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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이 너무 따뜻해서 문제다 (33)화 (33/148)

“어?”

“정보가 꽤나 구체적이어서. 거기다 동쪽이라면 륀트벨에서는 오히려 빙 둘러 와야 하는 곳 아닌가. 늪도 있고.”

“아, 그러니까.”

“말해보게.”

왕은 몸을 기울이면서까지 샤르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샤르망은 땀이 삐죽 흘렀다.

“그냥 허를 찌를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해보니 그쪽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을 해서…….”

샤르망이 아무 말이나 덧붙였다.

“음, 그런 건가. 뭐 추측이야 할 수 있으니 뭐 그건 그렇고.”

샤르망이 침착하며 다시 덧붙였다.

“그리고 아무래도 근시가 아닌 꽤 오래 준비하는 모양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먼저 칼을 겨눌 표적을 고르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일부러 먼저 표적이 되지 말자는 거로군.”

“지금 상태로 신경을 긁어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그들이 지금까지 해온 행태를 봐서라도 일리가 있는 얘기군.”

제물 건과 방금 샤르망이 말한 7년 후 일어날 전쟁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하지만 벌어질 것이 확실한 전쟁을 혼자 막으려고 하느니, 왕에게 미리 귀띔해도 좋을 것 같았다.

실제로 륀트벨이 이때부터 엘리움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기도 하고.

“그러니 우리도 그들을 이용하자는 이야기야. 나중에 달라지더라도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는 편이 륀트벨 외의 타국을 견제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쓰일 것 같으니.”

왕이 근심 어린 얼굴로 천천히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를 찍어 누르는 쪽에 속했던 샤르망으로서는 그의 머릿속을 헤아려보려고 해도 그의 표정에 담긴 근심을 다 읽진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다 샤르망과 왕의 눈이 마주쳤다.

“그대가 륀트벨을 그렇게 잘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 그대 혹시…….”

심각한 목소리에 샤르망이 움찔했다.

역시 이 부분은 조심하는 게 좋았으려나?

하지만 중요한 건이라서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샤르망이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남들이 볼 수 없는…… 신의 눈이라도 갖게 된 건가?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게 됐지? 아까도 그렇고 여태까지 보아온 그댈 생각하면 지금 하는 소리가 없는 소리만은 아닐 테고……. 그대 입에서 작전 회의 때나 나올 만한 말을 들으니 정말 새롭군.”

샤르망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리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절대.”

“그럼?”

“어…… 그러니까.”

샤르망이 할 말을 찾느라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그러니까?”

샤르망이 느닷없이 손을 쭉 뻗어 문을 가리켰다.

“……마탑주. 아, 마탑주가 다 알려줬어.”

“아힐 더프가?”

이번에도 샤르망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붕붕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렇구먼. 하긴 그는 모르는 게 없는 자지. 그래서 그랬군.”

“어, 맞아. 그래서 그런 거야.”

왕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자 샤르망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말인데.”

“편히 말해보게.”

왕은 흔쾌히 말해보라는 듯 손짓했다.

“이 기회에 마법사 말고도 실력 있는 검사 배출에도 힘을 쓰는 게 어떨까 싶은데. 마력 증폭기야 아직 확실치 않으니 먼저 진행할 수 있는 것으로.”

직접 케니즈 사디나르와 그의 동료들과 검을 부딪쳐 봐서 알고 있었다.

엘리움에는 분명히 인재들이 많았다.

다만 딱 그 인재들뿐이다.

나머지는 전무하다시피 할 정도로 수가 적어서 한 사람이 일당백을 맡아야 할 정도로.

그래선지 검술 대회도 작은 규모로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의아하게 쳐다보던 왕이 표정을 굳혔다.

덩달아 샤르망도 긴장했다.

“정말 그대 혹시 뭔가 알게 된 건가? 그대가 보기에 뭔가 수상한 거라도?”

아직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는데, 라며 왕이 중얼거렸다.

샤르망이 손을 내저었다.

“그냥 아까 둘의 대화를 듣다 보니 겸사겸사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서 말한 것뿐이야. 사디나르 공도 있고, 엘리움에 인재들 많으니까.”

“아, 물론 사디나르 공은 대단한 인물이지.”

왕의 얼굴이 훨씬 편안해졌다.

“매년 여는 검술 대회 규모도 지금보다 크게 키워 사기를 높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샤르망은 말한 김에 이것저것 조언을 덧붙여 한참 왕과 대화를 했다.

마탑주가 알려줬다는 변명에 대부분 수긍하며 대화를 이어가던 왕이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그대에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원인은 뭔가?”

“음?”

“원래 이런 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 않나. 물론 그대가 엘리움을 지키는데 큰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매번 심드렁하게 듣기만 했잖나.”

“아…… 어…… 그러니까.”

“그러다 보통 ‘응’, ‘아니’ 두 가지로만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니 꼭 딴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말일세. 단지 차분해진 말투 때문인가?”

“아.”

샤르망은 집중해서 떠들다 보니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라도 하나 더 얹으려는 마음으로 말을 하다 보니 눈치를 보며 샤르망 페페인 척하려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 그것도 마탑주가.”

“마탑주가 조언을 해줬다고?”

“맞아.”

“별일이군. 나로선 좋은 방향이지만 말일세.”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니 의아한 점이 느껴졌다.

이상하리만큼 왕이 샤르망 페페라는 인물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녀의 대답에 더 큰 의문을 품을 수 있는데도 전혀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잘못 느낀 게 아니라면, 왕은 샤르망 페페가 무슨 말을 하든 다 믿는 눈치였다.

아무리 후작 작위를 가진 귀족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왕의 의견에 개입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유는 몰라도 지금 샤르망에게는 그 점이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어쨌든 이제는 정말 본론을 이야기할 때였다.

제자들을 안전하게 빼돌릴 수 있는.

“큼, 그 이야기는 여기쯤 하면 될 것 같고 다시 본론으로 가서 그 노예, 들은…….”

왕과 다시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목이 메는 느낌에 샤르망이 다시 헛기침을 했다.

“제물로 쓰지 않고 살려두면 어떨까 싶은데. 큼, 정말 그쪽에서 버린 패들이라면 죽일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샤르망의 말을 또 다른 해석으로 보자면 다시 엘리움의 사람 중 누군가 제를 위해 희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려고 라칸이 말하는 ‘노예’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들을 살리자고 하니까.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소리긴 했다.

하지만 샤르망은 정말 제자들을 어떻게 해서든 살리고 싶었다.

자신이 희생을 해서라도.

그것이 샤르망 자신이 해야 할 책임이라고 여겼다.

왕이 탐탁지 않아 하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유능한지 알려주면 재고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제 눈에는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제자들이었지만, 륀트벨에서는 손꼽히는 인재들이었다.

엘리움에서도 그럴 것이 틀림없었다.

라디 피제르타와 펠릭 크라손은 부족한 검사를 키워내는데 큰 힘이 될 것이고, 엘타인 샤이어는 마법에 능하니 아힐 더프를 도와 마법사 양성에 힘쓸 수도 있었다.

죽음 앞에 명예 따윈 필요 없음을 온몸으로 체감한 샤르망으로서는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을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수십 가지 방법을 생각해오긴 했지만 밤새 왕을 붙잡고 이야기하다 보면 하나 정도는 통하지 않을까.

시간을 돌아왔지만 샤르망은 이 시기에도 이미 쌓아놓은 악명이 있었다.

그건 사라지는 게 아니니 언젠가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게 되면 이곳 엘리움을 떠나야겠지만, 제자들에게는 아직 여지가 있었다.

다방에 적을 둔 자신과 달리 그들은 엘리움과 전쟁 전까지 크게 원한을 살 짓은 안 했으니까.

대답이 없자 샤르망이 초조하게 덧붙였다.

“물론 륀트벨에서는 모르는 일이어야겠지만.”

샤르망은 말을 마치고 초조하게 왕의 대답을 기다렸다.

샤르망의 머릿속이 떠들썩한 와중에 잠자코 듣고 있던 왕이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오히려 황당해하거나 불쾌감을 내비칠 줄 알았던 샤르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웃지?’

왕은 샤르망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대는 아무래도 그렇게 말할 것 같았지.”

마치 하루 이틀 일이 아닌 듯 익숙한 말투였다.

“…….”

샤르망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멍하니 왕을 쳐다봤다.

말할 것도 없이 재고해 주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어차피 그렇게 말해봤자, 라고 할 것인지.

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보다 다소 눈썹이 내려앉은 표정이었다.

“항상 그대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말일세.”

“무슨……?”

“그대가 제는 모두 그대 몫이라고 하기는 했으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매번 그대의 피를 보게 하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말이야.”

“…….”

샤르망이 눈을 깜박였다.

“제를 지내는 것이 엘리움을 위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생명을 희생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 결정에 그대의 입을 빌려서 미안하네.”

샤르망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 말은 샤르망이 방금 내뱉은 말을 하게끔 왕이 유도했다는 뜻이었다.

‘생명을 희생시킬 수 없다라.’

그렇다면 이전에도 인간을 제물로 삼아 제를 지내지 않았다는 뜻과 같았다.

살리드의 신에게 제를 지낼 때 필요한 것은 요정족의 피 또는 인간이었다.

실제로 엘리움의 선왕 라고스 뭄 엘리움 때는 인간을 제물로 사용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건 몇 번이고 확인했으니 확실한 정보였다.

왜냐하면 륀트벨이 엘리움을 정복한 후에는, 그 제가 륀트벨의 몫이 될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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