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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91)화 (90/148)

샤르망 노엘 켄더스.

샤르망은 자기 몸으로 돌아온 걸 깨달았다.

‘찾은 건가?’

기쁨도 잠시.

샤르망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저번에 아힐과 함께 왔던 공간인 것 같은데 지금은 저 혼자뿐이었다.

샤르망은 나가는 문을 찾다가 포기했다.

그가 있어야 문이 생기는 건지.

애초에 저번에 왔을 때도 걸어서 들어오진 않았었다.

“기다려야…… 하는 건가.”

그럼 샤르망 페페도 본래의 몸을 되찾은 걸까?

“그래야 할 텐데.”

샤르망은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오길 기다리며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도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샤르망의 눈앞에 희미한 빛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이내 강한 빛과 함께 주변이 환해졌다.

극도의 눈부심에 샤르망이 팔로 눈을 가렸다.

빛이 사라지며 잠시간의 정적이 일었다.

샤르망이 팔을 거두려는 순간.

“와우!”

당차고 밝은 음성이 공간에 쩌렁쩌렁 울렸다.

샤르망의 눈이 커다래졌다.

“……페페?”

주먹으로 허리를 통통 두드리던 페페의 눈도 샤르망처럼 커졌다.

“너어?”

그리고 큰 보폭으로 빠르게 다가오더니 턱 하고 샤르망의 양어깨를 쥐었다.

“……나 돌아왔네?”

페페는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요리조리 샤르망을 살폈다.

“아힐이…… 찾은 겁니까?”

“아마도! 아마도 걔가 네 몸을 찾은 게 맞는 것 같은데…… 그 녀석은 어딨지? 여기 오기 직전에 마주쳤는데, 그 뒤로 모르겠어. 왜 같이 안 왔지? 설마 나 혼자 왔나?”

페페가 여전히 샤르망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로 고개만 돌려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혼자 와?

‘설마 내 몸을 찾으려다가 시간 안에 갇혀버린 것은 아니겠지?’

실은 그가 의문을 풀어주고서도 계속 남은 의문이 있었다.

아힐의 전부를 걸고도 모자라 세 제자까지 걸고 이 땅의 요정족인 샤르망 페페까지 힘을 썼는데 어째서 그가 더 고생해야 하는 건지.

행여 그가 잘못되기라도 했을까 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엘리움을 지키기 위해 아힐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해도, 이따금 보았던 그의 좋지 않던 안색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큰 힘을 가진 강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제 몸을 지탱하지 못할 정도의 충격이라면 평범한 사람은 절대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거니까.

멀쩡한 건 같았던 페페도 뒤늦게 충격이 몸에 느껴지는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아유, 힘들다. 늙는 기분이라는 건 이런 걸까. 되게 힘드네.”

무릎과 팔을 통통 두드리며 페페가 중얼거렸다.

샤르망은 페페 주변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 몸을 두드린 페페가 충격이 어느 정도 가셨는지 ‘읏차!’ 하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샤르망 앞에서 생글생글 웃더니 이내 팔을 벌려 샤르망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느닷없이 안긴 페페 때문에 놀란 샤르망이 두 손을 든 채로 어정쩡하게 서서 버텼다.

“아, 저기…….”

“휴, 드디어 만났네. 엘리움은 무사한 거지? 응? 그런 거지?”

“네, 엘리움은 지금 무사해요.”

샤르망이 침착하게 답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아힐은 괜찮을까요?”

“음, 아마도? 녀석은 금방 올 거야.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 아주 평화로운 시간에 잡혀 있었을 때 만났거든.”

“평화로운 시간에?”

“사실 신의 눈을 피하느라 시간을 하도 많이 옮겨 다녔거든. 여행을 하다 말고 멈춘 적도 많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본래 내 몸은 엘리움을 벗어날 수조차 없었던 걸.”

그 때문에 페페는 먼 곳까지 갔다가 엘리움으로 다시 붙들려 와 의도치 않게 다른 시간으로 휩쓸려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아…….”

페페는 남 얘기하듯 쉽게 말했지만 샤르망은 오히려 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신의 눈을 피하다니.

아무래도 아힐이 무사히 돌아온다면 다시 한번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심지어 맛있는 걸 먹는 동안에도 시간이 뒤바뀌기도 했다고 했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널 부르느라 어찌나 힘들었던지.”

“전 아무리 페페 씨를 부르려고 해도 안 되던데. 요정족의 능력인가요?”

페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페페가 안심하라고 말해줬지만 샤르망은 쉽게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지난번에 이곳에 잠깐 머물다 갔을 때도 눈 깜짝할 새에 몇 시간이나 흐른 후였기 때문에 더 안심할 수 없었다.

“나 때문에 모두가……. 정말 미안합니다.”

“미안하긴! 그보다 녀석들은 모두 잘 지내지? 노스는? 알렉산드로는? 꼬맹이 알론소도 잘 있니? 이따금 너를 통해서 몰래 보긴 했지만 다 보진 못해서 말이야. 궁금했거든!”

페페의 몰아치는 질문에 샤르망이 연신 끄덕였다.

“아주 잘 있어요. 알론소는 매일 아침 먹을 걸 배달도 해주고, 알렉산드로 어르신은 오셔서 안부를 물어보세요. 다른 사람도 모두 잘 있고, 엘리움의 왕도, 왕자도요. 지금…… 모두가 평화로워요.”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지만.

샤르망은 애써 뒷말을 삼켰다.

“정말 다행이다. 네가 애써줬구나? 고마워. 당분간은 이곳에 머물러야 할 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응?”

“제가 한 건 없는데요. 다들 오히려 저를 챙겨주셨을 뿐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샤르망의 얼굴에 수줍음이 살포시 번졌다.

페페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빛이 다시 공간에 스며드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갑자기 환해진 시야에 샤르망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악! 눈부셔!”

페페의 외침과 함께 번쩍! 한 번 더 강하게 빛이 뿜어지더니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후.”

누군가의 개운한 한숨과 함께 샤르망이 고개를 들었다.

아무도 없던 곳에 아힐 더프가 나타났다.

“아힐.”

“오, 드디어 왔구나. 왜 이렇게 늦었어?”

샤르망에게 막 알은체를 하려던 아힐이 페페를 보자마자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너, 내가.”

“왜? 왜? 왜?”

왜 그러지?

페페는 시치미를 뗐지만, 아힐이 왜 저러는지 아는 사람처럼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더니 샤르망의 뒤에 숨어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졸지에 방어벽이 된 샤르망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아힐을 말렸다.

“왜……? 혹시 문제라도 생겼어?”

페페를 잡으러 성큼 다가섰던 아힐이 숨을 돌리며 손을 들어 얼굴을 쓸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몸은 괜찮아? 어지럽다거나 이상하진 않아?”

아힐이 샤르망을 살피며 걱정했다.

샤르망이 뒤에 허리를 꼭 붙들고 숨어 있는 페페를 슬쩍 보고 다시 돌려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은데……. 늦게 와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어. 너야말로 어디 안 좋거나 그런 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고생을 조금 했을 뿐이지. 내가 분명히 거기서 절대 요정족의 기운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아힐이 살짝 페페를 흘겼다.

허리를 쥔 페페의 손에 힘이 들어가길래 고개를 돌렸더니 샤르망의 등 뒤에 콕 숨은 페페가 간절하게 샤르망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하면 안 돼.’

페페가 입만 뻥긋거리며 말했다.

‘네 몸은 걱정하지 마! 누가 안전하게 데려다줬거든.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오늘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

전에도 페페가 비밀로 해달라고 외쳤던 기억이 났다.

샤르망도 시치미를 뚝 뗐다.

“페페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

“네게 계속 접촉하려고 기운을 쏟아냈단 말이지. 그럼 네 몸을 더 찾기가 어려워진다고. 그러다가 신의 노여움이라도 사면.”

“아냐. 하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그치?”

페페가 샤르망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샤르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무것도 못 느꼈어.”

그러자 아힐의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자면 너는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나니까 그만두는 게 좋겠어.”

“내가?”

샤르망이 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완벽하게 했는데?

“거짓말 할 때 보면 시선이 아래쪽으로 향하던데. 다른 사람은 말 안 해주던가?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할 때도 그랬어.”

“으음…….”

샤르망은 그가 말한 대로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말끝을 흐렸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거짓말도 잘하고 숨기는 것도 잘한다고 여태껏 생각했는데 말이다.

다소 충격적이었으나, 티가 났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지혜를 빌려달라고는 했지만, 페페와의 약속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말하지 않았으니.

“어, 어쨌든 아무것도 못 느꼈어.”

“뭐, 그래. 어쨌든 네 몸을 찾았으니 좋게 생각하기로 하지. 더 일찍 찾았어야 했는데 이제야 찾았네. 그동안 둘 다 고생 많았어. 이제 다 돌아온 건가.”

아힐이 샤르망을 보며 씩 웃었다.

어쩐지 몹시도 후련하고 개운해 보였다.

샤르망은 뒤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페페는 이제야 안심한 듯 꼭 껴안고 있던 팔을 풀고 방긋 웃었다.

둘이 웃는 걸 보고 나서야 샤르망은 미안한 마음을 내려놓으며 같이 마주 보고 웃었다.

“그럼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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