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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무한-136화 (136/250)

136화

파지직!

뇌전의 기운까지 담은 비수를 맞은 고노는 번개라도 맞은 듯 경련을 일으키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순간, 따라잡은 무한이 거침없이 검을 휘둘러 고노의 두 다리를 잘랐다.

“아흐흑!”

방금까지 무한을 비웃던 고노는 연신 비명을 터뜨렸다. 상상도 못 한 일이 순식간에 벌어지니 자신도 믿지 못할 지경이었다.

무한이 검을 지긋이 내려 고노의 등을 그었다.

척추가 끊어지며 고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는 가장 마지막에 죽을 것이다.”

무한이 싸늘하게 내뱉었다.

무한의 검이 뽑히고 독노가 육편이 되기까지, 이어서 고노가 쓰러져 벌레처럼 땅바닥을 기는 신세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한의 움직임조차 쫓지 못했다.

“…….”

만독곡 입구는 비릿한 혈향과 함께 정적만 흘렀다.

폭풍과도 같이 몰아친 무한의 무위에 모두 얼어붙었다.

인부 인솔자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무심한 표정이지만 머릿속은 충격과 공포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독노와 고노가 순식간에 당하다니.’

그의 상식, 아니 그 어느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멀리서 지켜보는 귀영과 남궁우, 남궁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귀영은 얼마나 크게 입을 벌렸는지 턱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남궁우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 남궁호 역시 연신 침음성을 흘렸다.

무한의 무위는 말로만 듣던, 상상만 했던 현경의 고수를 보는 듯했다.

‘진경의 고수를 무 썰 듯, 썰어버리다니.’

심지어 검을 보지도 못했다. 남궁호는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남궁세가 삼형제 중 가장 무공이 강하다고 자부하는 남궁호였다.

남궁세가에서 비무하던 무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자신보다 하수라고 생각했는데……. 이래저래 방금 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기에 그저 침음성만 흘릴 뿐이다.

무한이 인솔자를 보았다.

무심을 가장한 얼굴 이면에 요동치는 심기가 느껴진다.

무한이 단숨에 독노와 고노를 해치울 수 있었던 것은 경천십이식이 완성되며 위력이 배가된 덕분도 있지만 천심공의 힘이 컸다.

독노 일행과 마주치고 몇 마디 나누는 짧은 순간, 무한은 많은 정보를 얻었다.

독노와 고노가 은근히 서로를 견제하기에, 기습을 해도 바로 도와주지 않을 것이란 계산.

인솔자가 독노와 고노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꼈던,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묘한 살의…….

백 명 가량의 이지를 잃은 이들은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독노와 고노만 해치우면 이들을 통제할 사람이 사라지니까.

그렇기에 전력을 다해 독노와 고노부터 해치웠다.

남은 것은 인솔자다. 저 자만 쓰러뜨리면… 남은 십여 명 인부들을 상대하는 건 어려울 게 없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무한은 당장이라도 손을 쓸 듯 인솔자를 노려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잠시 내력이 끊긴 상태다.

신공(神功)의 힘을 빌렸더라도 진경의 고수 둘을 같은 진경이 일참(一斬)한다는 건, 무리하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비록 내력의 공백 상태이지만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방금 본 압도적 무위에 짓눌려 이성이 마비된 것이다.

그들이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음 수를 놓아 머릿속을 흔들어 놔야 한다.

무한이 한 걸음 내디뎠다.

인솔자는 뒤편에 있었기에 이십여 장 떨어져 있다.

무한은 천천히 여유롭게 인솔자를 향해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온몸 근육이 요동치고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경천십이식은 원래 초식 자체가 공격일변도로 근육의 움직임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야 가능한 검법이다.

막대한 내공과 기운에 대한 깨달음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심양조 역시 화경에 이르러서야 경천십이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이 점을 아쉬워하다 말년에 깨달음을 얻어 경천심결을 남겼던 것.

실제로 무한은 경천심결로 익힌 내력이 전신에 퍼져 있기에 경천십이식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다만, 방금처럼 순간적으로 십성의 움직임을 발휘하는 건 진경 수준의 내공으로서는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내력이 끊기고 육신의 근육이 떨어져 나가는 후유증이 몰아친 것.

이처럼 극한의 고통이 육신을 저미는데 무한의 표정만은 너무나 여유로웠다.

공포의 존재가 다가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솔자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그 역시 진경의 고수.

독노나 고노조차 그의 진정한 무위와 신분을 몰랐지만 이미 진경의 끝을 향하는 중이다.

‘정신 차려라!’

인솔자는 어이없게도 자신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랬기에 진경의 극에 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죽음의 공포가 아니다.

약자가 강자에게 느끼는 본능에 따른 공포감?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런 공포는 의지만으로 바로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몸으로 느낀 본능적 공포를 극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아주 잠시라도.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벌 수 있는 도구가 눈앞에 있다.

독노와 고노에게 딸린 실혼인들…….

흉악한 시선으로 멍하니 서 있는 괴인들을 훑어본 인솔자가 품에서 손바닥만 한 피리를 꺼내 불었다.

삐이이익!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퍼지자…….

독노와 고노가 죽는데도 이지를 잃고 멍하니 앞만 보던 괴인들이 돌연 움직이기 시작했다.

삐빅!

요란한 피리 소리가 무한을 가리켰다.

괴인들이 일제히 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인솔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폭약단지를 준비해라! 폭사시킨다.”

인부들이 폭약을 싣고 온 수레를 향해 달려갔다.

수레는 넷이나 되고 폭약은 넉넉하다.

독진을 깨고, 비밀통로 입구를 여는 데 필요한 양에 더해 독왕 등을 폭사시킬 폭약단지까지 챙겨왔다.

독왕이 아니라 검천부 애송이에게 폭약을 쓸 것은 예상치 못했지만 지금 그걸 따질 경황이 아니다.

무한은 일제히 달려드는 괴인들을 보며 분노가 치밀었다.

손을 쓰기 전에 독노와 고노를 죽이면 이들을 다룰 사람이 없다고 보고 무리하여 해치웠는데…….

이들을 생포하면 이지를 회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괴인들이 깨어난 이상 죽일 수밖에 없다.

이지를 상실한 자들은 신체가 끊겨도 달려든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을 육편으로 만드는 건 행하는 이에게도 끔찍한 고통이다.

무한이 힐끗, 인솔자를 쳐다봤다.

괴인들을 죽음으로 내몬 인솔자는 그새 십여 장 뒤로 물러선 상태다.

그의 뒤로 바삐 움직이는 인부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레에 실려 있는 커다란 궤짝에서 어린애 머리통만 한 항아리를 챙기고 있다.

폭약이 담긴 단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귀영?’

귀영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귀신같은 보법을 인부들은 물론이고 인솔자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 뒤로 남궁우와 남궁호가 조심스레 따라오고 있다.

남궁세가의 창궁무영보도 뛰어나지만 은신술에 특화된 귀영의 보법을 따르기는 어려웠다.

무한과 귀영의 시선이 마주쳤다.

‘저런 미친…….’

오십여 장이 넘는 먼 거리이지만 귀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말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귀영은 정말 단순무식하게 돌진하고 있다.

순간, 무한은 인솔자를 향해 비수를 날렸다.

귀영의 계획을 말릴 수 없다면 도와주기라도 해야 한다.

쌔애액!

비수가 화살처럼 날아오자 인솔자가 흠칫, 하며 도를 세웠다.

무한이 달려드는 괴인들을 피하며 인솔자를 향해 몸을 솟구쳤다.

무한이 실혼인들을 제쳐두고 자신에게 달려들자 인솔자가 황급히 피리를 불었다.

삐비빅!

실혼인들이 달려드는 속도가 배는 빨라졌다.

결국 사방에서 몰려든 실혼인과 무한이 격돌할 즈음… 귀영은 수레까지 다가올 수 있었다.

그제야 귀영을 발견한 수레 위의 인부 하나가 황급히 놀라 외치려는 순간.

쉭!

컥!

목에 비도가 박힌 인부가 굴러 떨어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다른 인부들이 귀영의 존재를 알아채고 일제히 도를 뽑았다.

챙!

인솔자는 뒤에서 소동이 일자 돌아보곤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더는 무심한 표정을 지을 상황이 아니다.

귀영은 귀신같은 신법으로 이미 수레에 올라서서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는 인부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심지에 불이 붙은 폭약단지가 들려 있었다.

폭약단지의 위력을 아는 인부들은 수레에서 떨어져 고함만 지르고 있다.

귀영이 인부들을 위협하다 자신을 보는 인솔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뭘 봐, 이 새꺄? 사람을 폭사시켜? 너나 죽어라!”

귀영이 폭약단지를 던질 듯한 자세를 취하자 인솔자가 황급히 십여 장 옆으로 물러났다.

“저놈부터 죽여라!”

인솔자가 외쳤으나 인부들은 오히려 슬금슬금 물러났다.

심지가 벌써 반이나 타들어 갔다.

“흥, 비겁한 새끼들.”

귀영이 폭약단지를 폭약상자 옆에 놓고는 황급히 도주하였다.

인솔자가 황급히 외쳤다.

“심지를 꺼! 불을 끄란 말이다!”

인솔자가 아우성을 쳤지만 인부들은 오히려 기겁하며 달아났다.

이윽고.

콰앙!

수레가 터지며 반경 삼십여 장의 땅이 뒤집혔다.

이어 나머지 수레들까지 터졌다.

콰앙! 콰앙! 콰앙!

마지막 수레는 폭약이 가득 실려 있었던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굉음과 함께 화염이 이십여 장을 뒤덮고, 충격파가 사십여 장 너머까지 퍼졌다.

“커윽!”

귀영은 죽을힘을 다해 도주했으나 생각 이상의 거대한 폭발에 휩쓸렸다.

달려오던 남궁우와 남궁호 역시 황급히 뒤로 물러났으나 폭발의 충격파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떼굴떼굴 굴렀다.

잠시 후.

처참한 광경이 드러났다.

수레가 있던 주위는 오 장 가량의 구덩이가 파였고, 미처 피하지 못한 인부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십여 장이 넘은 거리에서야 팔다리가 끊어진 육신들이 보였다.

귀영은 삼십여 장 거리에 쓰러져 있다가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머리가 온통 그슬렸고, 옷도 군데군데 탄 흔적이 역력하다. 입가에 핏물까지 흘렀다.

남궁우는 그보다 십여 장 뒤에 있어 화염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다만 충격파에 당해 속이 울렁거리고 고막이 먹먹했다.

“크윽!”

일어나던 귀영이 비틀하며 땅을 짚고 쓰러질 뻔했다.

남궁우가 귀영에게 달려가 부축하며 말했다.

“미쳤어? 그걸 다 날리면 어떡해?”

“아흐흑, 이렇게 위력이 클 줄 누가 알았냐고…….”

귀영이 투덜거리면서 자신이 행한 업적을 돌아봤다.

폭발은 실혼인들도 휩쓸었다.

원래 폭약 수레와 실혼인들과의 거리는 삼십여 장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귀영이 폭약수레를 터뜨릴 생각이라는 걸 눈치챈 무한은 실혼인들과 격돌하자마자 몸을 돌려 폭약 수레 쪽으로 향했고, 실혼인들은 그를 따라 질주하였다.

십여 장 범위까지 실혼인들을 끌고 간 무한은 폭약이 터지는 순간 전력을 다하여 몸을 빼냈다.

엄청난 폭발로 실혼인들 상당수가 내장이 터져 죽거나 운신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한 자신도 화염과 충격파를 피하지 못했다.

전력을 다해 몸을 빼내기는 했지만 이십여 장 거리에서 폭발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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