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이 셰익스피어였다-8화 (8/203)

# 8. excitement - 신남, 흥분 (1)

8.

***

‘재미있어.’

당황한 송진호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치 사이다를 마신 듯 내 주위로 청량감이 넘실거렸다.

그러나 짧은 유희일 뿐.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

나는 경쾌한 걸음으로 캠퍼스 뒤편으로 향했다.

‘여기가 맞겠지?’

학교 뒤편을 성벽처럼 둘러싼 이곳은 바로 교수 연구동이었다.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송영도 교수가 직접 나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아마 과제 때문일 거야. 그것도 꽤 흡족했나 보네.’

자연스러운 추론이었다.

작품이 이상했다면 굳이 약속까지 잡을 필요는 없을 테니까.

나는 약속 시각에 맞춰 송 교수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똑똑.

노크를 하자 안에서 저음의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수많은 책이었다.

양쪽 벽에 놓인 책장이 마치 그를 수호하는 기사처럼 정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도열의 끝에 송영도 교수가 있었다.

“서준이구나. 잠깐만 기다려 줄래? 급히 넘겨야 할 원고가 있어서.”

송 교수는 작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괜찮습니다. 구경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잠시 생긴 여유를 송 교수의 책장을 보는데 할애했다.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지.’

한 번 보고 마는지, 아니면 몇 번을 반복해서 읽는지, 책의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분류는 제대로 되어 있는지를 보면 대번 알 수 있었다.

특히 가장 많이 보는 책은 자신의 손이 제일 쉽게 닿는 곳에 두는 법.

‘앉은 자리에서 손이 닿는 곳은...’

내 눈은 송 교수가 손을 뻗을 만한 위치로 향했다.

그곳에는 뜻밖에도 반가운 작품이 있었다.

바로 셰익스피어 전집이었다.

“후, 이제 됐다.”

잠시 뒤,

작업을 마친 송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불러놓고 미안하네. 오늘까지 신문사에 보내야 할 원고가 있어서.”

메일을 전송했지만 표정은 여전히 찝찝해 보였다.

아마 원고가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나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교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차 한 잔을 가져다준 송 교수가 턱을 괸 채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왜 불렀는지는 알고 있나?”

“과제 때문 아닐까요?”

송 교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지난번 과제와는 수준이 너무 달랐거든.”

“저도 알고 있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건가?”

송 교수 입장에선 궁금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럴 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요.”

담담한 내 대답에 송 교수의 눈빛이 깊어진다. 보다 설득력 있는 답을 원하는 눈치였다. 물론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린아이, 그리고 봄이라는 계절이 당연한 권리인 듯 소유하는 생명의 활기. 그러나 그걸 바라보는 노인의 시선은 그조차 부러운 법이죠. 어릴 적 경험했던 봄의 심상을 떠올리면서 주제를 가장 돋보이게 만들 서사를 완성 시켰을 뿐입니다.”

“그래. 그 부분이 특이했어. 분명 소설 속 화자는 어린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노회한 연장자의 느낌이 묻어났거든.”

송 교수는 역시 작품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맞습니다. 정확히는 노인이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액자식 구성이었습니다. 소설 내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 설명을 듣고 나서야 송 교수의 미간이 조금씩 펴진다.

“그래서 소설 속 화자가 마치 두 가지 인격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던 거군.”

“조금 더 선명하게 풀어내지 않은 건 과유불급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 오히려 그 부분이 더 괜찮았네. 생각할 여지를 주는 느낌이었거든.”

송 교수는 이제야 의심을 완전히 거둔 표정이었다.

사실 작품의 진위를 판단하는데 그리 긴 대화가 필요하진 않았다.

‘작가와 단 몇 마디만 나눠도 누가 썼는지 판명이 나니까.’

그 정도의 눈을 가진 사람이 바로 송 교수였다.

“특별히 참고한 작품은 있었나?”

“평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참고하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표절 시비도 있을 수 없겠군. 모든 클리세의 아버지가 셰익스피어니까 말이야.”

듣고 있으니 괜히 내 기분도 좋아진다.

나는 자연스럽게 질문 하나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교수님께서도 셰익스피어를 좋아하시나요?”

나는 자연스럽게 책장에 꽂혀 있는 전집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송 교수의 표정엔 아쉬움이 드러났다.

“한때는 그랬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다 번역할 정도였으니까.”

한때라는 말이 갖는 제한적 의미가 강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아니라는 말씀처럼 들리는데요?”

송 교수는 대답 대신 영문 논문 하나를 내밀었다.

[셰익스피어 삶에 대한 고찰과 진실]

웨일스 애버리스트위스대 연구팀에서 발표한 기사 자료였다.

[새롭게 밝혀진 진실. 셰익스피어는 고리대금업자였다.]

[영국 웨일스 애버리스트위스대 연구팀은 최근 대문호, 극작가로 불리는 셰익스피어를 수식하는 다른 이름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것은 바로 곡물 투기꾼, 고리대금업자, 탈세 전문가, 악덕 지주였다.]

-중략-

[맹추위와 폭우로 민중의 삶이 매우 궁핍하던 시기, 셰익스피어는 고향의 대지주로써 15년에 걸쳐 곡물과 맥아(엿기름), 보리 등을 매점매석했다는 자료를 밝혔다. 1598년 2월 대기근 당시 2,300kg에 달하는 옥수수와 맥아를 매점매석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업을 한 사실도 공개되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시사 주간지의 보도 자료도 인용이 되었다.

[최근 영국 대학 연구자들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추악하고 잔인한 유대인 샤일록의 모델은 사실 셰익스피어 자신이라는 흥미로운 결론을 내렸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의 잔인함이 셰익스피어의 자전적 의미라는 주장이다. 애버리스트위스 대학 연구팀은 ‘셰익스피어는 사실 피도 눈물도 없는 아주 잔인한 기업가였다’고 주장했다.]

“어떤가?”

송 교수가 물었다.

“충격적이네요.”

솔직한 심정이었다.

어떻게 자료를 모으면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송 교수의 관심은 조금 다른 곳으로 흘렀다.

“자네, 영어를 꽤 잘하는군.”

영어가 모국어인 전생을 깨달은 덕분이었다.

“주입식 수능 영어의 이점이자 폐해죠.”

내 말에 송 교수가 피식 웃더니 말을 잇는다.

“연구보고서와 기사를 전적으로 믿는 건 아니야. 다만 일리가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가 없지. 재밌는 건 트리니티 성당 안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동상 역시 처음엔 펜이 아닌 곡물 자루를 쥔 모습이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여러 자료에 따르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자료고. 결국 세계적인 대문호를 만들기 위해 추악한 모습은 덮어버린 거지.”

잠시 물을 한 모금 마신 송 교수가 말을 이어간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자체를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야. 다만 극작가뿐만 아니라 인간 셰익스피어에 대한 평가도 우리는 해야 하니까. 그게 진정한 작가주의적 문예 비평의 방법 중 하나고. 그런 의미에서 파고들수록 인간적인 부분, 아니 비인격적인 부분들이 드러나서 나 역시 꽤나 실망하는 중이네.”

보고서만 보면 이해할 수 있는 평가였다.

그러나 내 입장에선 심한 왜곡을 기반으로 한 거짓일 뿐이었다.

“흥미로운 주제지만 아쉬운 점이 많네요.”

“어떤 부분이 말이지?”

“왜 대문호가 고향까지 가서 이런 일을 해야 했을까 하는 내용이 없잖아요.”

“그야 돈 때문 아닐까?”

“돈이 전부였다면 굳이 모든 활동을 접고 아무것도 없는 고향으로 돌아갔을까요? 런던이 훨씬 더 돈을 벌 기회가 많았을 텐데요.”

“...”

송 교수는 턱을 쓸어내렸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었다.

“그럼 다른 사연이 있다는 뜻인가?”

“그게 더 합리적인 추론이지 않을까 해서요. 셰익스피어의 기이한 유언도, 묘비명도, 아직 다 밝혀진 게 아니니까요.”

생각보다 깊이 있는 대화에 송 교수가 순간 놀랐다.

“셰익스피어에 대해 관심이 많은가 보군.”

“문예 창작과 학생이잖아요.”

“...”

송 교수는 말없이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은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내 작품에 대한 의심도 이 정도면 충분히 종식시킨 상태.

이제 슬슬 대화를 마무리할 때였다.

그때,

송 교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 잠시만.”

양해를 구한 송 교수가 조금 떨어져 전화를 받았다.

“그래요. 음. 원고는 보냈는데, 잠깐만 기다려 봐요. 내가 조금 아쉬운 번역이 있어서... 그래요. 끝나면 연락하죠.”

전화를 끊은 송 교수가 번역 중이던 원고를 내려다본다.

아직도 찜찜한 얼굴을 보니 자신의 번역에 아쉬움이 남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슬쩍 송 교수의 원고를 바라봤다.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The way to dusty death. Out, out, brief candle!]

내겐 익숙한 글귀였다.

“아내의 자살 소식을 전해들은 맥베스의 대사군요?”

송 교수의 눈썹이 올라간다.

“보자마자 알다니, 셰익스피어를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군.”

나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며 번역본을 읽었다.

[우리의 지난날들은 먼지투성이 죽음으로 가는 어리석은 이들을 비춰주네. 꺼져라, 꺼져, 단명한 촛불이여!]

[Out, out, brief candle!]

송 교수는 이 부분을 ‘꺼져라, 꺼져, 단명한 촛불이여’라고 번역했다.

나는 원고를 보낼 때의 송 교수 표정이 왜 어두웠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맥베스의 심정을 다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운 거겠지.’

“해석이 조금 아쉽네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내가 원래 전하고자 했던 심상을 되새겼다.

그리고 본문에 가장 가까운 한국적인 표현을 머릿속에서 찾았다.

물론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건 어떨까요?”

내 말에 송 교수의 눈썹이 또다시 올라간다.

놀람과 불편함.

두 가지가 묘하게 뒤섞인 표정이었다.

***

철컥.

권서준이 나가고, 홀로 남은 송 교수는 생각에 잠겼다.

‘학부생과 나눈 대화였다니, 다시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군.’

모처럼 나눈 깊이 있는 대화는 의미가 있었다.

‘생각보다 문학적 소양이 깊은 친구였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송 교수는 권서준이 번역한 원고를 집어 들었다.

[꺼져라, 꺼져라, 덧없는 불빛이여!]

자신의 번역과 비교에 몇 글자 차이 나지 않는 결과물.

그러나 그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Out’이 딱 두 번 나오지만 사실 전제적인 맥락을 봤을 때 그 이상의 반복을 암시하고 있어. 그래서 종결되는 느낌의 어감보다 반복적인 어감을 선택한 거야.”

덕분에 인생의 덧없음을 토로하는 맥베스의 한탄이 여운처럼 길게 남는다.

“게다가 단명한 촛불도 ‘brief candle’이라는 단어 자체가 짧은 목숨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니까 중복할 필요가 없고...”

고작 몇 글자만 바뀌었을 뿐인데 맥베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송 교수는 문득 권서준의 대답이 떠올랐다.

‘해석이 조금 아쉽네요. 이건 어떨까요?’

송 교수의 번역을 보고 내뱉은 한 마디.

학부생이 감히 교수의 번역에 제안을 하다니, 교수 입장에선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어.’

마치 셰익스피어에게 답을 들은 느낌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눈빛도, 말투도.

거장들에게서나 찾아볼 법한 느낌이었다.

스물다섯 학부생에게 결코 찾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특이하군.”

턱을 쓸던 송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특별함인가?”

원고를 바라보는 송 교수의 호흡이 깊어졌다.

***

4월 중순의 캠퍼스는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나는 느긋이 산책을 즐기며 조금 전 만났던 송영도 교수를 떠올렸다.

‘내 작품을 이렇게나 생각해주다니. 고마운 사람이군.’

날카로운 눈빛.

마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이전엔 그저 까다로운 교수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다른 부분들이 보였다.

‘마치 버글리 경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랄까.’

엘리자베스 여왕의 수석장관이었던 버글리 경은 냉철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고마운 후견인이기도 했다.

‘덕분에 옛 생각이 나는군.’

1500년대 말.

영국은 그야말로 혼돈의 시기였다.

지독한 가난과 기근, 한 뼘 분량도 되지 않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그 당시 태어난 아이들의 1/3이 열 살을 채 넘기지 못했었지.’

그건 우리 집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 모든 형제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바람 앞에 놓인 촛불 같은 위태로움.

그 시절의 생명을 가진 자들의 처지가 그러했다.

내가 인간의 짧은 목숨을 ‘brief candle’로 비유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결국 맥베스의 삶 자체가 곧 그 당시 영국의 어두운 과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번역이 어려운 거야. 이 모든 문화적 배경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나는 오랜만에 본 맥베스의 대사를 떠올렸다.

송 교수가 고민하던 부분과 달리 내가 좋아하는 대사는 그 뒷부분이었다.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인생이란 한낱 배회하는 그림자,

무대 위에 등장할 동안 뽐내고 안달 내지만

지나고 나면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하찮은 배우요.

삶이란 백치가 소란과 격분으로 가득 차 떠들어 대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일 뿐.

인생의 덧없음에 절규하는 맥베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라...’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사를 쓴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말았다.

그만큼 전생은 후회와 아픔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당시 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박했고, 멸시하는 자들도 많았다.

내가 끝내 절필을 선언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문득 궁금증이 피어오른다.

‘과연 이 시대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셰익스피어라는 위명에 비해 권서준이 알고 있는 정보는 희박했다.

놀랍게도 전생을 깨닫기 전까진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읽은 적조차 없었다.

‘대부분 동화 수준으로 각색한 버전뿐이었어.’

나는 견디기 힘든 호기심에 급히 도서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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