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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이스
자기 관리와 연애에 있어서 밀당의 최고수가 바로 민예린 이였으니까. 그런 그녀가 그런 소릴 할 정도라면 그녀에게 심적 변화가 크게 일어났단 소리였다. 그리고 그게 뭔지 최민혁도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다.
“박영준 부회장과 관계를 정리한 게 확실해.”
자신의 부재로 인해 민예린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개 없었다. 그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민예린은 했고 그게 바로 차기 실세인 박영준 부회장의 여자가 되는 것이었다.
차성국도 예전에 박영준이 민예린을 노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 민예린을 꼬시려고 그렇게 집착했는지도 몰랐다.
자신과 달리 태어났을 때부터 모든 걸 다가진 박영준에게 쓰라린 패배감을 한 번 맛보여 주려고 말이다. 뭐 어째든 그 계획은 성공했고 박영준은 그 뒤 차성국에게 대 놓고 적대감을 표출해 왔었다. 자신이 찍어 놓은 여자를 차성국이 차지해 버리자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하지만 박영준이 그러던 말던 최민혁은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성 그룹의 회장은 박규철이지 박영준이 아니었으니까.
고시 3관왕에 30대 초반에 자기 능력만으로 대기업 임원의 자리에 오른 자신과 박영준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단지 녀석은 태어 날 때 이미 왕관을 쓰고 있었고 그 왕관 앞에 차성국은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오성 그룹의 회장이 될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다르다. 세나가 그를 돕는 한 오성 그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를 곧 그가 움켜쥐게 될 테니까. 그러면 오성 그룹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기 위해서........빨리 전지훈련을 가야 하는데 말이야.”
현재 최민혁이 운용 가능한 돈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보통 사람들에게 수십, 수백억은 많은 돈이다. 하지만 재벌이 될 생각인 그에게 그 돈은 종자돈도 되지 못했다.
최민혁은 오성 라이온즈의 다른 선수들과 같이 괌으로 바로 전지훈련을 가진 않는다. 중간에 들릴 곳이 있었으니까. 그곳에서 자신의 비자금을 챙겨야만 그 돈을 종자돈으로 삼아서 그가 원하는 재벌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을 수 있을 터였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는 진짜 최민혁의 삶이었다. 야구선수 최민혁이 재벌로 변신하려면 극복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최민혁은 자신 있었다. 야구로든 사업적으로든 반드시 성공 할.
최민혁은 대충 세수 정도만 하고 침대에 누웠다. 보아하니 내일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할 거 같은데 충분히 자 둘 필요가 있을 거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그의 주위 여자들이 무슨 낌새라도 챈 것일까? 그때부터 그가 잠들 기 전까지 차례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처음은 이주나였다.
-한 잔 하러 나올래?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지만 여사친인 이주나니까 가능한 말이기도 했다.
“아니. 내일 아침부터 어디 좀 가야해서 일찍 자야 해.”
최민혁은 이주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오늘 나갔다간 또 그녀와 잘 거 같았던 것이다. 물론 그래도 상관은 없겠지만 그건 내일 어쩌면 하루 종일 그와 같이 있게 될지 모를 민예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었던 것이다.
-알았어. 그리고 YGD엔터테이먼트에서 무슨 소리 없었지?
“응. 아직은.”
-생각 잘 해. 우리와 계약만 하면 그쪽도 널 함부로 하진 못할 테니까.
“응. 생각해 볼게.”
그렇게 첫 번째 걸려온 여자의 전화는 무사히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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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나와 통화를 끝내고 30여초 쯤 뒤에 또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강하나였다.
“얘가 또 무슨 사고 친 건 아니겠지?”
이번 이지희와 이윤수의 일을 겪은 뒤 강하나도 이젠 충분히 정신을 차렸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응. 하나야.”
최민혁이 한결 부드럽게 전화를 받았다. 그 만큼 강하나와 친해진 것도 사실이고.
-오빠. 주무신 건 아니죠?
“응. 하지만 자려던 중이긴 했어.”
-벌써요?
“내일 어디 좀 가거든. 근데 무슨 일이야?”
-그, 그게.....오빠. 전 경험 많은 남자가 좋아요.
“엥?”
이게 무슨 귀신 봉창 두드리는.......
‘가만.....’
그때 최민혁의 머릿속에 아까 거실에서 최다혜가 핸드폰을 들고 급히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가던 장면이 생각났다.
‘최다혜!’
보아하니 자기 여동생이 오빠가 모태솔로가 아니란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야. 헛소리 할 정신이 있으면 대사 하나 더 외워. 아님 자던지.”
-저 지금 집이에요. 그리고 저도 이제 그리 바쁘지 않아요. 아직 들어갈 작품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대사 외울 것도 없고요.
한마디로 한가하단 소리였다. 이때 최민혁이 보자고 하면 아마 강하나는 바로 튀어 나올 터였다. 하지만 최민혁은 개인적으로 강하나와 만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여동생의 친구이기 이전에 강하나는 그다지 그의 취향의 여자가 아니었으니까.
“잘 됐네. 쉴 때 푹 쉬어라. 그럼 난 이만 잔다.”
-네. 오빠. 안녕히 주무세요.
강하나는 어째 최민혁이 잔다니까 더 좋아하는 거 같았다. 그렇게 강하나와 통화를 끝낸 최민혁이 진짜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또 전화가 걸려왔다.
“하아. 잠 좀 자자.”
최민혁은 투덜거리며 이 밤에 몰상식하게 누가 전화를 걸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바로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이 자식은 왜.......”
대구에서 지금쯤 술과 여자에 푹 빠져 살고 있을 오성 라이온즈의 2군 포수 조재익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최민혁은 긴 한숨과 함께 일단 전화를 받았다.
“왜?”
최민혁은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자 조재익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야아야! 니 또 자려고 폼 잡고 있었째?
눈치 하나는 귀신 같이 밝은 녀석이었다.
“그래. 막 자려는데 누가 전화해서 깼다.”
-승질 그만내고 언제 오끼고?
“글쎄. 한 코치님도 보자시던데...........”
-뭐어? 한 코치이?
최민혁이 2군 투수코치 한상현을 거론하자 조재익이 바로 민감하게 반응을 보였다.
-니 그 양반 오란다고 진짜 대구 오겠다고 한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나도 쉬고 싶거든.”
-그래서 뭐라 캤는데?
“못하겠다고 했어.”
-잘했다. 새끼. 오랜만에 마음에 드네. 아무튼 전지훈련 가기 전에 대구 함 내려 와라. 너 보고 싶단 가스나들 여기 줄 섰다.
“하아. 너.....”
-잔소리는 그만. 지금 분위기 좋은데 깨지 말고.
녀석이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그 말은 진심이란 소리고. 그래서 최민혁도 녀석에게 친구로서 해 주고 싶은 말을 다시 입속으로 주워 삼켰다.
-어어. 그래. 오빠야 갈꾸마. 야. 또 전화 할게.
최민혁은 전화 할 거 없다고 말을 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조재익이 전화를 끊었다.
띠띠띠띠띠띠.....“에이 씨.....”
최민혁은 생각 같아선 조재익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그의 번호를 착신 제한시키려다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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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다음 전화는 최민혁이 침대에 눕기 전에 걸려왔다. 만약 조재익이면 욕부터 한 바가지 끌어 부으려 했는데 그는 아니었다.
“민예린이네?”
내일 같이 드라이브 가기로 한 그녀가 이 밤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혹시나 사정이 생겨서 못 갈 거 같다는 얘기를 할 수도 있는 터라 최민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최민혁씨? 저 민예린이에요.
“압니다. 핸드폰에 잘 저장해 뒀거든요.”
-호호호호. 그 말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전 민혁씨가 저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관심 없기는요. 예린씨처럼 예쁜 분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관심을 가질 겁니다.”
-오늘 절 제대로 띄워 주기로 하셨나 봐요? 아무튼 듣긴 좋네요.
“근데 이 시간에 어쩐 일로?”
-내일 드라이브 가기로 한 거 때문에요.
“네. 말씀하십시오.”
가족들에게 공언을 해 놓긴 했지만 민예린이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됐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로 갈지 지금 정했으면 해서요.
“아네.”
다행히 내일 드라이브가 취소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어요?”
최민혁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민예린이 말했다.
-바다가 보고 싶어요. 조용하고 한적한 겨울 바다를 좋은 사람과 같이 걷고 싶달 까?
한마디로 최민혁과 같이 바다에 올러 가고 싶단 소리였다.
“먹고 싶은 건요?”
-먹고 싶은 거요?
“네. 원래 여행의 반은 맛있는 거 먹는 거거든요.”
-....................
최민혁이 신나게 그 말을 하고 났을 때 갑자기 민예린이 조용했다.
“여보세요?”
최민혁은 민예린이 전화를 끊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네에.
“어디 안 좋으세요?”
-아뇨. 전 괜찮아요. 전에 저에게 민혁씨처럼 말한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좀 놀라서 그래요.
그 말을 듣고 최민혁은 아차 싶었다. 너무 편하게 얘기하다보니 전에 차성국이었을 때 민예린에게 했던 말을 그만 그녀에게 내 뱉고 만 것이다.
“그분이 누군지 모르지만 여행 제대로 다니실 줄 아시는 분이셨네요. 그래서 드시고 싶은 게 뭡니까?”
최민혁은 슬쩍 차성국을 칭찬하며 다시 자연스럽게 민예린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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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대게가 먹고 싶다고요?”
바다에 대게 하면 갈 곳은 포항? 포항은 또 대구와 가까웠다. 대구에는 최민혁의 소유의 아파트가 있었고. 조재익은..... 빼자. 하지만 거리가 멀었다.
민예린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고 서울에서 인천만 가도 바다는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인천에도 대게 전문점은 있었고.
“가까운 인천이나 서해 섬은 어때요?”
그래서 최민혁이 먼저 물었다. 그러자 민예린이 바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인천과 서해는 좀......
“그럼 강릉이나 동해 바다 쪽으로 갈까요?”
-차라리 그쪽이 낫겠네요. 하지만 좀 더 멀리 갔으면 해요.
“그럼 포항 갈까요?”
-포항이요?
“대게하면 그쪽이죠. 영덕도 어차피 그쪽에 있고요.”
-좋아요. 포항가요. 그런데 거기가면 쉴만한 곳이 있을까요?
민예린의 그 말에 최민혁이 바로 대답했다.
“대구에 제 소유의 아파트가 있습니다.”
-민혁씨 아파트요?
“네. 오성 라이온즈의 홈구장이 대구의 오성 라이온즈 파크잖아요. 그 근처에 구단에서 아파트를 마련해 줬는데 올해 제 소유가 됐습니다.”
-와아. 민혁씨는 좋겠다. 회사에서 아파트도 주고.
“그럼 포항가서 거기 싱싱한 회 좀 먹고 영덕에서 저녁으로 대게를 맛 본 다음 대구로 가서 쉬면되겠네요.”
최민혁이 내일 일정을 시원하게 정하자 민예린도 흡족해 하며 말했다.
-전화하길 잘한 거 같아요. 안 그랬으면 내일 어딜 갈지 저 혼자 고민하느라 한숨도 못 잤을 거예요.
“네. 전화 잘하셨어요. 이제 고민도 드셨겠다 빨리 주무세요. 그래야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포항으로 가죠.”
-네. 그럴게요. 민혁씨도 잘 자요.
그렇게 민예린과 통화를 끝낸 최민혁은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하아. 이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차성국의 여자를 최민혁이 된 그가 다시 만난다는 게 께름칙했던 것이다. 하지만 놀러가기로 약속까지 한 이상 이제 와서 그걸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이번 여행으로 모든 걸 정리하자.”
최민혁은 내일 민예린과 가게 될 여행을 그녀와 마지막 이별 여행으로 규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