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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무한-138화 (138/250)

138화

구름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피가 튀는 싸움을 지켜보던 운객이 흠칫, 미간을 찌푸렸다.

인솔자가 폭약단지를 들고 화살처럼 무한을 향해 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위험한데?’

아니나 다를까.

폭약단지가 터지고 무한이 화염에 휩싸였다.

운객의 미간이 우그러들었다.

‘여기까지인가?’

무한을 죽이러 왔다가 졸졸 따라다닌, 이상한 여정의 끝이 왔음을 직감했다.

순간, 운객이 옆을 돌아봤다.

그의 옆 삼십여 장을 지나쳐 빠르게 날아가는 네 줄기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은신에 특화된 운객은 화경의 고수도 파악하지 못하리라 자신한다. 그러니 지금 저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보통 고수라는 건 아니다.

연기처럼 빠르면서도 옷자락 소리조차 흘리지 않는 고요한 움직임…….

‘살수다!’

동시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저들이 가는 방향은 무한과 고노가 있는 곳이다.

너른 공터라 은신할 수 있는 지형이 아니다.

‘살수가 정면공격을 택해?’

폭약이 터지며 무한은 죽거나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궁호 등이 남아 있다.

운객은 공터 가에 있는 바위 뒤로 은신하는 네 줄기 인영을 쏘아봤다.

무한을 비롯한 이들은 격전과 폭약단지가 터진 여파로 살수들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살수들은 최적의 순간을 노릴 심산인 듯했다.

‘감히… 나의 살수행을 망치다니!’

운객은 까닭모를 분노와 함께 살수 특유의 호승심이 일었다.

풍운야우.

화수전 최고의 살수를 지칭한다. 살수로 풍운야우와 같은 경지를 이룬 이들은 당대에는 없다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지금 스쳐 지나간 놈들은 거의 풍운야우에 버금가는 움직임을 보였다.

스르륵!

운객의 신형이 사라졌다.

***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걷히고 무한이 드러났다.

검을 세워 땅바닥에 꽂고 서 있는 무한은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급히 호신강기를 펼쳤으나 날아드는 쇳조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다만 마지막 순간 왼손 손목보호구로 얼굴을 가렸기에 머리에 치명상을 입는 건 피할 수 있었다.

쿨럭!

피를 한 모금 토하자 정신이 들었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쳐들었다.

인솔자가 고노에게 다가가는 게 보였다.

이십여 장 거리.

순간, 무한이 땅에 꽂은 검을 뽑아 그대로 날렸다.

쉬이익!

검이 날아오자 인솔자가 주춤하였다.

속도가 빠른 건 아니나 이미 무한의 무위에 압도당한 인솔자는 감히 맞받아치지 못하고 뒤로 피했다.

푹!

검이 땅바닥에 꽂히자 인솔자는 무한이 내상을 입었음을 알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지근거리에서 폭탄이 터졌는데 살아있는 게 용했다.

인솔자가 무한부터 죽일까 하는데 남궁호가 쫓아와 바로 검을 휘둘렀다.

쉭!

차가운 검광이 인솔자의 전신을 난자할 듯 밀려들었다.

남궁호는 자기가 막지 못해 무한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파파팟!

챙! 챙! 챙!

인솔자가 도를 빼어드는 동시에 날아드는 검광을 쳐냈다.

순간적으로 검과 도가 대여섯 차례 부딪혔다.

인솔자는 남궁호를 상대하면서도 무한을 의식하고 있었다.

‘헉!’

전신이 피로 물든 무한이 냉혹한 얼굴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내상을 입어 하얗게 질린 얼굴 때문에 더더욱 차가워 보였다.

인솔자는 거칠게 도를 휘둘러 남궁호를 떨쳐내려 했다.

하지만 남궁호도 만만치 않았다.

시퍼런 검광에 이어 싸늘한 검기가 인솔자의 발을 묶었다.

그사이 무한이 다가와 고노와 인솔자 사이에 서더니 땅에 꽂힌 검을 뽑았다.

귀영이 비틀거리는 무한을 부축하려 했으나 손을 내저어 막았다.

검 끝으로 땅바닥을 짚고 선 무한은 치밀어 오르는 핏덩이를 삼키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서서 운기하려는 것이다.

남궁세가 무인들과 싸우던 인부들도 죽었다. 이제 남은 건 인솔자뿐이다.

하지만 인솔자의 무공이 만만치 않았다.

환노의 신법에 잔노의 도법을 익힌 인솔자는 분명 고수였다.

다만, 무한이 독노와 고노를 순식간에 해치운 걸 보고 심리적으로 잠시 위축되었을 뿐.

남궁호와 교전을 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였다.

무한이 중상을 입은 걸 확인한 인솔자는 여유마저 생겼다.

이들을 다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한 몸을 빼어, 도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노의 비밀지도만 챙기면 되는데…….

인솔자가 남궁호의 도를 피하며 고노 쪽을 슬쩍 살폈다.

고노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어가고 있었다.

버둥거리던 몸짓도 그치고, 간간이 경련만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감히 나와 겨루면서 한눈을 팔아?’

인솔자가 한눈을 팔자 남궁호가 내심 격분하며 이를 악물고 검을 찔렀다.

슥!

종이 한 장 차이로 검을 피한 인솔자가 피한 곳은 무한 쪽이었다.

무한은 검으로 땅바닥을 짚고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한이 중상을 입었으니 해치우고 고노를 들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인솔자가 따라붙는 남궁호를 향해 벼락같이 삼 초를 쏟아냈다.

파파팟, 하는 기음과 함께 하얀 도강이 허공을 가르며 남궁호를 향해 몰아쳤다.

“아!”

지켜보던 남궁우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역시 진경의 고수였어.’

남궁호도 강기가 쏟아지자 경각심을 곤두세우고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려 맞받아쳤다.

피하는 게 마땅했으나 연달아 구긴 체면 때문에라도 물러설 수 없었다.

쾅!

남궁호가 인솔자의 도강을 맞받아치고 뒤로 일 장이나 쭈욱, 밀려났다.

그사이 인솔자가 무한을 향해 도약하였다.

“어디를 넘봐, 새꺄!”

귀영이 툭, 튀어나와 무한의 앞을 막고 도를 그었다.

남궁우가 좌측에서 검을 쭈욱, 뻗었다.

휙.

인솔자의 신형이 환영처럼 사라지더니 무한의 측면에 나타났다.

“어엇!”

귀신같은 신법에 놀란 귀영이 따라붙으려는데 인솔자는 벌써 무한을 향해 도를 그었다.

새하얀 도강이 무한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인솔자의 신법이 워낙 빨랐고,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귀영과 남궁우도 미처 제지할 수 없었다.

“아악!”

남궁우가 검을 앞세워 돌진하면서도 이미 늦어 무한의 목이 떨어질 거라는 생각에 비명을 질렀다.

‘됐다!’

인솔자는 자신의 도강이 무한의 목을 잘라낼 것을 확신했다.

순간, 무한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동자가 무심하고도 차가웠다.

그 눈빛에 인솔자가 움찔하였다.

무한의 왼손이 치켜 올라가고 땅바닥을 짚고 있던 검이 그대로 그어올라왔다.

까앙!

인솔자의 도강은 무한의 왼손 손목보호구에 부딪히고… 무한의 검이 인솔자의 사타구니부터 베어 올라왔다.

“크아악!”

한순간 방심했던 인솔자는 아랫배가 화끈해지는 걸 느꼈다.

가랑이부터 파고든 검이 복부를 가르고 갈비뼈에 턱, 걸렸다.

검이 빠져나가자 주르륵 내장이 흘러내렸다.

“끄으으윽.”

인솔자의 부릅뜬 눈이 무한을 노려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했다.

검을 뺀 무한이 비틀거렸다.

귀영과 남궁우가 바로 부축을 하였다.

그 순간.

“조심해! 자객이다!”

남궁호의 경고가 날아들었다.

인솔자의 복부에서 손바닥만 한 쇠화살이 튀어나왔다.

귀영이 얼른 도를 내밀어 막으려 했으나 거리가 너무 가깝고 쇠화살은 빨랐다.

남궁우가 무한을 감싸며 밀쳤다.

푹!

쇠화살이 남궁우의 옆구리를 관통하며 무한의 복부에 꽂혔다.

“아윽!”

남궁우가 비명을 지르고.

남궁호가 갑작스레 나타난 네 줄기 인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개새끼들이!”

귀영이 이를 바드득 갈고 여전히 앞에 서 있는 인솔자의 목을 쳐버렸다.

쿵!

인솔자가 뒤로 넘어가고 쇠뇌를 들고 있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 넷이다! 막아!”

남궁호의 외치기 전에 이미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런데.

푹!

검을 찔러가던 남궁세가 무인이 쇠뇌에 맞아 그대로 거꾸러졌다.

“이 새끼들, 죽어라!”

귀영이 도를 마구 휘두르며 무한의 앞을 지켰으나 쇠화살은 옆에서도 날아왔다.

남궁우가 허리춤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고통을 무릅쓰고 검을 들어 막으려는 순간, 무한이 스르륵 옆으로 빠지며 검을 치켜들었다.

챙!

쇠화살이 검면에 부딪히며 기운이 실리지 않은 검이 밀렸다.

튕겨나간 쇠화살이 아슬아슬하게 남궁우의 얼굴을 스치고 날아갔다.

자객들의 신법은 빠르고, 그리 크지 않은 쇠뇌는 무척이나 강력했다.

쇠뇌를 다루는 자객들의 손놀림은 무척이나 익숙하여 한 발을 쏘고 순식간에 다시 장착을 하였다.

“심 부주를 지켜라!”

남궁호가 자객을 쫓으며 외쳤으나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무한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귀영과 남궁우는 무한의 앞과 뒤를 지키느라 자객들을 쫓을 수 없었다.

무한은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독노와 고노를 죽이며 무리하게 내공을 쓴 데다 폭약의 충격파와 날붙이, 이어 복부에 쇠화살까지 박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방금 쇠뇌를 비껴낸 것도 순전히 본능적인 감각에 따른 방어였다.

쉭!

“크윽!”

쇠화살이 날고 비명성이 터지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정신 차려, 심무한!’

무한이 어금니로 입 안을 깨물고는 까무러지는 의식을 부여잡았다.

서서히 눈앞이 열리며 장내 난전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남궁호는 자객 한 명과 격전을 벌이는 중이다.

귀영과 남궁우는 자신의 앞뒤에서 경계를 하며 날아오는 쇠뇌를 쳐내고 있었다.

남궁세가 무인들 가운데 서 있는 이는 불과 두 명.

자객들이 외곽을 돌며 쇠뇌를 쏘는데 워낙 신형이 빨라 눈으로 쫓기도 힘들었다.

‘할 수 있을까?’

무한은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움직여야 귀영과 남궁우도 싸움에 뛰어들 수 있다.

무한이 한 걸음 발을 내디뎠다.

전신에 박힌 날붙이들로부터 지독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온몸이 조각나는 것만 같았다.

무한이 자객 하나의 움직임을 쫓다가 눈을 부릅뜨고 몸을 날렸다.

“아, 부주! 무리하지 말라고!”

귀영이 쫓아오려다 날아드는 쇠화살을 쳐내느라 주춤했다.

자객의 앞길을 막은 무한이 검을 그었다.

아무런 내력도 실리지 않은 검이 힘없이 떨어지자 자객이 코웃음을 치며 벼락같이 도를 그었다.

무한의 배를 잘라버릴 듯 옆에서 그어오는 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잡았다!’

자객의 눈에 확신이 스쳤다.

그 순간, 천천히 떨어지던 검이 사라졌다.

천의격!

하늘의 뜻을 담은 검.

경천십이식 제일초이자 무한이 가장 먼저 익힌 초식.

내력도 없는 이 순간 천의격을 펼쳤는데 마치, 검이 저절로 움직이는 듯 자객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퍼억!

자객의 머리통에 검이 박혔다. 동시에 자객의 도가 무한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크윽!”

무한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졌고, 자객은 끄르륵, 가래 끓는 소리만 내다 쓰러졌다.

다 죽어가는 무한이 휘적거리는 검으로 자객을 죽이자 이를 본 귀영이 입을 쩍, 벌렸다. 그러곤 다가와 무한을 부축하였다.

그때 자객 하나가 쏜살같이 달려들며 무한의 등을 찍으려 들었다.

부지불식간에 귀영이 무한을 잡아 빙글 돌리고 자신의 등을 내밀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근데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귀영이 돌아보니 자객의 머리가 땅에 떨어져 구르고 있다.

하얀 구름 같은 신형이 멀어져간다.

이어서.

“크윽!”

남궁호가 기어이 자객 하나의 심장에 검을 박았다. 그러나 그의 어깨에도 쇠뇌가 박혀 있다.

남궁호가 쇠뇌를 뽑아내며 장내를 돌아봤다.

희뿌연 신형이 마지막 남은 자객을 쫓아가는 게 보였다.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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