정연이 SG호텔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상혁은 자신의 늘어난 근민체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여기서 스트렝스를 쓰면.”
후읍!
우우웅!
상혁의 전신에 마나 알갱이가 박혔다. 근력을 높여 주는 스트렝스 마법과 늘어난 근력은 그 효율이 굉장히 좋았다.
번쩍.
얼굴이 붉어지도록 힘을 써서 들은 260kg이 한 손으로 무 뽑듯 그냥 쑥 들렸다. 이제 스트렝스를 사용하면 웬만한 하급 기사에도 밀리지 않는 근력을 보유하게 된 셈이다.
“좋은데?”
씩 웃은 상혁이 손에 든 260kg짜리 봉을 한 손으로 이리저리 움직여보고는 내려놓았다. 일반인은 빈 봉으로도 힘든 걸 가뿐하게 해낸 상혁이다.
그때 누군가 헬스장에 우당탕탕 들어왔다. 상혁이 쳐다보자 그곳에 백정연이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고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됐죠?”
“됐어요!!”
백정연은 두 손을 들어 올리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상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하기만 했다.
애초에 상혁이 그 안에 깃든 마나를 오염물질과 함께 흡수했으니 물에 오염물질이 남아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재조사는 다시 한번 더 합격점을 받았다.
“곧바로 언론에 뿌리라고 했어요. 아마 내부고발자라는 것도 자기네들이 돈을 먹인 최규태였겠죠.”
최규태의 계좌로 신원불명의 계좌로부터 거액이 들어왔다는 것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백정연은 상혁에게 말했다.
“전부 다 당신 덕분이에요.”
“나도 압니다. 그리고 이거.”
상혁은 손에 들고 있던 손바닥만 한 마도구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자 상혁이 씩 웃었다.
“말한 물건입니다.”
“이게요?”
손바닥만 한 작은 마도구가 물을 정화할 수 있다니. 그리고 크기로 봐서는 그렇게 많은 물을 정화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 마도구를 만들 재료를 공수해 준 것이 백정연이었다.
마도구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대단히 비쌌다. 상혁이 요구한 것들이 대부분 귀한 보석들이었기 때문이다.
“보석 공예품 같네요.”
“원래 마법이란 게 돈이 많이 듭니다.”
루비와 사파이어, 에메랄드를 이용해 간단한 정화 마도구를 만든 상혁이다. 정화 마법진은 마법진들 중 쉬운 난도에 속했지만, 보석 위에 그것을 새겨야 하기 때문에 하나를 만드는 데 집중력을 꽤 필요로 했다.
‘서번트만 제대로 갖춰지면 쉬워지는데.’
재료만 충분하면 마법진을 그려 주는 서번트도 만들 수 있었다. 서번트는 소위 마법 인형이라 불리는 마법 생명체로 마법사의 잡다한 업무를 대신해 주는 조수 같은 존재였다.
마법사의 실력에 따라 그 효용성이 정해지곤 했기 때문에 서번트의 수준만 보고도 마법사의 수준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상혁은 가나안에서 최고로 치는 마법 인형 제작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없으니 전부 다 수작업이다. 그래서 하루에 하나씩 총 다섯 개를 완성했다.
“마도구의 수명은 100일입니다. 100일 동안 적어도 태안 앞바다에 있는 물들을 한 번은 정화할 수 있는 용량을 지니고 있고요.”
상하수도가 제대로 개발되지 않은 가나안에서는 수원의 청결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화 마도구를 주로 이용했다.
정화 마도구 하나면 해결이 되니 굳이 하수도 시스템이 발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상혁의 말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 넓은 범위를요?”
태안 앞바다면 그 규모가 상당했다. 그런데 손바닥만 한 공예품 하나로 그 전체를 정화할 수 있다니.
획기적인 물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걸 팔 생각은 없어요?”
“팔아요?”
“네. 수질 오염은 여기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지구의 환경오염 문제가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면서 모든 기업은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출한다.
그런데 이 마도구 하나면 그게 해결된다는 소리다.
백정연은 마법사가 가지는 부가가치성을 느끼고는 눈을 부릅떴다.
백정연은 이 지구에서 과학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뭐. 팔 수 있을까요? 믿지도 않을걸요. 뭐라고 하고 팔게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아, 운동은 다 하신 건가요?”
백정연이 씩 웃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뭐 하세요? 가능하면 이 도구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그건 됐고. 오늘 가 볼 곳이 있어요.”
“어디요?”
상혁과 이선호는 백정연의 배려로 SG호텔의 가장 좋은 스위트룸에서 닷새째 묵고 있었다. 그런데 상혁이 오늘 처음으로 호텔 밖으로 나간다고 했다.
“병원이요.”
“병원? 어디 아파요?”
안 그래도 기절한 채로 발견됐던 상혁이다. 백정연이 그렇게 묻자 상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누구 부탁 때문에 사람 좀 만나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