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transcendence - 초월 (2)
201.
***
일주일 뒤.
드디어 노벨 문학상 발표 날이 다가왔다.
벌써부터 이토 히나타 작가의 저택 앞엔 극우 지지자들이 플래카드까지 든 채 미리 축하하고 있었다.
수십 명이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은 흡사 당선을 앞둔 집권당 사저 앞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시민들 역시 이토 히나타의 수상을 확신하는 분위기.
“이토 작가님이 수상하면 벌써 우리나라의 세 번째 노벨 문학상인가?”
“그래. 벌써 세 번이야. 아시아에선 전무후무한 기록이지.”
“무조건 타겠지?”
“그야 당연하지.”
“그래도 논란이 좀 걱정되긴 하는데...”
“그거야 한국의 일방적인 논리지. 거기에 혹하고 넘어가는 게 멍청한 거고.”
일본은 오랜만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배출에 들뜬 분위기.
물론 이토 히나타 작가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노벨 문학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으니까...’
여론을 바꾸기 위해 각종 강연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뒤를 봐주는 전범 기업을 통해 심사위원들에게 거금의 로비까지 했다.
깨끗한 일, 더러운 일 가리지 않고 오로지 노벨 문학상을 타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제발... 제발...’
이제 발표만 남은 상황.
초미의 관심사가 이토 히나타 작가의 저택으로 향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작가님이 안타면 누가 타겠습니까?”
비서가 위로한다.
그래, 자기도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찜찜한 거지...’
고민해보면 권서준 때문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승리하는 법이니까요.’
지미 스미스 쇼에 나온 권서준.
그의 자신만만한 눈빛은 모니터를 넘어 이토 히나타 작가의 뇌리에 박혔다.
‘아니야. 이번엔 무조건 나야...’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애써 털어낸다.
그리고 이내 숨을 고르며 TV 화면을 바라본다.
잠시 뒤.
스웨덴 한림원의 프레스 센터.
금박 테를 두른 하얀 문이 열리고 정장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나온다.
매츠 모스텐 스웨덴 한림원 상임이사였다.
그는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중저음의 목소리로 외쳤다.
“발표하겠습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뛴다.
가족과 직원들의 시선이 모두 상임이사의 입에 집중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작가 미하일 쿠르코프입니다.”
뜻밖에도 상임이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수상자는 이토 히나타가 아니었다.
“...”
이토 히나타의 저택엔 침묵이 흐른다.
아니,
그날 일본 문학계 전체가 침묵했다.
***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에 이토 히나타의 이름은 없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야.’
애초에 내 목표는 노벨상이 아니었다.
그런 정치적인 상은 받을 생각도 없었고.
게다가 수상자의 나이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기대조차 없었다.
내 목표는 단 한 가지.
이토 히나타의 이름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명단에서 지우는 것뿐.
‘날조가 사실이 되는 건 막아야 하니까.’
그리고 내 목표는 정확히 성공했다.
금년도 노벨 문학상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하일 쿠르코프 작가가 받았다.
이어서 상임이사의 선정 이유 발표가 이어진다.
“처절한 전쟁의 아픔을 전통적인 작품 형식을 넘어 새로운 형태로 대중에게 전달했습니다. 전쟁을 바라보는 담담하면서도 세밀한 시선은 인류로 하여금 다시 한번 전쟁의 참상을 말해주는 상상력을 보여줬습니다.”
오랫동안 반전 작품을 쓴데다가 러시아 침략 전쟁에 대한 반대 의견까지 더해져 수상으로 이어진 것.
역시나 정치적인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이었다.
어쨌거나 이토 히나타의 수상 불발 보도는 내게 꽤나 큰 이득이 되었다.
“대박이다. 오히려 이토 히나타 작가 덕분에 네 작품이 더 잘나가는 거 같은데?”
장현웅이 신이 난 얼굴로 말한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전 세계에서 초청이 이어졌다.
“미국, 영국, 캐나다... 와 초청만 다 다녀도 세계 일주를 하겠는데?”
그러다가 이내 장현웅의 표정이 굳어진다.
“어라, 근데 여긴 좀 의외네.”
“어딘데?”
장현웅이 메일을 보여준다.
뜻밖에도 일본에서의 초청이었다.
“이건 거절하는 게 맞겠지?”
장현웅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러나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가야지.”
“정말로? 여길 가겠다고?”
“응. 현장 분위기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는 기회인데 거절할 필요는 없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
다음 날, 늦은 오후.
나는 일본으로 떠나기 전 외출을 서둘렀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또 하나의 열매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현웅아,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를?”
“성 팀장이 보자고 하셔서.”
나는 오랜만에 JW 엔터테인먼트를 찾았다. 가장 큰 이유는 며칠 전 온 성도윤 팀장의 연락 때문이었다.
“아이고, 작가님!”
성도윤 팀장이 웃으며 반긴다.
“잘 지내셨죠?”
“저야 잘 지냈죠. 작가님 소식은 기사로 익히 알고 있습니다. 작품들이 아주 대박이 났던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열매를 거둘 차례죠. 참, 근데 무슨 일 때문에 보자고 하신 거죠?”
“아, 그게...”
성 팀장이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땐다.
“하율이 차기작 들어간 건 아시죠?”
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영화였다.
“전작의 흥행 때문인지 웬만하면 자기 연기에 만족을 못 해요. 매일같이 밤새우다시피 연습하는데 저러다가 쓰러지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성 팀장의 시선을 따라보니 유리문 너머에서 땀 흘려 연습하는 신하율의 모습이 보인다.
어딘가 어두운 표정.
지독한 슬럼프를 겪는 게 분명했다.
“아무래도 제가 백번 말하는 것보다 작가님 한 마디가 더 힘이 될 거 같아서 부탁을 좀 드렸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연기에 대한 끝없는 갈망.
더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
배우로서 아주 훌륭한 태도였다.
‘그럼 선물을 좀 줘야지.’
나는 천천히 연습실 문을 열었다.
신하율은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른 채 연기 연습에 열중이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벗 리처드 버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 자, 작가님?”
뒤늦게 인기척을 느낀 신하율이 놀란 듯 쳐다본다.
“어떻게 오셨어요? 연락도 없이...”
“성 팀장이 부르셨어. 듣자 하니 고민이 있다던데?”
“네? 아, 아니에요.”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은지 다급히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건 여전했다.
“나한테도 비밀로 할 거야?”
“그럴 리가요...”
“그럼 한번 말해봐.”
“...”
한참 머뭇거리던 신하율이 힘겹게 입을 연다.
“그게... 자꾸만 두려워요.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자신도 없어지고요...”
전작의 흥행에 따른 부담감이 원인이었다.
큰 성공을 거둔 배우들이 한 번쯤 겪게 되는 성장통.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여기서 삐끗해 영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배우들도 많았다.
“왜 관객들이 실망할 거로 생각하는 거야?”
“그거야 제 연기가 부족하면 엄청나게 공격할 테니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크게 착각하고 있구나. 관객은 너를 공격하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게 아니야.”
“...네?”
“넌 지금 마치 적과 싸우는 것처럼 연기를 대하고 있어. 하지만 너의 연기를 지켜보는 모든 관객은 결국 네 편이라는 걸 잊지 마.”
“...제 편이라고요?”
“그래. 원래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든 주체는 대상에 이입하게 되어 있어. 자신과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거든.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상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지. 그러니까 굳이 많은 것을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관객은 시작부터 연기자의 편이라고.”
“...”
“그래서 배우의 연기는 단순해야 해. 관객을 감동 시키려고 할 필요가 없어. 그들은 이미 감동받기 위해 스스로 스크린 앞을 찾은 거니까. 그것도 기꺼이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말이야. 이미 배우의 편인 관객에게 억지로 감동을 전달할 필요가 있을까?”
“아...”
신하율은 뭔가 깨달은 듯 허공을 바라본다.
단 한 번의 디렉팅.
그런데 어느새 신하율의 눈동자는 지금 이곳이 아닌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그리고 있는 거야.’
간단한 충고였지만 그 작은 단서만으로 자신만이 만들어갈 수 있는 세상을 창조하고 있었다.
어쩌면 신하율에게 찾아온 시련은 성장을 위해 필요한 요소일지도 몰랐다.
‘언제나 그렇듯 빛이 더 빛나 보이기 위해선 어둠이 필요하니까. 그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빛나는 법이고.’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물론 내 작품도 마찬가지였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빛날 내 작품의 가치.
이제 그 장면을 직접 목도할 차례였다.
***
며칠 뒤, 도쿄 시내.
굳은 표정의 이토 히나타가 차에서 내린다.
노벨 문학상 불발.
일본은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다.
이토 히나타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불발되면서 불어온 후폭풍은 거셌다.
그 사이,
일본 문학계에서 화제가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권서준 작가의 작품 「황금사과」였다.
이젠 하다못해 권서준 작가의 초청 강연회까지 진행되는 상황.
‘정말 말도 안 돼...’
믿기 힘든 현상.
이토 히나타는 그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결국 이곳까지 찾았다.
반년 전과 완벽히 달라진 상황.
‘...’
굳은 표정으로 권서준을 쳐다본다.
어느새 강연이 끝나고 기자들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진다.
“이번 작품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무려 일본에서만 200만 부가 넘게 팔렸고요. 소감 한번 말씀해주시죠.”
“혼자서 성공할 수 있는 작가는 없습니다. 200만이라는 숫자 뒤에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죠. 이 모든 영광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신 동료와 에이전시에 돌립니다.”
예의를 갖춘 일본인 기자의 질문에 권서준은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물론 이토 히나타처럼 부정적으로 권서준을 바라보는 기자도 있었다.
“반면에 일본의 과거 행적에 대해 악의적인 시선이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작품은 일본의 악행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닙니다. 아직도 계속되는 그들의 아픔을 다뤘을 뿐이죠. 고난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자세.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내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담은 아름다운 휴머니티를 통해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게 제가 건네고 싶은 황금사과였고요.”
예의를 갖춘 차분한 답변.
그러나 몇몇 극우 성향을 띤 일본인 기자들은 오히려 심기가 불편한 듯 손을 들었다.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날조에 가까운 작품 아닌가요? 당신 때문에 전 세계에 일본의 이미지가 얼마나 이상해졌는지 아십니까?”
한 기자의 날선 외침에 또 다른 기자도 목소리를 더한다.
“오늘 초청도 그렇습니다. 많은 수의 일본인이 당신 같은 사람의 입국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요!”
더없이 흉흉한 분위기.
그러나 권서준의 입꼬리는 오히려 올라간다.
그래, 그건 비웃음이었다.
그 순간 권서준이 차분히 입을 연다.
“그렇다면 오히려 영광입니다.”
동시에 이토 히나타 작가를 향하는 시선.
눈빛이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말을 내뱉는다.
“진실을 향한 핍박은 어느 시대나 있었으니까요.”
이토 히나타는 그 의미를 모를 수 없었다.
반년 전 자신의 권서준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었으니까.
탕!
총성 없이 날아온 총알 한 방.
이토 히나타의 얼굴이 구겨진 종잇장처럼 일그러졌다.
그래.
완벽한 확인 사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