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transcendence - 초월 (1)
200.
***
일주일 뒤.
엘리자베스 여왕이 보낸 서평이 도착했다.
“대, 대박... 정말로 여왕의 서평이 도착했습니다.”
주상진 편집장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국 왕가의 대표.
여러 가지 정치적인 제약이 있을 수 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의 의지는 확고했다.
‘큰 도움을 받았어.’
물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베네딕트의 서평까지 뒤이어 도착했다.
정성껏 한 페이지를 꽉 채운 베네딕트의 서평은 그가 내 작품에 얼마나 크게 감동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또한 대중들에게 아주 좋은 마케팅 요소가 되겠지.’
벌써 들뜬 주 편집장이 서둘러 서평을 편집자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정확히 석 달 뒤.
한•미•영•일 전역에 한 권의 책이 출시됐다.
바로 나의 차기작.
「황금사과」였다.
***
교토에 위치한 자택.
이토 히나타 작가는 심혈을 기울여 분재를 다듬었다.
호흡조차 조심한 채 가위질하고는 이내 날짜를 확인한다.
‘후우. 이제 한 달 남았군.’
매년 펼쳐지는 노벨 문학상 발표가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는 노벨 문학상은 한 달 전에 먼저 시상자를 선정하고 시상식은 12월 10일 노벨의 사망일에 맞춰서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현재까진 마땅한 후보가 없는 상태.
수상이 명백해진 상황이라 그 어느 때보다 발표 날이 기다려지고 있었다.
“자, 작가님! 작가님!”
그런데 그때, 수행비서가 다급히 거실로 들어온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호들갑이야?”
“죄, 죄송합니다. 근데 이것 좀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비서가 내민 건 바로 어제 출판한 권서준 작가의 신작에 대한 반응 기사였다.
“뭐야? 고작 이 정도로 호들갑을 떤 거야? 애송이가 SF 하나 쓴 게 뭐 대수라고.”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듣자 하니 일제시대를 연상시키는 내용이라던데, 순문학을 지향하는 자신과는 궤가 다른 작품이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비서의 표정이 다급하다.
“근데 이 작품이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아무래도 좀 특별한 사람이 서평을 써서 더 화제가 된 거 같습니다.”
“대체 누가 썼는데? 뭐 기껏해야 정 회장이나 송영도 작가 정도 되겠지.”
이토 히나타 작가가 코웃음 치며 책을 펼친다.
그런데...
첫 장을 펼치자마자 표정이 굳어진다.
“에, 엘리자베스 여왕?”
아니 대체 왜 이 사람이 여기서 나와?
예상 못한 거물급의 등장에 두 어깨가 싸늘해진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작품 내용 때문에 지금 말이 많습니다.”
“...뭐?”
이쯤 되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 히나타는 다급히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뒤,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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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준 작가의 파격 행보 SF 장르]
[작품 「황금사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평 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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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수상자로 유명한 권서준 작가의 차기작이 큰 이슈를 끌고 있다. 그동안 연극과 뮤지컬, 드라마와 소설로 종횡무진 활약하던 권서준 작가는 최근 SF 장르 소설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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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배경을 통해 과거 한국의 가슴 아픈 역사와 아시아 전역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암긴 일제의 악행에 대해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 흐름은 자연스럽게 올해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거론되는 이토 히나타 작가의 작품 「개화」와 대척되는 시선으로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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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가의 소설이 가져온 진실 공방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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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일으킨 화제성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인 일본을 옹호하는 이토 히나타 작가의 이전 행보가 이슈 되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권서준의 작품은 불티나게 팔렸고, 전 세계적으로 연일 품절 대란을 일으킬 정도였다.
덕분에 이토 히나타의 일제강점기 옹호 행적이 하루가 멀다고 기사화되고 있었다.
“이런...”
문학적 세계에 집중하던 시선들이 정치적인 면모를 띄기 시작했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보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주를 이뤘다.
기사를 읽던 이토 히나타 작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다.
‘안 돼.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본인의 평생 업적.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상이었다.
그날 오후.
이토 히나타 작가는 서둘러 스웨덴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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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빠르게 흘렀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나 노벨상 발표를 코앞에 둔 상태.
그사이 내 책은 전 세계 60여 개국에 번역 출판되었다.
“너 정말 대단하다...”
각국에서 진행되는 계약서를 보던 장현웅이 감탄사를 터트린다.
“대단할 건 없지. 그저 뿌린 것에 대한 결실이니까.”
뿌리고, 키우고, 거두는 농사의 원리.
농경 사회 이후로 줄곧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었다.
물론 내가 뿌린 또 하나의 씨앗 역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바로 이토 히나타 작가를 향한 견제.
내 작품으로 촉발된 일제의 추악한 만행이 하루가 멀다고 이슈화되고 있었다.
이토 히나타 작가의 왜곡된 주장 역시 자연스럽게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다.
현재까지의 흐름은 내가 원하는 대로였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었다.
‘아직 미국과 유럽 쪽이 잠잠하니까.’
관심 없는 타국의 상처로 눈길을 끌 수 있는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마침 아주 좋은 무대가 있지.’
나는 자연스럽게 몇 달째 미뤄놨던 일정 하나를 떠올렸다.
“현웅아, 그거 하겠다고 연락하자.”
“그거라니, 뭐 말하는 거야?”
“미국에서 온 연락 말이야.”
“미국? 아...”
뒤늦게 알아들은 장현웅이 다시 입을 연다.
“지미 스미스 토크쇼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지미 스미스 토크쇼.
매주 수백만 명을 TV 앞으로 이끄는 특급 토크쇼였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연일 매진 기록을 세우고 있는 뮤지컬 「거장의 숨결」.
부커상 수상과 크리스토퍼 올란 감독의 영화 흥행으로 인해 몇 달 전부터 이미 섭외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번번이 거절했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나는 내가 기다리던 정확한 시점에 출연 의사를 밝혔다.
안 그래도 이토 히나타 작가 문제로 나에 대한 관심이 극에 다다른 상태라 지미 쪽에선 황급히 출연 일정을 잡았다.
“후우, 정말 모시기 힘든 분 중 한 분이죠. 장안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한국의 천재 작가. 권서준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지미 스미스가 능숙하게 토크쇼를 진행한다.
우리의 대화는 작품과 흥행.
그리고 각종 비하인드 스토리로 이어졌다.
“작가님을 설득하기 위해 올란 감독이 직접 한국까지 찾아갔다면서요?”
“맞습니다. 제 입장에선 영광이었죠.”
“올란 감독님 정도 되면 공동 연출을 제안했을 때 순순히 승낙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설득했나요?”
“생각보다 순순히 승낙하시던데요?”
내 말에 스튜디오에 웃음꽃이 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30분이 지나자 드디어 이토 히나타 작가와 관련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다.
“작가님의 작품과 이토 히나타 작가의 작품이 대척점에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대중들의 관심도 많고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미 스미스의 눈빛이 반짝인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는 그저 상상 속 세계를 그렸을 뿐입니다. 만일 이토 히나타 작가의 마음이 불편하다면 제가 오히려 묻고 싶네요. 대체 왜 마음이 불편한지, 혹시 도둑이 제 발 저린 건 아닌지 말입니다.”
능청스러운 내 대답에 지미 스미스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준비한 질문을 꺼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토 히나타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위해 전범 기업들이 엄청난 로비를 하고 있다는데 이 스캔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뭐, 별생각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한들 진실을 가릴 수 있을까요?”
나는 담담하게 카메라를 바라봤다.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승리하는 법이니까요.”
내 시선은 카메라 넘어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지미 스미스 토크쇼가 끝난 뒤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내가 아니었다.
이토 히나타.
전범 국가를 옹호한 그의 과거가 가장 많은 트래픽을 차지했다.
미국 전역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논란.
정확히 내 예상대로였다.
***
며칠 뒤.
노벨 문학상 한림원.
구스타프 3세에 의해 1786년 세워진 스웨덴 한림원(Svenska Akademien)으로 노벨 문학상 선정위원회를 겸하고 있다.
전통과 명망 있는 행사.
그런데 올해는 선정 위원들의 표정이 유독 어두웠다.
이유는 바로 유력한 수상 후보인 이토 히나타 작가 때문이었다.
“하아, 미국 쪽에서도 난리가 났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여성 위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배가 나온 위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연다.
“고민할 게 있습니까? 문학상 선정은 우리의 고유 권한이고, 우리가 기준입니다. 그대로 밀어붙이시죠?”
“그게 쉽지 않으니까 하는 말 아닙니까?”
여성 위원이 골치 아픈 듯 미간을 지압한다.
그러자 배가 나온 위원이 또다시 압박한다.
“몇 년 전 발표를 생각해보세요. 가수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반발이 심했죠? 근데 이제는 어떤가요? 문학상의 저변이 확대되었다고 오히려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하아. 그때와 지금은 엄연히 기준이 다르잖아요. 이토 히나타 작가의 문제는 전쟁 옹호라고요. 게다가 권서준 작가가 토크쇼에 나오는 바람에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라고요.”
전 세계에 크나큰 아픔을 선사한 제2차 세계대전. 그 전쟁을 옹호한 행위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의 여론을 형성한 상태였다.
벌써 3시간째 합의를 보지 못하는 회의.
“...”
그러나 결정권을 가진 상임이사는 여전히 말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결국 배가 나온 위원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난다.
“상임이사장님. 이렇게 휘둘리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여론의 눈치를 봤습니까? 이건 그대로 진행하는 게 맞습니다.”
상임이사의 눈빛이 순간 가늘어진다.
지나치게 적극적인 위원의 모습 때문이었다.
“이쯤 되니 토크쇼에서 언급한 스캔들이 의심되는군요.”
“...네?”
“혹시 그쪽과 우리가 모르는 거래가 있었습니까?”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황한 위원이 발끈한다.
“그게 아니라면 왜 그토록 이토 히나타 작가를 미는 거죠? 노벨 문학상의 가치를 훼손시키면서까지 그를 미는 이유가 뭐냐는 말입니다.”
“그, 그거야 말씀드렸다시피...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간신히 꺼낸 변명.
그러자 상임이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좋습니다. 그렇게 당당하시다니 수사에 협조해주실 수 있겠죠?”
“...네? 그게 무슨...”
위원의 눈이 커진다.
그러나 상임이사의 표정은 차가웠다.
“곧 경찰이 올 겁니다. 그들 앞에서도 지금처럼 대답하시면 될 겁니다.”
“...”
당황한 위원이 입을 뻐끔거린다.
그러나 더 이상의 변명은 할 수 없었다.
상임이사의 말투는 이미 다 알고 하는 말이었으니까.
뒤늦게 입술을 깨물어보지만 이미 속내를 들킨 상황.
언제나 그렇듯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노벨 문학상 한림원은 오랜 진통 끝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