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Good riddance - 속이 시원하다 (4)
7.
***
문예창작학과 송영도 교수.
그의 별명은 좀처럼 웃지 않는 교수였다.
허나 ‘좀처럼’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웃는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그런 송 교수의 얼굴은 오늘따라 더욱 굳어있었다.
굵은 뿔테 안경 너머로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겉멋만 가득하고, 알맹이가 없어.’
쉬는 시간.
3학년 과제를 살펴보던 송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갈수록 학생들의 과제 수준이 떨어졌다.
그럴듯해 보이려고 포장만 할 뿐 말하고자 하는 본질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본질 자체가 무엇인지 모를지도...’
화려하게 겉만 꾸미는 SNS 문화.
보이는 것에 익숙한 학생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머리를 쥐어뜯는 사색의 과정을 견뎌내지 못했다.
‘여러 작가의 문체와 테크닉을 따왔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의도를 가지는지도 모르고 있어.’
답답한 마음에 송 교수의 어깨가 늘어진다.
한때 맨부커 상까지 수상한 천재 작가 송영도.
그가 해외의 숱한 제안에도 국내 대학을 선택한 건 오로지 후배 양성을 위함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 노벨 문학상이 나오길 바랐으니까.’
후진 양성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교단에 섰다.
그러나...
‘이대로는 가망이 없어. 이런 수준의 작품을 합평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해가 지날수록 절망의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후...”
송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 작품을 집어 들었다.
과제 마감 직전에 제출한 듯 제일 아래에 놓인 작품.
겉표지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권서준?’
이름과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다.
올해 3학년인 복학생으로 언제나 열심히 하는 녀석이었다.
그러나 그만큼의 아웃풋을 내지 못하는 비운의 노력가이기도 했다.
‘휴학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취소한 건가?’
볼 때마다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학생이었다.
‘봄과 삶?’
제목은 평범했다.
송 교수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은 채 첫 장을 넘겼다.
부모를 잃고 절망 속에 빠져버린 한 소녀.
부모님의 묘지 앞에 털썩 주저앉아 냉혹한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든 것은 멈춰버린 듯 절망적이고,
빛을 잃은 세상은 온통 잿빛이 되어버린 상태.
그런데...
어느새 찾아온 봄의 기운이 그녀에게 속삭인다.
‘이건...’
상체를 일으킨 송 교수가 안경을 고쳐 쓴다.
[봄바람이 불고 강물은 멈춤 없이 고요히 흘렀다. 적막함 속에서 만물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것은 생명이었다. 멈춰버린 줄 알았던 세상. 그러나 만물은 저마다의 길을 찾아 소리 없이 살아가는 중이었다.]
봄의 정취를 통해 소녀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었다.
본 적 없는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글 나들이.
송 교수는 흥분되는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은 채 뜨겁게 맞아들였다.
송 교수는 잠시 고개를 들어 글에서 눈을 뗐다.
감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냉정하고 치밀하게 학자로서의 접근도 놓치지 않는다.
‘결국 스스로 봄이 되어 자신의 길을 가라는 의미야.’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
소설 안에서의 길은 희망을 의미했다.
“하...”
의지와 상관없이 감탄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말 서준이가 쓴 작품이라고?’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문체.
사색의 깊이까지 더해져 울림마저 깊었다.
‘설마, 누가 도와준 건가?’
그런 의심이 들 만큼 수준이 높았다.
의심과 기대.
이율배반적인 두 생각이 송 교수에 머릿속에 혼재했다.
‘결국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어.’
한참을 고심한 송 교수는 서둘러 강의실로 향했다.
***
나는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 강의실로 향했다.
안에는 몇몇 동기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참, 이번에 송영도 선생님 영국 학회 가시잖아. 그때 학부생 한 명도 같이 데려간다던데?”
“그거 이미 진호로 결정 났을걸?”
“정말? 아... 하긴 성적도, 영어 실력도 진호가 제일 낫긴 하네.”
동기들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한 녀석이 말없이 미소를 짓는다.
이야기의 당사자인 송진호였다.
“어때? 뭐 들은 것 좀 없어?”
동기가 묻자 송진호가 고개를 젓는다.
“아직. 근데 조만간 말씀해주시지 않을까?”
송진호는 송 교수와의 영국 동행을 이미 자신의 권리처럼 말하고 있었다.
송진호뿐만 아니라 학과 전체의 분위기가 그랬다.
“어? 권서준 왔다.”
그때, 나를 본 동기 녀석이 속닥거린다.
자연스럽게 송진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마치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듯 순간 반짝이는 눈동자.
이쪽에선 반기지도 않는데 굳이 다가와 말을 건다.
“합평 준비는 잘했어?”
“뭐, 그럭저럭.”
“아까 일은 너무 신경 쓰지 마. 우리가 실수했어. 이번 합평은 잘해보자.”
녀석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몸을 돌려 멀어진다.
걱정해주는 척하지만 결국 자신과의 격차를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
애들 앞에선 외모와 인격을 다 갖춘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속은 까만 놈이었다.
‘어린놈이 영악해.’
자기 능력을 과신한 채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는 스타일이었다.
언뜻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아주 한심하고 우스워 보일 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물론 비웃음이었다.
***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오후 강의가 시작되었다.
점심을 먹고 난 직후라 춘곤증이 밀려오기 좋은 날씨였지만 학생들의 눈빛은 매서웠다.
안 그래도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전공 수업이라 모두 긴장한 상태였다.
‘이제 한 번 읽어볼까?’
송진호는 그제야 카페에 들어갔다.
제일 늦게 올린 권서준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마감 시간에 맞춰서 급히 올렸나 보네.’
시간에 쫓긴 작품이 제대로 된 퀄리티를 가질 리 없었다.
그러나 그거야말로 송진호가 원하던 바였다.
막 다운을 받으려는 찰나, 송영도 교수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특유의 냉랭한 표정과 단호한 걸음걸이는 등장만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송진호 역시 잠시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송 교수를 바라봤다.
강대상 앞에 선 송영도 교수는 안경을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자, 오늘은 합평 대신, 몇 가지 얘기를 좀 하지.”
그 말에 몇몇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합평이 예정된 학생들이었다.
물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송진호였다.
“운이 좋네.”
송진호가 슬쩍 권서준에게 말했다.
그러자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운이 좋은 건 너지.”
송진호는 순간 헛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지?’
아무 감흥 없는 녀석의 표정은 더 마음에 안 들었다.
그때,
송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서 햄릿을 아는 사람?”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눈에 들기 위해 재빨리 행동했다.
잠시 뒤, 강의실에 앉아있는 모든 학생의 손이 허공을 향했다.
“그럼 햄릿의 저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
이번에도 마찬가지.
모든 학생들이 자신 있게 손을 들었다.
송 교수는 그중에서 제일 먼저 손을 든 한 명을 가리켰다.
“셰익스피어입니다.”
지목받은 여학생은 다소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송 교수의 질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좋아. 그럼 햄릿은 어느 나라 왕자일까?”
“...”
조금 전까지 자신 있게 대답하던 여학생은 입을 열지 못했다.
여학생뿐만이 아니었다.
강의실은 전체가 조금 전과 달리 고요했다.
“혹시 아는 사람 없나?”
잠시 뒤.
권서준을 비롯해 몇 몇 학생들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생각보다 적군.”
송 교수는 실망스러운 기색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여러분은 햄릿도 알고, 셰익스피어도 알고 있어. 책을 읽은 적도, 공연을 본 적도 없지만 알고는 있지. 물론 ‘안다’는 건 좋은 거고 대단한 거야. 그러나 단순히 ‘안다’는 정도로는 결코 내 것이 되지 않아.”
송 교수는 두어 걸음을 움직여 강의실 정 가운데에 섰다.
무게감 있는 움직임에 학생들의 시선이 저절로 따라간다.
“작법 역시 마찬가지야. 너희들은 수많은 작법에 대해 배웠어. 그것도 무려 3년에 걸쳐서 대학이라는 고등 학문 기관에서 배웠지. 그런데 결과는 어떻지?”
송 교수는 옆에 놓인 과제 더미를 짚으며 말했다.
“조금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
자신들이 낸 작품의 퀄리티를 알기에 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숙연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송 교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나는 작품도 있었어.”
지켜보던 송진호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송 교수가 말한 그 작품에 자신의 작품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송진호의 「계절의 깊이」. 거칠지만 계절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이 좋았다.”
역시 자신의 작품이 호명되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송 교수의 선택이었기에 기뻤다.
“역시.”
“등단 작가는 다르네.”
동기들도 부러운 듯 송진호를 바라본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이 가장 빛나는 익숙한 전개.
송진호는 늘 그렇듯 슬며시 차오르는 고양감을 음미했다.
‘그래. 이 맛이지.’
그런데 송 교수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작품. 아니, 이 작품이야말로 내가 가장 재밌게 본 작품이지.”
순간적으로 송진호의 표정이 굳어진다.
또 있다고? 아니,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이라고?
달리 말하면 자신의 작품보다 퀄리티가 높다는 뜻이었다. 고취되었던 기분이 빠르게 식어간다.
송진호는 조금 놀란 듯 주변을 둘러봤다.
‘이 중에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나마 실력이 좋은 몇몇 애들이 떠올랐지만 송 교수가 인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체 누구지?’
그 순간,
송 교수는 전혀 뜻밖의 사람을 호명했다.
“권서준, 제목은 「봄과 삶」.”
‘뭐라고? 권서준?’
송진호는 충격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러나 송 교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고, 계절 변화에 따른 역동성을 삶에 빗댄 게 좋았어. 이 정도 퀄리티만 계속 유지한다면 이번 학기 중 제일 먼저 A 플러스를 받을 수 있을 거다.”
순간 강의실 안이 술렁거렸다.
한 학기에 세 명도 채 받지 못하는 A 플러스를 송 교수가 대놓고 말하다니.
그건 자신이 권서준보다 아래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인정할 수 없어.’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송진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권서준을 쳐다봤다.
그런데...
“볼래?”
권서준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는 선심이라도 쓰듯 자신의 과제를 내밀었다.
“...”
심경은 복잡했지만 송진호는 거절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송 교수에게 극찬을 들은 건지 궁금했다.
결국 그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권서준의 작품을 받았다.
그리고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수록 송진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걸, 진짜로 권서준이 썼다고?’
봄의 심상을 이용한 서사는 차분했지만 역동적이었다.
상처받은 소녀와 봄의 대비는 그야말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말도 안 돼...’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송진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합평해도, 이 작품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이 할 수 없다면, 이곳에 모인 누구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조금 전 권서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운이 좋은 건 너지.’
송진호는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났음에도 송진호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
권서준이 다가왔다.
말없이 자신의 과제를 챙긴 권서준이 가만히 송진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툭, 툭, 툭.
수업 전, 송진호 자신이 했던 것과 똑같은 리듬이었다.
권서준은 강의실을 나갈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송진호의 귓가엔 그의 목소리가 맴도는 듯했다.
‘이게 너와 나의 차이 아닐까?’
견디기 힘든 치욕.
송진호는 소리 없이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