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용의 유산 (2)
‘간신히 늦지 않았군.’
내 주머니 속에서 은빛 구슬이 공명하는 게 느껴졌다.
인근에 금빛 구슬이 뜻이었고, 그곳에서 네하린과 데이아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사구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드래곤 피어 lv1.】
고대의 석판으로 얻은 마스터급 새 특성 ‘드래곤 아이’도 톡톡한 역할을 했다.
드래곤 피어.
두 눈으로 바라본 대상에게 무의식적은 공포와 한없는 경외감을 들게 하는 스킬.
이 스킬로 데이아를 순간 얼어붙게 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흙의 정령 노움으로 막아줬다고 해도 네하린은 죽었을 수도 있다.
겨우 스킬 레벨 1이라고 큰 기대하지 않았는데 효과가 너무 대단했다.
“······.”
“······.”
나는 데이아와 계속 눈을 마주 본다.
물론 데이아와 네하린은 다크 필드 안에 들어가 있었지만, 드래곤 아이의 특수 효과인지 내부가 투명하게 보였다.
나는 다크 필드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썬더 lv1.】
번쩍, 꽈르르릉-!!
내 명령과 동시에 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진다.
낙뢰.
일전 뇌격의 원로 니콜라스가 선물한 전격계 마법서에 기록된 마법이다.
하늘에 먹구름을 모아 낙뢰를 내리치는 마법.
쨍그랑! 와장창창!
눈 깜짝할 번뜩임과 동시에 무너져내리는 다크 필드.
【아쿠아 부스터 lv1.】
땅을 박차고 물의 추진력으로, 깨진 다크 필드 속으로 들어간다.
다크 필드는 결국 검은 물.
곧이어 수복되니까.
“······네놈.”
다크 필드 안으로 들어가자, 데이아는 공포심을 이겨내려고 악에 받친 눈매를 뜨고, 주먹을 꽉 쥔다.
그러나 팔다리는 여전히 미세하게 떨린다.
“······다크 필드 안으로 직접 들어오다니, 미련한 놈이구나.”
고오오.
불길한 새까만 기운을 뭉게뭉게 뿜어내는 데이아.
오늘을 위해 특별한 영약이라고 삶아 먹었는지 마력이 넘친다.
“설마 했더니. 정말 인정(人情)을 못 버려 이 안으로 들어온 거냐. 여기선 더 이상 낙뢰를 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
하!
데이아는 기가 막히는지 한 손으로 이마를 치며 한탄한다.
주저앉은 네하린 또한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날 올려다본다.
다만 나는 담담했다.
“네까짓 것 처리하는데 꼭 낙뢰까지 써야 하나?”
“······.”
데이아에게 질 생각 없으니까.
다른 방법이 없었으면 동부에서 달아났을 거다.
다만 데이아는 모욕감을 느꼈는지 까드득, 어금니를 씹는다. 순간 살기가 번뜩였다.
“제 처지를 깨닫지 못하는 건 남매끼리 똑같구나!”
쿠구구궁!
데이아가 오른손을 거칠게 들어 올린다.
그와 동시에 땅이 지진 난 듯 거칠게 흔들린다.
흙이 사방으로 튀며 거대 괴수가 튀어나온다.
-쿠오오오!
-콰아아아!
“······!”
사막의 포식자 샌드 웜이 다크 필드 내부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무려 5마리의 샌드 웜.
그들이 입을 쩍 벌리고 나와 네하린을 포위한다.
“너희 크라우드 형제 셋이 덤빌 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괴수들이다. 아쉽게도 곧장 덤비지 않았지만.”
-고워어어!
고고고.
데이아가 뿜어낸 사악한 힘이 샌드 웜들을 감싼다.
다크 필드의 영향인지 사악한 마력이 일전보다 더욱 줄기줄기 뿜어진다.
고통스러운지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는 샌드웜.
-그와아악!
이내 사악한 마력이 샌드 웜 표피를 뜨겁게 녹여버리며 막강한 갑주가 된다.
덩치가 1.5배 커지고 더욱 흉포하게 침 흘리며 포효하는 샌드웜들.
쿠고고고!
사악한 힘으로 갑주를 두른 샌드 웜이 꿈틀거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왜 하필 내가 크라우드 가문에 왔는지 보여주마!”
촤아아악!
다크 필드 내부 공간에 검은 물도 차오른다.
검은 파도가 몰려든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피식,
그저 입가에 미소가 번들거릴 뿐.
“재밌군.”
스윽.
미리 가져온 천 덩어리를 푼다.
붉은 눈의 스태프.
착용자를 폭주하게 만든다는 붉은 색 마력석을 무려 3개나 때려 박은 미친 스태프.
가주 엡실론이 혹여 보고 걱정할까, 숨겼던 최종 병기다.
고고고.
“······!”
등장만으로도 주위 공기 흐름이 바뀐다.
네하린과 데이아가 순간 숨을 들이마신다.
-끼익!
데이아의 다크 필드가 날 따라다니던 독수리를 치워준 만큼 거리낄 것이 없다.
“마침 이 녀석을 연습할 대상이 좀 있었으면 했는데, 충분하겠네.”
고오오오!
스태프에 마나를 공명한다.
붉은 눈을 뜨는 스태프.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위험한 붉은색이 번뜩인다.
“미친놈! 붉은 마력석이 3개? 자살이라도 할 생각인 거냐!”
나는 말 없이 웃어 보였다.
【아쿠아 lv2.】
쿵, 쾅, 쿵, 쾅.
그와 동시에 요동치는 드래곤 하트.
몸속 마나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스태프에서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력이 느껴진다.
‘물, 다량의 물을 끌어온다.’
나는 마나를 퍼트려서 일대의 물을 감지한다.
지면 깊숙한 곳 어딘가에 감춰진 지하수를 느낀다.
사막은 강수량이 아예 없는 곳이 아니라, 그걸 머금을 토양이 모래뿐이니, 모든 물이 지면으로 스며 들어가 버린 것이다.
‘······찾았다.’
쿠구궁.
쏴아아아아-!!
곧 주위 공간이 파랗게 물든다.
흙과 모래가 무너지고 물줄기가 솟구친다.
마치 무중력 공간을 체험하듯 거대한 강이 공중에 떠오른다.
데이아의 다크 필드와 대조되는 푸른 공간이 충돌한다.
【아쿠아 스핀 lv2.】
콰과가가-!!!
날 중심으로 모여든 푸른 물.
그 물이 회오리친다.
마치 대평원을 날려버리는 허리케인처럼, 안에 들어온 모든 걸 분쇄하는 죽음의 톱니바퀴처럼 다가오는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버린다.
-코워······!
겁에 질린 채, 진격을 멈춘 샌드 웜.
다가가면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뒤로 움찔거린다.
그러나 이 정도에서 끝낼 생각 없다.
아쿠아 스톰은 광범위한 면적을 쓸어버리기 좋은 마법이지만, 단단한 것을 깨부수기에 적합한 마법은 아니니까.
“아쿠아 붐.”
고고고고!
아쿠아 붐.
본래 아쿠아 스톰과 마찬가지로 상급 물의 마법.
최소 5써클 이상 돼야 시전 가능한 대마법으로, 좁은 공간 파괴력 하나만큼은 최고인 마법 중 하나다.
비록 내 써클은 2써클이라 완벽히 시전할 순 없어도, 넘치는 마나로 비효율적으로나마 그 외형은 재현한다.
지이잉.
거대한 물을 양손 안에 워터볼처럼 한곳으로 모은다.
회전하면서 모이는 물의 구체.
워터볼과 다른 점이라면 그 크기와 속성이다.
워터볼과 달리 크기가 거의 집채만 했으며, 안으로 응축되는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폭발하려는 물을 표면 장막으로 억지로 가두고 있는 마법이니.
“미, 미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양의 물을 동시에······.”
나는 물을 한계까지 끌어모은다.
파아앙!
이윽고 내 손에서 대포알처럼 발사된 아쿠아 붐.
목적지에 도달하자 표면 장막이 사라지며 폭파한다.
쿠과과과과광-!!!
하늘이 으스러지는 듯한 굉음.
거대 회오리에 닿자마자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샌드 웜들.
쨍그랑, 와장창!
다크 필드 또한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금이 간다. 직후 산산이 조각난다.
푸른 세계 앞에 검은 세계가 완전히 소멸한다.
이 모든 것이 단 1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네하린과 데이아는 눈 한번 깜빡이지 못하고 그 과정들을 모두 관람한다.
특히 네하린은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본다.
혹여 눈 깜빡이고 나면 이미 모든 것이 끝나있을까 봐.
아쿠아 붐은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서도 단 한 번도 못 본 마법일 테니.
그 모든 광경을 눈에 꼭꼭 담는다.
비록 겉모습만 똑같은 가짜 아쿠아 붐이라지만.
붉은 눈의 스태프로 화력이 몇 배로 강화된 지금 이 마법은 그녀 눈에 진짜 아쿠아 붐과 다름없었다.
***
모래사장이 모조리 뒤엉켰다.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움푹 팬 크리에이터.
멀쩡한 건 오직 세 사람.
나와 네하린, 그리고 데이아.
데이아는 저 멀리 모래사장에 미동도 없이 대자로 쓰러져있다.
아마 마지막에 다크 리플렉터를 전력으로 두른 덕분에 목숨은 건진 거겠지.
물론 내가 곧 끊어줄 거니 별 의미는 없다.
“······네카르. 방금 그건······?”
네하린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본다.
방금 시전한 아쿠아 붐.
이는 통상적인 마법사가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므로.
이에 나는 입술 위에 손가락을 하나 가져다 대며 말했다.
“비밀로 해주십시오. 아직 밝힐 때가 아니니.”
들고 있던 붉은 눈의 스태프를 가방에 다시 집어넣으며 속삭인다.
대폭발 이후 저 멀리서 독수리가 다시 날아오고 있으니까.
혹여 엡실론이 호크 아이로 발견할 수 있으니 미리 숨긴다.
네하린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함구하마. 나중에 무슨 일인지 꼭 말해다오.”
차기 가주직을 두고 형제끼리 경쟁하는 사해의 시험.
그곳에서 경쟁자인 네하린을 살려줬으니 이 정도 비밀은 지키겠다는 뜻이다.
“······.”
모든 일이 끝나자 긴장이 풀린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온다. 숨이 가빠진다.
일전 블랙 오아시스에서 붉은 눈의 스태프를 쓴 이후, 다시 무리하지 않기로 다짐했거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무리해버리고 말았다.
페널티 특성 허약한 몸 때문일까?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비틀.
“······네카르!”
살짝 휘청인다. 네하린이 반사신경으로 붙잡는다.
그녀는 날 부축하며 이마에 손을 짚는다.
얼음처럼 차가운 손.
아니, 내 이마가 불덩이 같은 모양이다. 기분 나쁜 땀이 추적추적 흐른다.
네하린은 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낸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생수를 콸콸 부어 적신 후, 내 땀을 닦는다.
마지막으로 입술에 물수건을 물린다.
사막에서 흔히 하는 응급처치법이다.
“일어날 수 있겠느냐? 아니면 잠시 쉬어가겠느냐.”
“괜찮으니 먼저 가십시오. 저야 잠시 숨 고르면 나아질 테니까요.”
정말이다.
지금 호흡 곤란이 온 건 단순히 급격한 마나 운영으로 몸이 놀란 것뿐이니까.
무한한 마나를 가진 특성 드래곤 하트가 있는 이상, 마나 고갈로 죽을 일은 없다.
이대로 사해의 시험이 끝나면 차기 가주는 네하린.
이번 기회로 그녀와 돈독한 관계를 맺은 만큼, 얼른 출발지로 보내줄 필요가 있다.
“아니다. 내 어떻게 널 버리고 가겠느냐. 함께 남겠다.”
“······.”
그런데 예상외로 네하린이 고집부린다.
철퍼덕 모래바닥에 앉더니 나와 등 맞대는 네하린.
배낭에서 양산을 꺼내 뜨거운 태양 빛을 가려준다.
하지만 다소 지친다고 언제까지고 쉴 순 없는 법.
데이아 목도 자를 겸, 네하린에게 말한다.
“어차피 저야 기권 폭죽을 터트리면 됩니다. 몸이 아픈 거야 사해의 시험을 끝내고 의사를 만나면 되니 먼저 가시지요.”
“······.”
사막에 계속 있을 것도 아닌 만큼 결국 가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말에 네하린은 내 상태를 보고 염려하면서도 결심했다.
“금방 어르신들을 모시고 오마.”
히히힝.
다크 필드 밖에 버려져 있던 내 말을 타고 달려가는 네하린.
영민하게도 땅에 실타래를 하나 박고 달린다.
길 찾아오기 쉽도록 말이다.
‘어차피 곧 독수리들이 날아올 거라 상관 없는데.’
뭐, 형제간 우애가 돈독한 거니 기분 나쁘진 않았다.
이제 조금만 버티면 엡실론과 카나단이 나타나겠지.
긴급 폭죽을 터트리기 전에 힘내서 잠시 일어난다.
푹 쉬기 전에 처리해야 할 놈이 하나 남았으니까.
“너도 고생 많았다. 잘 가라.”
【워터볼 lv2.】
파앙.
기절해있는 데이아 목을 날려버린다.
더 볼 것도 없이 깔끔한 사망이다.
-다크 로드 자칼의 여덟 번째 제자 데이아를 죽이셨습니다! 이는 자기 써클보다 2단계나 높은 적입니다!
-상급 마법 ‘아쿠아 붐’의 원리를 재현하셨습니다! 아무리 불완전한 재현이라지만, 2써클로는 결코 불가능한 경지입니다!
-마나 하트가 고양됩니다.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2써클 5티어에 도달합니다!
그러자 시스템 창이 다시 울린다.
역시 강적을 죽이거나, 마법적 성취를 이룰 때마다 시스템적으로 큰 변화가 생기는 모양이다.
‘이런 부분은 게임 시스템과 똑같군. 그리고 이제는······.’
나는 고개를 돌려서, 저 멀리 크라우드 가문의 영지 쪽을 바라보았다,
“슬슬 떠나야지.”
사해의 시험이 끝나고, 동부의 변을 마무리 지으면 북부로 떠날 생각이었다.
고대의 석판에서 말했던 ‘용의 유산’을 모아야 했다.
다음 용의 유산은 ‘드래곤 윙’.
무려 마신 문두스의 시그니쳐 마법으로 알려진 중력 마법이니까.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반드시 얻어야 했다.
“큭, 큭······. 이대로 끝났다고 생각하나?”
“!”
그런데 그때 죽은 데이아가 입을 열었다.
분명 머리와 목이 분리돼 있는데 말이다.
‘죽은 현자의 비술이군.’
어떤 흑마법인지 파악한다.
죽은 현자의 비술.
죽은 사람이 본래 기억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게 하는 마법.
지속시간이 매우 짧으며, 뇌만 살아나는 것이기에 마나를 활용하진 못한다.
나는 위협될 게 없다는 걸 인지하고 퉁명스럽게 대화했다.
“난 안 끝났지. 넌 끝났고.”
“······.”
그 말에 순간 입을 다무는 데이아.
이내 흉흉한 눈빛을 지우며 입꼬리를 추켜올린다.
“그래! 네놈이 괴물인 건 인정한다. 천재 중 천재라는 날 압도하다니. 그것도 나보다 2배는 젊은 스무 살 주제에 말야.”
“······.”
“하지만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위대한 왕 다크 로드 자칼님께선 네까짓 이레귤러 따위에 일을 망치는 분이 아니시니까!”
쿠구궁.
데이아의 시체가 부르르 떨린다.
뼈와 장기가 재배치되는지 기형적으로 비틀린다.
기하급수적으로 보라색으로 썩는다.
‘······자칼의 낙인이다.’
경계심 어린 눈으로 데이아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전투 준비를 한다.
저건 사후 경직이 아니다.
다크 로드 자칼의 낙인.
임무에 실패하거나, 배신할 경우를 대비해서 자폭 낙인을 새겨둔 것이다.
‘자칼의 상위 제자들이 낙인이 있다는 건 알지만······. 데이아의 자폭 낙인 효과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워터 실드 lv2.】
왼손에 물의 방패를 펼쳐 들고 데이아의 시체를 경계한다.
원작에서도 모든 제자의 낙인 효과가 밝혀지진 않았으니까.
이 때문에 미리 네하린을 보낸 것이다.
혹여 전투에 방해될 수 있으니.
고오오······.
데이아의 시체가 완전히 새까맣게 변한다.
이윽고 낙인의 촉매제가 돼서 발화한다.
콰아앙!
데이아 몸속 마력이 하늘 높이 폭파한다.
자폭이라기엔 오직 수직으로만 치솟는 마력.
마치 좌표를 찍듯 폭죽보다 높게 터진다.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진다.
쐐애애액!
“!”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강력한 바람이 불어온다.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모래바람이 일어나는 수준의 강풍.
날아온 방향은 사해 중에서도 가장 고지가 높다는 최북단.
그쪽에서 거대 괴생명체가 그림자를 드리우며 다가온다.
-키야아악-!!!
하늘에서 거대한 포효가 내리친다. 공기가 울리는 쩌렁쩌렁한 굉음.
강림한 괴수는 총 무게 자체는 소를 통째로 잡아먹을 수 있는 샌드 웜과 비슷해 보였으나, 익룡처럼 생긴 양 날개를 펼치고 있으니 덩치가 몇 배는 커 보인다.
파충류답게 사막 지역의 열기를 버티기 위해 온몸에 얇은 비늘을 수없이 박은 괴물.
눈 흰자위가 없는 동공이 나와 마주친다.
‘샌드 드레이크······!’
나는 괴룡에게 느껴지는 막강한 마나를 느끼고 흠칫 놀랐다.
샌드 드레이크.
사해에 서식한다는 상급 몬스터로, 용이 퇴화했다는 아룡형 몬스터다.
소문만 무성하지 실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알려진 고대 몬스터.
썩어도 준치라고, 용의 피가 흐르는 만큼 그 악명은 와이번을 능가한다.
-키야아아악-!!
부웅, 붕!
그런 샌드 드레이크가 날 보며 위협한다.
당장이라도 덮칠 듯, 허공을 맴돈다.
“큭, 큭큭! 네가 아무리 천재라도 샌드 드레이크한텐 안 될 거다!”
흑마법이 끝나가서 얼굴 근육이 굳어가면서도 떠드는 데이아.
나는 어스 마법으로 그의 입안에 흙을 잔뜩 넣어줬다.
‘네하린한테 먼저 가라고 하길 잘했군.’
식은땀이 흐른다.
상급 몬스터는 써클로 따지면 최소 4써클.
그만큼 강력한 비늘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드래곤 하트로 강력한 마나를 가진 나라도 2써클의 마법으로 저 비늘을 뚫을 수 있을진 미지수다.
‘어쩔 수 없다. 한 번 더 붉은 눈의 스태프를 사용하는 수밖에.’
나는 가방을 풀며 전투태세를 갖춘다.
다행히 아직 엡실론의 독수리가 오지 않았으니까.
이미 무리한 탓에 몸이 더 버텨줄지는 모르겠지만 해보는 수밖에 없다.
살기를 끌어올린다.
샌드 드레이크와 서로 흉흉한 마나를 뿜어낸다.
피식자와 포식자가 아닌, 대등한 적수로서 결전을 준비한다.
-키야악!
쐐애액!
선수는 샌드 드레이크.
자세를 낮추고 지상으로 급강하를 시작한다. 바위도 씹어버린다는 치악력으로 날 물어뜯으려는 것이다.
-크롸롹! ······키얏?!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날 집어삼킬 듯, 땅에 닿을 정도로 급강하해서 초저공 비행을 하며 날아오던 중, 갑자기 나약한 비명을 지르더니······.
쿠당탕!
“응?”
알아서 날 피해서 흙바닥에 나자빠진다.
‘난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혹시 실수한 걸까?
흙먼지를 뒤집어쓴 샌드 드레이크를 노려본다.
엄청난 속도로 땅에 처박혔지만, 원체 단단한 비늘 덕분에 크게 다치진 않은 익룡.
-크롹? 키야앗······!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아연실색하더니 날개를 발마냥 바동거리며, 땅을 기어서 달아난다.
얼마나 공포에 질렸는지 나는 법도 잊고 최대한 멀어지려는 모양.
이 녀석이 왜 이러지?
설마?
“야.”
-키약?!
【드래곤 피어 lv1.】
드래곤 피어만 켠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차분히 샌드 드레이크를 바라본다.
마치 데이아를 대했던 것처럼.
-키익······. 키야아악!
그러자 날개를 몇 번이나 펄럭이며 난리 치는 샌드 드레이크.
제대로 날지는 못하고 몇 번이나 흙바닥에 떨어진다.
“가만히 있어.”
-······키약?
중저음으로 명령해본다.
그러자 고개를 홱 돌려서 날 바라보더니, 이내 날개를 접고 얌전히 앉아 있다.
아무래도 ‘앉아.’라고 알아들은 모양.
나는 소름이 돋았다.
‘······확실하다. 특성 드래곤 아이. 이것 때문에 샌드 드레이크가 저항할 의지를 포기한 거야.’
마스터급 특성 드래곤 아이.
용의 유산으로 얻은 이 추가 특성은 드래곤 피어를 비롯해, 상대가 용의 눈이라고 착각하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혹시?
사악한 미소가 꽃핀다.
“일어나.”
-키략.
“앉아.”
-······.
내 명령에 순종적인 샌드 드레이크.
몸이 떨리는 걸 봐선 아직도 날 두려워하는 모양.
적대는커녕 감히 달아날 생각조차 못 한다.
나는 그런 샌드 드레이크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용용이’다.”
-······키럇?
“앞으로 이 호루라기 소리를 들으면 날아와라. 알겠냐?”
삐이익!
나는 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불었다.
용용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멍청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날아오르라는 손짓을 하자 영민하게 알아듣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물어.”
-키야아아악-!!
쏴아아-!!!
손으로 가까운 바위를 가리키자 하늘에서 몸을 풍선처럼 최대한 부풀리더니, 녹색 액체로 일직선으로 쓸어버린다.
애시드 브레스.
용의 숨결 중 하나로, 독극물로 닿는 모든 걸 녹여버리는 기술이다.
······깜짝이야.
용용이는 내려오라는 내 손짓에 곧장 땅에 내려온다.
-키얏.
그리고 자신의 쓸모를 입증했다는 듯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린다.
살기 위해서인지 필사적이기까지도 하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는 상황.
나는 적당히 애교를 받아주며 웃었다.
‘이거 다크 로드 자칼의 비밀병기를 절로 얻어버린 것 같군.’
사해의 시험에서 자칼의 제자 데이아를 죽이고, 이제 최후의 결전만 남은 상황.
그 상황에서 자칼의 비밀병기를 빼앗아버렸다.
이 모습을 본 데이아는 흙을 입에 물어 아무 말도 못 한채 동공만 멍하니 풀려 있다.
나는 데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야, 일이 재밌게 흘러가는 거 같은데. 이거 어떻게 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