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종결급 특성으로 대마법사-133화 (133/140)

133. 핏빛 군주 (8)

한편, 니케아 황궁.

그 안에는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있었다.

황제 세실리아 드 니케아.

대륙에서 가장 존귀하면서도, 위대한 존재라고 알려진 자. 그녀가 옥빛이 나는 탁자 앞에서 입술을 뗀다.

“······로얄가드 부기사단장 ‘알프레드’, 네가 마신 문두스에 관한 연구를 인계 받았다고.”

세실리아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말에 갈색 머리 사내는 예의 바르게 답하고. 가져온 보고서를 시종에게 전한다.

황제 세실리아는 무심하게 마신 문두스에 관한 보고서를 받아 읽는다. 언제나 무감각하던 그녀가 눈에 생기를 돌아온다.

‘······확실히. 교단에서 사용한 흑마법 세뇌가 잘 진행되는 것 같군.’

그 모습에 부기사단장 알프레드는 남몰래 음흉하게 웃는다.

나태함과 의존증이 동시에 나타나는 모습.

이는 계획한 대로 여명의 궁 전체가 흑마법 결계에 제대로 적용받고 있다는 것이므로.

‘설마 알프레드의 육체를 빼앗는 게 정답이었을 줄이야. 그 깐깐하던 검왕 알렉스도 팔은 안으로 굽는군.’

알프레드는 코웃음쳤다.

사실 ‘진짜’ 알프레드는 죽은 지 오래였다.

현재 그의 정체는 영혼의 악마 스텔라.

이미 알프레드의 영혼을 잡아먹고 육체를 강탈한 상태였으므로.

오래전부터 대역을 맡은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검왕 알렉스가 간밤에 자신만은 믿는다며 황제를 맡기고 갔으니,

참으로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긴 꼴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세뇌가 완벽한 건 아니니 아직 마음대로 움직일 순 없지만 말이다.

“알프레드.”

“예, 폐하.”

“마신 문두스가 성서에 나온 거악, 혈마왕 블라디미르를 막기 위해 강림했다는군.”

한편 세실리아가 보고서를 확인하고 묻는다.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를 던진 듯 흔들리는 눈동자.

“아무리 마신 문두스라도, 이번에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가짜 알프레드는 굳이 눈에 띄기 싫어 말을 돌린다.

“소신보다 현명한 자가 궁전에 많습니다. 그들에게······.”

“네 의견을 묻는 것이다.”

황제는 가짜 알프레드의 말을 자른다.

검왕 알렉스가 믿어도 되는 자라고 했으니, 믿어도 될 것 같다는 듯.

“······.”

그녀의 물음에 알프레드는 잠시 침묵한다. 고심하는 척 연기한다.

가짜 알프레드 또한 디메토르 교단 소속.

제4군단장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제 군주는 아니지만, 익히 알고 있다.

‘뱀파이어 일족 중에서도 위대한 존재. 한계를 초월한 군주 중 하나시지.’

뱀파이어.

이들은 통상적으로 피를 소모하여, 흑마법보다 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혈마법을 사용한다. 그 대신, 수명 외에도 피를 다 소모하면 죽게 된다는 치명적인 페널티를 갖는 종족.

다만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그러한 상식을 초월한 존재였다.

‘죽음을 초월하기 위해서 무질서의 신 디메토르께 ‘피의 가호’를 받으셨으니까.’

무질서의 신 디메토르의 가호.

이는 거악들마저 탐낼 특별한 힘을 담고 있었으니. 혈마왕 블라디미르 또한 형식상으로나마 제4군단장에 소속된 것이다.

‘혈마왕 블라디미르 폐하께선 무한한 피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지.’

뱀파이어마다 차지할 수 있는 혈액의 양에 한계가 존재하거늘.

이를 초월해 무한한 피를 가지게 됐다.

즉, 수백 년간 성서에 나올 만큼 학살한 피가 모두 아공간에 보관되어 있다는 뜻.

말 그대로 뱀파이어 일족 중 최강의 파괴력을 가졌으면서도,

마계의 대악마 같은 생존력을 가진 괴물 중 괴물이 된 거다.

‘더구나 이미 ‘예언왕 아델리온’께서 확언하셨다. 화이트 드래곤 일족. 그들은 결코 혈마왕 블라디미르 폐하를 시해하지 못할 거라고.’

제2군단장 예언왕 아델리온 드 베들렘.

마족의 위대한 메시아인 그는 고대용처럼 운명을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의 예언은 필연적으로 반드시 이뤄진다.

······비록 마음대로 예언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신탁이 온 대로 예언할 수밖에 없지만.

이는 아무리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라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마신 문두스가 정녕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라면 결코 살아 돌아오지 못하겠지.’

피식,

속으로 미소를 삼킨다.

황제에게 진실을 숨긴다.

***

나는 검은 하늘을 이끌고 에니스 백작령 상공에 도착한다.

마치 먼 옛날 불사왕 데힐라칸을 막았을 때처럼.

백색 뇌격을 작렬하며 혈마왕 블라디미르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다.

“저분께서는!”

“······빛과 어둠의 가면! 거기에 샌드 드레이크까지 타고 있다고? 그렇다면!”

내 등장으로 초신성 이후 에니스 백작령을 탈출하던 피난민들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서부 연합군이나 에니스 백작령 주민 등 이미 날 만나본 사람들은 격양된 표정으로 울음을 참았고,

엘프 레인저 부대나 프레야 교단 지원군 등 날 처음 본 사람은 두려움 반, 기대감 반으로 쳐다본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는 고요히 하늘을 비행한다.

‘설마 순례자의 십자가를 파괴할 줄이야······.’

-lv1 에클레시아. (신성 고갈.)

나는 시스템창으로 바닥에 피를 토하며 쓰러진 에클레시아를 살핀다.

남몰래 흙의 정령 노움을 시켜서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킨다.

순례자의 십자가.

원작 <별들의 전쟁2>에서는 혈마왕 블라디미르에게도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던 물건이었거늘.

아무래도 원작보다 9년 전인 만큼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아직 생명력이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드디어 왔구나.]

혈마거인이 쿵, 쿵 발을 돌리며 천천히 뒤를 돈다.

붉은 눈을 번뜩인다. 마치 적란운처럼 마력이 요동친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

혈마거인이 입꼬리가 찢어지게 웃는다. 수백 년간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흥분과 긴장을 참을 수 없는 표정이다.

“아니.”

그러나 나는 한 마디로 부정한다.

“나는 마신 문두스다.”

지금 저들이 생각하는 ‘마신 문두스’는 내가 맞겠지만,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는 내가 아니므로.

틀린 정보를 정정한다.

고오오.

거대한 혈마 거인 앞에서 용용이만 타고 고요히 눈을 맞춘다.

성수의 비가 내리는 소리만 들린다.

이젠 나 또한 7써클. 거악과 거의 동급인 존재가 되었으니. 푸른 마나가 내 몸을 보호한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처럼 홀로 대치한다.

[그래, 네 멋대로 칭하라. 이명 따위 중요한 게 아니니.]

쿠고고!

혈마거인은 입에서 혈운(血雲)을 내뱉는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지독한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너라면 알고 있겠지. 뱀파이어 일족의 비극적 숙명을.]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말한다.

알고 있다.

다른 종족을 해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종족 특성.

태어난 마력을 계급으로 평생 살아가야 하는 흡혈귀의 운명을 말이다.

[그 저주받을 숙명을 해소하는 데까지 마지막 한 계단이 남았다.]

불로장생의 비약.

이를 마시는 순간, 흡혈귀들은 마치 마계의 악마처럼 무한한 삶을 가질 수 있다.

마지막 두 재료 하이 엘프와 드래곤의 피 중에서, 하이엘프는 이미 혈액을 채취한 눈치.

이제 드래곤의 피하나만 남았다.

[화이트 드래곤 실베스타. 넌 지금 내게 있어서 영원한 생명이다.]

현재 공식적으로 살아있는 용족은 오직 실베스타 하나라고만 알려져 있으므로.

그렇게 표현한다.

[질서의 수호자라는 드래곤과 피조물을 흡혈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뱀파이어. 그 앙숙 같은 관계에서 저주를 해방할 비약을 개발할 수 있다니. 이 또한 참으로 얄궂지 않은가!]

혈마거인이 광기 어린 포효를 한다. 몸 곳곳을 구성하는 핏덩이들이 꿈틀거린다.

그 안에는 아직 살아있는 심장은 물론, 뱀파이어의 사체도 있다.

‘날 드래곤이라고 착각하는 게 확실하군.’

나는 그 괴기스러운 장면을 피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벌어질 일에는 이보다 훨씬 끔찍한 장면도 많을 것이므로,

붉은 눈의 스태프를 고쳐 쥔다.

“일족의 숙명이라고 변명하지 마라.”

나는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어떤 자인지 안다.

그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다른 그 어떤 흡혈귀도 제 영생을 위하여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벌이지 않는다.”

나는 에니스 백작령을 가루로 만든 혈마거인을 노려본다.

뱀파이어 일족의 영웅이라는 명예도, 수백 년간 이어진 혈족의 유대도, 타종족 간의 평화도 포기한 채.

오직 자신의 영생, 불로장생의 비약을 위하여 풍요롭던 대륙 남서부를 가장 황폐한 곳 중 하나로 만들어버렸으니까.

“심지어 탐욕왕 엘드리치에게 수백 년간 모은 재물을 바치고서도 끝내 완성하지 못한 게 네놈일 뿐이다.”

나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까지 말한다.

내 말에 붉은 눈을 번뜩이는 혈마거인.

[······영생만 하게 된다면 네놈도 한 줌의 재일뿐이다.]

붉은 팔을 들어 올린다. 피부가 없는 근육이 괴이할 만큼 부푼다.

[진정한 죽음을 두려워하라. 필연적 숙명을 느껴라!]

쿠고오오오!

피의 군주가 주먹을 내지른다.

지상에 서니 머리가 구름에 닿는 크기인 만큼 그것만으로도 막강한 물리력이 더해진다.

공간 전체를 밀어버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빠르다······. 이건 피할 수 없다!’

【기간테스의 힘 lv4.】

나는 날아오는 혈마거인의 주먹을 향해 화이트 홀을 생성한다. 혈마거인의 주먹과 거의 대등한 기간테스의 주먹.

기간테스의 주먹이 혈마거인의 주먹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쿠콰아아아앙-!!!!

운석 파괴급 위력을 내보인다.

막상막하의 위력이다. 두 거인의 팔이 모두 산산이 조각난다.

츠츠츳······!

그러나 마나가 급격히 소모되고, 내상까지 진탕 입은 나와 달리 혈마거인은 빠르게 수복된다.

아공간에 모아둔 혈액을 더 꺼내서 원상 복구하는 것이다.

[설인왕 이미르와 힘으로 맞붙었다고 하였거늘. 고작 이 정도였느냐.]

쿠고고고!

혈마거인이 이번엔 왼쪽 주먹을 날린다. 나는 이번엔 맞부딪히기보다 용용이를 급선회해서 피했다.

설인왕 이미르의 일격보다 파괴력은 한 단계 낮지만, 그보다 훨씬 제약 없고 수복도 거의 무한하므로.

무식하게 계속 맞부딪히다간 승산이 없다.

‘이점이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다른 뱀파이어와 차원이 다른 거악이란 점이지!’

과거 순혈의 뱀파이어를 상대했을 때와는 상황이 차원이 다르다.

그들은 수십 년간 남서부에서 모은 혈액만 상대하면 됐지만,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수백 년간 마계에서 모은 혈액까지 상대해야 하니까.

그 전에 대륙 남서부가 절멸하고, 내 피를 채취해서 불로장생의 비약을 완성할 게 분명하다.

최단기간 내로 단판 승부를 봐야 한다.

물론 그럴 방법 또한 알고 있다.

‘혈마왕 블라디미르는 혈마거인 왼쪽 가슴에 있다.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선 그 속으로 파고들어서 일격에 소멸시켜야 해!’

나는 용용이를 타고 급선회하며 혈마거인의 포격을 피하면서 생각했다.

일단 혈마거인에게 다가갈 수만 있다면 절멸시킬 방법은 있다.

드래곤 브레스.

일전 고대용의 사원에서 얻은 궁극의 권능 중 하나.

질서와 자연에 반하는 자들에게 두 배의 화력을 입히는 파괴 권능이다.

현재 나는 7써클 대마법사가 된 상태. 거기에 환골탈태까지 하면서 파괴 본능이 4%까지 내려갔으므로.

용의 숨결은 하루에 최대 두 발. 화력을 최대로 증폭한다면 단 한 발뿐이지만.

대자연의 분노까지 활용해서 최대한 화력을 올린다면 혈마왕 또한 치명상을 입힐 힘이 있는 거다.

‘하지만 어떻게 다가가느냐가 문제로군!’

내가 가까이 가려고 하자, 혈마거인이 양팔을 나에게 뻗는다.

그러자 허공에서 6개의 초대형 아공간이 열리더니 붉은 피가 쏟아져나온다.

피의 분노가 회오리치며 하늘을 6갈래로 찢어버린다. 귀 먹먹한 굉음이 작렬한다.

--!

나는 이 악물고 피한 후 상황을 살핀다.

블러드 레퀴엠.

악의 교단 제4군단장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사용하는 궁극의 혈마법 중 하나.

다른 최상급 뱀파이어는 평생 모은 피를 모아도 한번 사용할까 말까한 궁극의 혈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난사하는 거다.

[물어뜯어라. 혈괴물이여.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을 탐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법. 이 내가 허락하마. 모든 걸 탐하거라.]

-키에엑!

-크오오오!

더구나 내가 피한 핏덩이들은 혈마왕의 권능으로 또다시 붉은 군대가 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들은 핏덩이로 된 와이번이나 가고일이 돼서 날 추격하기도 하고, 몇몇은 피로 된 오크나 괴물이 되어 피난민들을 덮쳤으니.

나는 급격한 회피 기동을 연달아서 하며, 용용이를 뒤쫓는 피의 괴물들을 떼어낸다.

그러나 적들에게 쫓기느라 혈마거인에게 쉬이 다가갈 수 없다.

지상에 있던 성녀 루크레치아와 로얄가드, 전투 병력들도 전황이 다급해진다.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위험한 건 이쪽뿐이다.

‘······결국,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나조차 순례자의 십자가를 파괴할 만큼 혈마왕 블라디미르가 더욱 강력한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나.

그에 준할 상황을 상정하고 파훼법을 강구해왔으므로.

【드래곤 블러드 lv2.】

쿠고고오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전력을 다한다.

온몸에 있는 굵은 핏줄이 곤두선다.

내게서 피어오르는 붉은 기운이 혈마왕의 혈무와 검은 하늘의 빗방울을 밀어낸다.

환골탈태를 한 후 블루 번과 드래곤 블러드의 페널티와 쿨타임, 파괴 분노까지 모두 삭제됐으므로.

혈마거인에 준하는 막강한 마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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