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94화 (94/203)

94. birthplace - 출생지 (1)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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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대한민국 공연계는 새벽에 올라온 기사 하나로 떠들썩했다.

[연극 「거장의 숨결」, 영국 웨스트엔드 포스 극단과 계약 체결]

국내 연극계의 새바람을 일으킨 작품 「거장의 숨결」이 또 한 번의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8일, 타이거 스튜디오 관계자에 따르면 「거장의 숨결」은 영국 웨스트엔드의 유명 극단인 포스 극단과의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이번 계약은 국내 순수 희곡 작품의 첫 영국 진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각계각층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런던에서 공연되는 작품의 주연 배우로 베네딕트. C가 확정되어 국내 희곡 작품의 해외 진출에 청신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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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숨결」은 셰익스피어와 동시대를 살다 간 천재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삶을 다룬 이야기로 ‘K-연극’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일연예 윤석훈 기자>

매일연예 윤 기자의 단독 보도.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옴과 동시에 공연계 관련 뉴스는 난리가 났다.

당연하게도 매일연예 편집실 전화는 불이 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쉬지 않고 울려댔다.

“네, 맞습니다. 관련자와 직접 통화해서 확인했고요. 네, 네 확실합니다.”

“베네딕트의 출연은 확정입니다. 이미 포스 극단과 계약 체결을 한 상태입니다.”

“당연히 헐리웃 시리즈는 연기됐겠죠. 두 작품을 동시에 할 순 없으니까요.”

후배들과 편집실 직원들이 전화를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윤 기자는 연극계 원로와 통화를 나누고 있었다.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의 연극이 세계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네요.”

국내 희곡 작품의 첫 영국 진출.

그뿐만 아니라 주연 배우로 헐리웃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은 해외 언론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른바 헐리웃 소식을 한국 언론을 통해 접한 미국 언론사에서도 확인 전화가 빗발쳤다.

당연히 특종.

보기 드문 큰 이슈몰이에 편집장이 다가와 윤 기자의 어깨를 두드린다.

“석훈아, 트래픽 제대로 터졌다! 네 기사 하나로 2달치 트래픽을 뽑았다고!”

몇 주 전부터 얼굴이 흙빛이던 편집장의 얼굴도 모처럼 활짝 피었다. 보기 드문 대박 특종에 함박웃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대체 이런 특급 정보는 어디서 물어온 거야? 타이거 스튜디오 내부에 나도 모르는 인맥이라도 있는 거야?”

편집장의 물음에 윤 기자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후배 한 명이 끼어든다.

“편집장님, 그걸 윤 선배가 말해주겠어요? 나름 업계 비밀인데?”

“하긴, 그것도 맞지. 그건 됐고, 앞으로도 이런 특종만 물어오라고. 그럼 내가 우리 윤석훈 후배님 엎고 다닐 테니까.”

듣고 있던 윤 기자가 고개를 젓는다.

“사양하겠습니다. 제 두 다리는 아직 튼튼하니까요.”

“인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 잠깐만.”

지이잉.

그 순간, 편집장의 휴대폰이 울린다.

메시지를 확인한 편집장의 눈이 커진다.

“야... 대표님 호출이다.”

편집장과 같이 올라오라는 대표의 연락.

몇 년 만에 찾아온 특종의 짜릿함이었다.

‘역시 기자에겐 특종만큼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방법도 없지.’

윤 기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편집장과 함께 모처럼 대표실을 찾아가는 윤 기자의 걸음. 어느새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

윤 기자가 쏘아 올린 기사는 삽시간에 지구 반대편인 영국까지 전해졌다.

“크으. K-연극이라... 윤 기자님 기사 진짜 잘 쓰시네.”

윤 기자의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장현웅이 감탄을 터트린다.

“친하게 지내놔. 앞으로 자주 연락하게 될 테니까.”

나를 신뢰하고 호의적인 기자를 알고 있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이 시대에선 홍보 수단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단순히 작품성만으로 승부 보려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응. 안 그래도 이번 기사 관련해서 메일 주고받았어. 되게 쿨하시던데?”

“맞아. 기자 정신이 투철한 몇 안 되는 진짜 기자니까. 연예부 기자지만 웬만한 사회부 기자 못지않다고.”

“어쩐지 팩트 하나하나 체크하시는데 엄청 꼼꼼하시더라.”

“그래, 그런 분이기 때문에 내가 독점 기사를 맡긴 거지.”

“하, 넌 대체 몇 수를 생각하는 거냐? 어떨 때 보면 백전노장 같다니까?”

백전노장이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생과 지금의 나이를 합치면 뭐 그 정도의 경험치 정도는 될 테니까.

휴대폰을 내려놓은 장현웅은 자연스럽게 책상에 앉더니 뭔가를 노트에 끼적거린다.

뭐하나 싶어 슬쩍 보니 웹툰 콘티를 작성 중이었다.

“원고는 잘 돼가는 거야?”

“어, 그럭저럭.”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굴에선 벌써부터 자신감이 엿보인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됐는지 내 앞에 슬쩍 원고를 내민다.

가벼운 스케치 정도의 콘티.

그러나 대충 봐도 스토리의 흐름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역시 문창과 수업을 들은 게 도움이 되긴 했군.’

스토리는 웹툰의 특성에 맞게 최적화되어 있었다. 내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시작에 집중되었다.

장현웅의 콘티에 따르면 웹툰의 시작은 2년 전, 내가 전과를 고민하던 바로 그날이었다.

“왜 하필 이때부터 시작한 거야?”

“그거야 이때부터 네가 달라졌으니까.”

장현웅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잠시 허공을 보며 기억을 더듬는다.

“솔직히 이전까지는 막 위태롭고 그런 느낌이었어. 내가 도와주고 챙겨주지 않으면 무슨 일 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거든. 근데 이 날부터 달라졌지. 마치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천재성을 발휘했으니까.”

누가 절친 아니랄까 봐 장현웅은 나의 변화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생각에 젖어있던 장현웅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다.

“하아, 그러고 보니 넌 정말 엄청나게 성장했구나. 근데 난 아직도 멀었네...”

친구의 괄목할만한 성장에 상대적으로 자신의 성장이 초라해 보이는 시점. 마치 송영도 교수가 나를 보며 겪은 좌절감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나는 그런 장현웅을 보며 천천히 현실을 짚어줬다.

“그렇지 않아. 변화가 없어 보여도 그 사이 너도 꽤 성장했다고. 그게 아니면 교내 백일장 당선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내 말에 그제야 장현웅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그러고 보니 나 백일장 당선도 됐었구나?”

“그래, 성장하지 않았다면 설명이 안 되지. 성장은 계단식이야. 한 번에 훅 올라가는 시점이 온다고.”

단순히 녀석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나 역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현웅이도 많이 성장했으니까.’

지금 내 손에 들린 이 콘티만 봐도 그랬다. 이야기 스토리 짜는 것도 그렇고, 캐릭터를 잡는 것도 이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체감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웹툰 첫 화가 나오면 그땐 알게 되겠지.’

급할 건 없었다.

자연스럽게 찾아올 그때를 기다리면 될 뿐.

나는 침대에 누워 장현웅이 보던 기사를 직접 내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장현웅의 말대로 깔끔하게 정리된 기사.

문득 한국의 소식이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내 기사 봤으려나?

벌써부터 궁금해지는 엄마의 반응이었다.

***

망원 시장 옆에 위치한 오구 갈비.

낡은 간판을 바라보는 오 사장의 얼굴에 근심이 드리운다.

열심히 일해서 59세엔 은퇴하자는 의미에서 지은 상호.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나날이 줄어드는 수입에 깊어지는 건 한숨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가 성실하고 친절하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최근엔 단골손님도 꽤 늘어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오 사장은 그런 아주머니를 배려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 좀 쉬엄쉬엄 하세요.”

“어떻게 그래요. 돈 받고 일하는 건데.”

“그러다가 아주머니 쓰러지면 식당 타격받아요. 오시는 분들 절반은 아주머니 단골인데...”

“아이고, 사장님. 그런 소리 말아요. 고기가 맛없으면 사람들이 오겠어요?”

참 말 한마디도 정감가게 하는 사람이었다. 워낙 성격이 좋은 분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요즘 들어 더 잘 웃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마 계산대에 저 책을 꽂아놓은 뒤부터였었지?’

오 사장은 슬쩍 계산대 위를 살폈다.

「덧없는 행운이여」

두툼한 소설책이었다. 오 사장이야 워낙 책에 관심이 없는 터라 읽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계산을 하는 손님들이 요즘 들어 부쩍 책에 대해 많이들 물어보고는 했다.

“어머, 고기 집에 이 책이 있네?”

처음엔 고기 집에 책이 안 어울려서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정작 손님들의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왜? 읽어본 책이야?”

“그럼. 요즘 이거 안 읽어보고 취미가 독서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거든.”

“그래?”

계산을 하다가 문득 관심이 동한 오 사장이 슬쩍 묻는다.

“이게, 그렇게 유명한 책이에요?”

“네, 사장님 모르시고 가져다 놓으신 거예요?”

“아, 제가 가져다 놓은 게 아니라 우리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아들 책이라고 가져다 놔서요.”

“네에? 권서준 작가 어머님이 여기서 일하신다고요?”

놀라는 손님을 보며 오 사장이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흡사 연예인의 부모를 본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저분이신가요?”

마침 주방에서 나오는 아주머니를 보며 묻는다.

“네, 맞아요.”

오 사장의 말에 두 여자 손님이 얼른 아주머니에게 다가간다.

“저, 권서준 작가 어머니 되세요?”

“아, 네. 맞아요.”

아들의 이름이 나오자 환하게 웃는 아주머니의 얼굴.

“제가 아드님 작품 팬이거든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인회 열면 꼭 사인받고 싶었는데 안 하시더라고요.”

아쉬움이 가득 담긴 팬의 말에 아주머니는 다 안다는 듯 웃는다.

“우리 애가 워낙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요.”

“아, 그렇구나. 작품에선 엄청난 힘이 느껴져서 강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그런 면이 있다니 귀엽네요.”

여자 손님들은 오히려 신이 난 듯 떠든다.

지켜보던 오 사장은 갈수록 관심이 동한다.

‘대체 얼마나 유명하기에 그렇지?’

그러나 순수문학 쪽은 발을 들여 본 적도 없기에 영 알 수가 없었다.

“참, 어머니. 그럼 오늘 기사 난 것도 보셨겠네요?”

“기사요?”

“네, 권 작가님 연극 작품에 베네딕트. C가 출연하기로 한 기사 말이에요.”

순간 오 사장의 눈이 커진다.

다른 건 몰라도 베네딕트를 모를 순 없었다. 자신이 즐겨보는 영화 시리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히어로였으니까.

‘베네딕트가, 아주머니 아들 작품에?’

순간 아주머니가 달라 보인다.

게다가 왜 그렇게 고된 일 속에서도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들이... 엄청 성공했구나.’

그러나 오히려 아주머니는 베네딕트를 모르는 듯 손님들에게 되묻는다.

“그 사람이, 그렇게 유명해요?”

***

나는 엄마가 일 마칠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웬 전화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목소리는 무슨, 정 궁금하면 문자나 보내지 뭐 하러 비싼 국제전화를 걸어?

엄마는 언제나 그렇듯 아들 걱정뿐이었다.

-참, 그나저나 여기 난리가 났어. 식당에서도 너 작품 알아보는 사람 천지더라. 근데 베네딕트라는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야?

엄마도 기사를 본 모양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누나가 답답한 듯 끼어든다.

-아 그렇다니까. 엄마는 내가 몇 번을 말해야 믿을 거야? 야, 권서준 니가 말해줘. 내가 아무리 말해도 믿질 않으신다.

억울한 누나의 목소리에 하는 수 없이 내가 설명을 이어간다.

“그럼 엄청난 사람이지. 연기 쪽에서는 유명해. 영화 한 편 출연하면 출연료가 백억 단위거든.”

-배, 백억?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네 작품에 출연하는 거야?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그만 좀 걱정해. 국제전화비도 그만 좀 아끼고.”

-그래도 아끼면 좋은 거지. 돈이라는 게 있다가도 순식간에 사라진다니까.

“아이고, 알았어요. 엄마 말이 다 맞지, 뭐.”

이럴 땐 져주는 게 맞았다.

엄마 말이 다 맞아서라기보다는 나를 향한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져주는 것.

-그래, 먹는 거 잘 챙겨 먹고, 잠 잘 자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엄마는 전화 끊는 순간까지 아들 걱정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잠시 엄마를 떠올린다.

기사를 봤을 때 아마 엄청 기뻐했을 터.

베네딕트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자식이 잘 됐다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행복해했을 테니까.

아마 테이블을 닦는 손길도 유난히 가벼웠겠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게 우리 엄마였으니까.

이러니 내가 효도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엄마가 걱정하기 전에 일 마치고 돌아가야겠어.’

표현하진 않았지만 벌써 아들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목소리에서 물씬 풍겼다.

자연스럽게 내 관심은 영국에 남은 내 일정으로 흐른다.

“현웅아, 스티브 대표와의 미팅은 일주일 뒤로 잡아줘.”

“오케이.”

대답을 한 뒤 스케줄러를 확인하던 장현웅이 다시 고개를 든다.

“그럼, 그동안은 뭐할 건데?”

매니저다운 질문이었다.

물론 꼭 필요한 일정이 남아있었다.

바로 피어슨 출판사와 스티브 대표를 만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

“차기작을 완성하러 가야지.”

내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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