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디엘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르디엘은 아르디나가 내민 손을 미처 잡지 못하고 이내 꺾이듯 고개를 툭, 아래로 향했다.
“……하하.”
“…….”
작게 터지는 웃음에 아르디나가 움찔했다.
“이렇게 말씀해 버리시면 어떡합니까…….”
그 말에 아르디나가 잠깐 후회했다.
역시 이 방법은 아닌가.
수천 가지 방법 중에 결국 고른 건 진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었다. 가장 꺼려지고 어려운 일.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왕도를 택한 것인데 정답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손을 거두려는 순간 아르디엘이 아르디나의 손을 맞잡았다.
“…….”
“…….”
둘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손을 맞잡은 적이 없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탓이었다.
분위기는 어색했고, 맞잡은 손은 서로에게 너무 차갑거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미묘한 공기의 흐름에 결국 아르디나가 짧게 미소를 지었다.
이게 이렇게 쉬웠던 일인가.
할스레이크의 시간으로도 꽤 긴 시간 끙끙 앓아왔던 게 우습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인간들을 도와준다고 해서.”
“…….”
“할스레이크가 잘못되는 것도 아니더구나.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어. 오히려 호기심에 저자가 올 때마다 기웃거리는 이들이 많아졌지.”
“…….”
하지만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먼 옛날에 할스레이크를 세우고 나서 인간 때문에 위기가 온 적이 있었으니까.
이제는 그 사실을 기억하는 인간들은 없는 것 같지만.
뭐, 그래도 샤르망 노엘 켄더스 같은 인간 정도라면 조금은 개방해도 될 듯싶었다.
사실 제 혈육인 아르디엘이 신뢰하는 자이기에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이기도 했다.
어느새 아르디엘의 표정은 모두 풀어져 있었다.
“저도 경솔했습니다. 멜피네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앞섰습니다. 멜피네의 말조차 제대로 듣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럼 서로 잘못한 셈이구나.”
“그러네요.”
“지금은 저자뿐이지만 조금씩 더 노력해 보마.”
둘은 어정쩡하게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일어선 채로 대화를 나눴다.
사과는 물론,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와 엘리움이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손을 꽉 잡은 것도 아니고 놓은 것도 아닌 어색한 자세 그대로였다.
한참을 그리 불편하게 대화하고 나니 바깥이 아까보다 현저하게 조용하다는 걸 알아챘다.
아르디엘은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두 명의 기척이 꼼짝도 하지 않고 현관문 앞에 딱 달라붙어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특히 멜피네는 아예 볼까지 찰싹 붙이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지낼 것이냐?”
아르디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피네와 저의 터전은 이곳입니다.”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아르디나가 피식 웃었다. 어쩐지 미소에서는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그렇구나.”
“이따금 찾아가겠습니다.”
“……그렇구나. 음, 그럼…….”
아르디나가 말끝을 흐렸다. 내리깐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가 움직였다.
“이곳의 시간으로 주말이 되면 피네는 늘 수프를 끓입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많이, 오래 끓여야 맛있다면서 항상 한솥을 끓이거든요.”
아르디나는 그게 무슨 뜻인가 싶어 아르디엘을 멍하니 쳐다봤다.
사실 할스레이크 인들은 굳이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맛을 느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안 먹는다고 해서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었으니 음식을 즐기는 자들만 즐기면 된다는 주의였다.
아르디나와 아르디엘만 보더라도 아르디나는 음식을 굳이 찾아 먹지도, 즐기지도 않았지만 아르디엘은 예전부터 음식을 무척 즐겼고 요리를 하는 것도 좋아했다.
아르디나가 뜻을 이해 못 하고 계속 멍청히 서 있기만 하자 아르디엘이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주말에 먹으러 오셔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아르디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 번 마음을 풀고 다니 즐기지도 않던 음식이 궁금해졌다.
“그래, 그러마.”
비로소 둘의 응어리가 풀어졌다.
한편으로는 우스웠다.
장본인들은 서로 멀어져 입을 닫고 주변은 누구 하나 손댈 생각을 하지 못한 일에 단지 어느 한 사람이 개입했을 뿐인데 허무하게 풀려버렸다.
원래 이런 것인지.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윽고 아르디엘이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밖에서는 그의 사랑하는 사람이 두 손을 간절하게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멜피네는 아르디엘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목을 껴안았다.
어느새 조금 떨어져 있던 샤르망은 눈이 마주친 아르디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르디나도 그에 보답하듯 눈인사하며 고마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