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핏빛 군주 (9)
쿵, 쾅, 쿵, 쾅, 쿵!
심장이 거칠게 뛴다.
영혼이 각성한 듯 정신이 또렷하다. 드래곤 블러드. 이는 역린을 건드린 듯 말초신경까지 극도로 활성화시키므로.
손끝까지 흐르는 마나가 섬세하게 느껴진다.
【아쿠아 lv7.】
그 상태에서 가장 자신 있는 마법을 시전한다.
내가 빙의한 후 지금까지 주로 사용한 아쿠아 마법. 박살 난 백작령이 정말 황야처럼 느껴지도록 바싹 마른다.
【중력 제어 lv4.】
고고고고!
-키야악!
거기에 중력 마법까지 사용해서 혈괴물들까지 빨아들인다.
혈괴물의 피 또한 수분이므로.
혈마거인급 체격은 끌어당길 수 없지만, 작은 핏덩이들은 흡수가 가능한 것이다.
[가소로운 것. 헤일 스톰을 꺼내라. 4대 속성 마법 같은 애들 장난 같은 힘으론 내게 맞설 수 없다.]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그 모습에 안도감과 동시에 불쾌감, 증오심을 보인다.
날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로 오해했기에,
감히 자신을 상대하는데 최고 권능인 중력 마법과 헤일 스톰을 사용하지 않음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나는 4대 속성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고오오오!
【프로즌 모드 lv2.】
다만 나는 차디찬 한기를 전력으로 끌어모은다.
마치 북부에서 몰아치는 태풍처럼, 눈보라가 거대한 구체 모양으로 회오리친다.
따뜻한 대륙 남서부에서 살아있는 피를 사용하는 혈마거인과는 정반대인 힘.
【블리자드 스톰 lv2.】
쩌저저저적-!!!!
6써클 빙결계 마법 ‘블리자드 스톰’을 시전한다.
주위 환경의 온도를 크게 낮추고, 기후와 생태계까지 뒤바꿔버릴 대마법.
최종병기 라퓨타의 인류대학살 권능 ‘메가 데스’를 정면으로 막아낸, 내가 할 수 있는 최강의 일격 중 하나.
재앙류라고 불리는 5써클 아쿠아 스톰보다 두 단계 가까이 높은 파괴력을 보이는 듀얼 속성 마법을 집어던진다.
뚜둑, 뚜두두둑!
그 강렬한 한파에 혈마거인이 얼어붙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얼어버리는 혈마거인. 에니스 백작령이었던 요새와 함께 새하얗게 갇힌다.
빙하기가 도래한다.
[크으으······! 네놈!]
혈마거인이 새하얗게 얼어붙는다. 내부의 혈마왕까지 고통스러워한다.
이는 블리자드 스톰 자체가 6써클 빙결계 마법이기도 하지만,
현재 7써클에 오른 내가 드래곤 블러드를 사용하고,
물과 빙결 속성을 1단계씩 강화해주는 코나흐타의 유물과 붉은 눈의 스태프까지 일깨워서 가동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와아······.”
“괴, 굉장하다······.”
압도적인 크기의 혈마거인을 통째로 얼려버리자 달아나던 피난민들이 소리를 낸다.
쨍그랑! 콰지직!
물론 블리자드가 오래가진 못했다. 혈마거인은 온몸으로 힘을 주며 조금씩 빙결을 깨고 나온다.
[······크흣, 안타깝구나. 이곳은 북부가 아닌 남서부. 수분이 풍부한 곳도, 혹한의 기후도 아니다!]
와장창!
혈마거인이 얼굴만 깨진 채 날 비웃으며 말한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결국, 빙결계 마법도 물과 바람 속성의 융합 마법이므로.
혈마법에 비견될 만한 위력을 가졌으나, 주위 자연환경에 더욱 영향을 받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혈마왕을 처치하려는 마법이었다면 잘못된 판단이겠지!’
그러나 나는 블리자드 스톰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바람의 길 lv5.】
쐐애액!
나는 상대가 얼어붙은 사이, 용용이를 타고 초고속으로 직진하고 있었으니까.
“설마!”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가 지상에서 날 올려다본다. 내 의도를 파악한다.
블리자드가 완전히 깨지기 전에 혈마거인에게 달려나갈 생각이다.
[네놈, 동귀어진이라도 할 생각이더냐!]
그제야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상황을 파악한다.
다급히 사악한 마력을 끌어올린다. 쨍그랑, 양팔로 얼음을 깨고 상반신을 해방한다.
쿠고고고!
혈마거인은 양팔을 가슴 앞으로 모은다.
그러자 사방의 피를 모여든다.
블러드 레퀴엠.
대륙 남서부 인류 최전선인 에니스 백작령을 완전히 소멸시킨 궁극의 혈마법을 재시전한다. 오롯이 날 향해 겨눈다.
‘이번에 물러서면 안 된다. 이미 블리자드 스톰을 사용하면서 마나가 썰물처럼 빠졌어!’
블리자드 스톰이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깨졌지만, 뒤로 물러날 수 없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이다. 루크레치아.”
나는 초고속으로 날아가며 품속 통신 구슬을 꺼낸다.
과거 먼 옛날, 동부의 변을 해소하고 막 북부로 떠났을 때, 루크레치아를 호출할 수 있는 전용 구슬을 받았으니.
“‘성검 듀란달’을 던져라.”
혈괴물로부터 피난민들을 지키던 루크레치아에게 잔혹한 명령을 내린다.
미리 말을 맞춰둔 대로.
프레야 교단에서 가장 유명한 성검 듀란달을 빌리려는 것이다.
[확실히 끝내야 한다!]
-lv??? 성검 듀란달. (신성 강화.)
번쩍! 쐐액!
이에 루크레치아가 전력으로 신성력을 뿜어내며 성검 듀란달을 혈마거인 심장부근으로 집어던진다.
샤아아아아-!!!
광원을 뿜어내며 대포알처럼 진격하는 성검 듀란달.
【중력 제어 lv4.】
쐐애애액!
거기에 나는 용의 권능을 전력으로 사용해서 성검 듀란달을 집어던진다. 더욱 맹렬하게 돌진하는 듀란달.
-놀라운 경험! 성검 듀란달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성스러운 검을 잠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조건 : 프레야 교단 금빛 배지 이상 소유.)
-스킬 '여신의 간택 lv7'이 발동합니다! 선과 질서를 추구하는 한, 모든 스텟이 150% 증폭됩니다!
-스킬 ‘오러 블레이드 lv3’가 발동합니다! 신성력이 허락하는 한, 검강(劍剛)을 발동합니다!
.
.
성검 듀란달을 컨트롤한 순간부터 무지막지한 스킬들이 발동한다.
전투성녀 루크레치아의 힘을 잠시나마 이어받는다.
그 결과.
푸화아아악! 쿠과광!
성검 듀란달이 혈마거인의 교차된 양 손목을 가르며 살결을 파고든다.
블러드 레퀴엠을 강제로 불발시킨다. 비명을 지르는 혈마왕.
뚝. 끼기긱······!
[크읏, 큭큭. 실망이 크군······. 나와 불사왕 데힐라칸은 고대 성서에서도 성검을 버텼다고 기록되어 있을 텐데!]
그러나 혈마거인의 몸속에 있던 거대한 뼈만큼은 완전히 꿰뚫지 못한다.
단단한 뼈에 완전히 박혔는지 중력 마법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로얄가드!”
하지만 이쪽이 준비한 것도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곳 에니스 백작령에는 대륙 최강이라고 손꼽히는 ‘사왕’이 무려 둘씩이나 존재했으니까.
“검진(劍陣).”
검왕 알렉스가 로얄가드를 이끌고 일렬종대로 진을 펼친다. 내가 없는 사이 몇 시간 동안이나 버틴 실력자들.
콰아아아아-!!!!
그들이 일제히 황금빛 검기를 내뿜는다.
지금 이 순간이 전쟁의 승부수가 될 것이란 걸 직감했는지 남은 마나를 아끼지 않는다.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이시여.”
휘이이잉!
마지막으로 궁왕 엘레노아 또한 소닉 붐을 준비한다. 사실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소닉 붐은 하루에 최대 두 번.
이미 의혈의 뱀파이어 나이틴과 혈마왕 블라디미르를 상대할 때 써버렸을 테지만.
고고오오-!!!
에니스 백작령에 있는 엘프들이 바람의 정령들을 소환해서 돕는다. 더구나 정령왕은 모든 정령과 교감하는 신적인 존재.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 또한 현재 아르카나 대륙에 불어닥치는 거대한 악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쿠과아아아-!!
한계를 뛰어넘은 화살을 용인한다.
인간의 검기와 엘프의 정령술이 ‘X’자로 교차한다.
서로 다른 종족이 다른 각도에서 한마음으로 힘을 모은다.
푸화아아악-!!!
혈마거인의 뼈를 뚫고 직행한다.
거대한 손뼈에 박혔던 성검 듀란달을 구출한다.
내 중력 마법에 마치 전설 속 검술인 ‘이기어검’처럼 혈마거인의 갈비뼈까지 뚫고 살을 양단한다.
“여기 있었구나. 혈마왕 블라디미르.”
-LV80 혈마왕 블라디미르 폰 체페슈. (본체.)
나는 그렇게 뚫린 길을 따라 용용이를 타고 들어간다.
혈마거인의 심장 부근에는 역시나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존재했다.
일전 내가 죽인 혈궁의 뱀파이어 다이애나의 권능을 활용했는지 피로 된 궁전까지 지어놓고 말이다.
“······기어이 묫자리에 들어왔군.”
그러나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츠츠츳!
혈마거인의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된다. 퇴로가 막히고, 내부가 빛 한 점 없이 어두워진다.
“예언왕 아델리온이 이미 예언했다. 나는 결코 화이트 드래곤 일족에게 죽지 않으리라고.”
촤아아악!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혈마거인 내부에서 막대한 양의 피를 모은다.
악의 교단 제2군단장 예언왕 아델리온 드 베들렘.
타락한 메시아인 그가 예언한 내용은 인과율에 따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므로.
비록 이 전투에서 자신이 치명상을 입더라도, 패배하진 않으리란 확신을 보인다.
“나는 분명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가 아니라고 말했다.”
-성검 듀란달의 스킬 '광원(光源) lv4'를 발동합니다!
번쩍-!!
다만 나는 미리 말했으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성검 듀란달을 고쳐 쥔다. 전투 성녀 루크레치아가 사용하던 신성한 힘을 빌려 쓴다.
전투성녀 루크레치아가 혈마왕 블라디미르에게 패배한 건 맞지만, 대륙 7대 성인이 단 일격을 막아내지 못하는 건 아니므로.
샤아아아아-!!
어둡고 탁하던 혈마거인 속 내부를 찬란한 빛으로 드리운다.
성서 속 용사처럼 사악한 폭풍을 꿰뚫으며 전진한다.
“네 죄악은 네 피로 정화하지.”
치링.
나는 고대 성물 아가타의 성배를 꺼낸다.
어떤 액체든 담고 마나를 불어넣으면 성수로 바꿔버리는 투박한 잔.
샤아아아아!
혈마거인에 박아넣는다. 혈마거인 또한 거대한 핏덩어리인 만큼 찬란한 빛으로 번뜩인다.
【드래곤 브레스 lv1.】
지이이이잉-!!
이후 3중 마법진을 펼친다.
일격에 백만 명을 처치한다는 메가 데스처럼.
불길할 만큼 시퍼렇게 번뜩이는 고대 마법진들.
거대한 물이 한 점으로 모여든다.
심지어 뱀파이어의 천적이라는 성수만을 한없이 응축한다.
물론 최종병기 라퓨타보다는 마나 규모가 훨씬 작지만.
【가이아 포스 lv1.】
고고고고!
휘이이잉!
크고오오!
대륙 남서부의 마나가 공명한다.
그간 황폐해진 자연이 날 도와 함께 분노한다.
그간 희생된 혈마거인의 피조물들이 힘을 더한다. 죽은 이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낸다.
“이, 이 힘은······. 마, 말도 안 된다! 안 돼!”
혈마왕 블라디미르조차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다급히 피의 장막을 펼친다.
그러나 나는 멈출 생각이 없다. 전력을 다해 용의 숨결을 쏘아낸다.
콰아아아아아아-!!!!
대폭발이 일어난다.
새하얀 버섯구름이 피어난다.
모든 것을 자연과 질서로 되돌리는 힘.
악과 무질서의 존재에게만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권능을 현현한다.
--!!
혈마거인이 내부에서부터 밖으로 터져나간다.
마치 부패했던 시체가 내부에서 가스 폭발하듯 사방으로 핏덩이와 뼛조각들, 그리고 썩은 피가 방출한다.
그러나 홍수처럼 범람하는 성수의 바다에 이내 깨끗이 소멸한다.
-경이로운 업적!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제4군단장 혈마왕 블라디미르를 완전히 소멸시켰습니다!
-블라디미르는 불로장생의 비약을 개발하기 위해서 대륙 남서부는 물론, 서부와 남부, 심지어 옆 대륙 아리아까지 학살하던 거악이었습니다!
-대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대륙 남서부에 있는 모든 흡혈귀가 최대 마력이 50% 감소합니다. 활동량이 크게 줄어듭니다. 남서부가 향후 10년간 매우 빠르게 번영할 것입니다.
-대륙 남서부에 있던 엘프와 이종족에게 감사를 받습니다! 당신에 대한 호감도가 100%를 넘었습니다! 세기가 지나가도 오늘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정령의 축복! 타지역 엘프 또한 당신에 대한 호감도가 30%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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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나타나는 시스템 창.
아르카나 대륙이 절반 넘게 구원되었다는 소식이다.
-키야악!
물론 나와 용용이 또한 에니스 백작령 밖으로 튕겨 나갔다.
지상에 있던 남서부 연합군과 피난민들도 튕겨 나간다.
샤아아아.
【워터 실드 lv5.】
그러나 우리에게 드래곤 브레스는 치명적이지 않다.
드래곤 브레스는 질서에 반하는 자들에게만 치명적인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더구나 지금 폭발한 물의 파도는 성수. 프레야의 생명체들을 치료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는 워터 실드를 펼치고, 지상에 있는 프레야 사제들이 신성 보호막을 펼친다.
이 악물고 충격파로부터 버텨낸다.
-스킬 드래곤 브레스 lv1이 lv2가 됩니다!
-스킬 블리자드 스톰 lv2가 lv3가 됩니다!
-스킬 아쿠아 lv7이 lv8이 됩니다!
-스킬 워터 실드 lv5가 lv6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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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중력 제어 lv4’가 lv5가 됩니다.
-스킬 역린 lv2가 lv3가 됩니다!
-7써클 1티어에서 2티어로 승급합니다!
이후 막대하게 성장하는 스킬 레벨들.
물론 이는 예상된 결과였기에 별로 큰 감흥까진 없었다.
-마나 고갈! 당신은 완전히 탈진했습니다! 더 마나를 사용하면 마나 혈관이 파괴되어 더 이상 마나를 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드래곤 블러드를 한계까지 발동하셨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파괴 본능이 19%까지 치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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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슈퍼레어 특성 ‘환골탈태-반로환동’이 발동합니다. 당신에게 적용되는 피로와 페널티를 50%까지 감소시켜줍니다!
더구나 혈마왕 블라디미르를 상대하느라 크게 지쳤으니까.
눈이 스르륵 감긴다.
아무리 기쁜 소식이라도 나중에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음 문구를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가 당신을 발견했습니다!
-고대의 마법 ‘대지의 기억’으로 그간 당신의 행동을 파악했습니다!
-마신 문두스를 사칭한 자를 추격해 옵니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