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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48)화 (147/148)

만약 그렇다면 솔직히 말해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기대감이 들었다.

정말……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을까?

빠른 시일 내에 은밀히 연합을 결성하고 단번에 친다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이 기대감의 반은 라칸과 륀트벨을 향한 자신의 복수도 끼어 있다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아마 케니즈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이미 다 알고 이 이야기를 자신에게 먼저 말을 꺼낸 것일 테다.

‘정말이라면…….’

과거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미래가 바뀌어서 그런 걸까? 어쩌면 이제야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걸지도 몰랐다.

과거에도 은밀하게 이루어져 오고 있었는데 륀트벨이 친 게 더 빨랐던 걸지도.

하기야 오늘 케니즈가 찾아와 말해주지 않았다면 여전히 몰랐을 것이다.

이제는 엘리움의 속사정도 속속들이 알아가는 중이지만 모든 걸 알진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먼저 엘리움에 연합을 제안했다는 게 조금 의아했다.

륀트벨의 사절단이 왔을 때 엘리움에서는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축제까지 열었는데.

굳이 그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으니 알게 모르게 타국에도 소식이 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다못해 엘리움에 오고 가는 타국의 상인이나 여행객들 통해서도 당연히 알려졌을 거라고 여겼었다.

‘그 정도로 알려진 건 아니었나.’

타국과 연합을 하려면 륀트벨과 평화협정부터 깨야 하는데.

‘그럼 차라리 내가 엘리움으로 돌아가는 척 시간을 버는 게 나을까.’

라칸은 애초에 샤르망이 돌아오길 바라는 것뿐 평화를 바라는 게 아니었으니.

오늘 꿈을 꾼 내용이 그저 꿈이 아니라면 그보다 더 바닥에 있는 라칸의 진짜 목적은 자기 심장일지도 몰랐다.

샤르망은 저도 모르게 제 심장 부근을 꾹 눌렀다.

‘역시 나는 저주를 받은 몸인가? 이 돌연변이 심장을 가진 것이?’

과거 전장에서 나라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라칸에게 승리를 쥐여다 주고 있을 때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뭔가가 더 있었나?

특별한 힘을 쓴 기억은 분명히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라칸이 자신의 심장을 탐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죽은 뒤에도 이자는 온전히 폐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게 하는 방법이…….’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단순한 꿈이 아닌데.

할스레이크처럼 연구를 할 것도 아닌 것 같고.

그 뉘앙스는 분명 심장의 필요성을 아는 것 같았다.

‘단순한 연구나 실험을 한다기엔 내가 이미 륀트벨을 배신하고 떠났는데도 이렇게까지 집착할 이유가 없어. 차라리 죽이면 모를까.’

하지만 라칸은 샤르망을 죽이는 대신 돌아오라 말했다.

주변 사람들을 놓고 협박하면서까지.

마탑의 주인 아힐 더프에게 저주까지 거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분명히 샤르망의 심장이 라칸에게 필요한 이유가 있다.

‘대체 그게 뭐냐는 거지.’

역시 레이나를 찾아내는 것뿐인가.

여러모로 그자가 꼭 필요하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

“아.”

샤르망은 저도 모르게 깊게 생각에 잠겨버린 걸 알아채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미안, 나도 모르게.”

“뭐 그럴 수 있지.”

그보다 그 중요한 부분을 내게 먼저 말해도 되나 싶었다.

자칫하면 엘리움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주제이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나를 시험하고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믿음을 보였나 싶기도 했다.

행여 전자라고 해도 억울할 건 없었다.

“그대 말대로라면 훨씬 더 승산이 있을 것 같아. 마법사 육성을 뒤로 좀 미루더라도 총력을 기울인다면…… 어쩌면 예상보다 피해를 줄일 수도 있을 것 같고. 안 그래도 소로 숲에서 계속 무기를 연구해내고 있어. 재료 공급을 우리가 더 돕는다면 그 완성도는 더욱 높아지겠지. 그럼 시일도 당길 수 있을 거야. 다만…….”

“다만?”

샤르망이 마른 입술을 달싹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사디나르 공, 그대는 잘 알겠지. 전쟁에 절대 승리자는 없어.”

물론 누군가의 욕구를 충족할 순 있겠지.

잠자코 있던 케니즈의 입가에 짧게 미소가 서렸다가 사라졌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엘리움을 속국처럼 취급하면서 무력을 휘두르는 륀트벨을 언제고 보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지. 평화협정? 지금 그게 정상으로 보이나? 대놓고 감시하겠다는 뜻이지. 그대를 포함해서 말일세.”

“…….”

“그리고 엘리움은 그대가 없는 사이에도 바라던 일이었어. 그땐 그대도 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다.

샤르망은 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렇다면.”

샤르망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지금 상태에서 그런 제안을 할 곳이…….

“카타드……?”

솔직히 가장 확률이 높은 한 곳뿐이다.

“하나는 맞췄군.”

하나가 아니야?

샤르망의 눈이 커졌다.

“또 어디지? 아,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돼.”

“롬바. 카타드의 오랜 우호 국가기도 하지. 물론 아직 우리가 답신은 보내지 않은 상태네.”

“아…… 그렇군.”

롬바가 있었지.

“우리 쪽에서 반응을 한다면 그쪽에서 원하는 것을 말하겠다고 했네. 그리고 나는 그대에게 가능성을 물어보러 온 것이고.”

샤르망이 천천히 끄덕였다.

케니즈는 바로 입궁하여 왕과 이야기를 나누고 연합을 내부적으로 공식화할 생각인 듯싶었다.

케니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르망도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대략적인 생각을 알았으니 또 다른 내용이 생기면 찾아오지.”

“고마워. 나도 여러 방면으로 좋은 방법을 찾아볼게. 미처 내가 떠올리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때 다시 이야기하도록 해.”

“알았네. 생각보다 오래 붙잡은 것 같군.”

“전혀 아니야.”

샤르망은 케니즈가 나감과 동시에 바로 레이나를 찾으러 갈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관을 나서던 케니즈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오늘 축젠데 참석하지 않나?”

샤르망이 멈칫했다.

그 누구보다 축제를 기다려왔지만 어제 일 이후로 편히 즐길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축제에 참석하는 것보다 일을 해결하는 것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샤르망은 괜히 대답을 회피했다.

“갑자기 일이 있어서…… 그대는?”

“원래 축제에 참석한 적이 별로 없어서.”

케니즈가 어깨를 으쓱했다.

의외였다.

페페의 몸에 있을 때 케니즈가 페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당연히 축제에 참석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샤르망에게만 이렇게 딱딱한 거지 다른 사람들한테 얼마나 유쾌하고 유들유들한 성격인지도 아니까. 정말 의외였다.

“그…… 페페도 참석하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케니즈의 귀가 미약하게 붉어졌다.

케니즈가 헛기침하며 목덜미를 주물렀다.

“뭐, 일이 워낙 바쁘니 어쩔 수 없지. 정말 축제는 안 즐길 건가? 이것저것 꽤 도왔다고 들었어.”

“그러고 싶은데 축제는 내일도 이어지니까 그때까지 돌아오려고 해. 아, 저기.”

“말하게.”

하지만 샤르망은 곧 고개를 저었다.

라칸이 찾아온 건 레이나를 찾은 뒤에 말해도 되겠지.

지금 말해선 의심만 사고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아니야. 다녀와서 말하지.”

케니즈가 돌아가고 샤르망도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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