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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54화 (53/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54화

54. 발 담근 마법사(4)

“어디서 생선 냄새가 나는군.”

“멸치처럼 바싹 마른 마법사들 때문인가?”

“저런 놈들이 병단이라니. 한 시간도 행군할 수 없게 생긴 약골들이 말이야.”

백상혁, 아니 8서클 대마법사 일란은 피식 웃었다. 그의 귀에 대전 한구석에 모인 기사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

과연 저들은 상혁이나 마법사들이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생각했을까?

답은 ‘아니오’였다.

상혁은 저 방자한 행태를 묵인하고 있는 왕실근위대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자 흡사 살색 오우거를 보는 것 같은 덩치의 근위대장이 상혁을 마주 쳐다봤다.

지금 상혁과 마탑의 마법사들을 향해 뒷담화를 다 들려라 까고 있는 저들은 근위대다. 그런데 근위대장이 가만히 있는 건 그가 이 상황을 묵인했다는 소리다.

기사와 마법사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곳은 어전회의가 열릴 대전이다.

근위대는 이곳이 대전임을 알고 있는데도 혓바닥을 놀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왜?

자기네들 앞마당이니까.

그리고 이곳은 왕이 기거하는 왕궁이었으니까.

그러나 상혁이 언제부터 그런 것을 신경 썼던가. 게다가 일국의 근위대를 책임지는 소드마스터란 놈이 저렇게 속이 좁아서야 어떻게 이 나라가 발전하겠는가.

어느 하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 곳에서 파격이 일어나야 한다.

우우웅!!

상혁이 의지를 품자 상혁의 로브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애들 싸움은 애들이 해결해야 하지만 상혁은 어른 같은 애였다.

펑! 퍼버벙!!

마탑의 마법사들을 향해 뒷담화하던 기사가 펑 하고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새끼돼지가 꿀꿀거리며 기어 다녔다.

폴리모프.

형상변환을 뜻하는 8서클의 폴리모프 마법을 뒷담화했다는 이유만으로 걸어 버린 상혁이 히죽 웃었다.

“얘들아. 오늘 저녁은 돼지구이다.”

“제가 요리해 드리겠습니다!”

마법사들은 괴짜가 많았다. 그중에는 요리를 혁신적으로 바꾸겠다면서 요리에 마법을 접목시키려 한 마법사가 있었다.

그 마법사가 다른 근위대 기사들이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새끼 돼지로 변한 기사를 염력 마법으로 끌어당겼다.

뀌이이익!!

마법사들은 기사들을 돼지 새끼라 부르며 경멸했다. 무식하게 머리가 아닌 몸으로 마나를 받아들이는 기사들은 먹는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돼지처럼 바닥을 구르며 훈련하니 더럽고, 많이 먹고 많이 싸며 냄새도 많이 나니 돼지라는 별명이 딱 어울렸다.

물론 그걸 듣는 기사들은 끔찍이도 싫어했다.

돼지와 멸치.

서로를 경시하는 기사와 마법사가 서로를 부르는 명칭은 꽤 모욕적이었다.

어쨌거나 새끼 돼지가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끌려오려는데 바람이 일어나며 예기가 허공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상혁의 로브 자락도 펄럭이면서 바람을 내뿜었다.

콰아앙!!

소드마스터의 상징인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에 막힌 채 거센 공명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 오러 블레이드를 막아 낸 건 여러 겹으로 쌓인 실드였다.

다중실드.

“또 막혔네?”

상혁이 근위대장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이건 일종의 도발이었다. 상혁은 근위대장과 대련할 때 그의 모든 오러 블레이드를 3서클의 실드 마법 하나로만 막아 냈기 때문이다.

너 따위는 5서클의 배리어 따위도 필요 없다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검의 정점인 소드마스터이자 왕국 기사들 중 가장 강하다는 근위대장도 상혁의 실드를 뚫지 못했기 때문에 왕국 사람들에게 ‘마법사 > 기사’라는 인식을 심어 준 장본인이 바로 상혁이기도 했다.

그러니 기사들이 그토록 마법사를 싫어하고 그중에서도 상혁을 싫어할 수밖에.

“언제쯤 한 번 뚫을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그건 당연했다.

소드마스터의 절정에 도달해야만 8서클의 수준과 비등해진다. 하지만 근위대장은 소드마스터 절정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니 마법사로 따지면 7서클인 셈.

7서클 마법사가 8서클 마법사를 이길 가능성은 1퍼센트 미만이기 때문에 근위대장이 상혁을 이기기란 요원했다.

상혁의 도발에 근위대장이 이를 뿌득 갈았다.

“그러다 애 잡겠어. 아니, 잡으려고 했나?”

근위대장은 분명 마법사를 죽이기 위해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상혁이 막아 줄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근위대장은 살기를 품고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상혁은 제 새끼 상하는 꼴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그러니 나도 진심으로 해도 되지?”

번뜩!

상혁의 눈이 오색찬란한 서기로 물들자 근위대장이 이를 으득 깨물었다. 그러나 근위대장이 움직이기 전에 새끼 돼지가 구슬픈 소리를 내면서 상혁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왜. 너도 막아 봐. 내가 못 막았으면 우리 애 죽을 뻔했잖아. 그러니까 너도 너희 애 죽기 전에 해 봐 한번.”

우우웅!!

상혁의 주변으로 실드가 백 장 가까이 쌓였다. 다중실드를 극한으로 펼친 것이다. 3서클 실드를 백 장 가까이 합쳐 놓으면 오러블레이드를 오십 번 넘게 휘둘러야 할 것이다.

백 겹의 실드를 뚫는다는 건 회초리 백 개를 한꺼번에 부러뜨리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타닥, 타타닥!

그 사이 손에 들린 새끼 돼지의 털이 타닥거리면서 타기 시작했다. 새끼 돼지가 더 발버둥을 쳤다.

“빌어먹을 멸치대장새끼.”

“응 돼지대장.”

기사들이 도발이란 게 저리도 뻔하다니. 상혁은 왕국의 미래가 걱정된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새끼 돼지가 뀨익 소리를 내면서 뜨겁다는 듯 비명을 질렀다.

“버닝 핸즈. 아, 힘은 조절하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4서클 버닝 핸즈의 뜨거움에 돼지가 비명을 지른 것이다. 버닝 핸즈는 말 그대로 불타는 손이다. 이 손이 닿는 모든 곳에는 마법으로 된 불이 붙는다.

하지만 상혁은 절묘한 마나 제어로 새끼 돼지의 몸에 불이 붙게 하지 않도록 조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왕실 시종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국왕 전하 납시오!!”

상혁은 그 소리에 칫 하는 소리를 내면서 새끼 돼지를 근위대장에게 집어던졌다. 근위대장의 플레이트 메일에 돼지가 부딪치고는 멱 따는 소리를 냈다.

“가져가. 봐준다.”

“반드시 넌 내 손에 죽는다.”

근위대장의 살 떨리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피식 웃었다.

“날 죽일 생각 전에 니 애나 인간으로 돌릴 방법 찾아봐.”

으드득!

근위대장의 입에서 이갈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근위대장의 적개심의 원천은 추악한 질투다. 소드마스터까지 오른 인간이 상혁의 재능을 보고 질투심을 느낀 것이다.

왕국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으르렁거리게 만든 데에는 근위대장의 공이 가장 컸다. 그는 상혁이 없는 전투에서는 노골적으로 마법사를 폄하하면서 기사들을 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상혁에게 한 번 걸려 전쟁터에서 모든 귀족들이 보는 와중에 죽기 직전까지 구워지고 얼려지고 감전되고를 반복했다가 풀려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속해서 드러내는 걸 보면 불굴의 의지가 아닐 수 없었다.

“머저리 자식.”

상혁은 그런 근위대장을 보면서 기울었다. 그런데 문득 국왕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내가 왜 여기 있지? 난 지구로 갔던 게 아닌가?”

그 순간 상혁은 자신의 몸이 허공에 난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는 그대로 기절했다.

* * *

번쩍!

조금 전까지 상혁이 대전에서 마나를 쓰고 있었기 때문일까. 어둠 속에서 찬란한 오색 서기가 뿜어져 나오다가 사그라졌다.

상혁은 두 눈을 껌벅였다.

“꿈이었나.”

상혁은 그게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픽 웃었다. 자신이 꿈속에서 마지막에 근위대장에게 한 말이 웃겼다.

“머저리 자식이라니. 머저리는 결국 나였지. 배신하는 줄도 몰랐으니까. 저놈은 진짜로 내 입에 창을 쑤셔 박았고.”

근위대장은 자신이 상혁을 죽이겠다는 다짐을 지킨 셈이다. 물론 그다음에 떨어지는 운석에 근위대장도 죽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럴 줄 알았으면 아예 그때 정리를 해 버리는 건데.”

근위대장이 기어코 상혁에게 투창을 먹일 줄 알았더라면 전장에서 근위대장이 고의적으로 마법사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근위대장을 죽였으면 됐다.

그때 죽일 수 있었으니까.

최후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내부를 분열시킬 수 있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군령으로 사형에 처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드마스터 하나가 아쉬웠던 상혁은 결국 그를 살려 주었다.

전쟁 후에 왕에게도 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실책이었다.

“그렇게 후환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법이야.”

그 일로 상혁은 크게 깨달았다. 강자로서의 자비를 베푼 것이지만 강자라고 해서 항상 강자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가나안에서야 상상했겠는가.

8서클이나 된 자신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을 줄은.

“왜 이런 꿈을 꿨을까.”

상혁은 바다에서 4서클을 완성하고는 퀘스트를 완료하면서 전신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기절했다.

그러고 나서 이 꿈을 꿨다.

“마법사는 꿈도 허투루 봐서는 안 되는 법이지.”

상혁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상상하는 것이 곧 힘인 마법사에게 꿈은 상상의 원천이자 보고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사에게 꿈은 훌륭한 영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상혁이 4서클에 등극함과 동시에 예전 꿈을 꾸었다.

그것도 재수 없는 근위대장이 나오는 꿈.

거기서 얻은 교훈은?

“후환을 남기지 마라.”

후환을 남기지 말 것. 그렇다면 상혁 자신에게 있어 후환이란 과연 무엇일까.

“백도현.”

자꾸만 이리저리 얽히면서 자신을 신경 쓰이게 만든 놈. 하지만 SG그룹이라는 거대 그룹의 후계자인지라 상혁은 그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는 것에 만족해 했다.

하지만 4서클에 오른 이상 더는 아니다.

4서클 마법사는 하나이되 하나이지 않았으니까.

“후환은 남기지 않는 법이지.”

근위대장이라는 후환을 남겨 화를 당했다. 그렇다면 백도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곁에 오승택과 이선호가 있는 이상 백도현과는 필시 계속해서 부딪힐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초장에 정리한다.

상혁은 옆에 놓인 물잔에 손을 뻗었다. 그러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야?”

방 안에 은은한 향이 맴돌고 있었다. 어디선가 맡아 본 향이었다. 적어도 최소한 병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상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잔을 집었다.

“어?”

잔을 그냥 집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잔이 너무나도 쉽게 깨졌다. 상혁은 손이 따끔하더니 피가 툭툭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왜 이래?”

상혁의 생각이 퀘스트 보상에 가닿았다.

[이름 : 상혁

직업 : 4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2, 민첩/2, 체력/2, 마나/400]

“근민체.”

이제야 직업이 4서클 마법사로 바뀐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상혁의 눈은 근민체가 2로 늘어났다는 것에만 고정됐다.

“힘이 갑자기 늘어나서라고.”

몸에 변형이 와 그 고통에 기절할 정도였다. 하지만 고작 1씩 더 늘어난 것뿐이다. 상혁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상혁 씨!!”

이선호가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기절한 상태로 파도에 떠밀려 오셨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얼마나 지났죠?”

“오늘 낮이었습니다. 지금은 자정이 넘었구요.”

다행히 그렇게 오래 기절한 건 아니었다. 상혁이 괜찮다면서 고개를 젓다가 이선호를 쳐다봤다.

“이선호 씨. 혹시 힘 셉니까?”

“저요? 갑자기 그건 왜요?”

“그냥요. 어떻습니까.”

“그냥 보통인 것 같은데요.”

이선호는 상혁을 다시금 종잡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뒷머리를 긁었다. 그런 이선호에게 상혁이 유리잔에 베이지 않은 손을 내밀었다.

“잠깐만 잡아 보세요. 그리고 힘 줘 보세요.”

“힘이요? 그것보다는 손에 피가 나는데…….”

“어서요.”

상혁이 말하자 이선호는 얼떨결에 상혁의 손을 잡고는 힘을 주었다. 이선호의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올랐지만 상혁의 얼굴은 평온했다.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데.’

원래 상혁의 신체는 철저히 평범한 인간의 그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선호가 손에 힘을 주고 있다는 느낌조차도 나지 않았다.

“제가 줘 볼게요.”

“헉, 헉. 네? 그러세…… 아아악!!”

상혁이 가볍게 힘을 주자 이선호가 손을 빼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손이 부러지는 줄 알았잖습니까!!”

“어…….”

상혁은 문득 깨달았다.

세계의 의지가 1로 표시한 근력과 민첩, 체력의 수치.

그 1이란 수치가 사실은 평범한 딱 평균 정도의 수치가 아닐까 싶어졌다.

그렇다면 근민체가 2가 되었다는 건.

‘1이 2가 되었으니 두 배. 평균이었던 힘이 두 배가 되었다고?’

물론 정확한 수치는 아니겠지만, 무슨 이런 무식한 뻥튀기 공식이 있냐는 것에 상혁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그때 문 쪽에서 백정연이 들어오다가 상혁이 손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걸 보고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지금 손에서 피가 나는데 뭐 하시는 거예요, 두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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