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무한이 부상을 당해 집으로 돌아오자 염량 등 검천사위는 난리가 났다.
무흔이 무한을 침상에 누이고 나오자 염량이 추궁하듯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건가?”
“화수전이었습니다. 우객(雨客)이 직접 왔습니다.”
“우객?”
“화수전에는 풍운야우(風雲夜雨)라는 네 명의 살수가 있습니다. 그들 위에는 전주가 있을 뿐이지요.”
무흔은 화수전에 대해 아는 바가 많았다.
“우객이 실패했으니 끝입니다. 더는 살수가 오지 않을 겁니다.”
“확신할 수 있나?”
“…….”
무흔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대신 화제를 돌렸다.
“우선 부주의 상세를 치료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때 방 안에서 무한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 상세는 알아서 치료할 겁니다. 당분간 아무도 접근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무한은 운기조식을 하며 상세를 살펴보았다.
어깨에 박힌 쇠침은 무흔이 뽑았으나 독 기운이 퍼져 꺼멓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경천심결로 다져지고 지화령석으로 환골탈태를 한 몸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이라면 벌써 어깨를 잘라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쇠꼬챙이에 뚫린 옆구리 상세도 가볍지 않았다.
경천심결이 무의식적으로 발동하면서 기운이 뭉쳐 절로 지혈이 되는 중이었다.
심각한 것은 쇠꼬챙이에 담겨 있던 암경이었다. 서늘한 암경이 퍼져가며 경락이 굳어가는 중이었다.
무한은 품에서 천기조양환을 꺼냈다.
천기자가 경천승운공을 익힌 자를 위해서 특별히 제조한 것이라고 했다.
적당한 때를 보아 복용할 생각이었는데 지금이 그때였다.
무한은 천기조양환을 입에 넣었다.
환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스르르 녹아 뱃속으로 들어갔다.
‘으윽!’
단전에 불이 붙은 것만 같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단전에서 거대한 불기운이 치솟더니 전신경맥을 일주했다.
맹렬한 화기였다.
어깨로 퍼지던 독은 순식간에 타버렸다. 우객의 암경도 말끔히 사라졌다.
화수전의 독 제조자나 우객이 보았다면 기함할 노릇이리라.
천기자가 심혈을 기울였다더니, 천기조양환은 전설의 공청석유 못지않은 영약이었다.
무한의 온몸이 불덩이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조양환은 그야말로 천하의 양기를 모두 끌어 담은 듯했다.
무한은 곧바로 삼매경에 들어갔다.
“…….”
방 안이 조용하자 슬며시 들여다본 무흔이 무한이 운기하고 있자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무흔이 무한의 방문 앞을 지키고 염량 등이 사방을 경계했다.
날이 밝을 무렵, 귀영이 비에 흠뻑 젖어 돌아왔다.
귀영은 무한이 암습 받은 걸 몰랐다. 모두 무한의 방문을 지키고 있으니 이상하여 물었다.
“부주께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귀영이 투덜거렸다.
“흥! 나는 밤새도록 굴리고 자기는 잠을 자다니.”
“조용해라. 지금 운기 중이시다.”
무흔이 눈을 뜨고 한마디 한 후 다시 감았다.
“헉? 다치신 게요?”
귀영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무흔이 막았다.
“방해하지 마라.”
귀영이 무한의 방문을 보다 돌아서 계단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내가 있었어야 했는데…… 고수면 뭐해. 부주 한 사람도 지키지 못하고.”
무흔이 중얼거리는 귀영을 노려보자 움찔하고는 입을 닫았다.
무흔이 물었다.
“죄인들은 어찌했나?”
“동구 밖 폐가에 가둬놨습니다.”
“숙수는?”
“그놈도 함께 묶어 놨죠.”
“가서 쉬어라.”
‘흥! 뻣뻣하기는. 대형이라 불러주니까 상전이라도 된 줄 아나부지?’
귀영이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무한은 온종일 나오지 않았다. 결국 무흔과 검천사위가 돌아가며 지키기로 하였다.
“아니? 나는 왜 빼는 거요?”
“몰라서 묻나? 너는 믿을 수 없는 놈이다. 게다가 네 무공으로는 고수를 막을 수 없잖나?”
무흔이 냉정하게 말했다.
“으…….”
무공이 약한 귀영은 순번에서 제외되자 분개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귀영은 한쪽에 앉아서 무한이 준 내공심법을 익혔다.
무한의 운기요상은 사흘이나 계속됐다.
무흔은 염량 등에게 고벽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고벽후도 무한의 상세가 궁금할 텐데 굳이 찾아오지 않았다.
꼬박 사흘이 지난 뒤 무한이 방에서 나왔다.
전신에서 코를 찌르는 쉰 냄새가 났다.
무흔이 입을 딱 벌렸다.
불과 사흘 사이에 무한은 멀쩡해 보였다.
“좀 씻어야겠습니다.”
무한은 목간으로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부상당했다더니 외려 신수가 훤해지셨는데요? 부상당한 거 맞아요?”
귀영이 허여멀끔한 무한의 얼굴을 보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는 조용히 하게.”
염량이 귀영을 나무라고 무한의 상세를 살피려 들었다.
무한이 손을 저었다.
“애초에 큰 부상이 아니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무한의 상세를 정확히 아는 이는 무흔뿐이었다.
염량이 한숨을 쉬었다.
“제발 몸조심을 하십시오. 만일 부주가 다치기라도 하면 두 분 호법들이 우리를 잡아 죽일 겁니다.”
“설마 그러겠어요.”
무한이 웃으며 받아넘겼다.
“서현부 숙수와 죄인들은 어딨습니까?”
귀영이 나서서 대답했다.
“그렇게 주의했는데도 화수전 살수는 자결했습니다.”
“죽고자 하는 놈을 막을 방법이 없겠지요.”
“나머지는 현 밖 폐가에 묶어 두었습니다. 아, 먹을 걸 안 줬네?”
귀영이 깜박 잊었다는 듯 자기 머리를 쳤다.
“설마 사흘 만에 굶어 죽지는 않았겠죠?”
무한이 어이없어 하며 염량에게 말했다.
“귀 호위와 함께 가셔서 그들을 데려오세요. 굶어 죽기 전에 목말라 죽을 겁니다.”
귀영과 검천사위가 가자 무한이 무흔에게 물었다.
“고 대형은 어디 있죠?”
“가까운 객잔에 머물고 있습니다.”
무한이 일어났다.
“상세가 깊었습니다. 무리하면 안 됩니다.”
“화수전은 세 번 살수를 실패하면 다시 오지 않는다더군요.”
“의뢰자가 직접 나설 수도 있지요.”
“걱정 마세요. 이번에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무인이 아니지요.”
무한은 우객과의 싸움에서 큰 경험을 얻었다.
고벽후의 말대로 싸움은 비무가 아니었다.
삶과 죽음이 간발의 차로 비껴갔다.
고벽후와 무흔이 오지 않았다면 그 역시 우객을 따라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본격적인 싸움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수없이 많은 싸움을 치러야 한다. 내 옆에 아무도 없을 때도 있겠지. 실전을 통해 단련해야 한다.’
무공은 책을 보고 익힐 수 있지만 실전 경험은 그럴 수 없다.
무한은 스스로 서야 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자신했다.
‘천하제일인의 후계자니까.’
무한이 집을 나서자 무흔이 따라나섰다.
무한이 은신하려는 무흔을 막고 말했다.
“대협은 백 공자 옆에 있어주세요. 이제 곧 끝날 겁니다. 그때까지 백 공자가 무사해야 합니다.”
무흔은 대답하지 않았다. 불만을 표한 것이다.
“고작 살수 따위에 죽는다면 내 운명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거겠죠.”
무한이 말을 마치고는 길을 따라 갔다.
무흔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누구 아들 아니랄까봐 정말 고집불통이구나.’
무흔이 무한의 뒤를 잠시 따르다 갈림길에서 백가상단 방향으로 사라졌다.
고벽후가 있는 객잔은 머지않았다.
행상으로 위장한 고벽후는 구석진 방에 머물고 있었다. 연추산 등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비좁은 고벽후의 객방 내실에 마주 앉았다.
고벽후가 술 대신 차를 내어줬다.
“상세는 어때?”
“이제 괜찮습니다.”
무한이 멀쩡하니 고벽후도 놀란 눈치였다.
“영단이라도 먹었나? 그새 회복하다니.”
“그런 셈이죠.”
무한이 웃으며 말했다.
천기조양환의 효능은 대단했다. 내상은 물론 육신의 상처까지 빠르게 아물어가는 중이다.
“덕분에 위기를 넘겼습니다.”
“몸을 함부로 굴리면 늙어서 고생해. 아무리 내공이 깊어도 삭신이 쑤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마치 늙어 본 것처럼 말하는군요.”
“예전에 어떤 늙은이가 그러더라고.”
무한이 객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천하의 멸마대주가 머무르기에는 누추하군요.”
“멸마대 거처에 비하면 이 정도도 감지덕지지.”
고벽후와 멸마대는 애초에 돈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검마를 쫓아 몇 천 리를 오느라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저를 찾아오지 그러셨습니까?”
“하하…… 형이 돼서 거지꼴로 나타날 수야 없잖은가.”
“서운한데요. 그런 것 따질 사이는 아니잖습니까?”
“농담이야. 검마의 행적이 워낙 신출귀몰해서 우리도 은신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거든.”
무한이 아, 하고 새삼 그간의 일이 궁금해졌다.
“서현까지 어찌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궁금할 게 뭐가 있나. 그때 검마의 행적을 발견하고 여기까지 쫓아온 거지.”
“역시…… 천하방에 투신한다더니 검마에게 다른 뜻이 있었군요.”
“변덕스런 마인의 속을 누가 알겠나. 도운종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쫓지도 못했을 거야.”
“도운종이 누구죠?”
“군사부가 마천에 심은 밀정이었지. 이번에 검마를 데리고 귀환하는 책임을 맡은 자야. 그가 천리추종향을 검마에게 묻혀두었더군.”
‘아, 그때 그 중년 사내가 도운종인가보구나.’
검마와 함께 있었던 중년 사내가 떠올랐다.
“검마는 도운종마저 따돌리고 도주했지. 도운종은 군사부에서 지원받은 비찰대와 함께 검마를 추적하고 있고. 우리는 그런 도운종을 따라왔지. 그런데 황산에서 종적을 놓쳤다. 천리추종향의 효력이 다했는지 도운종도 헤매고 있더군.”
“검마가 서현으로 왔다는 겁니까?”
“그런 것 같아. 도운종은 헛다리를 짚고 있어. 비찰대를 동원해서 황산을 뒤지고 있지만 검마는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렇게 단정 지을 이유라도 있는지요?”
“감이지. 내 감은 틀린 적이 없거든.”
고벽후가 하도 태연하게 말해서 무한은 마시던 차를 뿜을 뻔 했다. 의외로 엉뚱한 데가 있는 고벽후다.
“다른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우리 처지가 좀 곤란하게 됐지. 군사부에서 우리를 찾으려고 혈안이거든. 그래서 흩어져 있어.”
고벽후는 천하방으로부터 쫓기고 있었다.
무한이 화제를 돌렸다.
“검마는 마천에서도 엄청난 고수 아닙니까?”
검마 정도의 고수가 쫓겨 다닌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상을 입은 모양이야. 도운종이 워낙 급하게 추적하니 제대로 치료를 못했을 거야.”
“아!”
그제야 무한은 고원에서 만난 검마가 내상을 입었다는 걸 떠올렸다.
“검마를 잡으면 어찌할 건데요?”
“군사부와 협상을 해야겠지. 유곡선을 고원의 맹약에 따라 처리한 걸로 종결지어주면 우리는 감숙으로 돌아갈 수 있지.”
“군사부가 들어줄까요?”
“아니면 소마에게 건네던가.”
“소마는 이미 난주를 차지했는데 물러날까요?”
“모르지. 하지만 다음 방어선이라도 쳐야 하지 않겠나. 그대로 두면 감숙이 모두 마천의 손아귀에 들어갈지도 몰라.”
“군사부에서도 이미 대비를 하고 있을 걸요.”
“그들이 고원에 대해 뭘 알겠나. 아마 번번이 마천의 밥이 될 거야. 소마를 감당할 사람이 천하방에 있을까?”
“그렇다면 더더욱 고 대형을 중용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천하방에는 나를 고까워하는 놈들이 좀 있지. 유곡선을 죽인 일을 물고 늘어질 거야.”
“검마를 잡는 게 정말 중요하겠군요.”
무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벽후가 물었다.
“천하상단 때문에 왔다면서? 일이 잘 해결되지 않는 모양이더군. 화수전은 그놈들이 붙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