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published - 출판된 (4) -여기부터 유료
47.
***
소설을 제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난 문창과 학생으로서 본분에 최선을 다했다.
3학년 2학기.
방학만큼이나 학사 일정도 빠르게 지나간다.
과제, 합평, 조별 발표를 하다 보니 어느새 종강이 눈앞이었다.
오늘은 기말고사 직전 마지막 합평 수업.
[소설 창작 세미나]
송영도 교수의 수업이었다.
“1학기 때 해봐서 알겠지만 합평은 어디까지나 비평이야. 공격적인 건 좋지만 개선 방안을 말하지 못하는 건 비난이나 다름이 없지. 중요한 점은 주제를 벗어난 얘기는 하지 않는 거야. 오직 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도록.”
송 교수의 수업은 1학기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긴장감이 흐른다.
“자, 시작해볼까?”
그 한 마디에 공기의 흐름도 달라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합평은 성적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교수들도 합평으로 점수 매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런데도 문창과 학생들에게 합평이 민감한 이유는 합평 결과를 통해 학과 내에서의 자기 입지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권력 같은 거지.’
내가 합평 때 좋은 평가를 얻으면 다른 학생들의 입장에선 나는 또 하나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먹이사슬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여전히 송진호였다.
합평이 시작되고,
제일 먼저 작품을 낸 학생이 긴장한 채 앞에 선다.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어댄다.
가만히 둘러보던 송 교수가 한 명을 가리키자 도수 높은 안경을 쓴 여학생이 평가를 늘어놓는다.
“묘사가 지나친 문장들이 호흡을 헤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묘사를 줄이거나 문장을 나눠 쓰면 더 좋을 것 같네요.”
다음 학생이 곧바로 바통을 이어받는다.
“전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 몇몇 장면에서 의아함을 느꼈습니다. 주인공과 작가는 알고 있지만 도대체 친구들과 어떤 어린 추억이 있었는지 독자들은 모르니까요.”
쏟아지는 비평에 작품을 낸 학생의 표정이 굳어진다.
“네... 반영해서 고치겠습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거기에 송진호의 날 선 비평이 더해진다.
“‘생각’, ‘마치’, ‘열띤’처럼 같은 단어가 지나치게 반복됩니다. 게다가 종결 어미까지 여러 차례 반복되니까 문장이 전체적으로 늘어지는 느낌이 드네요. 이건 기초나 다름없는 건데,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기본도 안 됐다는 합평에 학생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다음도,
그 다음도,
하나같이 날 선 비평 앞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마지막.
드디어 송진호의 합평 차례였다.
70매 분량의 단편소설.
‘가족과 나’라는 주제로 쓴 소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두 가족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써 내려갔다. 애초에 한국 단편 시장에선 전지적 작가 시점이 드물었고, 특히 여러 인물이 등장함에도 개인사를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이끌어가는 힘이 괜찮았다.
‘그동안 꽤 열심히 한 모양이야.’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 외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 억지로 엮은 해피엔딩과 여전히 대문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문장은 고질병처럼 해결이 되지 않았다.
“자, 누구부터 얘기해볼까?”
송 교수가 학생들을 보며 묻는다.
그런데,
아무도 섣불리 손을 들지 못한다.
“아무도 없나?”
재차 묻자 그제야 눈치를 보던 몇몇 학생들이 간신히 손을 든다.
“글이 진짜 깔끔했어요. 걸리는 느낌 하나 없이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가족과 관련된 부분은 쉽게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라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어요. 특히 가족을 ‘가장 소중하면서도 가장 거추장스럽다’고 표현한 부분은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칭찬 일색인 반응들.
송 교수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흠. 다른 의견은 없나?”
“구체적인 경험이 반영돼서 좋았습니다. 충분히 정돈된 글이라 가독성도 좋았고요.”
“...”
동기들의 칭찬이 이어졌지만 그럴수록 굳게 다문 송 교수의 입술이 일그러진다. 학생들의 평가와 송 교수의 생각은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강의실에 앉은 누구도 송진호의 작품에 토를 달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등단 작가라는 타이틀이 송진호의 입지를 문창과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았으니까.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지난 학기의 일이었다.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더 없나?”
답답한 듯 묻는 송 교수의 질문.
나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래, 서준이가 한번 얘기해볼래?”
순간 송진호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그 시선을 태연하게 받아넘기며 작품의 장점에 대해 먼저 말했다.
“단편 소설임에도 전지적 시점을 적용한 건 신선했습니다.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대로 공감대 형성이 용이한 가족 이야기로 푼 것도 좋았고요.”
내 칭찬이 이어지자 송진호의 얼굴이 다소 풀어진다.
그러나 본격적인 합평은 이제부터였다.
“하지만 오히려 와 닿지 않는 행복한 결말은 좋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나치게 작위적인 느낌마저 들었으니까요.”
내 합평이 끝나기도 전에 송진호가 자신의 작품을 변론한다.
“그건 오해하신 거 같네요. 분명 앞선 복선들을 통해 충분히 결말에 대한 준비를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지적하는 게 바로 그 부분입니다. 반드시 행복해야 해, 가족은 결국 서로를 용서하고 보듬어 줘야 해... 이런 식의 강압적인 메시지가 오히려 와 닿지 않았으니까요. 차라리 주인공이 평생 가슴에 담아왔던 미움과 설움, 그리고 아픔을 마음껏 표출했다면, 결말은 비극으로 끝나더라도 독자들은 그 뒤의 이야기를 떠올렸을 겁니다.”
순간 송진호의 얼굴이 굳는다.
“글쓴이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감상적인 메시지 때문에 오히려 글이 갇혀있는 느낌입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써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
정곡을 찔린 송진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팽팽한 분위기에 몇몇 동기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자, 조용.”
송 교수가 분위기를 정돈한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서준이와 같은 생각이야. 안타깝게도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내용이 어울리지 않았어.”
짧고, 간단한 송 교수의 비평.
송진호의 얼굴이 더욱 처참해진다.
잠시 뒤,
송진호는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아니 도망쳤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
그러자 몇몇 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내 주변으로 몰려든다.
송진호 옆에 늘 붙어 다니던 애들.
나를 따돌리면서 스터디를 했던 그 멤버들이었다.
“참나, 누가 보면 교순 줄 알겠어? 좀 뜨면 뵈는 것도 없나 봐?”
비아냥거리는 모양새가 내 합평에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웹드라마 그거 좀 성공했다고 너무 거들먹거리지 말지?”
내가 거들먹거렸다고?
그냥 넘기고 싶었지만 이건 좀 억울했다.
“너만 잘나가는 거 아니거든? 진호도 이제 곧 장편 소설 나온다고. 너처럼 등단도 못 해서 어쩔 수 없이 진로 튼 애들이랑은 다르다고.”
녀석들은 순수 문학의 가치를 심하게 확대 해석하는 듯했다. 게다가 등단이라는 자격을 거의 신분제처럼 여기는 것 같고.
이건 좀 참기 힘들었다.
“등단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지 않나?”
솔직한 내 말에 아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뭐, 뭐라고?”
충격을 받았는지 말까지 더듬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애가 말린다.
“야, 야, 내버려 둬. 원래 그런 애들 있잖아.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고 착각하는 애들.”
“하긴, 저런 게 원래 더 추한 거지.”
녀석들은 멋대로 판단하고, 멋대로 결정짓고 비웃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때,
강의실 문이 거칠게 열린다.
덩치 큰 장현웅이 다급히 들어온다.
“야, 야! 서준아. 와이즈 출판사 공모전, 조금 전에 발표 났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동기들의 시선이 일제히 장현웅을 향한다.
“너 당선 됐다고! 그것도 대상으로... 너 이제 등단 작가라고!”
핵폭탄이나 다를 바 없는 소식.
순식간에 강의실 분위기가 싸해진다.
“...”
조금 전까지 나를 공격하던 아이들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천천히 시선을 피한다.
내가 원하던 딱 그 분위기.
나는 조금 전까지 나를 몰아세우던 녀석들을 바라봤다.
“조금 전에, 뭐라고 했었지?”
“어? 아, 그, 그게...”
“아, 맞다. 못한 걸 안 한 거라고 착각하는 게 추하다고 했었지? 근데 있잖아...”
나는 턱을 살짝 든 채 나직이 말했다.
“굳이 안 한 걸 못했다고 믿는 거, 그게 더 추한 거야. 똑똑히 기억하라고.”
“...”
나는 아무 말도 못 하는 녀석을 둔 채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
와이즈 출판사 공모전 당선.
사실 난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이었다.
공모전 당선자의 경우 최대 일주일에서 최소 이틀 전에는 미리 알려주는 게 관례니까.
가끔 당일 날 알려주는 공모전도 있긴 하지만 그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날 오후.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나는 서울의 거리.
나는 엄마와 누나를 이끌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갑자기 웬 백화점이야? 뭐 살 거 있어?”
“어. 옷 좀 사려고.”
내 말에 엄마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넌 젊은 애가 너무 신경 안 써. 키도 커서 좀만 꾸며도 인물이 확 살 텐데.”
엄마는 6년째 같은 패딩을 입으며 저런 말을 한다. 아마 저 패딩도 누나가 버리려고 했던 걸 아깝다고 해서 입었었지.
“근데 왜 3층이야? 여긴 여성복인데?”
누나가 묻는다.
“오늘은 내 옷 말고 누나랑 엄마 옷 좀 살 거니까.”
내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손사래를 친다.
“마음은 고맙지만 됐네요, 이 사람아.”
“그래, 우리는 됐으니까 그 돈으로 네 옷이나 좀 사. 어서 올라가자.”
“나야말로 됐으니까 오늘은 내 말대로 따라오시라고.”
나는 엄마 팔을 이끌고 한 숙녀복 코너로 들어갔다.
“어울리는 옷 좀 추천해주세요.”
내 말에 직원이 영업 미소를 지으며 엄마에게 이것저것 옷을 대준다.
“아이고, 어머니 얼굴이 고우셔서 밝은 색깔도 잘 받네요.”
두께감이 있는 연한 핑크 톤의 재킷이 엄마와 잘 어울렸다.
그런데 슬쩍 가격표를 본 엄마가 기겁한다.
“서, 서준아, 다른 데 가자. 응?”
행여 직원에게 들릴까 잔뜩 낮춘 목소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인다.
“가격 때문이면 괜찮아. 이 정도는 사줄 수 있다고.”
“얘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엄마도 이젠 신경 좀 써야지.”
“난 됐다니까. 이 나이에 멋 부려서 뭐 한다고.”
“멋이 아니라 행사 갈 땐 그래도 차려입어야지. 결혼식 갈 때도 그렇게 가진 않을 거 아냐?”
내 말에 순간 엄마와 누나가 멈칫거린다.
“...갑자기 웬 결혼식?”
“너 혹시... 사고 쳤어?”
어떻게 생각이 이렇게 흐를까.
두 사람 모두 당분간 아침 드라마는 끊는 게 좋겠어.
“그게 아니라 이번 주 주말에 시상식이 있어.”
“시상식? 무슨 시상식?”
“무슨 시상식이긴, 아들 당선 시상식이지.”
“...뭐?”
엄마가 믿기지 않는 듯 묻는다.
“너 설마...”
말끝을 흐리던 누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내 이름을 검색한다.
제일 상단에 뜬 보도자료.
와이즈 출판사 공모전.
소설 부문 대상 : 권서준
기사를 본 누나의 눈이 커진다.
“어, 엄마! 서준이야, 서준이! 와이즈 출판사는 작품성 엄청나게 따지는 곳인데... 와 진짜 너...”
이쪽 분위기를 조금 아는 누나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디 봐봐?”
다급히 기사를 읽는 엄마.
기쁜 소식에 이내 반응이 격해진다.
“몇 달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뭐하나 했더니... 이거 준비했던 거였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들이 이렇게 당선됐는데 안 올 거야? 지난번에 엄마가 그랬잖아. 다음번 시상식엔 꼭 오고 싶다고.”
“무슨 소리야, 당연히 가야지. 당연히...”
“근데, 그 패딩 입고 올 순 없잖아?”
“...”
“그러니까 어서 입어보라고.”
“서준아...”
엄마의 눈은 이미 촉촉해져 있었다.
“아드님이 효자네요. 그러지 말고 얼른 입어보세요.”
센스 있는 직원의 재촉에 엄마는 마지못해 피팅룸으로 향한다.
잠시 뒤,
옷을 갈아입은 엄마가 나온다.
연한 색깔의 옷에 재킷을 걸친 모습.
좋은 인상과 함께 고운 자태가 뿜어져 나온다.
우리 엄마지만 참 곱다.
고생만 조금 덜했어도, 아니, 이런 옷만 더 자주 입어도 훨씬 더 어울릴 텐데.
지이잉.
그런데 그 순간,
휴대폰으로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오늘 극단 정산서_권서준]
첨부파일: 거장의숨결_권서준.xlsx
러닝개런티로 받게 될 금액의 내역서였다.
엑셀 파일을 열자 날짜별로 끝도 없이 긴 수치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맨 오른쪽엔 친절하게 총액수를 합해놓은 금액이 보인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가늘어진다.
‘이거, 제대로 계산이 된 건가?’
난생처음 받아보는 거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