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1화
021. 환경미화원(1)
상혁은 자신에게만 세계의 의지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자신을 주변에서 미친놈 쳐다보듯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주변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왜 니가 싼 똥을 나한테 치우라는 거냐?”
상혁이 삐뚤어졌다. 찰나의 순간에 세계가 상혁에게 알려 준 정보의 양은 방대했다. 하지만 그것을 전달해 주며 세계가 말하고자 한 것은 간단했다.
-난 더 이상 어디를 손댈지 모르겠거든. 그러니까 좀 도와주라.
뭐 대단한 세계라고 하지만 말하고 싶은 건 딱 저거였다.
“진작에 개입하지 않고 두 손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왜 애먼 사람을 사도로 삼으려고 하는 건데?”
세계의 의지는 침묵했다. 상혁은 대단하신 세계의 의중을 짐작했다.
“신이 없기 때문이겠지?”
신(神).
세계의 의지가 공명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건 제대로 치부를 들켰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 스케일이 세계급이라 거대했지만 말이다.
신은 세계의 의지를 관철하는 대리자다.
가나안 대륙만 해도 성자와 성녀, 교황이 있었고 그들이 모시는 신 외에도 많은 초월적인 존재들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신성력으로 그들은 신의 존재를 증명했고 신탁에 따라 세상의 일에 개입했다.
진리를 탐구하는 마법사로서 신의 존재를 마법사들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신성력이란 힘의 근원을 명확히 밝혀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이 됐다.
마법사도 밝혀내지 못하는 진리는 신의 존재 하나면 설명이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런 신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의 의지를 직접 대리하여 관철시켜 줄 신의 존재.
[세계의 의지가 간절하게 말합니다. 지구는 독립된 차원, 신이라 함은 무릇 다른 차원과의 교류에서 생겨나지만 지구는 그러지 못했다고.]
본의 아니게 들은 신의 탄생의 비밀이었다.
“천계와 마계, 정령계가 공존하고 있어서 가나안 대륙은 신이 있었던 건가.”
[가나안 대륙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지구에서 최초로 발견된 다차원의 흔적이 남은 사람이라고 세계의 의지가 말합니다.]
세계가 상혁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그 때문이다. 세계의 설명이 모두 다 맞다면 지구는 신이 탄생할 수 없는 조건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 다차원의 흔적, 그러니까 차원이동을 한 흔적이 남은 상혁이 나타났으니 세계가 움직인 것이었다.
“행성이 죽어 가고 있으니, 가여운 수많은 생명을 봐서라도 도와달라…….”
[세계가 읍소합니다.]
상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무에 깃든 마나가 탐이 나 거기에 손을 뻗은 것이 문제였다. 땅에 뿌리내린 나무는 곧 세계의 신경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땅이 이어지지 않은 곳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다. 높이와 깊이가 다를 뿐, 반드시 지구는 어떻게든 땅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뿌리내린 모든 것들은 세계의 신경이었다.
그 신경을 상혁이 건드렸고, 세계는 곧바로 튀어나왔다.
“아니. 난 개인이야.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다 죽일 수는 있겠다. 행성 파괴 안 될 수 있게.”
인간의 환경오염이 문제였다. 세계는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애초에 다른 차원과 교류도 할 수 없는 지구가 이 정도 버틴 것도 용한 일이었다.
다른 세계와의 교류를 위해 한 세계는 고이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는 법이니까. 가나안 대륙으로 치면 천마대전이라든지, 마계 침공 등이 그런 일에 해당할 것이다.
한 곳에 고인 것은 썩는다.
그건 세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지구는 한 곳에 고인 것이었다.
[당신의 존재가 고인 것을 다시 흐르게 할 수 있다고 세계는 말합니다.]
그러니 다차원의 흔적이 남은 상혁은 세계의 마지막 희망이요, 등불이었다.
“그런데 그걸 아는 놈이 강제를 하려고 해?”
상혁의 두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러자 거대한 세계가 끙끙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듯했다. 그 모습에 상혁이 약간 누그러졌다.
“그러면 뭘 해 줄 건데. 거래라면서.”
세계의 의지는 상혁을 강제하는 것에 실패했다. 상혁의 반발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거래를 제안했다.
“참고로 난 이 지구에 바라는 게 없어. 가나안으로 간 것도, 돌아온 것도 내 의지는 아니었으니까.”
뿌득.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8서클 대마법사도 짐작조차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상혁을 가나안에 데려갔다가 내다 버리는 것처럼 팽해 버렸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상혁으로서는 이가 갈리는 일이었다.
“넌 알지?”
[세계의 의지가 입을 꽉 다뭅니다.]
상혁의 입가에 사나운 미소가 떠올랐다. 알고 있었다. 찾으려 했지만, 단서조차도 잡을 수 없었던 진실에 대한 단서를 쥔 놈이 눈앞에 있었다.
그러자 잊고 있었던 복수심이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상혁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어떠한 놈. 그러고는 냅다 다시 지구로 토해 버린 놈. 상혁이 세계에게 말했다.
“내 거래 조건을 말하겠다.”
[세계의 의지가 무섭다면서 살살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상혁은 차갑게 웃었다. 칼자루는 그가 쥐고 있었다. 칼자루를 쥔 상혁은 세계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 * *
‘뭐 하는 거지?’
김태양은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하늘을 응시한 채 화를 냈다가 웃었다가, 미친놈처럼 구는 상혁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제정신이 아닌 놈을 왜 SG그룹에서는 추적해 달라고 한 것일까. 김태양이 짐작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뿐이었다.
‘얼마 전에 반도체 공장이 털렸다고 했지. 그 근방 CCTV에 나온 얼굴이라고 하는데. 저런 놈이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하지만 임무의 종료는 그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윗선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월급쟁이에 불과했다.
“끄윽.”
상혁을 관찰하느라 어묵을 열 꼬치쯤 먹었더니 이제 입에서 비린내가 진동하는 듯했다. 대충 만 원을 낸 김태양이 슬쩍 상혁을 향해 걸어갔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야겠다.’
거리가 멀어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알 수 없으니 지나치는 척을 하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볼 생각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김태양의 머릿속과는 달리 순식간에 김태양은 보통 행인처럼 변했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건 겉으로는 완벽하게 목표하는 바를 연기하는 것, 국정원 요원으로 치열하게 훈련받는 것 중 하나가 빛을 발했다.
그렇게 김태양이 자연스럽게 상혁 옆을 지나가려는 순간.
스윽.
탁!
상혁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더니 김태양과 눈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김태양은 자연스럽게 눈을 피했다. 길 가다가 우연히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고는 피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김태양은 다리가 풀릴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고는 상혁의 옆을 지나쳤다.
상혁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발가벗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뭐지……?’
김태양이 중얼거리며 상혁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거리를 어느 정도 확보한 채 고개를 딱 돌린 순간 김태양은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상혁이 그 자리에 없었다.
‘감이 좋지 않아.’
김태양은 자신의 감이 불길하게 경고 신호를 보내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김태양은 자신의 감을 맹신했다. 그 감이 지금껏 김태양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해 줬기 때문이다.
김태양은 즉시 그 장소에서 이탈했다. 하지만 그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연두빛의 바람이 김태양의 목덜미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 *
“석문이란 놈이랑 분위기가 비슷했단 말이지?”
상혁과 눈이 마주쳤던 순간 김태양이 느꼈던 서늘함은 진짜였다. 마나안에 비친 김태양의 본질이 석문이란 이름의 괴한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상혁이 김태양을 가만히 내버려 둔 이유는 간단했다.
‘날 감시하고 있었어.’
김태양은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선호를 노리던 정체불명의 집단이 자신을 감시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같이 알아보지 뭐.’
상혁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상혁의 귀에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곤소곤.
사람의 말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가느다란 미풍이 불면서 나는 기분 좋은 소리였지만 상혁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엘프들이나 이 녀석이랑 말이 통하지.”
뽀로롱.
상혁 주변으로 연한 연두빛의 정령이 빙글거리면서 친근함을 표했다. 다름 아니라 상혁이 정화시킨 가로수에 살고 있던 풀의 정령이었다.
비록 그 크기가 매우 작고 기운이 약했지만, 정령은 정령이다.
엘프에게만 허락된 존재.
가나안에는 정령들의 세가 강해 정령계라고 정령들만이 사는 차원이 따로 존재했지만, 정령은 자연을 그대로 빚어 만든 자연적인 존재였다.
그게 지구에도 있는 줄 몰랐을 뿐.
선물.
풀빛의 정령은 세계의 선물이었다. 정확히는 좁쌀만 한 정령친화력을 준 것이다.
“그러니까.”
더불어 세계는 상혁에게 자신의 대리자로 상혁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동시에 상혁이 그것을 위해 빠르게 힘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런데 그게 왜 이 모양인데.”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한 번 더 썼다.
[이름 : 상혁
직업 : 2서클 마법사
상태 : 근력/1, 민첩/1, 체력/1, 마나/200]
[퀘스트 : 환경미화
내용 : 가로수 100 그루의 오염 정화
보상 : 마나 +5]
“게임이냐?”
세계는 묵묵부답이었다. 정확히는 상혁을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해 놓고는 힘을 다 소진해 대답을 할 여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게임이란 말인가.
“하아, 진짜.”
가나안에서 지구로 왕복한 것도 스펙타클한데 이제는 게임이라니. 이게 진짜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맞나 싶은 착각이 드는 상혁이었다.
하지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수준인지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네.”
하지만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이런 것들이 상혁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지난 50년 동안 게임이라고는 건드려 본 적도 없는 상혁이었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샘솟는 것 같았다.
“하아.”
그나마 퀘스트란 걸 던져 주니 그게 나침반이 될 터였다. 그리고 세계는 상혁에게 약속했다.
[오염도 : 99.8퍼센트]
99.8퍼센트인 세계의 오염도를 50퍼센트 미만으로 낮춰 준다면 거래가 충족된 것으로 알고 거래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겠다고.
그 대가는 당연히 상혁이 원하는 것이었다.
“나를 가지고 장난친 쓰레기 같은 놈. 그리고 세계에 대한 연구.”
8서클의 힘으로도 상혁의 운명을 가지고 놀던 놈의 꼬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니 그놈에 대한 정체를 안 다음, 9서클, 필요하다면 10서클까지 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세계에 대한 연구였다.
거대한 의지.
그것의 근원을 찾아내려다가 보면 분명 전인미답의 경지인 9서클,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러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 말도 안 되기는 했다.
“……내가 환경미화원이라니.”
뽀로롱!!
풀의 정령을 세계가 선물이라면서 준 이유가 있었다. 풀의 정령은 오염을 감지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작은 정령이 주변 가로수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오염을 느끼고는 작은 날개를 미친 듯이 파닥거렸다.
“알았어. 한다고, 해.”
상혁이 이를 으득 깨물고는 가로수에 손을 얹었다.
꿀렁!
나무 속에 가득 들어찬 오염이 꿀렁이면서 상혁의 손을 타고 고리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상혁은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하듯 가지를 살랑거리는 가로수를 보면서 입을 비죽 내밀었다.
“아, 진짜 내 성격이랑 안 맞아.”
투덜거리는 상혁의 머리 위로 풀의 정령이 즐겁다는 듯 빙글거리며 원을 그리며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