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무한-137화 (137/250)

137화

‘크윽!’

무한이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뜨거운 화염과 강력한 충격파에 직격 당했다.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보호하려 하였지만 내력을 소진한 상태에서 강한 충격파를 맞고는 떼굴떼굴 일 장이나 굴렀다. 그래도 정신은 잃지 않았다.

“푸우!”

울컥, 솟구친 피를 내뱉고는 문득 든 생각에 휙, 뒤를 돌아봤다.

‘고노!’

고노는 폭발이 미치는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여전히 땅바닥에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무한은 고노에게서 눈을 떼고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아주 애매한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저 멀리 삼십여 장 거리에 인솔자와 인부 둘이 보였다.

폭약에 대해 잘 아는 그들은 폭발 범위 밖으로 도주하였기에 멀쩡했다.

그리고 인부 중 하나는 폭약단지까지 가지고 있다.

이쪽은 남궁호가 폭발에 휩쓸리기는 했지만 멀쩡한 듯 보였고, 뒤늦게 당도한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십여 명 있었다.

한편 폭발로부터 살아남은 실혼인들이 꿈틀거리며 일어나고 있는데 대략 서른은 되어 보였다.

인솔자는 멍하니 서서 폭발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작전이 대실패로 끝났다.

넘치는 전력이라고 여겼는데 독노와 고노가 어이없이 죽고, 폭약이 터지면서 속절없이 스러졌다.

나라에서 금하는 폭약을 이만큼 모으기 위해 수년 간 엄청난 거금과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 한순간 날려 먹었다. 그것도 독왕이 아니라 실혼인들 대부분을 죽이면서…….

이는 죽음으로 책임을 묻는다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결과다.

‘정신 차려라!’

인솔자가 자기 뺨을 쳤다.

짜악, 소리와 함께 정신이 돌아왔다.

살아남으려면 최소한의 성과라도 있어야 한다.

무한과 독왕을 죽이면 되지 않을까? 비밀통로는 후일을 도모하면 된다.

입구의 위치를 그린 지도가 있으니 다시 폭약을 마련하여… 아니, 독왕만 없으면 인부들을 동원해서라도 땅을 파면 된다.

그런데, 독왕을 죽일 폭약이 사라졌으니 어쩌지?

인솔자는 자신의 뒤에 선 인부를 돌아보았다.

둘만 남았는데 그중 하나가 폭약단지를 가지고 있다.

유일하게 남은 폭약단지…….

쌍인고를 해독하느라 기력을 소진한 상태이니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일단 저놈부터 죽여야 한다.’

무한의 압도적인 무위가 떠오른 인솔자가 몸서리쳤다.

어차피 비밀지도를 얻으려면 무한을 쓰러뜨려야 한다.

인솔자의 시선이 멀리 쓰러진 고노를 보았다.

만독곡의 비밀공간을 표시한 지도는 고노가 가지고 있다. 고노는 그 지도를 독노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인솔자는 양다리가 잘린 채 두 손으로 기어가는 고노를 보고도 구할 생각은 없었다.

오노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 그는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

인솔자는 독왕과 무한이 죽고 나면 독노와 고노도 비밀통로에 묻어버릴 생각이었다.

만독곡의 후인인 오노는 손우자에게 은인이자 부담스러운 존재들이었다.

인솔자는 슬그머니 고노 쪽을 향해 움직이다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남궁호를 보았다.

‘남궁세가? 이놈들은 왜 여기 있는 거지?’

인솔자는 생각지도 못한 남궁호의 등장에 문득 의심이 들었다.

지금 이 상황도 손우자가 의도한 게 아닐까?

‘혹시 나까지 죽는 걸 계산에 넣었나?’

오노도 모르는 손우자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자신이다.

인솔자가 고개를 저었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두 사람은 죽마고우다. 죽음에서 여기까지 수십 년간 친형제처럼 지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지만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한번 의심하니 모든 게 뒤죽박죽 섞여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언제부터인가 손우자의 행보는 그의 예측을 벗어났다.

추노와 잔노, 환노가 연달아 죽었을 때까지만 해도 거기에 손우자의 의도가 담겨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왜냐면… 손우자가 진정으로 슬퍼했으니까.

그런데 이번 출정에 앞서 손우자가 그에게 지시했다.

비밀창고 안의 물건을 확보한 뒤 독노와 고노는 땅에 묻어버리라고.

- 두 사람만 죽으면 우리의 과거를 아는 이는 없어… 말하자면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지.

그 말을 들으며 그제야 손우자가 그간 오노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인솔자의 귀에 환청이 들려왔다.

- 너만 죽으면 나를 아는 이는 없어…….

심연 깊은 곳에서 울리는 섬찟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인솔자가 주위를 살폈다.

자신까지 같이 제거하려 했다면 뒤를 쫓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손우자는 이곳저곳에 수많은 전력을 숨겨 놓았다. 자신이 아는 곳만 해도 세 곳이다.

지금 상황이라면 그중 하나만 보내도 깨끗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인솔자가 당황하여 주위를 살피는 모습은… 무한의 눈길을 끌었다.

‘저자가 왜 저러지?’

무한은 인솔자가 당황하여 주위를 살피자 지원대를 찾는 거라고 판단했다.

남궁호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남궁세가 무인들에게 주위 경계를 지시하였다.

실혼인들은 거대한 폭발을 겪고도 인솔자가 내린 마지막 명령을 잊지 않았다.

일어나는 족족 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약물에 취해 이용당하다 죽어야 하는 운명이 가엾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 사정을 헤아려줄 형편이 아니다.

무한은 경천심결을 운기하며 검을 세웠다.

서걱!

가까이 있다가 먼저 달려든 실혼인 하나의 머리가 떨어졌다.

무한이 실혼인들과 접전을 벌이자 귀영과 남궁우가 달려와 후미를 쳤다.

“부주, 귀 호위가 왔습니다!

귀영이 크게 소리치며 무한을 향해 달려가는 실혼인의 머리를 찍었다.

남궁호의 지시를 받은 남궁세가 무인 여섯 명도 가세하였다.

남궁세가 무인들은 늘 하던 대로 적의 요혈이나 팔다리 경맥을 노렸다가 크게 당황하였다.

남궁세가 무인 하나가 등이 찔린 실혼인이 아랑곳하지 않고 반격을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목이 잘릴 뻔했다.

마침 가까이 있던 남궁우가 무인을 발로 찬 덕분에 실혼인의 도격이 귀밑을 스치며 핏줄기만 남겼다.

“이자들은 이지를 잃었어. 목을 잘라야 해.”

그제야 남궁세가 무인들은 무한이 굳이 괴인들의 목을 치는 이유를 알았다.

검으로 사람의 목을 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실혼인들은 이지만 상실했다 뿐이지 일류고수를 뛰어넘는다.

남궁세가 무인들은 곧바로 곤혹한 처지가 됐다.

“머리를 써! 뒤로 빠지라고. 길을 막지 말고 뒤따라가면서 목을 치라고!”

남궁우가 외쳤다.

실혼인들은 공격을 당하면 반격하지만, 가만두면 무한에게 향했다.

남궁우의 말에 남궁세가 무인들이 일제히 옆으로 빠졌다.

과연 실혼인들은 남궁세가 무인들을 상대하는 대신 무한을 향해 질주하였다.

귀영 등은 무한을 향해 가는 실혼인들의 뒤에 접근해서 목을 쳤다.

서걱!

무한은 연이은 내상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검을 휘둘렀다.

***

운객은 맞은편 언덕 위에 나뭇가지 사이에 은신하고 있었다.

한 조각 구름처럼 유유히 서 있는 그는 아무런 기운도 흘리지 않았다.

하늘에 늘 구름이 떠 있으나 이를 의식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래서 그의 이름이 운객이다.

하늘의 구름에 자신을 감추고 내려다보는 그는 무한과 실혼인들의 격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또한 무한이 독노와 고노를 해치우는 걸 봤다.

그 충격과 흥분이 가시지 않았기에 흥미진진한 눈으로 일대다수의 격돌을 지켜봤다.

그러나 싸움은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강변에서 벌어졌던 싸움은 격렬함이라도 있었다. 팔다리가 날아가고, 피가 튀는 처절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한의 일검에 실혼인들의 머리가 떨어지는… 그야말로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실혼인들이 폭발의 타격을 받은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은 그보다 더 충격을 받은 듯 움직임이 간간이 끊긴다.

그런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실혼인들의 도를 막고, 이어서 목을 베어 쓰러뜨리고 있다.

‘얼마 되지 않은 사이에 대체 무슨 기연을 얻은 거지?’

운객은 독노와 고노를 죽일 때의 움직임을 다시 한 번 보고자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으나 끝내 다시 볼 수 없었다.

머릿속에 환영과도 같은 검세가 어지러이 난무한다.

눈이 밝다고 자부하는 그조차도 검세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했다.

‘뇌전을 담은 벼락같은 검, 팔황에 몰아치는 폭풍 같았던 검, 그리고… 하늘을 집어삼킬 듯 날아오르던 검.’

운객이 속으로 되뇌었다.

검세만 보고도 뇌전격과 팔황격, 용연격을 알아본 안목은 실로 대단하다 할 수 있으나 운객은 성이 차지 않았다.

‘경천십이식… 진정 천하제일인의 검이란 말인가.’

경천십이식이 천하제일검법이라지만 그게 어떤 검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운객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 역시 보고도 어떤 초식인지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느낌만 받았을 뿐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검법이라.’

운객은 말없이 무한의 검세를 지켜보며 경천십이식의 단초를 찾으려 하였다.

***

실혼인들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자 인솔자가 당황하였다.

실혼인들이 무한을 잡고 있는 사이 고노에게 접근해 비밀지도를 빼낼 생각이었는데.

남궁호가 앞에 버티고 서 있다.

남궁호 뒤로 네 명의 무사가 도열하고 있어 힘으로 뚫어야 하는 상황이다.

인솔자가 폭약단지를 들고 있는 인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심지에 불을 붙여 건네라.”

인부는 두말없이 심지에 불을 붙인 다음 인솔자에게 건넸다.

인솔자는 화약을 오랫동안 다뤘기에 폭약단지의 심지 길이를 조절하여 터지는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대략 스물을 헤아릴 정도의 여유를 둔 인솔자가 그대로 몸을 날리며 인부들에게 명령했다.

“길을 뚫어라!”

인부들이 도를 빼어 남궁호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도 이대로 돌아가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앞으로 달려 나와 인부들을 가로 막았다.

채챙!

검과 도가 부딪히며 불꽃이 튀겼다.

인솔자가 슥, 걸음을 떼자 신형이 사라졌다.

환노로부터 신법을 사사 받은 인솔자는 마치 환영이 사라지듯 모습을 감췄다.

“어딜 가느냐!”

남궁호가 호통을 치며 허공을 날아올라 크게 검을 베었다.

쉬익!

인솔자의 기운을 감지하고 검을 내질렀으나 허공만 베었다.

“제기랄!”

체면을 구긴 남궁호가 곧바로 몸을 날려 인솔자를 따랐다.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창궁무영을 극한까지 펼쳤으나 인솔자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다급한 나머지 남궁호가 크게 외쳤다.

“조심해! 폭약단지를 가진 놈이 가고 있다!”

귀영과 남궁우 등이 놀라 쳐다보는데 벌써 폭약단지가 무한을 향해 날아가는 중이다.

“부주!”

“심무한!”

귀영과 남궁우가 동시에 외쳐 경고를 하였다.

다른 이들은 몰랐지만 무한은 이미 한계상황이었다. 오랫동안 몸에 밴 검을 무의식적으로 휘둘러 실혼인들을 베고 있을 뿐이다.

귀영과 남궁우가 외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어오는 환청과 같았다.

그와 동시에 천목혈이 찌릿, 하며 본능적으로 옆을 돌아봤다.

폭약단지?

쾅!

인솔자가 시간을 조절해둔 폭약단지가 무한 일 장 거리에서 터졌다.

머리 높이에서 순간적으로 커다란 화염구 번쩍하고 나타났다가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파파팟.

살상을 극대화하기에 폭약단지에 담아둔 쇳조각들이 비산하여 여기저기 꽂혔다.

“부주!”

귀영이 처절하게 외치며 무한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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