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주술의 기준이 된 남자의 숨이 끊어지고 남아 있던 남은 샤먼의 혼이 빠르게 육체를 빠져나갔다.
그것은 강력한 주술의 시작이었다.
이렇게까지 복잡한 주술은 륀트벨의 샤먼들도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샤먼들은 저주를 성공시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며 위험을 무릅써야 했고 고위 샤먼들의 힘이 가득 들어가야 했지만 상대방은 무려 마탑의 주인이었다.
샤먼들의 한껏 응집된 힘과 염원 그리고 목숨이 걸려 있는데 실패의 위험까지 있었다.
라칸은 샤먼들의 수많은 탐색 시도 끝에 샤르망 노엘 켄더스의 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의 방해공작에 의해 그 몸의 주인을 알아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 샤먼들은 샤르망 노엘 켄더스가 들어 있는 몸의 정체도 밝혀냈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는 샤르망 페페의 몸에 들어 있는 게 확실합니다.’
‘샤르망이 맞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대체 무슨 심경 변화인지.’
방해꾼의 정체가 마탑주라는 사실을 알아챈 순간, 라칸은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까지 륀트벨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존재가 기어코 또 라칸을 방해하고 있었다.
샤먼들이 그것을 알아내는 데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이 주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샤먼들은 숨이 다하면 반드시 자연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의 혼으로 태어난다고 믿고 있지만, 그렇다고 라칸의 손에 죽는 게 두려운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얼마 전 샤르망 페페가 엘리움과 함께 소로 숲에 접촉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라칸이 소로 숲을 주목하기도 전부터.
샤르망 페페의 몸이 엘리움 안에 있을 때는 마탑주의 방해 때문에 주시하기 어려웠지만, 소로 숲을 오가는 사이에는 ‘샤먼의 눈’이라는 주술을 걸어 그녀의 행적을 파헤칠 수 있었다.
물론 그마저도 마탑주의 방해가 있어, 단 한 번,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에만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샤르망 노엘 켄더스가 확실하다는 것만 확인하면 되었기에 그 한 번으로도 충분했다.
그녀가 샤르망 노엘 켄더스라는 걸 알고 나선 아예 엘리움 전체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샤르망의 행동도 파악이 되었는데, 라칸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간 샤르망의 행적을 보면, 제 계획을 죄다 엘리움에 가져다 바칠 심산이 아니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대체 왜? 갑자기.
몸이 바뀌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이것저것 벌이기 시작한 모양인데, 라칸은 아직 샤르망 노엘 켄더스의 그런 급격한 심경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라칸에게만 충성했었다.
그런데 페페의 몸에 들어가자마자 해온 행동을 보면 꽤 오래 전부터 라칸의 뒤통수를 칠 계획을 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어떻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엘리움과 내통을 했는지는 알 길은 없지만 그건 이제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감히 이런 식으로 제 손을 떠나려고 하다니.
그녀의 모든 것, 숨결까지도 제 것이거늘.
샤르망 노엘 켄더스는 자신이 살라면 살고 죽으라면 죽는 그런 삶을 살아야 했다.
‘찾았으니 다시 데려와야지.’
샤르망 노엘 켄더스를 제 시야 안에 두어야 이 엉키고 엉켜 들들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기회에 마탑주를 치우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샤르망은 일을 수행할 땐 피도 눈물도 없이 그저 명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 같아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조금만 파고들면 생각보다 쉽게 정을 주는 여자다.
그렇기에 라칸은 그녀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제자라며 거두어들인 같잖은 놈들을 써먹을 때 그랬듯, 이번에도 똑같이 조금만 쿡 찌르면 반드시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샤르망 노엘 켄더스.
다시 제 발로 스스로 자신에게 오길.
저주가 성공적으로 발현되었다는 신호를 받은 샤먼의 보고를 듣자마자 라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무렵, 샤르망에게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아힐은 갑자기 가슴에 낯선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통증은 이내 사라졌고, 약간의 찝찝함만이 남았다.
“…….”
다른 때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겠지만 그는 이것이 단순한 통증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런.”
방심했나.
아힐은 다시 포로들을 심문하던 방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
의식이 남아 있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한 샤먼의 발밑에 짙은 핏자국이 몇 방울 뚝뚝 떨어져 있었다.
그가 이 방에서 나가기 전까지는 없었던 것.
아힐이 빠르게 다가가 그 샤먼의 턱을 잡아 들어올렸다.
의식이 없었다. 아니, 단순히 의식을 잃은 게 아니라 숨이 끊어져 있었다.
“하…… 저주로군.”
가슴에 통증을 느꼈으니 목표는 심장일 것이다.
목숨까지 스스로 끊어가며 건 저주라니.
풀 방법이야 찾으면 되겠지만 어쨌든 까다롭고 귀찮은 게 사실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녀를 이곳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게 샤르망과 함께 바로 왕을 찾아가려고 했었다.
후폭풍은 있겠지만 그마저도 마땅히 책임질 자신이 있었다.
하루빨리 그녀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샤르망도 몹시 기뻐할 것 같은데.
그럼 조금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샤르망과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힐은 단순히 그녀를 곁에서 지켜본다기보다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아힐의 계획대로 된다면 샤르망이 예쁜 미소를 보여주겠다 싶어 기분이 좋아졌었는데, 잠깐 방심하는 바람에 귀찮은 일이 끼어들어 버렸다.
우선 무슨 저주인지부터 알아봐야겠다.
“며칠 걸리겠네.”
계획이 틀어진 아힐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