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망은 일이 참 쉼 없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생각하면서도 올 게 왔다 싶었다.
벌써 암호 해독을 끝낸 건가.
사디나르가 아무리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는 자라고 해도, 그 문자들이 어떤 문자인지 찾고 해독하는 데까지 꽤 까다로웠을 텐데 말이다.
아니면 그와 관계없이 자신을 없애기 위해 온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설득해야 아마도 바로 이어질 왕자도 설득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좀 전에 왕이 말하길 일을 보러 갔던 왕자가 며칠 후에 돌아올 것이라고 했으니까.
“먼저 탑에 가 있는 게 좋겠어.”
아힐이 샤르망 앞을 가리듯 막아섰다.
페페보다 조금 컸던 본래 몸으로 돌아왔어도 워낙 커다란 키에 완전히 가려질 정도였다.
샤르망이 그의 팔을 잡았다.
“아힐, 사디나르 공에게 할 말이 있어.”
“지금은 좀 위험할 것 같으니 다음에 하는 게 어떨까.”
그 말에 샤르망이 그의 팔을 좀 더 당기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에게 보낸 서류가 있어. 륀트벨의 기밀 서류고 아마 그것 때문일 거야.”
아닐지도 모르지만 당장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에 확인해도 늦지 않아.”
아힐은 샤르망을 달래듯 말했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그는 가끔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칼부림이 날 수도 있지만 서로 위험한 일은 없을 텐데.
“고마워, 하지만 이건 내 몫이 맞아.”
그 사이 케니즈가 그들 앞에 멈췄다.
“이제는 아예 그쪽 편에 서게 된 건가, 아힐 더프? 세상 한가한 것처럼 굴더니 지금 모습은 기가 차지도 않는군.”
그러고는 후드를 쓰고 있는 샤르망을 노려보듯 쳐다봤다.
아힐이 움직이려는데 샤르망이 그의 팔을 다시 한번 잡았다.
“부탁할게, 아힐.”
“마검사가 아니라 사람 홀리는 마녀였나?”
샤르망은 케니즈의 힐난에도 동요하는 기색 없이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자네 말이 날카로워.”
아힐의 말에 케니즈의 표정이 더욱 격해졌다.
“힘으로 누를 생각 하지 말게. 자네가 정말 엘리움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자라면. 지금 그 웃는 낯도 마음에 안 드니까. 친우가 아니었다면 이미 한 방 먹였을 걸세.”
장소도 그렇고 자신과 마주한 상대가 상대인지라 케니즈는 당장 날을 겨누진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화를 누그러뜨리지도 않았다.
“우선 자리부터 옮기지.”
힐끗 알현실 쪽을 본 아힐이 케니즈 사디나르를 한 번 더 중재했다.
두 사람을 한참이나 노려보던 케니즈가 화를 삭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