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4화 모여드는 구천지존들
천문 근처.
고목에 있는 진남과 명망은 심신이 안정되었다.
그들은 이마에는 식은땀이 방울방울 떠올랐고, 심장은 격렬하게 뛰었으며 얼굴색은 약간 창백해 보였다.
혈모의 출현은 정말 놀라웠다.
특히 그들은 가까이 있어서 혈모의 강한 힘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정도의 힘이면 패자들도 순식간에 없앨 수 있었다.
"진남, 방금 혈모에 찍힌 것이 구천지존인 것 같아……."
명망은 중얼거렸다.
진남이 시체를 줍겠다고 할 때 그는 이미 구천지존이 죽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진짜로 일이 벌어지자 그는 충격을 받았다.
구천지존들은 이 땅의 왕이나 다름없었다.
'구천지존?'
진남은 눈에 흰 불꽃이 반짝거렸다.
그는 안에서 큰 싸움이 벌어지기를 기다렸다.
'입도지존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치지 않았을까?'
슈슈슉-!
천문의 깊은 곳에서 갑자기 한 줄기의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가장 먼저 나온 사람은 입도지존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창백해지고 기운이 흐트러졌다.
다른 쪽에는 얼굴 없는 노인과 키가 작은 소녀가 구천지존의 기운을 풍겼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빛을 잃었다.
두 구천지존도 얼굴이 창백했다.
그들은 두 눈에 놀라움이 가득하고 가쁘게 쉬는 호흡에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남은 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진남과 안면이 있는 축강선왕, 고정선왕 등이 있고 고름선왕도 있었다.
그들은 상태가 더 좋지 않았다.
얼굴이 창백하고 몸을 덜덜 떨었다.
마치 엄청난 것을 겪은 것 같았다.
"이게……."
진남은 어안이 벙벙했다.
입도지존은 강한 동력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진남을 발견하고 전음했다.
"진남, 이곳은 엄청 위험하다. 빨리 떠나자!"
그녀는 진남이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힘껏 진남이 있는 나무와 방원 일 리의 모든 것을 잡고 찬란한 도광을 뿜으며 날아갔다.
다른 구천지존들과 패자들은 이 장면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우르르 도망을 갔다.
잠시 후, 천문에서 또 핏빛이 번쩍거렸다.
* * *
비월선교와 멀지 않은 두 고성.
성안에 있던 무인들은 깜짝 놀랐다.
맹구궁과 구궁금선종의 강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혈모가 만들어낸 구덩이에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그래서 허공이나 벽에 올라서서 살폈다.
구천지존도 죽인 절세혈모였다.
혹시 이변이 일어나거나 여파에 맞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저건……."
무인과 대화를 나누던 천선 경지 강자는 먼 육합금구를 바라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또 왔다!"
그의 말이 끝나자 아홉 개의 핏빛이 사람들 눈에 띄었다.
빛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화해지존의 근처에 떨어졌다.
쿠쿠쿵-!
대지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수많은 강기와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겨우 마음을 진정한 무인들은 다시 흥분했다.
그들은 동시에 무서운 생각이 들어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먼지가 다 사라졌다.
사람들은 화해지존과 같은 아홉 구덩이가 생겨난 것을 발견했다.
구덩이는 나란히 있었는데, 간격이 여든여덟 장이라 등골이 오싹했다.
시선을 더 아래로 돌리니 절세장모들 끝에 사람이 꽂혀 바닥에 박혔다.
모두 무해지존처럼 만물이 빛을 잃게 하는 위엄을 풍겼다.
아홉 명 모두 구천지존이었다.
맹구궁을 포함한 무인들은 차가운 한기가 개미처럼 그들의 발끝에서 기어올라 와 머리에까지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홉 명의 구천지존!
이런 세력은 제일소선역외에 어떤 소선역에 가도 폭풍이 불었다.
방금 죽은 화해지존까지 하면 열 명이었다.
어떤 대단한 힘이 이들을 죽인 걸까?
"농염족의 초렬지존(肖烈至尊)이다!"
"선령족의 요야지존(妖夜至尊)이다!"
"보제고찰종의 삼계지존(三戒至尊)이다!"
여기저기서 놀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홉 명의 신분이 다 드러나자 무인들은 아홉 지존들이 무해지존과 달리 서로 다른 세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농염족, 선령족, 보제고찰종, 극생문, 무액족, 공동족, 제왕고도, 만중선루, 주도문의 패자들이었다.
"얼른 종문에 소식을 전하거라!"
여러 세력의 무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고함을 질렀다.
어느 세력이든 구천지존이 죽는다면 큰 사건이었다.
세력의 많은 강자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육합금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맹구궁은 정신을 차리고 심호흡을 했다.
그는 문득 진남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난리통에 그 녀석은 살아있을까?'
"어, 어서 와보시오. 초, 초렬지존 대인이 살았소!"
천성적으로 특이한 동력을 가진 지선경지 무인은 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목소리가 떨렸다.
"뭐라?"
무인들은 깜짝 놀라서 시선을 돌렸다.
가슴에 창이 꽂힌 초렬지존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눈을 감고 있으며 움직임도 없었다.
겉보기에 죽은 게 틀림이 없었지만, 그의 몸속에서 도광이 반짝거렸다.
미약한 생기가 체내에 남았다.
"초렬지존, 요야지존, 삼계지존과 다른 지존들 모두 살아있다!"
한 천선 경지 강자가 흥분해서 외쳤다.
다른 구천지존들도 살아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초렬지존과 마찬가지로 미약한 생기가 남았을 뿐이었다.
"태상장로, 초렬지존이 살아있습니다. 다만……."
여러 세력의 무인들은 기뻐서 소식을 종문에 전했다.
"이상하다. 아홉 지존이 떨어진 위치는 너무 일정하다. 그리고 상처도 비슷하고, 생기가 약간 남아있는 것도 그렇고……."
맹구궁은 표정이 점점 무거워졌다.
그는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모든 일이 그의 예감대로 진행되려는 것 같았다.
초렬지존, 요야지존, 삼계지존 등 아홉 지존들 신체의 한 부위에서 자잘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폭발의 위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뜻이었다.
미약한 생기가 남은 구천지존들이라 할지라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폭발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작은 혈무가 생겨났다.
혈무는 흩어지지 않고 모여서 핏방울이 되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건……."
무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천지존들의 피는 글자로 변했다.
"한 시진 후, 이곳에서 목을 베겠다."
무인들은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마지막 글자를 본 그들은 무엇이 목에 걸린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숨쉬기도 힘들었다.
누구라도 충격을 받았을 것이었다.
한 시진 후에 이곳에서 구천지존의 목을 베겠다고 했다.
아홉 구천지존들이 화해지존처럼 죽임을 당했더라면 이 정도로 충격이 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육합금구 깊은 곳에 대단한 것이 있겠구나 추측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들은 여러 세력의 구천지존과 무상도통의 구천지존이었다.
공개된 자리에서 사망 시간을 공포하고 목을 베어 죽이겠다고 모욕했다.
아무리 멍청해도 이건 아홉 세력에 대한 도발이라는 것을 알아챌 것이었다.
* * *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잠시 후, 제왕고도의 한 구천지존이 정보를 얻었다.
이 구천지존도 충격을 받고 한참이 지나서야 소식을 다른 거물들에게 전했다.
폐관 중이던 거물들도 놀라서 출관했다.
"건방지군, 너무 건방지다!"
"대체 누구길래 감히 제왕고도에 도발하는 거야?"
"아홉 명의 구천지존의 목을 베겠다고 아홉 세력에 도발을 한 자는 대단하다. 보통이 아니야!"
"다들 닥치거라! 어찌 되었든 상대방의 그런 행동을 못하게 막아야 한다. 아니면 구천선역에서 제왕고도의 체면이 서겠느냐?"
"너희들은 만중선로와 농염족 등 세력들과 연락을 하거라.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자일 거다. 그러니……."
화가 잔뜩 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중선루, 보제고찰종, 농염족, 선령족, 문고족 등 세력들도 마찬가지였다.
거물들과 오랫동안 폐관 수련을 했던 오래된 존재들의 분노가 사방으로 번졌다.
육합금구에 대이변과 천문의 출현 등으로 폭풍이 불었는데 이제는 만상선령 전체로 번졌다.
무인들과 여러 세력의 거물들은 이 사건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했다.
"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일을 이정도로 만든 거야!"
"아홉 지존의 목을 베겠다고 공공연히 아홉 세력에 도발을 한 걸 보니 구천선역에 다 알릴 생각인가 봐."
"육합금구의 금기 비밀이 나타난 걸까?"
"아쉽다. 거리가 너무 멀어. 아니면 직접 가서 성대한 장면을 구경할 텐데."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하나라도 놓치면 안 돼."
무인들은 참지 못하고 한마디씩 했다.
다른 무상도통이나 상고백족 그리고 숨어있는 강자들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들은 자신과 연관이 없지만, 사람을 보내 지켜보게 했다.
* * *
잠시 후.
육합금구의 두 고성에서 멀지 않은 곳.
"목을 벤다고?"
진남과 명망은 피로 새겨진 글자를 보며 헛숨을 들이켰다.
입도지존은 방금 그들을 이곳에 데려왔다.
오자마자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정신이 든 진남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몽요, 천문 깊은 곳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던 입도지존은 탄식했다.
"그게 가장 무서운 점이다. 우리는 전승을 쟁탈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이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파괴성이 강한 힘이 우리를 덮쳤다. 그리고 지금 이 꼴이 된 거지. 확실한 것은 이번 일에 피천고교의 사람들이 엮여있어. 다만, 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피천고교!
진남과 명망은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 일은 사실 우리에게는 좋은 일이기도 해. 이미 아홉 명의 지존이 죽었다. 그자가 목을 베지 않는다고 해도 지존들을 결국 죽을 거다. 시체 다섯 구를 얻는 일은 쉬워."
입도지존은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육합금구에 이변이 일어나도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이번에 진남을 정복하려고 온 것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진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진남은 그리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제왕고도의 사람들이 왔다."
두 고성의 무인들이 술렁거렸다.
진남이 고개를 들고 보니 먼 곳 허공에 몇십만 개의 신비한 무늬 나타났다.
십만 장이 되고 선광을 뿜는 섬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강기가 퍼졌다.
섬은 도기였다.
상고도기 중에서도 가장 귀한 것이고 엄청난 위력을 가졌다.
진남은 섬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그들은 위압을 은근히 드러내 주변의 영기와 선의를 흐트러뜨렸다.
경지가 가장 낮은 사람들은 감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세 명은 구천지존이었다.
"세 구천지존이다! 제왕고도의 도주인 난왕지존(蘭王至尊)도 왔어. 제왕고도에서 단단히 화가 났군!"
천선 경지 정상급 강자들은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이때, 두터운 기운이 천지에 솟구쳤다.
몇만 리 하늘에 찬란한 파란 빛이 나타났다.
외형은 용 같기도 하고 고래 같기도 하며 길이가 오만여 장이 되며 바다의 위력을 전부 모아놓은 것 같은 배가 천천히 나타났다.
뱃머리에는 네 명이 있었다.
그중 우두머리는 검은색 선포를 입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패기를 풍겼다.
이들은 만중선루의 네 구천지존이었는데 우두머리는 경중지존(驚重至尊)이었다
무인들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이번 사건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얼마나 많은 구천지존들이 모여들까?"
명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구천지존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들은 그저 상황을 파악하러 온 자들이다. 진정한 거물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입도지존은 살짝 웃었다.
진남과 명망은 마음이 흔들렸다.
'구천지존들도 상황을 파악하러 오는 걸까? 설마 이 일이 구천지존 이상의 존재까지 엮인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