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방랑 (1)
죽은 현자의 비술이 끝난 데이아를 모래에 묻어주고, 용용이를 훈련한다.
“앉아. 일어서.”
-키얏.대
슬슬 내 명령을 잘 알아듣는 녀석.
지능이 낮아서 까먹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용의 혈족이라는 게 정말인 모양.
“물어.”
-키야아아악-!!
쏴아아-!!!
······물어를 브레스로 잘못 배우긴 했지만, 이 정도는 내가 조심하면 되겠지.
남아있는 고기를 먹이고 호루라기를 불면 날아오라고 가르쳤으니, 나중에 유용하게 부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비장의 수가 생긴 것이다.
“이제 원래 서식지로 돌아가라.”
-키약?
“내가 호루라기를 불 때까지 어딘가 숨어있어라.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고.”
나는 독수리가 오기 전에 용용이를 사막 어딘가로 숨긴다.
크라우드 가문 내부에도 다크 로드의 눈이 미치고 있을 테니까. 아군조차 모르도록 철저히 숨긴다.
설마 다크로드 자칼도 샌드 드레이크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내가 소유권을 강탈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펄럭.
엡실론의 또 다른 독수리가 날아온다.
잠시 기다리자 찾아오는 크라우드 마차.
“여기 계셨군요. 네카르 도련님.”
현자 카나단이 날 마중하러 나온다.
믿고 있길 잘했다는 듯, 이렇게 장성해서 뿌듯하다는 듯.
웃어른의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마차에 오른다.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내고, 크라우드 가문으로 돌아왔다.
***
물의 명가 크라우드 광장.
가주 엡실론은 사해의 시험 우승자를 불렀다.
“네하린.”
“예, 아버님.”
“앞으로 나와라.”
네하린은 제단 위로 공손하게 오른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울려 퍼진다.
“무릎 꿇어라.”
척.
네하린이 화려한 치맛자락을 살포시 잡고 앉는다.
그러자 어깨에 푸른 스태프를 겨누는 엡실론.
“네하린 폰 크라우드. 너는 크라우드의 전통 통과 의례인 사해의 시험을 훌륭히 통과했다.”
“······.”
“이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인한다! 물의 명가 크라우드의 차기 가주는 네하린 폰 크라우드라는 것을. 이 목걸이로 보증한다!”
엡실론의 엄중한 목소리가 광장에 쩌렁쩌렁 울린다.
현자 카나단은 고급스러운 붉은 함을 가져왔다.
함 뚜껑을 여니 순금으로 만든 물의 목걸이가 담겨있다.
물방울 모양 장식을 둥그런 금테가 감싸고 있는 목걸이.
엡실론은 그 목걸이를 꺼내 네하린 목에 걸어주었다.
우와아아아-!!!
그와 동시에 광장에 구경 온 수많은 사람이 환호성을 지른다.
몇몇 가신들은 축포를 터트리고, 옥상에서 꽃잎을 흩날렸다.
동부 사막의 패권을 지배하는 물의 명가 크라우드.
그 가문을 이끌 후계자가 얼굴을 드러낸 상황이니까.
더구나 막강한 권력을 이을 후계자가 품행이 단정한 아름다운 아가씨라는 점은 더욱 화젯거리가 되었다.
“저어······. 네하드람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
황금상회 간부들은 조심스럽게 네하드람 눈치를 봤다.
광장에서 제 누이의 후계자 임명식을 지켜보던 네하드람은 어느새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가신들을 둘러본다.
또각또각.
이후 네하린이 차기 가주로 임명받는 걸 잠시 구경하더니, 조용히 가문 내성으로 돌아갔다.
“······네하드람?”
“!”
그렇게 가문으로 돌아가던 중 저 멀리서 한 중년 여인을 만난다.
둘째 부인 카탈레아.
황금상회 회장의 유일한 혈육이자, 네하드람의 어머니이다.
와락.
“무사했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둘째 부인은 네하드람에게 한걸음에 달려와 폭 끌어안았다.
그녀는 사해의 시험에서 대규모 마법 혈전이 벌어졌다는 말에 노심초사했으니까.
네하드람은 자신을 감싸는 따뜻한 온기와 동시에 촉촉한 눈물을 느꼈다.
“······어머니.”
네하드람은 그런 어머니의 등을 조심스럽게 다독인다.
바람을 이뤄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속삭임과 함께.
어머니는 살아 돌아왔으니 괜찮다고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어차피 그녀 또한 네하린의 천재성을 아는 만큼 큰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차기 황금상회 회장 또한 크라우드 가주에 버금가는 자리였다.
“······.”
퍽 감동적인 순간.
나는 광장 중앙에서 팔짱을 끼고 네하린과 네하드람을 관망했다.
자신의 꿈을 이룬 네하린과 성숙해져서 가족의 온기를 느끼는 네하드람.
잘 됐으면서도, 부럽고, 시기심이 드는 오묘한 심정이었다.
“허허, 숨은 영웅이 여기서 뭘하고 있느냐?”
그때 뇌격의 원로 마법사 니콜라스가 허허 웃으며 내게 다가온다.
“네카르, 넌 앞으로 어쩔 테냐?”
“저야 슬슬 방랑을 시작해야죠. 세상을 떠돌며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합니다.”
이제 곧 닥칠 동부의 변을 막을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라는 뒷말은 삼켰다.
아직 이들은 다크 로드 자칼이 누군지, 동부의 변이 어떤 파멸적인 사건인지 모르니까.
아직 진짜 위기는 오지 않았지만, 비밀로 한다.
니콜라스는 사람 좋은 인상으로 말했다.
“홀홀, 마땅히 갈 만한 곳이 없나보구나. 네가 원한다면 중앙으로 데려가줄 수도 있다. 내 마침 스승님의 유산을 함께 연구할 수제자가 필요했거든.”
너라면 충분한 자격이 있다.
니콜라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중앙에 갈 생각 없었다.
‘지금 니케아 제국은 개판이니까.’
니케아 제국.
겉으론 전 대륙을 호령하는 대제국이다.
그러나 실상은 황제의 계속된 권태로 수도가 있는 중앙부터 서서히 썩어가는 늙은 제국이다.
그러는 사이,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가 세력을 빠르게 모으는 것이고.
‘물론 나태의 잠에 빠진 황제를 일깨워서 제국이 힘을 되찾는 것도 나중에 하긴 해야 하지만.’
아직 내가 그 정도의 실력이나 명성은 아니다.
북부에 있다는 ‘용의 유산’도 마저 모아야 하니 나중에 손대는 게 맞으리라.
“정말 감사합니다만 따로 생각해본 게 있어서요.”
“마탑보다 더 좋은 선택지가 있느냐?”
“아하하, 아직 비밀입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니콜라스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내 방으로 돌아온다.
‘슬슬 방랑을 시작해야지.’
따로 생각해둔 게 있으니까.
언제까지고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 남아있을 순 없다.
똑똑똑.
“네카르 도련님. 혹시 계십니까?”
“?”
현자 카나단이 내 방문을 두드린다.
황급히 일어나서 대답한다.
“무슨 일이십니까?”
“가주님께서 저녁 식사에 초대하셨습니다. 함께 드시겠습니까?”
가주 엡실론이?
지금은 장녀 네하린에게 향후 가주가 해야 할 일을 가르치느라 한창 바쁠 텐데?
고개를 갸웃하며 카나단을 따라나선다.
무슨 이유가 됐든 직접 만나서 들어볼 생각이었다.
***
크라우드 가주실.
긴 식탁이 놓인 식기는 단둘이었다.
가주 엡실론의 자리와 내 자리.
이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거리가 한 자리 더 가까워졌다는 점이다.
지난번 식사 때만 해도 엡실론의 자리에서 한 칸 띄어서 앉았거늘.
이제는 바로 곁에 앉았다.
막 빙의했을 때, 식탁 끝자리에 앉았던 걸 떠올리면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
“······.”
서걱서걱.
가주실은 나이프로 고기를 써는 소리로 가득하다.
자리는 가까워졌지만, 어색함은 여전하니까.
그래도 엡실론이 어른이라서 그런지, 나이프를 내려놓더니 먼저 입을 연다.
“니콜라스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들었다.”
묵직하게 가라앉는 목소리.
이는 예상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중앙 마탑엔 관심이 없나 보군.”
“그렇습니다.”
언젠가 들어가긴 할 거지만.
당장은 더 급한 일이 많다.
이에 엡실론은 포도주 잔을 부드럽게 한 바퀴 돌리더니 말했다.
“그런데 사해의 시험도 도중에 포기했다고.”
“······.”
“네하린에게 들었다. 너는 데이아는 물론, 차기 가주직에 능히 오를 수 있었다고. 중앙 마탑에도 관심 없는 녀석이 왜 차기 가주직도 포기한 거냐?”
엡실론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하기야 크라우드 가문 마법사는 가문에 남던가, 번화한 중앙으로 가던가 크게 두 가지 선택지를 고르기 때문이다.
마탑에 가기 위해 차기 가주직을 포기한다면 모를까.
둘 다 고르지 않은 날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제 곧 다크 로드 자칼이 동부의 변을 일으킨다는 것을.
가만히 앉아 있다간 전부 죽는다는 걸.
‘다크 로드 자칼이 계악한 대악마에게 바칠 시체가 점차 부족할 테니.’
나는 다크로드 자칼이 누구와 계약했는지 안다.
대륙 곳곳에서 군림하는 7명의 대악마.
악과 파괴의 교단 디메토르 소속으로서, 선과 질서의 교단 프레야를 멸망시키고 전 대륙을 지배하는 게 목적인 자들.
아마 고대의 석판에서 말한 ‘7개의 거악(巨惡)’ 중 한 명이겠지.
나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숙적들이다.
‘천만다행인 점은 데이아가 실패함으로써, 당장 계획이 크게 어긋났다는 점이겠지.’
위층에 있을 카넬 방 쪽을 올려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아마 지금 저쪽도 발등에 불이 붙었을 거다.
동부의 패권 가문 크라우드 내부를 장악한다는 가장 중요한 계획이 나 하나 때문에 틀어졌으니까.
더구나 이미 흑마법의 흔적이 발각된 이상, 더 이상 시간 끌지 못하고 최단 기간에 거사를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앞으로 3개월. 그 안에 대비해야 한다. 다크 로드 자칼의 언데드 군단을 상대할 수 있는 비장의 수를 마련해야 해.’
다크 로드 자칼을 막을 파훼법 또한 계획해두었다.
애초에 ‘동부의 변’은 <별들의 전쟁2>에서 메인 스토리 중 하나니까.
‘동북부에 있는 폭풍의 산. 그곳에서 바람의 마도서를 얻어와야 한다.’
바람의 마도서.
과거 바람의 마도사 클라인이 죽기 전 저술한 유품.
폭풍의 산에 묻혀있는 보물이다.
결국, 흑마법사들의 군단은 대개 언데드 군단.
그 바람의 마도서로 배울 수 있는 바람과 물의 듀얼 속성 마법 ‘헤비 레인’을 배워서 ‘성수’를 비처럼 뿌린다면 파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헤비 레인. 그 비전 마법은 훗날 썬더 스톰의 효과를 증폭시키기도 하니까.’
헤비레인은 날씨를 바꾸는 마법.
전격계 마법과 연계한다면 몇 배나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다.
마나만 허락한다면 지역 전체를 폭풍우와 전격으로 쓸어버릴 수 있는 마법.
동부의 변 때 언데드 군단을 홀로 쓸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최종적으로 대종말을 막기 위해서도 방랑을 떠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대놓고 말할 순 없는 법.
어떻게 납득시켜야 할까?
‘엡실론은 일평생 동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헌신했다. 이를 이용해야 해.’
동부의 꿈.
동부 사막도 다른 지역처럼 중요 행정 구역으로 인정받는 일.
이를 위해선 동부 사막 또한 그만큼 발전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 꿈은 크라우드 가문과 마탑을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
대범한 포부로 당당하게 말한다.
엡실론이 선호하는 대로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저는 전 대륙을 떠돌며 수많은 마법 학파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마법을 배운 후, 돌아오겠습니다.”
새빨간 거짓말.
그럴 생각 전혀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물의 명가 크라우드는 더 많은 세력과 연합할 수 있을 겁니다. 중앙 마탑 뿐만 아니라 서부, 북부, 남부 등 다양한 마법이 융화돼 꽃필 것입니다.”
이건 사실이다.
세계 대종말을 막기 위해선 각 대륙에 있는 세력이 모두 합심해야 하니까.
방랑하는 이유에는 기연을 얻는 것도 있지만, 각 세력을 규합하는 것 또한 있다.
“······.”
내 말에 한참 침묵하는 엡실론.
엄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내가 치기 어린 마음으로 광오한 말을 내뱉는 건지, 아니면 진정 험난하지만, 그 끝이 창대한 길을 가려는 건지 파악하려는 것이다.
엡실론이 무겁게 입을 연다.
“망나니짓을 하던 놈이 하루아침에 광오한 꿈을 꾸는구나.”
“······.”
“나라고 북부와 남부에 교역 시도를 안 한 줄 아느냐?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직 엡실론의 목소리엔 짙은 우울함이 깔려있었다.
그만큼 동부의 꿈이 어려웠으니까.
동부 최강 마법사라는 엡실론조차 한평생 이루지 못할 만큼.
그 때문에 아직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 있었다.
각 지역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전부 알고 있으니까.
“오랜 방황 끝에 크게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무엇을 깨달았느냐?”
“어떤 사람도 결국 바뀔 수 있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
나 또한 눈을 피하지 않는다.
거짓말이지만 내겐 마스터급 특성 드래곤 아이가 있으니까.
바다처럼 끝없는 깊이의 동공으로 엡실론을 마주한다.
“가주님의 노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동부의 꿈 계획은 방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뭐가 잘못됐다는 거지?”
“귀족은 상인이 아닙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 교류하지 않습니다.”
“······!”
표정이 험악해지는 엡실론.
그러나 말을 끊지는 않는다.
나는 계속 말한다.
“저는 각 마을에 직접 가서 무엇이 힘든지, 괴로운지 파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숙원을 들어주고 친분을 쌓을 것입니다.”
“!”
“그다음에 마법 교류를 제안할 것입니다. 신뢰를 쌓고 말입니다.”
엡실론이 할 수 없었던 것.
그건 다른 가문의 속사정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첩보 능력이 대단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아니면 나처럼 고인물이거나.’
다만 엡실론은 그것이 얼마나 고된 길인지 눈치챘기에 침묵했다.
각 가문을 도와주면서 전 대륙을 방랑한다는 건 전 대륙의 고충을 해결하겠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계속된 침묵.
엡실론은 포도주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홀로 가시밭길로 가려고 하는구나.”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
엡실론은 포도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최근 달라진 너라면 적어도 역효과는 없겠지. 가문이 지원해주었으면 하는 게 있느냐.”
됐다!
방랑을 허락받는 것뿐만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나는 냉큼 원하는 바를 말했다.
“‘매직 오브’를 원합니다.”
매직 오브.
스태프와는 또 다른 마법사 장비다.
스태프가 마법사의 실력을 증폭시켜주는 장비라면, 매직 오브는 미리 저장해둔 마법을 시전하는 장비.
스태프보다도 고가인, 초호화 장비다.
‘그럼에도 마나 대비 효율이 극히 떨어지는 장비지.’
매직 오브는 구체 형태로 둥둥 떠다니는 아이템.
사용 중엔 ‘플라이’ 마법과 ‘메모라이즈’ 마법을 유지해야 하니, 당연히 마나가 더 소모된다.
더구나 그렇게 미리 시전해봤자, 실전에서 조준하다보면 영창하는 만큼 시간이 꽤 걸린다.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고위 마법사들에게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사치품이다.
‘뭐, 물론 내겐 전혀 적용되지 않는 사항이지만.’
나는 플라이 마법이나 메모라이즈 마법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마나가 아쉽지 않다.
더구나 나는 마법이 아니라, 스킬을 사용하는 자.
시스템이 알아서 조준해주니까.
말 그대로 매직 오브는 장점만 있는 아이템이다.
“네가 그걸 원한다면 그리 해줘야겠지.”
다행히 엡실론은 이유를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손짓에 시종들이 창고에 가서 붉은 함을 가져온다.
“받아라. 가주로서 데이아를 물리친 공로를 표창하는 보상이다.”
붉은 함에는 보석처럼 스스로 푸른 빛을 띄는 매직 오브가 담겨있었다.
[이름 : 매직 오브 (水).]
[설명 : 물의 명가 크라우드에서 만든 특제 매직 오브. 물 속성 마법을 한 가지 담을 수 있다.]
[효과 : 미리 시전한 초급 마법을 80%의 효율로 즉시 시전 가능.]
매직 오브가 80% 효율이라면 대단히 뛰어난 편이다.
“감사합니다. 꼭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를 전했다.
“이것도 받아라.”
“?”
그런데 엡실론의 선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건······?”
“니콜라스가 제자에게 전하는 선물이라고 한다. 마탑의 신분증이라고 하더군.”
“!”
나는 작은 비석 패를 받으며 경악했다.
마탑의 신분증.
이는 대륙 최고 대우를 받는 신분증 중 하나니까.
전 대륙 어느 곳에 도착한다고 해도 환영받을 수 있는 물건.
억만금을 줘도 구할 수 없는 보물이다.
명예를 가장 중요시하는 아르카나 대륙에서, 대륙 최고 마법사 단체 중 하나가 돈에 연연할 리 없으니까.
말 그대로 지금 내게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렇게 몇 마디 더 나눈 후, 엡실론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언제쯤 떠날 생각이냐?”
“······.”
나는 눈을 감고 생각한다.
동부의 변.
마경에서 쏟아져나올 몬스터 군단들.
그때까지 길어봤자 3개월밖에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 곧 닥쳐올 동부의 변을 대비하기 가장 적합한 타이밍은 언젤까?
“당장 내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