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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124)화 (123/148)

시야가 걷히며 아득한 폭포 소리와 함께 할스레이크가 한눈에 들어왔다.

땅은 온통 지상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꽃과 풀들로 가득했고 하늘은 하늘이라 보기 어려운 하얀색에 구름 한 점 없어 신비함이 느껴졌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내려오는 건지 알 수 없는 폭포가 커다란 성을 감싸듯 바닥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흘러내린 물이 떨어지는 곳은 보이지도 않는데 샤르망이 있는 곳까지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거대한 폭포수였다.

사실 이전 생에도 한 번 본 적 있는 곳이었다.

그때도 큰 충격에 휩싸였었는데, 이번에도 샤르망은 할스레이크의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채 한참을 멈춰 있었다.

풍경도 풍경이었지만, 과거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 빠르게 닿게 되었다는 사실도 무척 감격적이었다.

또 한 번의 생을 살고 있어 전보다는 빨리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4~5년이나 시간을 단축한 것이었다.

“여길 오다니.”

폭포수 소리를 뚫고 들려온 아힐의 말에 샤르망이 정신을 차렸다.

아힐의 시선은 허공에서 성을 향해 떨어지는 폭포를 향해 있었다. 꽤 만족스러운지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샤르망도 그에게 목숨 빚을 조금 더 갚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마력증폭기를 무사히 얻고 나면 그 짐이 훨씬 더 가벼워질 것 같긴 하지만.

그건 그렇고…….

시야에 그들이 사는 성이 보이긴 했지만 걸어가기엔 몹시 먼 거리였다.

텔레포트를 이용하면 그들의 성 입구까지 쉽게 닿을 수 있긴 한데, 이곳에서 마음대로 마법을 써도 되나 고민이 됐다.

과거에는 온갖 방법을 써도 안 되어서 할스레이크와 왕래를 하는 소로 숲 엘프들에게 자신의 갈라진 심장에 대한 비밀을 흘리고 나서야 뒤늦게 초대를 받을 수 있었다.

막상 초대를 받았을 때도 거의 끌려가듯이 감시를 받으며 성 안으로 들어갔던 불쾌한 기억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별반 다르진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번에는 에빌이 자신의 힘으로 게이트를 열어준 터라 자신들을 마중 나온 할스레이크인도 없었다.

분명히 에빌의 말대로라면 샤르망이 이곳에 들어왔다는 걸 아르디나가 인지할 거라고 했는데. 에빌의 힘으로 열린 게이트를 감지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샤르망과 아힐이 동시에 같은 말을 하고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샤르망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곤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우리가 게이트를 통해 들어오면 당연히 방문자를 인지하고 나올 줄 알았는데. 에빌이 자신이 연 걸 알 거라고 했거든.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생각해 보니까?”

“과거에도 그다지 유쾌한 마중은 아니었던 것 같아. 에빌이 정말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대해줘서 할스레이크인들이 어떤 이들인지 잠시 잊어버렸었어.”

“기다려 보지 뭐.”

그때였다.

아힐과 샤르망 앞에 약 2m 정도의 빛기둥 네 개가 동시에 쭉 올라오더니 이윽고 흰색 옷을 입고 있는 네 명의 할스레이크인이 나타났다.

한 명은 백금발 머리카락에 상아색에 가까운 눈동자를 한 신비한 여인이었고, 두 명은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은 미야가 가진 색과 비슷한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드디어 마중을 나온 모양이었다.

아르디나가 보낸 것일까?

샤르망이 그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샤르망이 손을 드는 순간 손목에 둥근 빛 고리가 두 개가 탁탁 끼워졌다.

……수갑?

[……. ……. …….]

[……!]

수갑으로 보이는 단단한 빛 고리를 채운 할스레이크 인은 샤르망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예전에도 똑같은 일을 당했었다. 그들만이 쓰는 신계 언어 같은데 거의 허밍과도 같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오만한 표정만 봐도 대강 유추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샤르망과 아힐을 침입자 취급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풀어도 돼?”

아힐의 목소리에 샤르망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어느새 아힐의 손목에도 똑같은 고리가 채워졌다.

“풀…… 수 있어?”

“해보면 되지 않을까?”

아힐이 마력을 불어넣자 샤르망의 손목을 묶은 빛 고리가 웅웅 소리를 내며 반응하기 시작했다.

쩌억 하고 빛의 고리가 부서지기 직전까지 갔다.

그 소리에 네 명의 할스레이크인의 시선이 동시에 아힐에게 달라붙었다.

샤르망이 그걸 보고 빠르게 아힐을 막았다.

아힐의 힘을 보고 신의 힘을 능멸하려 했다고 화를 내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힐의 힘을 탐낼 수도 있었다.

두 가지 다 지금으로서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더구나 여긴 아르디나 할스레이크를 설득하러 온 자리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런 취급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 잠깐만. 오해를 풀고 고리를 풀어달라고 하는 게 낫겠어.”

그러고는 샤르망이 할스레이크인을 향해 빠르게 말했다.

할스레이크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은 세상의 모든 언어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

“우린 침입자가 아닙니다. 아르디엘 할스레이크의 도움으로 이곳에 온 겁니다. 우린 당신들의 수장인 아르디나 할스레이크를 만나러 왔습니다.”

샤르망은 에빌에게 받은 열쇠까지 보여줬다.

그러자 네 명의 할스레이크 인이 동시에 샤르망을 쳐다봤다.

분명히 아르디엘과 아르디나 이름에 반응했다.

[…….]

[…….]

넷은 알 수 없는 말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샤르망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샤르망은 오해가 풀렸다고 생각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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