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망은 손으로 더듬더듬 제 몸을 살폈다.
이전에도 잠깐이지만 몸을 되찾았었는데, 그때와는 의미가 달라서인지 느끼는 기분도 달랐다.
페페가 샤르망의 팔을 덥석 잡았다.
샤르망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 아프거나 그런 거 없지? 그동안 네 몸에서 지내면서 잠도 꼬박꼬박 자고 그랬거든!”
샤르망이 작게 웃었다.
“아주 좋아요.”
자신의 몸이 아니라고 열심히 관리했다는 소리가 이렇게 귀엽게 들릴 줄이야.
샤르망은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오히려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그동안 가게 지키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페페가 배시시 웃었다.
“페페도요.”
“당장은 힘든 시기지만 네 일도 곧 술술 풀릴 거야. 우리 다 열심히 지켜내고 있잖아? 앞으로도 내가 열심히 도와줄게! 안 그래도 저 녀석이 널 도울 테지만 말이야.”
오히려 샤르망은 페페한테 미안한 게 더 많았다.
샤르망이 말 대신 천천히 끄덕이자 페페는 그런 샤르망을 읽기라도 한 듯 샤르망의 팔을 연신 토닥였다.
그러던 페페가 돌연 휙 몸을 돌렸다. 아힐을 쳐다보며 물었다.
“혹시 몇 시인지 알아? 가게 문을 열어야 할 텐데!”
“아직 여유 있어.”
“그래? 그럼 천천히 가도 되겠네. 너도 네 제자들을 만나러 갈 거지?”
안 그래도 제자들을 먼저 만나러 가야 하나 아니면 왕과의 알현을 부탁하러 가야 하나 고민 중이던 샤르망이었다.
“아직 고민 중이에요.”
그러자 페페가 샤르망이 팔을 장난스럽게 툭 쳤다.
“뭘 걱정해. 그럴 땐 가장 편한 사람부터 찾는 거야. 그래야 기운 내서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그럼 녀석들부터 만나러 가야겠어요.”
“잘 생각했어. 나는 얼른 가서 가게 열 준비를 해야겠다, 더 늦기 전에!”
샤르망은 그런 페페를 가게까지 안전하게 보내줬다.
이제 온전히 몸으로 돌아온 터라 원래대로 마력을 펑펑 써도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포털을 쓸 때 전혀 타격이 없었다.
페페가 돌아가니 분위기가 삽시간에 차분해졌다.
샤르망이 아힐에게 뭔가 말하려는 찰나 아힐이 그녀를 먼저 떠밀었다.
“자, 페페 말대로 제자들이 오매불망 기다렸을 테니 얼른 보러 가.”
“아, 응? 아냐, 천천히 가도…….”
“그동안 내가 왕과 대화 하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다녀와.”
그 말에 샤르망이 휙 몸을 돌렸다.
“그럼 차라리 같이 가는 게 더 낫지 않아? 녀석들은 나중에 만나러 가도 상관없어.”
“심각한 이야기 아냐. 일전에 주고받은 대화가 있어서 그래. 다녀오면 어차피 같이 가야 하니까 천천히 다녀와.”
“앗, 정말 그래도 되는…….”
“자자, 갑시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샤르망은 얌전히 아힐의 말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힐과는 오후에 다시 만나기로 한 샤르망은 모자 깊이가 깊은 로브를 몸에 둘둘 두른 채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날씨가 날씨인지라 다들 옷차림이 가벼워져서 로브를 두르는 것만으로도 눈에 띄겠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샤르망 노엘 켄더스인지 모른다고 해도 만에 하나 알아채면 곤란할 테니까.
그래도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어서인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샤르망은 후드를 뒤집어쓴 채로 제자들의 집 문을 두드렸다.
당분간은 몸을 사린다고 했으니 안에 있을 텐데.
달칵.
다행히 금방 문이 열렸다.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문을 여냐고 물으려다가 제자들을 놀라게 해주려고 입을 딱 다물었다.
“스승님 맞네. 어차피 열려 있는데 뭐 하러 문을 두드…….”
라디가 문을 열어 맞이하다가 뚝 말을 멈췄다.
샤르망은 후드로 얼굴을 모두 가린 채 고개를 푹 숙인 상태였다.
“왜? 샤르망 아냐?”
안에서 펠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디가 문고리를 잡은 채로 허리를 숙여 샤르망의 얼굴을 보려고 했다.
“뭐야, 스승님, 왜 얼굴을 숨겨? 오늘 뭐 하고 왔길…….”
그 순간 샤르망이 고개를 들었다.
라디의 말문이 콱 막혔다.
그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뭐 그렇게 놀라.”
놀라게 하려고 했으면서 샤르망이 멋쩍게 말했다.
막상 라디를 보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쑥스럽고 어색함부터 다가왔다.
“…….”
라디가 입을 벌린 채 샤르망을 한참이나 뚫어져라 쳐다봤다.
라디는 보다 못한 샤르망이 그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가볍게 치고 나서야 정신 차렸다.
“스승님!”
그러고는 샤르망을 와락 껴안았다.
“왜 이래, 징그럽게. 미리 말했었잖아.”
“그래도! 오늘 돌아올 거란 소리 안 했잖아!”
라디의 소란에 샤르망은 안으로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라디의 힘은 펠릭만큼이나 세서 더 있다간 뼈가 으스러질 것 같았다.
샤르망이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의 소란을 듣고 방에서 나오던 펠릭과 엘타인이 그대로 멈춰 섰다.
후드는 이미 라디 때문에 뒤로 벗겨졌고, 안으로 들어온 이상 더 쓰고 있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샤르망은 아예 로브도 벗어버렸다.
“스승님.”
펠릭도 라디만큼이나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엘타인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이지?”
고작 본래 몸으로 돌아와 인사를 하는 건데 이렇게 어색할 줄이야.
페페의 몸으로 제자들과 마주했을 땐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스스로도 놀라는 중이었다.
펠릭이 성큼성큼 다가와 커다란 팔로 샤르망을 번쩍 들었다.
“안 내려놔?”
졸지에 인형처럼 들어 올려진 샤르망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 샤르망, 아니 스승님 맞습니까?”
“얼굴도 잊었어?”
“다른 녀석이 스승님 행세를 하나 했는데 말투 보니 정말 스승님이 맞는 것 같습니다.”
펠릭의 농담에 헛웃음을 흘린 샤르망이 저를 단단하게 들어 안아 올린 펠릭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 맞으니까 내려놔, 얼른.”
좀 더 감동적인 재회를 기대했는데, 이들에게 그런 걸 기대한 자신이 바보였다.
“완전히 돌아온 거, 맞지?”
엘타인이 물었다.
“그래. 그때 말했던 대로 이제 완전히 돌아온 거 맞아.”
“이제야 정말 스승님 얼굴을 보네.”
엘타인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샤르망이 한걸음 뒤로 물러서 세 제자를 한눈에 담았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일 준비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