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9화
019. 유통기한(4)
“부탁하자.”
[알았어.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잘못 걸렸지.]
이선호는 친구가 킬킬거리면서 웃는 것을 들으며 낯빛을 굳혔다. 걱정할까 말하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여러모로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몸조심해. 그렇게 대놓고 사람을 보낼 정도면 너,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
자신을 걱정해 주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자 이선호는 굳었던 낯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상혁이 머릿속에 연이어 떠올랐다.
“걱정 마. 웬만해서는 괜찮을 것 같으니까.”
다짜고짜 처음 보는 자신을 보며 중독됐다고 말해 주고, 그도 모자라 그것을 실제로 증명까지 한 상혁이다.
그리고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거처를 옮긴 자신을 뒤쫓아 왔던 괴한까지 잡아 주었다.
충동적이나마 다 허물어져 가는 상혁의 집에 머물기로 한 것은 이선호가 육감에 따라 내린 결정 중 가장 잘한 것일지도 모른다.
[저녁에 내려갈게. 아마 이번 주 안에는 알 수 있을 거야.]
“부탁할게.”
상혁이 잡아준 괴한의 소속이 어딘지, 그리고 누가 시킨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이선호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인맥을 총동원했다.
“그리고 이건.”
이선호는 목덜미가 서늘해져 괜히 손으로 쓰다듬었다. 자신이 위태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사신의 낫이 목덜미에 드리워져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살아왔었기 때문이다.
‘SG그룹.’
SG그룹은 이선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선호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야 사람을 보내 은밀히 이런 짓을 했을 리 없다.
그러나 물증이 없었다.
침입한 괴한에게서는 SG그룹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 정도로 어수룩하게 일 처리를 하는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SG그룹이 이럴수록 이선호는 청개구리처럼 더 튀었다. 오히려 더 불타올랐다. SG그룹은 분명히 구린 곳이 있었지만 그걸 자신들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계속해서 지워 왔다.
SG그룹피해자모임.
단 한 번도 뉴스나 신문에 난 적이 없지만, 그들은 실존하는 모임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어딘가에 계속해서 알리고자 했지만, 대한민국 언론은 그들을 차갑게 외면했다.
다섯 명이 급성백혈병으로 창창한 청춘을 누리지 못하고 한 줌 재가 되어 스러졌다.
그럼에도 SG전자는 이 일을 철저하게 불문에 부쳤으나 그중 한 명의 아버지가 그 억울함에 견디지 못하고 분신을 통해 이 사실을 처음으로 수면 위로 드러냈다.
그러나 SG전자는 근무환경과 백혈병과의 상관 관계를 부정했고, 의사들도 그들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그들의 변호를 맡은 이선호는 의사들이 전부 다 SG전자의 돈을 받고는 입을 맞췄다는 것을 알았지만 거대 기업과 싸우기에 그들은 힘이 없었다.
그렇게 SG그룹피해자모임은 결국 단 한 건도 승소하지 못한 채 갈가리 찢어졌다.
그 후 이선호는 온양에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채 이혼 전문 변호사로 살았다.
겉으로는.
그러나 이선호는 그렇게 피해자 모임이 찢어지고 패소하였어도 혼자의 힘만으로라도 SG전자와 싸우려고 일부러 온양에 내려온 것이었다.
SG전자 반도체 공장.
공장이 있는 온양으로. 직접 그 연결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내려왔다. 하지만 SG전자는 계속해서 이선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냥 주시한 게 아니지.”
천천히 중독시켜 죽이려고 했으니 그냥 주시한 것이 아니다. SG전자는 피해자 모임을 잊지 않았고 아예 흔적을 없애려 시도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마수에서 상혁 덕분에 간신히 빠져나왔다.
물론 계속해서 그들은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살았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변호사님. 점심은 뭐 드시겠어요?”
최영숙 사무장은 오늘까지 입원해서 쉬라고 했기 때문에 오늘 나오지 않았다. 대신 경리 겸 잡다한 사무를 봐주는 직원이 물었다.
이한나.
스무 살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 곧장 사무실에 취업한 직원이었다.
“짜장면?”
“또요?”
“그럼요?”
“으음…….”
이한나는 짜장면이 질린 모양이었다. 이선호는 그게 이해 가지 않았다. 짜장면이 얼마나 훌륭한 음식인데.
만드는 시간 대비 가격과 맛이 그 정도인 음식의 가성비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선호는 한 번은 져 주기로 했다.
“피자 어때요?”
“네~ 시킬게요.”
양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쯤이야. 그런데 그때 누군가 변호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이선호 대신 이한나가 나가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이선호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한나의 눈이 반짝였다.
“상혁 씨!”
“변호사님.”
* * *
달그락.
상혁의 앞에 달콤한 믹스 커피가 놓였다. 이한나가 눈을 반짝이면서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옆에서 쭈뼛거리자 상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감사합니다.”
“히힛. 네.”
이한나가 열다섯 살 소녀가 된 것처럼 쟁반을 앞으로 그러모으고는 총총거리면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힐끔거리며 상혁을 쳐다봤다.
이선호가 빤히 보이는 이한나의 행동에 피식하고 웃었다.
‘하긴, 한창 연애하고 싶을 때지.’
집안 형편만 아니면 다들 간다는 대학을 가야 하는 나이다. 한창 연애고 뭐고 모든 것을 하고 싶어 할 나이가 딱 이한나의 나이였다.
그러니 이한나에게 서울에서 왔다는 멀끔한 얼굴의 상혁이 근사하게 보일 수밖에.
정작 상혁은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일찍 출근하시는 모양이시네요.”
“9시면 나와 있으려고 합니다.”
이선호가 믹스 커피를 후루룩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 이선호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했다.
“퇴근하시면 매일 독을 빼 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한 시간 정도는 쉬어 주시는 게 좋아요.”
“예, 준비하겠습니다.”
이선호가 웃었다. 그러고는 상혁에게 말했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예, 저도 이제 그 집에서 살아야 하는데, 화장실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간단하게 사람을 불러서 고치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상혁이 반색했다. 사실 상혁이 돈을 들여서 해야 할 일이었다. 마법사라고 해도 화장실을 만들어 내는 재주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번거로운 걸 이선호가 대신해 주면 오히려 좋다.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비용은 제가 나중에 꼭 드리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 남의 돈으로 그냥 공짜로 할 생각은 없었다. 거긴 어디까지나 가족들이 살았던 상혁의 집이었으니까. 그 안을 고치는 건 상혁이 직접 자신의 힘으로 하고 싶었다.
“네.”
이선호는 그런 상혁의 생각을 눈치챈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주제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이번에는 상혁이 말했다.
“어제 그놈은…….”
“아.”
이선호는 이마를 한 번 문질렀다. 그러고는 상혁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왜 때문인지 알고 싶습니다.”
이선호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상혁의 집에서 살기로 했으니 상혁도 이런저런 사정에 대해서 알 필요는 있었다.
그 때문에 이선호는 전부 다 이야기하지는 않고 자신이 SG전자와 악연이 있고, 그쪽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견제를 하기 위해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인 것 같다고 짤막하게 설명했다.
“그럼 SG전자에서 보냈다는 겁니까?”
칼을 잘 쓰는 놈이었다. 한두 번 써 본 솜씨가 아니었고. 물론 어디까지나 지구의 기준으로 말이다.
가나안 대륙이면 막내 용병으로 고기 손질이나 하고 다닐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걸 알아보는 중입니다.”
“…….”
상혁은 잠시 침묵한 뒤 이선호에게 말했다.
“빠르게 알아낼 방법이 있다면요?”
* * *
인체 실험은 인간 비윤리성의 극치다.
자신과 같은 사람, 그러니까 동족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실험체로 본 뒤 실험을 자행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체 실험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기본적으로 사이코패스라고 봐도 무방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정신병자들.
상혁에게 인체 실험을 했던 마법사가 딱 그랬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상혁에게 있어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고, 기억하기 싫어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
8서클 대마법사에, 일흔 살이 넘었어도 가끔 그때의 꿈으로 악몽에 시달릴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인체 실험을 직접 당했기에 상혁은 인체에 대해서 매우 해박했다.
과학으로 알 수 없는 부분까지도, 마법으로 직접 당하면서 아주 뼈에 사무치게 깨달았고 마법사를 격살하고 난 뒤 놈의 행세를 하기 위해 놈의 연구일지까지 전부 다 달달 외웠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파악한 것이기 때문에 과학과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인간의 몸은 똑같았다.
그래서 다른 말로 하자면.
상혁은 고문의 달인이었다.
마법으로 하는 고문, 후유증도, 상흔도 남지 않지만, 반드시 아는 것을 토해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을 주는 방법을 마흔한 가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괴한의 입을 열게 하는 데에는 그중 두 가지면 충분했다.
뚜둑, 뚜두둑!
몸의 관절이 어긋나고 뼈가 각기를 추게 만드는 고통이 그치자 완전히 녹다운된 괴한이 입을 열었다.
“흐, 흑태양파.”
“흑태양파?”
“예,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발 더는…….”
“아는 걸 싹 다 말해 봐.”
괴한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불었다. 그 결과 상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깡패가 아닌 것 같은데?”
길거리에서 굴러먹는 깡패라고 하기에는 괴한의 실력이 상당히 깔끔했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티가 팍팍 났기 때문이다.
“지역구가 없는 깡패가 어디 있어.”
게다가 흑태양파는 다른 깡패들처럼 보호비를 받고 술집을 운영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란다. 지금처럼 의뢰를 받아 그 의뢰금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용병?”
가나안 대륙의 용병들이 하는 일이 딱 저런 일들이었다. 간단하게는 뭘 가져다 달라는 심부름서부터 크게는 전쟁까지.
돈만 맞춰 주면 무엇이든 다 하는 것이 바로 용병 길드였다.
“아십니까?”
흑태양파에 대해서 이선호가 알까 싶어 물었지만,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도 실망스러웠다. 상혁은 괜히 마나를 낭비한 것 같은 생각에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이런 구린 놈들일수록 내가 원하는 게 있을 텐데.’
독.
그것도 사람을 서서히 말려 죽이는 독이다. 농약 같은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를 가진 독이었고 마나가 훨씬 더 진했다.
“확실히 그냥 깡패 같진 않네요.”
이선호도 흑태양파의 구조를 듣고는 이상하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조직원의 수는 서른. 작은 곳이네요. 그런데 그렇게 일 처리가 깔끔했다라.”
이선호는 자신을 중독시킨 놈들이 흑태양파란 것을 알고 난 이후에도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냉철하게 현 상황을 분석했다.
“온통 물음표인 이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간단하죠.”
상혁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녀오겠습니다.”
* * *
“또 보내라고?”
흑태양파의 우두머리인 김태양은 인상을 팍 쓰고는 입을 우물거렸다.
“에이 더러워서. 때려치우든지 해야지.”
“SG에서 언제 사정 봐준 적 있습니까. 까라면 까야지.”
흑태양파라는 거창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조직이었지만 그 조직의 분위기는 일반 조폭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일단 우두머리, 그러니까 두목인 김태양과 조직원들 사이에 벽이 없었다.
“에휴, 이번 달 카드값이 200이니까 해야지. 그렇지?”
“그나저나 석문이는 어떻게 합니까?”
“연락 없으면 잡힌 거야. 신고 들어오면 빼 주겠지.”
“그쵸? 그런 건 해 주겠죠?”
후우-
김태양은 뒤치다꺼리나 하는 자신의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 항의를 해도 위에서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다.
흑태양파.
그들은 지역구도 없고 의뢰금으로 청부업체처럼 먹고 사는 곳이지만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이야. 국정원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우우, 또 그 말이다. 그래 봤자 지금은 두목이시지 않습니까.”
“야! 다시 돌아가야지! 너희도 똑같잖아!!”
국정원 위장 조직.
흑태양파의 숨겨진 정체였다.
“온양 갈 사람?”
그리고 그곳의 두목인 김태양은 SG에서 보낸 상혁의 사진을 든 채로 조직원들에게 누가 가겠냐면서 거수를 종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