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0화
020. 유통기한(5)
서울 가는 터미널.
이선호는 상혁을 터미널에 데려다준 뒤 걱정스러운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는 재차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정작 당사자인 상혁은 별 감흥이 없었다. 마법사. 이선호는 영화 같은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혁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글쎄요. 그 김석문이란 사람 정도의 수준과 비슷한 조직이라면…….”
상혁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가상 이미지를 그려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돌려보는 건 마법사에게 있어 가장 쉬운 일 중 하나였다.
이미지 트레이닝이야 마법사들이 매번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못해도 백 명까지는 가능합니다.”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라는 것을 가정했고, 김석문과 비슷한 수준의 갓 용병이 된 지 1년 미만 정도의 수준을 상정하고 나온 결과였다.
‘그래도 명색이 잔뼈가 굵은 대마법사인데.’
늙어서 여기저기 쑤시고 결리기 전에는 예순까지 전쟁터의 선봉에 섰던 워 메이지이기도 했다. 용병으로 굴러먹으면서 칼 밥을 먹은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비록 2서클이라고 해도 마법사가 여전히 위력적인 것은 매한가지다.
특히 마법 군주라 불렸던 이라면 더더욱.
“배, 백 명이요?”
“이상한 걸 가지고 놀라시네. 변호사님 몸에서 독 제거한 건 안 놀라워요?”
“아, 하하하하.”
이선호가 어색한 얼굴로 웃었다. 상혁은 차에 달린 시계를 힐끗 쳐다봤다.
“10시쯤에는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니까 준비하고 계세요.”
“그렇게 빨리요?”
“네.”
화웅의 목을 베어 오겠다며 술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한 관우도 아니고. 상혁은 픽하고 웃었다. 기억나지 않던 것들이 차례대로 기억나니 별의별것이 다 떠올랐다.
“조심, 또 조심하십시오. SG그룹과 관계됐다면 그 흑태양파라는 곳도 특히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상혁은 자신의 스윗홈에 침입한 괴한, 김석문이 끝까지 실토하지 않고 숨긴 것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반병신을 만들어서라도 알아낼 수 있었지만 상혁은 그 선까지는 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뒤처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숨긴 것이 무엇인지도 서울에 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면서 맛있는 것도 사 드세요.”
이선호가 지갑에서 현금을 잡히는 대로 꺼내 상혁에게 내밀었다. 상혁은 그 안에서 5만 원짜리 한 장만 받았다.
“한 장만 받겠습니다. 나머지는 집세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세요. 첫 달이니 특별히 서비스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상혁은 버스에 올랐다. 이선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있던 상혁이 푹신한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다.
두근두근.
상혁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걸 내색하지 않기 위해 침착함을 연기하던 상혁이 히죽 웃었다.
가나안 대륙이나 지구나 변하지 않는 지론이 있었다.
구리고 위험한 놈들일수록 털어먹는 재미가 있다는 것.
상혁은 흑태양파가 보물을 잔뜩 가지고 있는 황금 고블린이기를 바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웅웅웅!!
그런 상혁의 심장 어림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두 개의 서클이 상혁의 기대에 호응이라고 하듯 웅웅거리며 마나를 내뿜었다.
* * *
동서울 터미널에 내린 상혁은 기지개를 쭉 하고 켰다.
서울에서 내려갔을 때와는 달리 지갑에 핸드폰 하나가 전부인 조촐하다 못해 휑한 두 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오늘 내로 다시 내려갈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서울에 내린 순간 지훈은 깨달았다.
“마나가 왜 이렇게 많아?”
온양에서도 외진 시골에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방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상혁은 그 마나의 향기에 홀리듯 어딘가로 걸어가서는 우뚝 섰다.
악취.
꽉 차다 못해 바깥까지 삐져나온 쓰레기가 가득한 쓰레기통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쓰레기에서 나는 악취는 덤이었다.
그리고 쓰레기통 주변만이 아니었다.
화장실에서도 마나가 느껴졌고 심지어는 노점 가판대에서도, 그리고 연기가 풀풀 나는 고깃집에서도 마나가 느껴졌다.
“어디에나 없지만 또 어디에나 있구나!”
공기 중에 분포된 마나는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에는 사방이 마나였다. 천만이나 되는 인구가 모여 사는 곳인 만큼 그만큼 오염된 곳이 많다는 증거였다.
동시에 사방이 인체에 해로운 독이라는 퍼져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고.
“허.”
상혁은 심지어 길거리 가로수에도 마나가 느껴진다는 것에 놀랐다. 은행나무였는데 생각해 보니 어릴 때 길거리 가로수에서 나는 은행 같은 것들은 먹지 말라고 했던 엄마의 말이 기억났다.
“매연을 먹고 자란 나무구나.”
상혁은 마음에 든다는 듯 가로수에 손을 얹었다.
쏴악!!
그러고는 가볍게 마나를 빨아들이자 가로수에 있던 마나가 상혁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동시에 상혁이 침을 탁 하고 뱉었다.
마나는 빨아들이고, 오염물질은 내뱉었다.
그런데 그 양이 제법이었다. 하루 이틀에 이 정도로 큰 것이 아니라 몇 년 동안 매연을 먹고 자라났기 때문이리라.
‘그것만이 아니야. 토양에 섞인 오염물질도 있고, 매번 뿌리는 농약에, 해충을 치료한다며 부은 독한 치료 약까지.’
가로수야 뛰어난 생명력으로 푸르른 잎을 매년 피워대고 있었지만, 그 속은 썩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상혁이 그것을 한꺼번에 싹 빨아들인 것이다.
‘다시 생겨나겠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가로수는 건강해졌다. 그 순간 상혁의 눈이 커졌다.
‘이건……?’
서울에 온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였을까.
상혁은 세계의 의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상혁이 그것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지고의 진리를 곁눈질로나마 접했던 위대한 대마법사의 격과 영혼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지가 상혁에게로 모여들었다.
‘무슨?’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했다. 가나안 대륙에서 이러한 세계의 의지가 움직이는 것을 관측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큰일들이 벌어졌다.
성녀의 탄생.
성자의 탄생.
용사의 탄생.
세상의 환란이 일어나기 전에 세계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의지를 움직여 환란에 맞설 이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세계의 의지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세계의 의지가 마법사를 찾은 적은 없었다.
마법사는 질서를 뒤틀고 진리를 파고드는 존재.
존재의 본질을 되짚는 혜안을 가진 마법사에게 세계의 의지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공식이 깨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혁의 머릿속에 노이즈가 잔뜩 낀 주파수에서 나는 것 같은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점점 어떠한 소리가 깨끗해지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세계가 격에 맞는 영혼을 찾았습니다.]
[세계의 의지가 깃듭니다.]
[완벽하지 않은 세계의 의지입니다.]
[선택자를 분석합니다…… 완료.]
[마나 이터를 선택합니다.]
“무슨…….”
상혁이 허공을 응시한 채로 가만히 서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광인 같았기에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슬슬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상혁이 급히 마나를 끌어올렸다.
“누구 마음대로.”
세계의 의지가 상혁을 향해 다시금 몰려들고 있었다. 그사이 울려 퍼진 음성을 들었을 때 상혁을 세계의 의지가 선택한 모양이었다.
세계의 의지는 선택을 받는 사람의 의사를 묻지 않는다.
성녀도, 성자도, 용사도 자신이 원해서 된 사람은 없었다.
마법사는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세상에 뜻을 관철시키는 탐구자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은 본능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렸다.
거대한 세계의 의지로부터 자신의 격과 영혼을 지켜 내기 위해서.
“누가 감히 내 운명을 주무르려 한다는 것이냐.”
대마법사의 격이 울부짖었다. 마나의 고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차 앞에 선 사마귀처럼 고작 두 개의 마나 고리가 세계의 의지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그건 마치 소드마스터가 아이들의 플라스틱 검을 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드마스터의 손에 들린 모든 것은 강철도 베어 버릴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대마법사의 지배하에 있는 2서클의 마나도 마찬가지다.
쩡!!
부르르.
세계의 의지를 마나의 고리가 움직여 막아 냈다. 세계의 의지와 대마법사의 격이 부딪쳤다. 당연히 불리한 것은 대마법사의 격이었다.
하지만 버텨 냈다.
세계의 의지가 상혁을 죽이려 했다면 상혁은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지는 상혁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어떠한 목적을 위해 상혁을 이용하려 했던 것뿐.
그런데 그걸 상혁이 막아 냈다.
그러자 의지가 당황하는 것이 상혁에게 느껴졌다. 한 번도 의지가 막힐 것이라고는 상상해 보지 못한 것이다.
“그 누구도 마법사를 강제하지는 못한다.”
진리의 탐구자인 마법사를 강제할 수 있는 건 그 어디에도 없다. 더군다나 제 의지와 상관없이 타차원을 전전해야 했고, 그러면서 살기 위해 제 목숨을 저당 잡아야만 했던 대마법사 상혁은 더더욱 그런 것을 혐오했다.
그것이 설령 세계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대마법사의 격과 영혼이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그러자 의지가 주춤거리면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상혁이지 시체가 아니었으니까.
[의지가 대마법사의 격과 영혼에 경의를 표합니다.]
[의지가 거래를 제안합니다.]
인간은 보잘것없어 강대하고 초월적인 존재에 의해 쉽게 조종당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존재들이 인간을 선택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무한한 잠재력.
의지는 그것을 인정했고 지구에서 찾은 대마법사의 격과 영혼에 경의를 느꼈다.
“보고 결정한다.”
세계의 의지는 상혁에게 해를 가하려 한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상혁은 거래를 받아들였다.
[의지가 받아들이라 말합니다.]
그 순간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상혁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그리고 그 번개가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 상혁은 현실로 되돌아왔다.
0.1초도 되지 않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상혁은 세계의 의지가 발현된 이유를 깨달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옆으로 삐뚜름하게 꺾었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세계의 의지가 요동쳤다.
* * *
“망할 놈들.”
흑태양파의 두목이자 국정원 10년 차 현장 요원인 김태양은 투덜거리며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했다.
치사하게도 부하 중 그 누구도 김태양을 따라나서지 않은 것이다. 아니, 하필이면 다들 임무 중이라 그를 도울 손이 없었다.
그 때문에 김태양은 혼자 온양으로 향하는 길을 나섰다.
“가서 아산 들러서 온천이나 하고, 맛있는 거나 먹고 와야지.”
그는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을 미행하고 감시하고 조사하는 것이야 10년 동안 해 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때로 누구를 죽이라는 명령도 받았지만, 그들은 그것이 전부 다 조국을 위한 길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자동차도 일부러 타지 않았다. 외진 시골에 외지인이 차를 몰고 들어오면 그것만큼 눈에 띄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수고롭게 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그는 노점에서 꼬치어묵 하나를 사서는 입에 물었다.
“내 드러워서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조국을 위한 일이라고는 하나 그를 비롯한 요원들은 늘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몸으로 구르는 것보다 편하게 사는 것을 그리워하지 않는 이 없었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그렇게 말한 김태양은 어묵을 입에 물고는 습관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그때 김태양의 눈이 커졌다.
“어?”
여긴 온양이 아니라 서울인데, 저기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그 얼굴이었다.
“백상혁……?”
SG그룹의 사주를 받은 윗선에서 내려온 감시 대상자.
상혁이 저 멀리 허공을 멍하니 응시한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김태양은 이게 웬 떡이냐 싶은 표정을 지었다.
“하하, 온양 안 가도 되겠는데?.”
상혁이 자신들에게 용무가 있어 서울까지 왔다는 건 까맣게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