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56화
56. 영감이 기운도 좋다(1)
“어디 나가십니까?”
이선호가 수영복 차림으로 나오다가 상혁과 마주치고는 멈칫했다. 상혁은 통통하게 오른 이선호의 볼살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좀 살이 찌신 것 같은데요?”
“아, 워낙 놀고먹었더니.”
이선호가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쩌다 보니 여기에서 일주일 넘게 머무르고 있었다. 이틀만 돈을 냈고 나머지는 백정연이 전부 다 무료로 처리를 해 주었기 때문에 이선호는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오승택처럼 숨어 다녀야 할 필요도 없어 상혁처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여기서 팔자가 가장 좋은 게 이선호였다.
“제가 부탁드린 건요?”
하지만 놀고만 있는 건 볼 수 없어서 상혁은 이선호에게 부탁 하나를 했다. 백정연이 상혁에게 주기로 했던, 백도현이 재조사를 하기 위해 들인 뇌물을 산정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금액의 10퍼센트를 보수로 약속했다.
백정연이 줄 보수의 5퍼센트인 셈이다.
“다 나왔습니다.”
이선호는 자신을 뭐로 보냐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이선호가 일 처리 능력 하나는 탁월했기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마냥 놀고 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전 병원 좀 다녀오겠습니다.”
“병원이요?”
이선호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혹시나 상혁이 어디 잘못된 줄 알았기 때문이다.
“오승택 때문에 갑니다.”
“아, SG충청병원.”
“네.”
“그럼 오늘 백 회장과 만나실 수도 있겠네요?”
“뭐, 만나서 뭐 하겠습니까.”
이선호에게 백성철 회장은 최종 보스다. 백도현이 이선호가 맞닥뜨린 강적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그런 백도현의 행동을 묵인하는 건 백성철 회장의 책임도 있었기 때문이다.
SG전자 전체가 이선호에게는 잠재적인 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상혁에게는 아니다.
“전 딱 백도현까집니다. 백성철이나 SG전자 전체는 관심 밖이에요.”
“깜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요.”
이선호와의 협력은 백도현을 도모하는 데까지만이다. 백도현이 자꾸만 상혁의 눈에 거슬렸기 때문에 그놈만 치우고 평안한 지구 생활을 이어 나갈 생각이었다.
‘지구 정복이나 해 볼까?’
그러다 심심하면 가끔 지구 정복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소설 속 중2병 주인공이나 할 법한 생각을 떠올리며 킬킬거리며 웃은 상혁이 호텔 입구에 도착한 택시를 타고 말했다.
“SG충청병원으로 부탁드립니다.”
상혁이 이곳에서 쓰는 모든 비용은 백정연이 해결해 주기로 했다. 솔직히 그 정도는 해 줘야 마땅했다. 상혁이 백정연의 목숨을 몇 번이나 살려 주었기 때문이다.
부웅!
택시는 부드럽게 핸들을 꺾어 도로로 나갔다. 상혁은 자신의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드는 초아를 느끼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싫으냐?’
뽀로로!
초아는 자연을 훼손시키는 거의 모든 것을 다 싫어했다. 매연을 생성해 내는 자동차도 당연히 그 범주에 드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타지 않으면 상혁의 곁에서 떨어져야 하니 지금처럼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타기는 탔다.
부아앙!!
택시가 악셀을 밟을 때마다 초아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럴 때마다 더 많은 매연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상혁의 코가 간질거렸다.
“에취!”
재채기를 한 상혁이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택시의 창문을 내렸다. 그러자 달리는 차 안이라 바람이 들어왔다.
“에, 에취!”
그리고 상혁은 한 번 더 재채기했다. 그러자 기사가 뒤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찬 바람 쐬면 감기가 더 심해집니다, 손님.”
“아, 감기는 아니에요.”
상혁이 감기에 걸린 줄 알았던 모양이다. 상혁은 코를 한 번 훌쩍하고 마신 뒤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마나?’
공기 중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4서클에 오르기 이전에는 공기 중에 그 어떠한 마나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 상태의 마나가 다 사라지고 오염의 형태로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공기 중에서 극소량이지만 마나가 느껴지고 있었다.
끽!
그런데 그때 택시가 도착했다. 이미 호텔에서 돈을 받은 택시 기사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자 상혁은 택시에서 내렸다.
‘나중에 생각하자.’
상혁은 공기 중에서 마나가 느껴지는 연유를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대신 지금은 오승택의 소원을 들어 줄 차례였다.
상혁은 간호사에게 물었다.
“치매환자 병동은 어디에 있습니까?”
* * *
현대 의학으로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다. 초기 치매는 약 등을 처방하여 진행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완치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마법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
가나안에도 치매가 있었다. 그러나 치매는 99.9퍼센트 확률로 평민들만 겪는 질병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치료가 가능했으니까.
신성력을 보유한 신관들은 신의 힘인 신성력으로 인체에 해롭게 작용하는 거의 모든 질병을 완치할 수 있었다.
어떤 병이냐에 따라 들어가는 신성력이 다르기에 모든 신관들이 모든 병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치매, 가나안에서는 망각병이라 부르는 그것도 주교급 이상의 신관에게 찾아가면 치료가 가능했다.
문제는 가격.
신전도 땅 파서 장사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망각병을 치료하기 위해 주교급 신관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들의 치료를 받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보통이 아니었다.
신전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이뤄지는 치료비는 주교급이 최소한 100골드 이상이 필요했다.
1골드면 4인 가구가 삼 개월을 꾸릴 수 있는 금액이다.
100골드면 4인 가구가 거의 20년을 넘게 먹고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러니 귀족들밖에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도 신성력은 없지.’
상혁은 오승택의 어머니가 입원한 병상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건 신성력이 있는 신관만이 빚어 낼 수 있는 기적이다. 마법사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신의 힘만이 망각병을 치료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마법사는 탐구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어떤 한 자애로운 마법사는 망각병으로 인해 가족들을 점점 잊어가는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한 가지의 마법을 만들었다.
망각 마법.
망각병에 걸린 이에게 왜 또 망각하는 마법을 거느냐고 하겠지만 수학을 안다면 이건 간단한 셈의 원리에 지나지 않았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를 곱하면 플러스.
망각 마법은 사람의 뇌에 마나를 침투시켜 뇌세포 속 각인된 기억을 지우는 마법이다. 하지만 망각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각인된 기억이 없다.
그런 뇌세포를 망각 마법의 마나가 건드린다?
그렇게 되면 역설적으로 마나가 뇌세포 중 기억 세포를 자극하여 망각병의 속도를 낮출 수 있게 된다.
“뭐, 대충 그렇다는 이야기지.”
상혁은 입맛을 다시며 오승택의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올해 예순이 넘은 노파였는데 병을 앓고 있는지라 또래보다 더 늙어 보였다.
하루 대부분을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딱 한 가지.
[돌아가신 아버지만 기억하십니다.]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오승택과 그 동생인 오승환도 잊은 그녀는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한 남자만을 기억했다.
치매는 무척 슬픈 질병이다.
함께 보냈던 시간이 선명한데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지워져 가는 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늦출 방법이 상혁에게는 있었다.
‘일단 늦출 수는 있다.’
물론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었다. 그녀가 얼마만큼의 기억을 잃었는지 판단할 수 없다. 병을 고쳤다가 백지화된 상태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신관이 아닌 마법사의 치료는 딱 지금 수준부터 더는 악화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슥.
상혁은 등 돌렸다. 그런 상혁의 눈에 병실 앞문에 신문을 든 채 앉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그곳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테지만 SG그룹에서 오승택을 잡기 위해 붙인 감시자다.
그리고 바로 옆 병상.
‘저놈도 마찬가지.’
지난번 흑태양파에서 봤던 이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상혁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웅웅
인식장애 마법.
상혁은 4서클이 됨과 동시에 인식장애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인식장애 마법은 흔히 암살자들에 의해 많이 쓰이는 마법이었는데 이는 말 그대로 인식을 방해하는 마법이다.
육안으로는 사람을 보더라도 그게 머리로는 사람으로 인식이 안 되는 마법으로 얼굴이 들키기를 원하지 않는 암살자들이나 도둑이 많이 쓰는 마법이다.
여기에 투명화까지 사용하면 이중으로 신경을 쓴 완벽한 마법이 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마나 소모가 너무 심했다.
당장 인식장애 마법도 5분 정도 유지했더니 그 큰 마나 통이 벌써 절반이나 소모됐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나를 많이 요구하는 마법의 특성 때문이다.
사람이 없는 한밤중도 아니고 대낮인 데다가 병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소모되는 마나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돌아 나온 상혁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탄 상혁은 마법을 풀었다.
“휘유우.”
소모된 절반의 마나 때문에 허탈감이 확 몰려들었다. 심호흡 몇 번으로 그것을 떨쳐 낸 상혁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는 순간 번개처럼 인식장애 마법을 다시 걸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누군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가 눈을 들어 상혁을 쳐다봤다. 상혁은 그 순간 자신의 마법이 흐릿해졌음을 깨달았다. 마법이 없는 이 지구에서 상혁의 마법을 누군가 간섭한 것이다.
“오승택?”
그런데 그 사람은 놀랍게도 오승택과 무척 닮아 있었다. 상혁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오승택과 똑같이 생긴 남자, 오승환이 고개를 숙였다.
“귀인을 뵙습니다. 전 승택이 형의 동생인 오승환이라고 합니다.”
“오…… 승환?”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형제였다.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었다.
“이리 와.”
상혁은 오승환을 끌고 뒤쪽으로 빠졌다. 오승환은 상혁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왔다. 건물 밖 흡연장으로 오승환을 끌고 나온 상혁이 오승환을 쳐다봤다.
“너. 대체 무슨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거냐?”
상혁의 눈에서 오색찬란한 서기가 뿜어져 나왔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상혁의 마나안에는 분명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오승환에게서 보였다.
뽀르르!
초아가 상혁의 머리 위로 날아와 앉았다. 상혁은 오승환의 등 뒤에 서 있는 실루엣이 마나로 뿌옇게 빛을 내는 모습을 보며 더욱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신성력? 너, 신을 모시는 신관이냐?”
오승택의 동생인 오승환에게서는 미약한 신성력이 느껴졌다. 가나안으로 치면 수습 신관 정도 되는 수준.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상혁이 아는 한 지구에는 마나도, 신성력도, 오러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줄 알았던 상혁의 확신이 깨졌다.
“장군님께서 귀인께서 찾아올 것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장군님? 네 뒤에 서 있는 그거?”
상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장군님이라. 상혁은 오승환을 쳐다봤다. 앳된 오승환은 오승택이 대학생이면 저런 얼굴이지 않을까 싶은 해말간 얼굴이었다.
“너. 박수무당이냐?”
오승환이 손을 모아 상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장군님께서 저희 집안을 구해 주실 수 있는 귀인께서 오신다고 하여 기다리던 찰나였습니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귀인.”
신.
신은 상혁이 가나안에서 봤던 거대한 권능을 가진 신만 있는 게 아니다. 만물, 하물며 길거리에 있는 돌에도 깃들 수 있는 것이 신이다.
상혁은 그걸 간과했다.
그렇다면 신성력이 있을 수 있었다.
권능을 휘두르는 신만이 신이 아니기에, 지금 오승환의 몸에 깃든 저 장군님이라는 신도 결국은 신의 일종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상혁의 마법과 오승환의 신.
이 두 가지가 있다면 어쩌면 오승택의 어머니를 치매라는 마수로부터 빼내 올 방법이 생길 것만 같았다.
“너. 네가 알고 있는 그 신에 관한 것. 모두 다 말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