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92)화 (91/148)

“응?”

“같은 시간과 공간에 같이 있게 됐으니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을 거야.”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만 우린 지금 비밀 작전을 수행 중이니까 원래 서로의 몸으로 완전히 돌아가려면 더 있어야겠지?”

페페가 옆구리에 팔을 얹고서 말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페페를 따라 고개를 끄덕이던 샤르망이 ‘아’ 하고 고개를 들었다.

“내 몸으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는 건가?”

아힐이 바로 알아듣고 물었다.

“응, 라칸이 여기저기서 날 찾고 있어. 당분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해. 우선 급하게 미끼를 걸어놓긴 했지만 그건 아주 잠시간이야. 곧 다시 이곳을 찾아올 거야. 이미 페페까지 노리고 있으니까.”

“그럼 나랑 같이 움직여.”

스스럼없이 같이 위험에 뛰어들자는 그에게 샤르망이 서둘러 저지했다.

“위험할 거야.”

“혼자라고 안 위험할까. 내가 뒤에서 지원할게. 마력을 다루는 건 내가 더 나을 테니까. 이동하기도 편할 거고. 네 말대로 위험해지면 내가 움직이는 게 나아. 제자들을 데려갈 순 없잖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 또 빚을 지게 되는데.’

“녀석 말대로 해. 네가 몸을 자유롭게 쓸 땐 열심히 여기 숨어 있을게. 마탑 안에서는 추억을 따로 찾아서 흡수하지 않아도 되거든. 마법사들 괴롭히고 있으면 돼.”

샤르망이 망설이는 사이 페페가 거들었다.

마지막의 ‘마법사들을 괴롭히면 된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다들 선뜻 도움을 주겠다는 말에 샤르망이 마지못해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할게. 고마워.”

“그럼 그 전에 나 잠시 가게에 들렀다 와도 될까?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서 다녀오고 싶거든. 알렉산드로도 보고 싶고.”

페페가 눈꼬리를 쭉 내리며 부탁했다.

“당연히 가능하죠. 천천히 다녀와도 됩니다.”

샤르망은 흔쾌히 페페에게 다녀오라며 떠밀었다.

다행히 아힐이 페페를 가게까지 단숨에 보내줬다.

가장 분위기가 밝았던 페페가 사라지자 공간은 단숨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페페가 돌아오기 전까지 마탑 안에 머물게 된 샤르망은 아힐에게 말할 타이밍을 노렸다.

“왜, 할 말 있어?”

“아, 다른 건 아니고. 아까…… 페페가 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서.”

“또 무슨 골치 아픈 말을 했지?”

“신을 속인다고 했어. 신의 눈을 피해야 한다고. 그게 무슨 말인지 물어봐도 될까? 왜 너를 희생하고 제자들을 희생시켰는데 네가 또 이렇게 힘들게 나를 찾았어야 했는지 알 수 없어서.”

“아, 그렇군. 그게 궁금했던 거구나.”

“아까 너도 페페한테 신의 노여움을 사면 어쩌냐고 했으니까.”

“음…….”

아힐이 할 말을 고르듯 뜸을 들였다.

“물어보면 답을 해줘야지.”

“뭐든 다 괜찮아. 들을 준비 됐어.”

샤르망이 덧붙였다.

“제물을 바쳐 시간을 되돌리긴 했지만 그게 생각보다 복잡했어.”

“……응.”

“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이 세계의 규율을 어기는 것이지만 네가 기억을 온전히 갖고 있으려면 이 세계의 규율을 한 번 더 어기는 셈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제물도 더 필요했다고 말했다.

“나로선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했지만 그로 인해 그 부작용이나 신의 노여움을 네가 혼자 다 받을까 봐 걱정이 됐어. 아니, 실은 겁이 났다고 할까.”

이미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겁을 낸다고?

아, 인간이 범주를 넘어서 신에 대항하는 힘을 가지면 신이 견제를 한다고 했던가.

신이 다루어야 할 힘을 인간이 다루었으니 그 괘씸함은 오죽했으랴.

전설로나 들었을 법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저주받은 요정족인 샤르망 페페가 있는 걸 보면 그의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님을 분명히 알았다.

샤르망은 시간을 되돌리기로 한 그의 결심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거기까지 계산을 했을 줄은 몰랐다.

“영혼과 몸을 분리해 신의 눈을 속일 수밖에 없었어. 한데 내 예상보다 찾기가 꽤 버겁더군. 아군이 아주 열심히 방해하기도 하고.”

아군은 페페를 말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샤르망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 얼굴을 본 아힐이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어. 뭐, 결국은 다 성공했잖아.”

“혹시 네가 더 힘든 일은 없는 거지?”

아힐이 눈썹을 치켜뜨더니 이내 수긍했다.

“물론이지.”

아힐의 대답에 샤르망은 크게 안심했다.

“아, 참. 밖은 날이 벌써 밝았을까?”

“아마도.”

제자들이 오늘도 찾아오진 않았겠지.

샤르망은 제자들이 부디 페페에게 사고를 치지 않길 바라며 페페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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