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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연말 연초에 정신없이 바빴던 강하나는 드디어 여유를 되찾았다. 그래서 집에서 뒹굴면서 만화도 보고 밀린 드라마도 봤다. 그렇게 하루를 제대로 쉬며 지내고 있던 그녀에게 베스트 프렌드 최다혜가 다 늦은 저녁에 전화를 걸어왔다.
“뭐? 오빠가 모태 솔로가 아니라고?”
-충격적이지? 와아. 남자들 다 늑대라고 해도 우리 오빠는 아닌 줄 알았는데. 오늘 글쎄......
최다혜의 말을 들으며 강하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빠가 이미 여자 경험이 있단 사실에 좀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사실 그걸 할 줄 모르는 오빠보다야 그녀를 잘 리더 해 줄 수 있는 오빠가 더 좋으니 말이다.
‘어떡해. 부끄럽게.....’
강하나는 그만 최민혁과 그걸 상상해 버리곤 얼굴을 붉혔다. 그 뒤로 최다혜와 통화를 하긴 했지만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보던 드라마에서 채널을 돌려 성인 영화를 봤다.
“어머.....”
그리고 찐한 장면이 나오면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하지만 두 손의 손가락은 쩍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를 통해 강하나는 볼 건 다 봤다. 그렇게 야한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자 마음이 싱숭생숭해 진 강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최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 어떡해!”
걸고 나서 바로 후회를 했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 전화를 바로 끊지도 않았다. 그 뒤 최민혁이 전화를 받았고 그와 통화 한 뒤 강하나는 또 한편의 성인 영화를 보고 나서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에 깬 강하나는 간단히 아침을 먹고 외출 준비를 했다. 오늘 오전에 그녀가 출연 할 것이 거의 확정적인 드라마에 사전 미팅 자리에 그녀도 참석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지희 고 계집애. 지금쯤 배 아파서 난리 치고 있겠네.”
새로 촬영에 들어갈 SBC 수목 드라마에서 강하나와 경쟁하던 이지희는 동영상 파문으로 인해 배역을 따내는 건커녕 한 동안 방송에 출연도 하지 못할 처지에 처해 있었다.
덕분에 친구왕 PD의 소개로 알게 된 작가와 만난 강하나는 그녀가 원하던 남자 주인공의 여동생 배역을 무난히 따냈고 말이다.
잠시 뒤 기다리던 매니저가 오자 강하나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카니발 차에 오른 뒤 사전 미팅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강하나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을 겪게 되었다. 바로 드라마 여자 주인공인 한소영에게 제대로 찍힌 것이다.
“너 앞으로 조심해.”
안 그래도 까칠한 성격으로 유명한 한소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찍히면 고달프다는 건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와 앞으로 족히 석 달은 같이 촬영을 해야 하는 강하나로써는 악몽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빠. 저 이제 어쩌죠?”
“하아. 나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 미친년은 사과를 한다고 해도 받아 줄 리 없고. 일단 회사에 얘기는 해 볼게. 너무 걱정 마. 그래도 우리 회사에서 나서면 그 미친년도 어느 정도 양보는 하겠지.”
강하나를 안심시키려고 매니저가 말했지만 그의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강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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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과의 극적인 만남 뒤 변은하는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려 노력했다. 생각 같아선 당장 최민혁을 만나서 그와 다정했던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고 최민혁도 그때의 그가 아니었다. 그래서 먼저 그의 마음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그가 그녀 눈에 띄었다.
“최민혁? 하아! 저 사람이 정말 내가 아는 그 최민혁 맞아?”
최민혁이 TV에 출연하고 있었다. 그것도 예능 프로그램에 말이다. 변은하가 아는 최민혁은 야구밖에 모르는 수줍음 많은 남자였다. 그런데 TV에 나온 최민혁은 마치 연예인 같았다.
“하긴 외모만 놓고 보면 최민혁을 능가할 남잔 거의 없지.”
그래도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랍시고 최민혁의 편을 드는 변은하였다. 그런 변은하의 얼굴이 점점 더 심각해졌다.
TV에 출연 중인 최민혁이 너무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유명해지면 유명해 질수록 변은하는 그가 자신의 곁에서 점점 더 멀어질 거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술을 한잔 했는데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세 잔 되면서 그녀는 그만 취하고 말았다.
“최민혁! 넌 내꺼야. 누구한테도 넘기지 않아.”
그리곤 술김에 그만 최민혁에게 전화를 걸고 말았다. 그녀가 몇 백 만원을 들여서 고용한 사람을 통해 얻어 낸 최민혁의 핸드폰 번호가 그녀 핸드폰에 단축번호 1번에 저장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길게 단축번호를 누르자 통화 연결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제법 늦은 시간이었는데 그는 아직 자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최민혁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변은하는 가슴이 먹먹해 지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최민혁의 목소리가 재차 그녀에게 들려왔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전화를 끊었다.
“아, 아직은 아니야. 지금은 좀 더 지켜보자.”
변은하는 무턱대고 전화까지 걸었지만 그에게 말을 할 용기는 아직 내지 못했다. 결국 취한 그녀는 오늘도 자신의 오피스텔의 한쪽 방에서 쓸쓸하게 혼자 잠들었다. 그때 최민혁은 이상한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해 했다.
“분명 한 숨 소리였는데.....”
그 한숨소리 뒤 전화가 끊겼기에 최민혁은 누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세나에게 물었다.
“세나. 트래킹(Tracking)능력에 혹시 누가 나한테 전화를 걸었는지 알려주는 기능 같은 건 없을까?”
최민혁도 어제 트래킹(Tracking)능력을 2단계로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았다면 이런 질문 자체를 세나에게 하지 않았을 터였다.
[있습니다. 1단계의 트래킹(Tracking)능력의 마스터가 아는 사람이나 물건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면 2단계의 트래킹(Tracking)능력은 마스터에게 전화를 걸거나 그 뒤를 쫓는 자가 누군지 알려주는 기능이 추가 된 상태입니다. 좀 전에 마스터와 통화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나요?]
“그래.”
[그 사람은 바로........ 변은하입니다.]
“변은하?”
세나의 변은하란 말에 최민혁의 머리는 어리둥절해 했는데 그의 몸은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역시 최민혁은 여전히 자신의 첫사랑인 변은하를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민혁은 일단 벌름거리는 심장부터 진정 시킨 뒤 생각했다.
“그 여자가 왜...... 설마 그녀도 최민혁을........”
이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최민혁의 몸이 그녀에게 전화 한 통 걸려 온 것이 이 정도 반응을 보일 정도면 그녀가 그 앞에 나타나서 다시 만나자고 했을 때 그의 몸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최민혁도 예측이 불가능했다. 그건 세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변은하란 여자와는 마스터가 꼭 만나서...... 가능하면 좋은 쪽으로 인연을 이어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최민혁의 그녀에 대한 애착이 그 만큼 집요하고 강하다는 반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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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은하의 한숨 전화 이후 더 이상 최민혁의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고 최민혁은 이내 잠이 들었다.
“으아아아함!”
그리고 그가 잠에서 깼을 때 환하게 날이 밝아 있었고 그렇게 주말 아침이 시작 되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가족들은 다들 늦잠을 자고 있었다. 최민혁은 먼저 밥부터 안친 뒤 어제 수산시장에서 장 봐 온 해물에다 무를 썰어 넣고 간단히 뭇국을 끓였다. 그리고 여동생 입맛을 취향 저격하는 소시지를 볶은 뒤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냈다. 그러자 알아서들 가족들이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때 최민혁은 밥솥에서 갓 지은 밥을 푸고 있었다.
“와아. 소시지 볶음이다. 오빠. 난 밥 많이.”
“오늘은 뭇국이네. 시원하겠다. 어디....후루룹.....으음. 역시..... 여보. 국 식기 전에 어서 와요.”
“어어. 알았어.”
부친이 허겁지겁 뛰어와서 식탁에 앉자 최민혁은 그 앞에 새 밥과 국 그릇을 내 놓았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하나씩 맛김을 건넸다.
“그렇지. 뭇국엔 김이지.”
부친이 좋아라 하며 맛김을 뜯어서 그 안에 김을 한 장 들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위에 올리곤 젓가락으로 김과 밥을 같이 떠서 먹었다. 그리곤 곧장 숟가락으로 뭇국을 떠먹었다.
“후루룩!”
그리곤 얼굴이 환해졌다. 그걸 보고 최민혁도 따라 얼굴이 밝아졌다.
“놔도.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넌 데이트 나갈 준비나 해.”
모친이 식사 후 설거지를 하려는 최민혁을 뜯어 말려서 억지로 위층으로 올려 보냈다. 덕분에 최민혁은 느긋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렇게 외출 준비를 끝낸 최민혁이 밑으로 내려오자 가족들이 다들 놀란 얼굴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그 중에 최민혁이 꾸미고 다닌 걸 몇 번 본 최다혜는 그나마 나았는데 부모님들은 거의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멋있었어?”
“크음. 젊은 때 나를 보는 것 같군.”
부친은 괜한 말을 내뱉었다가 모친과 여동생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최민혁은 저번 백화점에서 산 옷들 중에 가장 화려한 옷을 오늘 입었다. 거기다 머리 손질도 제대로 됐고. 그러다 보니 외모가 여느 인기 있는 남자 연예인 못지않았다. 최민혁도 자기 방을 나서기 전 거울을 보고 살짝 놀랐을 정도로 오늘 그는 자신이 봐도 멋있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아. 오늘 못 올 수도 있어요.”
그 말에 부모님들은 웃으셨고 최다혜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외박해도 돼. 아니 얼마든 지 해. 앞으로도 쭈욱~”“운전 조심하고. 여자는 이 아버지처럼 매너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 뭐 그렇다고 밤에 매너를 지킬 필욘 없고.”
“이이가..... 그런 쓸 데 없는 소린 왜 해요? 민혁아. 빨리 가 봐. 여차친구 기다리겠다.”
“네.”
최민혁은 현관 앞에서 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곤 곧장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 앞에 주차 되어 있던 자신의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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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혁은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민예린의 옥탑방이 있는 집 앞에 도착했다. 그리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셨어요?
“네. 집 앞입니다.”
-내려갈게요.
잠시 뒤 예쁘게 꾸민 민예린이 집에서 나왔다. 그걸 보고 최민혁이 차문을 열고 막 내리려 할 때 민예린이 말했다.
“그냥 타고 계세요. 저 혼자 탈 수 있어요.”
그녀는 쪼르르 차 앞을 돌아서 운전석 옆 보조석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 순간 그녀에게서 훅하니 신선한 과일향이 났다.
‘이 냄새는......’
차성국이 좋아했던 향수였다. 민예린은 차성국과 데이트 때 꼭 이 향수를 사용했었다. 그 향수를 기억하는 최민혁은 그만 추억에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