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쉭쉭쉭!
암기들은 역시 일정한 방위를 점하며 날아들어 무한을 한쪽으로 몰아가며 운신할 수 있는 여지를 좁히려 했다.
뚫고 전진하면 비 오듯 쏟아지니 물러설 수밖에 없다. 물러서면 쉽게 피할 수 있었으나 입지가 좁아진다.
암기의 진에 갇힌 자의 본능을 고려한 수법이었다.
암기의 진은 다시 개천 쪽으로 무한을 몰아갔다.
무한도 대비하고 있었다.
검을 내지르자마자 기운이 안개처럼 은은히 퍼졌다.
‘운중격!’
경천십이식 제사식.
원래는 기운을 퍼뜨리고 한가운데를 찌르는 초식으로, 무한은 이를 응용하여 가진 내공을 모두 뿜어내 두터운 기운의 벽을 쌓았다.
소마의 마왕검벽과 비슷한 수법이었다.
날아들던 암기들이 두터운 기운에 꺾여 힘을 잃었다.
동시에 무한이 튀어 올랐다.
쉭쉭쉭!
암기가 쏘아졌다.
뿌옇게 내리는 비 사이로 튀어 오른 무한이 우산을 펼치고 기운을 실었다.
파파팍!
암기들이 우산에 꽂혔다.
순간 무한은 우산을 버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컥!”
무한이 내려선 곳에서 신음성이 터졌다.
무한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고, 검 끝에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붉은 우산의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여덟 명의 살수가 펼치는 암기의 진은 화수전에서 고심하여 만든 수법이다.
무한이 이를 파하자 보고가 잘못됐음을 알았다.
삼재검수라는 호칭 이상의 무언가를 감추고 있을 줄은 알았는데, 실제로 지금 무위는 절정이라 봐야 했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신법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비 사이로 움직이는데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두운 하늘에 번쩍, 검광이 스치더니 연신 비명이 터졌다.
붉은 우산의 사내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어 우산을 접더니 무한을 향해 던졌다.
무한은 숨은 살수를 제거하면서도 붉은 우산의 사내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붉은 우산이 날아오자 단순한 우산이 아니라 병기라는 걸 직감했다. 맞받아치지 않고 방위를 바꿔 피했다.
팍!
놀랍게도 우산이 펼쳐지며 빙그르르 돌더니 무한 앞으로 다가왔다.
무한이 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팍, 우산이 접혔다.
“……!”
그리고 어느 샌가 다가온 사내가 웃음을 흘리며 우산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파파팟!
이어 연달아 우산이 펼쳐지며 허공에 잔영을 남겼다.
‘기병!’
강호에 온갖 기이한 독문병기가 있다고 들었지만, 우산을 병기로 쓰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우산의 잔영이 무한을 덮을 듯 다가왔는데 사이사이에서 기이한 암경이 흘러나왔다.
무한이 뇌전의 기운을 담아 검을 내려쳤다.
음유한 암경을 태워버리는 데는 뇌기가 효과적이다.
콰콰쾅!
허공에서 뇌기가 폭발하며 우산의 잔영들에 꽂혔다.
그러자 우산의 잔영이 일시에 사라지고, 어둠 속에서 허공을 가르는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스익!
접힌 우산이 돌연 어둠 속에서 나타나 오른쪽을 찔렀다. 독이 묻은 쇠침이 박힌 어깨를 노리는 것이다.
무한이 빙그르르 검을 돌려 우산을 쳐냈다.
깡!
찔러오는 우산과 회전하는 검이 부딪히자 팍, 하고 우산이 펼쳐졌다.
철커덕.
슈슈슉!
맹렬한 풍압과 함께 기관음이 들리더니 우산 끝에서 쇠침이 쏘아졌다.
풍압으로 주의를 흐트러뜨리고 쇠침으로 치명적 일격을 가하는 수법이었다.
무한이 본능적으로 왼손을 들어 쇠침을 막았다. 손목보호구에 부딪힌 쇠침이 튕겨나갔다.
“그럴 줄 알았다.”
붉은 우산의 사내 목소리가 펼쳐진 우산 너머에서 들려왔다.
순간 무한이 몸을 비틀었으나 옆구리 쪽에 화끈한 통증이 일었다.
우산에 시야가 막힌 틈을 타 쇠꼬챙이 같은 게 쑥, 나와서 옆구리를 뚫었다.
“큭!”
무한은 격렬한 통증에 정신이 아득해졌으나 물러나지 않았다.
‘천의격!’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가늠하여 펼쳐진 우산을 향해 검을 찔렀다.
그런데 무슨 재질로 만든 것인지 우산은 푸욱, 들어가기만 할 뿐 뚫리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러운 반탄력에 의해 무한의 검이 밀려났다.
쉬쉬식!
무한이 우산을 찌르는 동시에 좌우측과 등 뒤에서 다시 암기가 날아들었다.
옆구리를 찌르고 사라졌던 쇠꼬챙이가 이번에는 위쪽에 나타나 눈을 노리고 찔러왔다.
“……!”
쇠꼬챙이를 피하자면 날아오는 암기를 향해 몸을 날려야 하는 상황이다.
암기의 진은 무한의 위아래까지 덮고 있어 피한다 해도 바로 격중될 상황이었다.
무한이 어금니를 깨물며 검을 머리 위로 던졌다.
‘공공격!’
순간 무한의 전신이 거센 기운의 회오리에 휩싸이며 삼십육방위에서 기파가 터졌다.
무한의 머리 위에 뜬 검이 회전을 하며 한바탕 검기를 흩뿌렸다.
경천십이식 제십일식.
공공격.
무한의 공력으로 제대로 펼칠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적절한 대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머리 위에 뜬 검에서 강기의 폭풍이 일어 사방의 적을 초토화시켜야만 했다.
지금은 그럴 경지까지는 안 된다. 그래도 날아오는 암기와 쇠꼬챙이는 밀어낼 수 있었다.
“크윽!”
어깨와 옆구리에 부상을 입은 채 무리하게 공공격을 펼쳤기 때문에 무한은 기운이 끊어지며 잠시 비틀거렸다.
“용케도 버텼군. 잘 가라!”
붉은 옷의 사내가 마무리를 짓듯 쇠꼬챙이를 심장에 찔러 넣으려 했다.
쇠꼬챙이는 우산대에서 뽑아낸 것이었다.
붉은 우산은 특이하게도 무한이 사내를 볼 수 없지만 사내는 무한을 볼 수 있었다.
사내는 이번 일격으로 무한을 죽일 것이라 여겼다.
그래야 했다.
이제까지 그가 죽인 무수히 많은 고수들처럼.
그런데.
꾸앙!
놀랍게도 옆에서 권이 날아들었다.
일수오검 삼십육방위로 공격을 할 수 있는 무한이다. 검을 버리고 방위를 바꿔 권을 내지른 것이다.
붉은 옷의 사내는 왼손으로 우산을, 오른손으로 우산대에서 뽑아낸 쇠꼬챙이를 들고 있었기에 옆구리가 비어 있었다.
무한의 권이 붉은 옷의 사내 옆구리에 박혔다.
우두둑!
“큭!”
경천승운공의 기운이 실린 권이 사내의 호신강기를 뚫고 왼쪽 갈비뼈를 박살냈다.
퍽!
무한이 재차 권을 내질렀다.
부러진 갈비뼈가 사내의 폐를 찔렀다.
“꺽.”
목구멍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도 사내는 사력을 다해 무한을 밀쳐냈다.
무한이 그의 왼팔을 잡는 순간 암기가 날아왔다.
무한은 사내의 우산을 잡아채서 몸을 가렸다.
파파팍.
암기는 우산에 튕겨나갔다.
그러나 무한 역시 비틀거렸다.
암기에 실린 경력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온 힘을 소진한 것이다.
그사이 사내는 두어 발짝 뒤로 물러났다.
무한이 비틀거리자 어둠 속에서 네 명의 살수가 나타났다.
암기를 날리던 여덟 명 중 네 명이 무한의 손에 죽었다.
남은 네 명은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처럼 다가왔다.
무한은 그들을 보지 않았다.
붉은 우산의 사내를 노려볼 뿐이다.
사내는 쇠꼬챙이를 거꾸로 잡고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그러자 쪼그라들던 폐에 공기가 통했다.
그가 울컥, 피를 토하고는 말했다.
“제법이군. 귀하게 자란 놈이 난전을 벌일 줄도 알고. 하지만 결국 너도 죽을 것이다.”
무한은 사내가 말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쇠꼬챙이에 찔리는 순간 암경이 경락을 파고드는 걸 느꼈으니까.
“죽을지 살지는 모르지. 하지만 기회를 잡을 줄은 안다.”
무한이 몸을 회전하며 발차기로 사내의 머리를 노렸다.
사내가 한 발 물러나는 순간 무한이 재차 회전하며 바닥에 떨어뜨린 검을 잡아 던졌다.
사내는 연달아 날아오는 무한의 발차기를 막다가 갑작스레 날아오는 검을 보고는 황급히 왼손을 내리쳤으나 이미 늦었다.
팍!
검이 사내의 가슴팍에 꽂혔다.
“……!”
“……!”
“……!”
사내도, 살수들도, 그 누구도 무한이 갑자기 그런 수를 쓸 것이라 미처 예상치 못했다.
고벽후와 비무를 하며 실전에서 쓰는 온갖 야비한 수를 경험한 무한이다.
“크윽!”
심장이 꿰뚫린 사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무한을 쳐다봤다.
순간 살수들이 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말도 없이 그저 살행의 성공만을 노리는 살수들.
무한이 뒤로 나뒹굴어 피하려 하는데.
“천하의 검천부주가 뇌려타곤을 쓰면 되나?”
누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더니 무한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이어.
하얀 빛이 번뜩이더니 콰쾅, 하며 사방에서 기파가 터졌다.
“고 대형?”
갑작스레 나타난 이는 고벽후였다.
무한의 우측에도 한 사람이 나타나 검을 휘둘렀다.
무흔이었다.
텅, 터터텅.
살수들이 던진 쇠붙이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살수들이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부주! 괜찮으십니까?”
무흔이 무한을 부축하며 상처를 보고 자책했다.
“좀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무흔은 귀영과 함께 옥에 있는 이들을 빼돌린 후 곧바로 달려왔으나 이미 상황이 끝나가는 참이다.
“괜찮아요. 조심…….”
무한이 무흔에게 살수들의 암기술을 조심하라고 이르는데 어둠 속에서 비명성이 터졌다.
“크윽!”
“컥!”
이어 어둠 속에서 쇠붙이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불꽃이 튀는 곳도 있었다.
“이 쥐새끼들이! 감히 막내를 노려!”
연추산의 호통소리가 들렸다.
고벽후가 무한을 등진 채 말했다.
“대체 무슨 생각이냐?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다니.”
“…….”
무한이 말없이 가슴에 검이 꽂힌 채 길바닥에 쓰러진 사내를 보았다.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가 빗물에 쓸려 개천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어 시선을 돌려 고벽후를 바라봤다. 독에 당해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들고 물었다.
“대형이 어찌 여기에…….”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고벽후는 혹시나 암기가 날아오지 않을까 무한의 앞을 막고 서 있었다.
무흔은 그런 고벽후도 경계하며 무한을 부축하고 뒤로 물러났다.
고벽후가 무흔을 흘깃 보고는 말했다.
“좋은 호위는 뒀다 뭐에 쓰고 칼침이나 맞고 다니는 거냐?”
무한이 대답하려는데 기침이 나왔다. 손으로 입을 막자 피가 묻어나왔다.
“이 정도도 감당하지 못하면…… 쿨럭.”
무흔이 제지했다.
“말씀하지 마십시오.”
다시 빗방울이 거세졌다.
잠시 후.
비명성이 잠잠해졌다.
연추산과 오상, 장초와 홍염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네가 제일 늦었어. 이런 살수나부랭이를 가지고 시간을 끌다니.”
오상이 타박하자 장초가 변명하듯 말했다.
“나는 은신술 쓰는 놈이 질색이라고.”
장초가 항변했다.
연추산이 무흔의 부축을 받고 서 있는 무한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괜찮나?”
“좋지는 않네요. 쿨럭.”
무한이 말하다 말고 피를 토했다.
암경이 내장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어서 가셔야 합니다.”
무흔이 무한을 부축하고 몸을 날렸다.
“이봐, 막내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연추산이 제지하려 했으나 무흔은 교묘하게 몸을 비틀고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고벽후가 양손을 벌려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호위의 위세가 대단하네. 일단 따라가자.”
고벽후가 무흔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장초가 투덜거렸다.
“이 밤중에 비까지 맞아가며 이 무슨 고생이람. 막내가 형들을 이렇게 고생시켜도 되는 거야?”
“투덜거리지 말고 빨리 가자고. 감기 들겠다.”
홍염이 장초의 등을 밀었다.
멸마대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