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8화
018. 유통기한(3)
“여기서요?”
“네.”
상혁은 이선호의 골수에까지 독이 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부풀어 오르던 풍선의 바람을 어느 정도 빼낸 것은 바로 상혁이었기 때문이다.
“왜요?”
“왜긴요. 제가 너무 험하게 살아서 그런지, 적이 많거든요.”
이선호는 자신이 어째서 독에 중독된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 대충 짐작 가는 곳이 있다고만 했지 그 이후의 일은 제 일이라면서 언급을 삼간 것이다.
상혁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애초에 자기 자신 외에 타인에게는 무신경한 것이 마법사의 근본이다.
“그런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딱히 중독될 만한 곳이 없거든요. 있다면 제가 사무실에 나가 있는 동안 하루 종일 텅텅 빌 집 정도?”
“흠.”
“죽기는 싫으니까, 거처를 옮겨야죠.”
이선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문제는 그게 집주인인 상혁의 허락을 받지 않은 일방적인 결정이라는 점이었다.
“여긴 제집인데요.”
마법사는 자신의 공간을 침범당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월세 드릴게요. 100만 원 어떠세요?”
“환영합니다.”
하지만 그런 마법사도 돈 앞에서는 원칙이고 뭐고 없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무슨 원칙이란 말인가.
뭐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다 허물어져 가는 집의 방 한 칸을 월 100만 원 주고 살겠다는 것인데 말이다.
‘서울에서 내가 살던 고시원 단칸방이 월 55만 원이었는데.’
이선호가 제시한 100만 원이란 방값을 확실하게 과도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상혁도, 이선호도 그게 비싸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 안에는 상혁이 이선호를 위해 베푸는 것에 대한 대금도 분명 포함이 돼 있기 때문이다.
“마법사란 걸 믿습니까?”
“……네.”
제 육감을 믿는다고 했던 이선호다. 그러니 상혁과 함께 지내면 자신이 안전할 것이라는 직감을 받았으리라.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마법사의 거처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작은 드래곤 레어인 법이니까. 온갖 방어 마법으로 떡칠이 된 마법사의 거처는 대도라 불리는 도둑들도 건드리지 않았다.
마법사들의 뒤끝이야말로 대륙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마법사의 물건을 건드린다?
그건 죽을 때까지 마법사의 표적이 되어 추적을 당하겠다는 뜻이었다. 마법사들은 습관적으로 제 모든 물건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기 때문에 대륙 어디에 있든 감지할 수 있었다.
그건 지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구라고 해서 상혁이 마법사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그건 제 안전과 지낼 곳에 대한 대금이고. 치료해 주시는 비용은 따로 드리겠습니다.”
상혁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이선호는 부자였다. 변호사란 직업 자체가 부자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골에서 이혼 전문 변호사를 하고 있다고 해도 아산 정도면 천안 바로 옆이니 마냥 시골만은 아니었으니까.
“얼마…….”
“100을 더 드리겠습니다.”
월 200.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돈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됐다. 상혁은 그 말을 듣고는 손수 파란 대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가시죠.”
“감사합니다.”
이선호는 빙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방 한 칸을 제 방으로 차지했다. 문도 달려 있지 않아 노숙이나 다름없었지만, 이선호는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잠시 후 이선호는 몰고 온 차의 트렁크 안에서 여러 캠핑 장비들을 꺼냈다. 상혁이 이선호를 빤히 쳐다보자 그가 변명하듯 말했다.
“사무실 안에서는 김 사무장님 때문에 불을 못 쓰거든요. 밤에 가끔 라면이 먹고 싶으면 이런 걸 꺼내다 먹습니다.”
“그러기에는 텐트도, 침낭도 있으신데…….”
“사무실에서 잘 때도 있거든요.”
변호사의 살인적인 업무량에 잠시 묵념을 보낸 상혁은 젓가락을 집어 들고는 이선호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는 환상적인 라면을 보니 외면할 수가 없었던 탓이다. 이선호는 아예 아이스박스 안에서 소주까지 꺼내서는 옆에 놨다.
그러자 그럴듯한 캠핑장 같은 분위기가 났다. 애당초 상혁이 클린 마법으로 깨끗하게 집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허물어진 집이어도 폐가 같은 분위기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라면엔 소주죠.”
이선호는 상혁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혼자서 지내다 보니 그간 외로웠다면서 소주를 따라서 한 잔 두 잔 나눠 마시는 모습이 퍽이나 기꺼웠다.
마치 형제처럼 술을 주고받던 이선호는 소주 한 병에 금세 취했다. 혀가 꼬이기 시작한 이선호가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후르릅!
마지막 남은 라면을 해치운 상혁은 남은 소주로 가글을 하듯 입안에 남은 라면을 깨끗하게 목 뒤로 넘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연이 없는 놈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이선호는 상혁에게 신변잡기 같은 두루뭉술한 이야기만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상혁은 그가 일부러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맞장구를 쳐 주었다.
“일단 있는 동안은 편히 쉬쇼.”
따악.
가나안 대륙보다 평온하다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독에 중독이 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이곳도 사는 것이 만만치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웜쓰.”
상혁은 온도를 따듯하게 유지해 주는 마법 하나를 시전해 준 뒤 이선호가 코를 골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등을 돌렸다.
* * *
스윽.
야심한 시각.
인적이 드문 시골에 수상쩍어 보이는 남자 하나가 반쯤 찌그러진 파란 대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그 남자는 대문 옆에 세워진 자동차의 번호판을 확인한 뒤 품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소량을 복용하는 것으로는 당장에 아무런 증상도 유발하지 않지만, 체내에서 한 달 넘게 배출되지 않고 남아 있기에 천천히 중독시킬 수 있는 독이 든 약병이었다.
어두운 오밤중에 모자에 마스크까지 쓴 남자는 주변을 살핀 뒤 대문을 열지 않고 대문을 짚고 문을 뛰어넘었다.
다닥!
날랜 몸놀림에 뛰어내릴 때 거의 소음이 나지 않을 정도인 것을 보면 특수한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
거침없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작은 마당을 지난 남자는 고개를 슥 들어 문이 없이 휑 뚫린 방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부스럭.
한쪽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자 움찔한 남자는 잠결에 뒤척이며 나는 소리란 것을 깨닫고는 다른 쪽 방으로 들어갔다.
이선호가 살기로 한 방이었다.
남자는 코를 골며 자는 이선호를 날카로운 눈으로 한 번 본 뒤 작은 약병을 살살 돌려서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독이 묻은 면봉이 나왔고 남자는 조심스럽게 소주잔을 집어 들고는 입이 닿는 부분에 면봉을 문질렀다.
그러고는 냄비 손잡이, 텐트 지퍼 손잡이 등 손이 닿는 모든 부분에 독을 바른 남자가 몸을 일으켜서는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들어왔던 것처럼 다시 마당을 거쳐 대문을 뛰어넘은 남자가 바닥에 고양이처럼 착지한 뒤 핸드폰을 켜서는 28로 되어 있던 숫자를 29로 고쳤다.
29일째.
한 달을 채우는 순간 폭발하는 독성을 이선호에게 몰래 주입한 지 29일째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남자가 고개를 돌린 순간 남자는 경악했다.
“으하아암!!”
어둠 속에서 상혁이 하품을 쩌억 하면서 서 있었으니까. 놀라는 남자를 보며 태연하게 기지개까지 쭈욱 켠 상혁이 뚜둑 거리며 목을 풀었다.
“진짜. 피곤해서 빨리 3서클이 되든지 해야지. 그러면 골렘이라도 하나 만들어 놓을 수 있을 텐데.”
대마법사인 자신이 직접 이렇게 몸을 움직여야 한다며 투덜거린 상혁은 이내 주억거렸다.
“하긴. 월 200이잖아. 이 정도는 해 주자.”
상혁을 보고 당황했던 남자의 눈빛이 바뀌었다. 상혁이 시간을 준 동안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눈빛이 바뀜과 동시에 남자의 손이 번개처럼 품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며 상혁을 찔렀다.
그건 칼이었다.
당황한 와중에 정신을 차리고 칼을 뻗는 모습이 꽤 숙련된 자세란 것을 상혁은 알 수 있었다.
그걸 상혁이 알 정도라는 것 자체가 남자에게는 큰 재앙이었다.
“느려.”
마법사이기 전에 칼 밥을 10년이나 먹었던 상혁이다. 사람과, 그리고 가끔은 사람이 아닌 것들과 살기 위해 죽자 살자 10년이나 피 튀기는 실전을 겪었던 상혁에게 남자의 투로는 하품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어중간한 살기, 그리고 어중간한 속도.
“그리스(Grease).”
휘청!!
마찰계수를 0으로 만드는 마법이 펼쳐졌다. 그것도 거의 완벽하게 마나를 통제하여 딱 한 사람의 발 크기만 한 위치에 시전된 마법이었다.
그곳을 정확하게 밟은 남자가 휙 하고 미끄러졌다. 그리고 그 남자가 떨어질 곳에 미리 시전돼 있던 마법이 남자의 의식을 날려 버렸다.
“매직 애로우.”
퍼억!
상혁은 추욱 하고 늘어진 남자를 보면서 하품을 했다.
남자는 상혁의 잠을 달아나게 할 정도의 실력도 아니었다.
“그래도 전리품은 챙겨야지.”
남자의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마나 덩어리를 찾기 위해 뒤지자 작은 약병이 나왔다. 그것을 쏙 하고 챙긴 상혁이 히죽 웃었다.
* * *
이선호는 아침 햇살이 눈을 찌르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러다 문득 등이 배겨 오자 이선호는 눈을 슬며시 떴고 허물어져 가는 낯선 천장을 보고서는 기지개를 쭉 켰다.
“잘 잤다.”
이렇게 개운하게 잔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어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취기가 올라 잠든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이렇게 개운하게 잤을 줄이야.
“노숙이 나한테 맞나?”
그게 아니라 사실은 상혁 때문이었다. 기이하게도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마치 오래된 친우를 만난 것처럼, 아니면 다 이해해 줄 가족을 만난 것처럼 편하게 느껴졌다.
아마 말로 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한 그 눈빛 때문일 것이다.
마치 70대, 80대에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은 그런 노인의 눈.
남에게 터놓을 수 없는 것이 많아 혼자 삭혀야만 하는 이선호에게는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었다.
“음! 음! 으음!!”
하지만 이선호는 자신이 혼자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에 놀라 옆을 바라보고서는 더 놀랐다.
웬 처음 보는 남자가 사지가 묶이고 입에는 신고 있던 양말로 재갈이 채워진 채 버둥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의 머리에는 전단지를 찢어서 대충 휘갈긴 상혁의 메모가 붙여져 있었다.
그것을 읽은 이선호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돈값은 확실히 하는 집이네.”
다시 한번 즉흥적이었으나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 잘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선호였다.
* * *
“어, 쒸…….”
상혁은 SG 반도체 공장 주변의 내림천이 보안업체에서 나온 사람들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가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어제 그것 때문인 것 같은데.”
공장 안에 잡혀 들어갔다가 2서클을 달성하고 나온 사건 때문에 공장이 발칵 뒤집힌 모양이었다. SG그룹에서 난리가 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대장장이 길드의 공방이 털린 것과 같은 이치려나?”
대장장이 길드는 모든 국가의 중추적인 기술이 집약한 곳이었다. 그곳을 통해 생산되는 여러 무구들이 곧 국력과 직결이 되기 때문이고 그곳에서는 신기술이 개발되기 때문에 경계가 삼엄했다.
그곳이 털린 것과 비슷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됐다.
“하아.”
굳이 뚫자면 못 뚫은 것이 없었으나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아직은 그 귀찮은 일에 휘말려서 자신만의 힘으로 뚫고 나올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그러니 참아야 한다.
부글거리는 속을 애써 진정시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 이선호는 출근한 것인지 집에 아무도 없었다.
마나를 채우고 더 늘릴 수 있는 다른 곳이 없나 고민하던 상혁은 어젯밤에 자신이 잡아 놓은 남자도 함께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약병.”
상혁은 그놈에게서 빼앗았던 약병을 떠올렸다, 새끼손가락만 한 크기였는데 그 안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같은 양이라면 농약보다 두 배는 진한 마나를 머금고 있었다.
스읍.
한 호흡으로 마나를 흡입한 상혁은 흥미가 생겼다. 이런 독을 가지고 다니는 놈이라면 더 많은 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는 더 많은 독을 가지고 있거나 구할 곳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림천에만 의지하고 있을 수는 없지.”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이다. 하나에만 의지해 지금처럼 손 놓고 있는 건 마법사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
없으면 만들어 낸다.
그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마법사다.
이선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가자.”
상혁은 이선호가 어제 병원에서 주었던 명함을 주머니 속에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