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화 두고 보자
거대한 수정 위에서 별안간 붉은 빛이 반짝였다.
네 번째 빨간 글자 임무가 나타난 것이 분명했다.
진남과 현장의 무인들은 빠르게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긍고 싸움터는 백 산의 하나인 천기 산맥에서 오십 년에 한 번 열린다. 소문에 의하면 이 산맥은 팔대 고족의 으뜸인 천기족이 사라진 것과 크게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번 싸움터는 천현비경(天玄秘境), 상현비경(上玄秘境), 하현비경(下玄秘境)으로 나뉜다. 천현비경은 수천 년 동안 아무도 그 속에 들어가지 못했다. 잘못된 길로 들어간 사람들은 사라졌다. 상현비경에 들어가려면 칠살부적(七殺符籍)이 필요하고 하현비경에 들어가려면 무조 오 단계의 경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 임무, 반천맹에는 다섯 개의 칠살부적이 있고 다섯 명만이 받을 수 있다. 부적을 이용해 상현비경에 들어간 뒤, 남천신지의 중요한 사람 세 명을 죽이고 동시에 세 개 이상의 천현성과(天玄聖果)를 따면 개당 십오만의 공헌점을 준다. 하지만 완수하지 못한다면 엄벌에 처할 것이다.
두 번째 임무, 하현비경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이십 명이다. 남천신지의 중요한 사람 한 명을 죽이고, 열 개 이상의 천현령과(天玄靈果)를 따면 개당 오천 공헌점을 얻을 수 있다. 완수하지 못한다면 엄벌에 처할 것이다.'
네 번째 빨간 글자 임무는 다른 세 개와 달리 흥미진진했다.
긍고 싸움터의 상황을 전부 상세히 소개해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반천맹이 성립된 지 오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무인들이 중주에서 와 반신지국에 대해 그리 깊게 알지 못했다.
"긍고 싸움터가 열렸어?"
"하하, 너희들은 천현성과가 대제 일 단계에서 삼 단계까지의 무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걸 모르지? 긍고 싸움터엔 팔대 고족, 요신금지와 유실약원, 삼대 세력의 대제 거물들이 있을 것이야."
"그렇지 않아. 이 천현령과는 무조 경지 무인들에게도 큰 이득이 있어 많은 무조 경지 무인들을 불러 모을 수 있어. 지난번 열렸을 때 적어도 수천 명의 무조 경지 무인들이 갔던 걸로 기억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험이 풍부한 몇몇 무인들이 입을 열었다.
흥분했었던 주위의 무인들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 침착해졌다.
그 임무는 보기에 많은 공헌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매우 위험했다.
"긍고 싸움터?"
진남은 눈이 번뜩였다.
칠살부적만 있다면 하나에 십오만 공헌점의 가치가 있는 천현성과를 긍고 싸움터의 상현비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천기족과 동주의 천기도, 천기 할멈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진남은 곰곰이 따져보기 시작했다.
"만약 이 임무를 받고 또 참살 임무를 받는다면 한번에 많은 양의 공헌점을 얻을 수 있어."
진남은 결정을 내렸다.
'상현비경에는 많은 대제 거물들이 참여한다. 하지만 그게 왜?
많은 공헌점을 얻을 수 있는 간단한 임무는 없다. 결국 많은 공헌점을 얻으려면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웅-
빨간 글자 임무의 뒷면에 두 줄의 금빛 글씨가 나타났다.
'융천대제가 첫 번째 임무를 받고 칠살부적 하나를 얻었다.'
'명공대제가 첫 번째 임무를 받고 칠살부적 하나를 얻었다.'
"대제 거물 두 명이 임무를 받아 갔어?"
진남은 어리둥절했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었다.
융천대제와 명공대제는 올해 증제했으니 천현성과가 필요했다.
"선배님, 제가 첫 번째 임무를 받아 가겠습니다."
진남은 발걸음을 옮겨 대전 앞으로 다가가 한 노인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주위의 무인들은 놀랐지만,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남 장로, 무도규칙을 초월했으니 대제 아래 자네를 상대할 자를 만나기 힘들 거요. 이 임무를 진짜 받아……."
노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제위가 대전 밖에서 휘몰아쳤다.
곧이어 세 개의 그림자가 대전에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허망대제의 분신과 음무, 유설이었다.
"허망대제를 뵙습니다!"
주위의 무인들은 깜짝 놀라 서둘러 인사를 했다.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허망대제가 성라전에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예의를 차릴 필요 없다."
허망대제는 고개를 약간 끄덕이다가 진남을 발견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빌어먹을 놈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의 머릿속에 의문이 스쳤다.
허망대제는 성라전 부 전주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막 긍고 싸움터의 소식을 들었다. 나와 음무, 유설, 두 장로가 첫 번째 임무를 받으러 왔다."
진남은 그 말을 듣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순간 얼떨떨해하다가 곧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허망대제, 죄송합니다. 진남 장로가 첫 번째 임무를 받는 중이라 이젠 두 명밖에 더……."
"응?"
허망대제, 음무, 유설 등은 의아한 눈빛을 드러냈다.
'진남이 첫 번째 임무를 받으러 왔다고?'
허망대제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지난번 반천전에서 많은 옥상극락을 소모했지만 결국 진남에게 당하고 말았다.
그는 그 뒤로 분이 풀리지 않아 진남에게 복수할지 계속 생각하던 중이었다.
한데,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대제 거물이 무엇인지 네 놈에게 본때를 보여주마.'
"내가 다시 말해야 알아듣느냐? 우리 셋, 세 명이 임무를 하러 왔다."
허망대제의 말투가 차가워졌다.
그의 몸에서 제위가 흘러나와 성라전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음무와 유설은 이내 허망대제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흥미로운 듯 진남을 바라봤다.
그 자리에 있던 무인들은 어리석지 않아 즉시 깨달았다.
허망대제는 자신의 신분과 권리로 진남 장로의 임무를 강제로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이건……."
노인은 머리털이 곤두섰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허망대제, 임무를 받는 데 순서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이런 인원수가 제한된 임무는 강한 사람이 받는 것이 맞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유설 장로와 음무 장로 둘을 합쳐도 저보다 못합니다."
진남은 차가운 표정으로 사정없이 말했다.
"뭐? 자네……!"
분노한 음무와 유설은 화를 내려고 했다.
그러나 무조의 힘을 움직이다가 그만두었다.
진남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들 둘이 아니라 사대 장로를 다 합쳐도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웃기는구나. 음무와 유설은 경험이 풍부한데 어찌 너보다 못하다는 게냐? 그리고 나는 반천전 부전주이고 반천맹 구제 중의 한 명이다. 내가 세 명이 갈 수 있다면 갈 수 있는 거다. 억울하면 너도 증제하든가?"
허망대제는 뒷짐을 쥐고 우습다는 듯이 진남을 내려다보았다.
얼마 전 고뇌대제는 신비한 임무를 집행하러 반천맹을 떠났다.
'고뇌대제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무도규칙을 초월하고 용기의 기둥을 부순들 어쩌겠는가? 네가 무조 경지이고 나는 대제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음무와 유설은 조롱하듯 진남을 바라보았다.
'네 상대가 안 된다고? 그렇다고 한들 어쩔 건데?'
주위의 무인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가볍게 탄식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진남을 인정했지만, 쉽게 나서지 못했다.
진남의 눈에서는 싸늘한 살기가 스쳤다.
허망대제 등이 먼저 와 임무를 받아 갔다면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허망대제는 권력으로 진남을 누르려고 했다.
"허, 허망대제, 화내지 마십시오……."
노인은 그 광경을 보고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말렸다.
"지금 당장 전주 일행의 이름을 넣겠습니다. 두 달 후 긍고 싸움터가 닫히면 반천맹에 다시 돌아와서 임무 결과를 바치면 됩니다……."
노인이 법인을 만들자 거대한 수정 위에 금색 글씨가 세 개 나타났다.
허망대제, 음무, 유설 등은 임무를 받아 갔다.
"억울해? 받아들이지 못하겠느냐? 하하하! 대제가 되면 다시 날 찾아와 복수하거라."
허망대제는 실컷 비웃고 손을 흔들며 노인이 건넨 세 저장주머니를 들고 음무, 유설과 함께 성라전을 떠났다.
그는 목적도 이루고 분도 풀었다.
더 이상 진남을 비웃을 이유가 없었다.
여기서 더한다면 그는 대제 거물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았다.
진남은 제자리에 서서 허망대제 등의 뒷모습을 보며 엄청난 살기를 내뿜었다.
"진남 장로, 아까는 정말 미안하오……. 나도 방법이 없었소. 차라리 내가 개인적으로 간단한 임무를 하나 주겠소. 남천신지의 장로를 죽이면 이십만 공헌점을 주고……."
노인은 식은땀을 닦으며 서둘러 말했다.
그는 가능하다면 진남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았다.
하니 자신의 공헌점을 내놓고라도 진남에게 임무를 줄 수밖에 없었다.
"장로,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두 번째 임무를 받아 가겠습니다."
진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이런 일로 그를 탓할 수 없었다.
노인은 얼떨떨했다.
그러나 이내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겠소? 그럼 자네 이름을 바로 넣겠소."
진남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도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긍고 싸움터의 하현비경으로 가서 칠살부적을 얻은 후 상현비경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현비경의 천현령과 한 개는 불과 오천 공험점의 가치가 있었다.
오직 상현비경의 천현성과만이 진남에게 엄청난 공헌점을 줄 수 있었다.
"진남 장로, 이제 됐소."
노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진남은 몸을 돌려 대문으로 향했다.
"아까 네 분신을 죽였다면 반천맹에서 쫓겨나고 창람 나무의 조각도 잃게 된다. 그럼 아무 의미가 없지. 하지만, 상현비경에 가면……."
진남은 발걸음을 멈추고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상현비경에 가면 허망대제는 깨달을 것이다.
진남은 제위에 오르지 않아도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 * *
중주, 용제원.
"보지 말거라. 볼 것도 없다. 이만 가자."
청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마리의 개는 인족봉의 산 아래에 서서 미련이 가득한 눈빛으로 한참을 보고서야 눈길을 거두었다.
"누님, 우리 어디 가요?"
해골 소홍은 턱을 받치고 말했다.
"천기산맥, 고난삼림, 화족지지(火族之地), 너희 둘이 고르거라."
"찍찍."
천기서가 대답했다.
"천기산맥."
두 마리의 개는 괴로웠다.
'고난삼림, 화족지지라고? 우리 같은 것들이 갈 수 있는 곳이야?'
"그래, 그럼 천기산맥으로 가자."
해골과 한 마리의 쥐, 두 마리의 개는 인족봉을 떠났다.
영기가 왕성하고 기운이 가득하던 인족봉은 우뚝 선 청년 조각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조용했다.
* * *
성라전을 떠난 진남은 마음을 추스르고 칠요검부를 움직였다.
반천맹을 떠나려 해도 이 부적을 사용해야 했다.
방대한 검의가 진남을 감싸더니 진남은 사라졌다.
잠시 후, 이름 모를 성의 거리에 느닷없이 한 사람이 나타났다.
진남이었다.
거리에 있던 무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칠요비선검은 진짜 기묘하구나. 남천각인도 전부 지웠어."
진남은 자신의 가슴을 힐끗 보더니 중얼거렸다.
다른 무인들에게 자신이 나타난 곳을 확인한 진남은 궁양이 준 옥간을 꺼냈다.
갈 곳을 정한 후 진남을 발끝을 튕겨 허공으로 사라졌다.
반신지국은 중주와 달랐다.
중도성 같은 기지가 없었다.
다른 곳으로 가려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