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7화 지도 뺏기 싸움
이틀이 지난 후.
"여기가 천기산맥인가?"
진남은 걸음을 멈추고 하늘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래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끝없는 사막이었다.
사막의 끝에 커다란 산들이 어우러진 산맥이 있었다.
산맥은 땅에서 솟아오른 천막처럼 흩날리는 모래를 막았다.
사막의 위쪽 하늘에선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기이한 모양의 큰 배나 거검 등이 산맥의 가운데로 빠르게 날아갔다.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진남은 산맥 가운데서 태고의 신광이 반짝이는 걸 봤다.
'저기가 긍고 싸움터의 입구인 것 같다.'
"가보자."
진남은 홍진연선술을 써 '단청'으로 변하고 산맥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긍고 싸움터의 입구에는 팔대 고족, 삼대 세력의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신분이 들키면 남천신지의 대제들이 뒤쫓아와 죽이려 할 수 있었다.
진남은 긍고 싸움터에 도착한 후 본 모습으로 돌아가 미끼가 되어 남천신지의 사람들이 쫓아오게 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산맥에서 반 시진 정도 날아다니던 진남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앞쪽 오십 리 되는 곳에 방대하고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신광이 뿜어져 나왔다.
신광은 만여 장 되는 산봉우리를 덮고 보이지 않는 위압을 뿜었다.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가까이 가지 못했다.
산봉우리의 정상에는 높이가 오백 장, 넓이가 삼백 장 되는 기운이 신비한 흰색 광문이 있었다.
진남의 눈에 빛이 스쳤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이 흰색 광문은 동주 천기도에서 나타난 적 있었다.
"이 흰색 광문이 천기 할멈과 연관이 있는 것 같구나."
진남은 중얼거리며 왼쪽 눈을 움직여 앞을 훑어봤다.
산기슭 주위를 훑어보니 몇천 개의 무조 경지의 기운이 느껴졌다.
팔대 고족 그리고 육대 금지, 삼대 세력의 사람들은 매우 적었다.
있다 해도 경지가 강하지 않았다.
산기슭에는 스물다섯 개의 금제가 쳐진 궁전들이 있었다.
궁전 안에는 무인들이 많았다.
궁전들은 무인들이 일부러 임시 지은 주루와 객잔이었다.
"이상한데? 다른 세력은 왜 아직도 오지 않았지?"
진남은 눈살을 찌푸리고 한참 생각하더니 한 궁전으로 걸어갔다.
그는 정보가 별로 없었다.
주루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진남은 사 층으로 된 주루로 들어갔다.
주루 중에서 안에서 술을 마시는 무인들이 가장 많았다.
무려 백여 명 정도나 되었다.
무인들 대부분은 기운이 강했다.
살기를 감추고 있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영주를 주문하고 진남은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조용히 무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잠시 후 진남의 눈에 빛이 스쳤다.
그는 중요한 소식을 몇 개 알게 되었다.
긍고 싸움터는 내일 열린다.
하현비경이 먼저 열리고 사흘 후 상현비경이 열린다.
여러 세력의 제자, 거물들은 모두 상현비경이 열릴 때 들어간다고 했다.
왜냐하면, 하현비경에 들어가는 건 그들에겐 시간 낭비였다.
이곳에 온 여러 세력의 제자들은 모두 경지가 낮고 칠살부적을 얻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럼 먼저 하현비경에서 천현령과를 얻은 후 여러 세력이 들어올 때 방법을 찾아 칠살부적을 얻자."
진남은 결정을 내렸다.
이때, 말소리가 진남의 주의를 끌었다.
"후, 금년에는 칠살부적을 얻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어. 안 되면 천현령과나 많이 찾아야지."
"우리 연합할까?"
"됐어. 내일 지도 뺏기 싸움에 참가할 거야?"
"지도 뺏기 싸움? 도우, 혹시 지도 뺏기 싸움이 어떤 건지 알려줄 수 있어? 긍고 싸움터에 처음 와서 말이야."
우락부락하게 생긴 중년 사내는 누군가 묻자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지도 뺏기 싸움은 다들 편하게 부르는 이름이야. 전에 긍고 싸움터가 열릴 때마다 추아도인이란 사람이 와서 천현령과의 지도를 팔았어."
"하하, 맞아. 추아도인은 매우 신비해. 경지는 대제보다 낮지만 절묘한 경지에 이르렀어. 그는 지도를 파는데, 한 번에 백 장만 팔아."
"백 장 중에 다섯 장은 황금 지도이고 나머지 아흔다섯 장은 보통 지도야. 전에 무인들은 몇 번이나 황금 지도 덕분에 많은 천현령과를 얻었어."
"자네 말은 틀렸네. 황금 지도가 있다고 매번 많은 천현령과를 얻은 건 아니네. 몇 번씩 실패한 자도 있소. 그리고 보통 지도를 얻었지만, 천현령과를 많이 얻은 자들도 있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무오. 아, 까먹을 뻔했군. 지도 뺏기 싸움에 참가하려면 추아도인에게 신석 이천 개를 내야 하오."
중년 사내와 다른 무인들의 대화를 통해 진남은 지도 뺏기 싸움에 대해 명확히 알게 되었다.
"흥! 신석을 내라고? 나는 신석을 지불하지 않을 거다. 추아도인이 지도를 꺼내면 바로 빼앗을 거다."
주루 삼 층에 앉아있던 오만한 청년이 말했다.
"놈. 허세 부리지 말거라. 전에 긍고 싸움터가 열릴 때마다 무인들이 지도를 빼앗으려고 했다. 그들이 전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느냐?"
파란 머리의 노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어떻게 되었는데요? 다 죽었습니까?"
청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틀렸다. 긍고 싸움터가 끝난 후 무인들은 모두 실종되었다. 그리고 어떠한 비법에 의해 사람 형상의 나무로 변해 산에 심어졌다. 아마 칠팔십 그루는 될 거다."
파란 머리 노인은 콧방귀를 뀌었다.
청년뿐만 아니라 무인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추아도인?"
진남은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구나.'
이어 무인들은 소문이나 비밀에 대해 말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는 것도 흥미진진했다.
반신지국은 이동이 불편한 것뿐만 아니라, 유영루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는 세력도 없었다.
대제들이 싸웠다든가, 죽었다든가 하는 일은 일부만 알았다.
대부분은 몰랐다.
제위에 오르거나 신으로 임명되거나, 무도규칙을 초월하거나 무신의 싸움이 열리는 등.
그런 엄청나게 큰일만이 반신지국 천제를 흔들 수 있었다.
문득 강한 기운이 주루 문 앞에서 용솟음쳤다.
진남을 비롯한 무인들은 모두 고개를 쳐들고 바라봤다.
주루 안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고 강자들도 많았다.
보통 사람은 이렇게 대놓고 과시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었다.
기운을 뿜은 사람은 금색 비단으로 만든 두루마기를 입고 허리에 목패를 찬 청년이었다.
청년은 오만한 기운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청년의 뒤에는 다섯 명이 따랐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모두 달랐다.
청년 외에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팔대 고족에서 온 제자들이었다.
"저 청년은 누구지?"
"모르겠어. 근데 저자의 뒤를 따르는 자들은 모두 팔대 고족의 내문제자들이야."
"청년이 가장 앞에 선 걸 보니 신분이 더 높은 것 같군. 그러니 저렇게 과시하지."
주루 주위의 무인들은 소곤거렸다.
기분이 언짢은 자들도 있었지만 딱히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소선?"
진남은 의아했다.
청년의 뒤를 따르는 사람 중의 한 명은 전소선이었다.
"단청 오라버니? 오라버니도 오셨어요?"
전소선은 고개를 돌려 진남을 보더니 희색을 드러냈다.
"응. 너 왜 이렇게 빨리 왔느냐?"
진남은 물었다.
전소선은 전족에서 중등 정도였다.
응당 상현비경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저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셨어요. 저더러 폐관수련하라고 하셨는데, 몰래 도망쳐 나왔어요."
전소선은 환하게 웃었다.
"소선아, 이분은?"
기운을 드러내던 청년은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는 적의가 가득한 눈길로 진남을 훑어봤다.
그의 신분으로 전족의 사람들과 함께 바로 상현비경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전소선과 함께 있기 위해 그는 일부러 앞당겨 온 것이었다.
그는 전소선을 위해 이런 손해를 감수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낯선 청년과는 사이가 엄청 좋아 보였다.
기분이 나빴다.
"여러분, 이분은 단청 오라버니예요. 오라버니는 매우 대단한 동술대사(瞳術大師)예요. 단청 오라버니 이 자는 곽돈(霍頓)이에요. 유실약원 장로의 아들이에요. 이자는 혈족의 오사(澳鯊), 유혼족의……."
전소선은 한 명 한 명 소개했다.
"유실약원? 나는 단청이요."
전소선의 소개를 들은 진남은 눈을 반짝이며 곽돈을 향해 공수했다.
그는 반신지국에서 처음 유실약원의 제자들을 만났다.
곽돈이 유실약원의 제자라는 걸 안 후 그는 곽돈이 별로 싫지 않았다.
"대단한 동술대사라고? 단청 대사의 스승은 누구요? 어느 문파 소속이요?"
곽돈은 진남이 공수한 걸 못 본 체하고 오히려 날카롭게 물었다.
"문파는 없소. 나의 스승님은 청룡 성주요."
진남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문파가 없다고? 삼대 세력에도 들어가지 못했소? 소선아, 내가 너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사귈 때는 신중해야 한다. 아니면 낭패를 보게 된다."
곽돈은 하찮다는 듯한 눈길로 진남을 바라보며 말했다.
문파가 없는 건 그렇다 쳐도, 청룡 성주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또 이름에 대제라는 글자도 없으니 청룡 성주는 대제 거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곽돈은 진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족 제자들은 그들의 대화를 듣더니 안색이 싸늘해져 진남과 인사도 하지 않았다.
진남은 안색이 평온했다.
다만 곽돈에게 생겼던 한 가닥 호감이 전부 사라졌다.
"곽돈, 헛소리하지 마. 아니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전소선은 표정이 차가워졌다.
"너……!"
곽돈은 화가 났다.
그는 단청 때문에 전소선이 자신을 이렇게 대할 줄 몰랐다.
"됐다. 그만하고 우리 사 층 독실로 가자. 오늘은 내가 살게."
곽돈은 가까스로 화를 누르고 진남을 힐끗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단청 오라버니, 우리와 함께 갈래요?"
전소선이 물었다.
곽돈은 말문이 막혔다.
"나는 가지 않겠다. 너희들끼리 놀거라."
진남은 손을 저었다.
"아……."
전소선은 뭔가 말하려 했다.
그러나 진남의 눈빛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긍고 싸움터에 들어간 후에도 시간이 많이 있으니 그때 단청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치는 빠르구나."
곽돈은 한숨을 쉬더니 진남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낮은 소리로 전음했다.
말을 마친 그는 전소선 등과 함께 주루 사 층으로 올라갔다.
진남은 어이가 없었다.
유실약원의 인물이 저토록 건방지고 작은 일로 자신을 이렇게 대할 줄 몰랐다.
"이번에 공주도 올까?"
진남은 기분이 좋아지고 기대가 생겼다.
'공주는 어떻게 변했을까?'
주루에서 나온 진남은 큰 나무 밑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련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긍고 싸움터가 열릴 날이 가까워질수록 무인들은 점점 많이 왔다.
그 사이에 무인들은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싸우기도 했다.
다음 날 새벽, 큰 산 정상 위의 신비한 흰색 문에서 떨리는 소리가 났다.
산 주위에 있던 몇천 명의 무인들은 모두 신념을 드러냈다.
"긍고 싸움터가 열린다!"
"진정으로 열리려면 아직 며칠 남았어. 이제 곧 지도 뺏기 싸움이 시작되겠지?"
무인들의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폐관수련하던 진남도 눈을 뜨고 산 정상의 커다란 문을 바라봤다.
이때, 이변이 발생했다.
먼 수림 속에서 커다란 안개가 일더니 시커먼 새들이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아름다운 그림자가 안개 속에서 천천히 걸어왔다.
그림자는 걸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무인들은 발걸음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시간이 진짜 빠르구나. 또 오십 년이 지났다니. 도우들, 나는 추아도인이다. 지도를 백 개 준비했다. 지도를 얻고 싶으냐? 관심 있으면 이천 개 신석을 내거라. 이천 개다."
진남은 추아도인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는 왼쪽 눈을 움직여 추아도인을 훑어보려 했다.
그러나 진남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의 체내의 아홉 그루의 무수도 뭔가 느낀 것처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