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5화 절대 건드리면 안 되겠어
"선배님, 영보전 말고 암영전 쪽에는 없습니까?"
진남은 진정하고 물었다.
지난번 전소선의 나무 조각은 아홉 그루 무수의 기운을 바꿔 놓았다.
하지만 한두 조각만으로는 아홉 그루의 무수가 합쳐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직은 없다. 이제 각 제자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라고 할 테니 소식이 있으면 알려주겠다."
노인이 말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진남은 공수하고 감사 인사를 한 후 곧장 영보전으로 행했다.
멀리서 보니 영보전에선 영기가 번쩍거렸다.
무인들이 잇달아 그 속으로 날아들었다.
영보전은 암영전과 달리 어떤 경지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충분한 공헌점만 있다면 많은 물건을 교환할 수도 있었다.
진남은 대전에 들어서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진남 장로를 뵙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수십 명 무인들은 놀란 표정으로 빠르게 공수했다.
"하하, 진남 장로. 영보전에는 무슨 일이오?"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명은 묘한 표정을 짓고는 물었다.
위명은 반천전 오대 장로일 뿐만 아니라 영보전 부전주의 한 사람으로서 영보전의 중요한 일을 맡고 있었다.
그는 진남이 오자 직접 나타났다.
"위명 전주, 영보전에 창람의 나무 조각이 있소? 내가 한번 보러 가도 되겠소?"
진남은 바로 물었다.
"창람 나무의 조각을 보러 가겠다고?"
위명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다가 그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가 거짓 미소를 지었다.
"허허, 진남 장로가 보러 가겠다고 하니 내가 함께 가겠소."
말을 마친 위명이 대전 깊숙한 곳으로 걸어갔다.
진남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위명이 쉽게 협조할 줄 몰랐다.
'혹시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가?'
진남은 고개를 흔들고 그 뒤를 따랐다.
"창람 나무의 조각? 오 층에 있는 거 아니야?"
"오 층에는 그것만……."
"쉿, 조용히 해."
대전에 있던 다른 무인들은 눈을 번득이며 속삭였다.
진남은 위명의 뒤를 따라 곧 오 층에 도착했다.
그 입구에는 수많은 신마들의 그림들이 가득하고 현묘하기 그지없는 빛이 감돌았다.
진남은 왼쪽 눈으로 훑어보고 깜짝 놀랐다.
그 빛은 그의 왼쪽 눈으로도 뚫어볼 수가 없었다.
"진남 장로, 이 안에 있소. 이 목패를 가지고 들어가면 되오. 규정이 있어 나는 함께 할 수가 없소."
위명은 목패 하나를 내밀었다.
"고맙소."
진남은 위명을 바라보다가 영패를 받아 들고 그 광막으로 들어갔다.
"진남, 제 발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자."
위명은 진남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냉소를 지었다.
오 층은 대제 거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수많은 법보들이 엄청난 위압을 풍겨 대제가 아니라면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남이 창람 나무의 조각을 물어보자 위명이 나서서 길을 안내했던 것이었다.
혹시 나중에 진남이 중상을 입어 조사하게 된다면 위명도 인정 때문에 진남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진남은 알지 못했다.
진남은 영패를 이용해 광막을 통과하고 오 층으로 들어갔다.
진남이 들어서는 순간 엄청난 기운이 커다란 전당에서 깨어났다.
진남은 안색이 변해서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대전은 방원 사십여 장이나 되는 크기에 붉은색과 푸른색이 교차하는 태고 광석으로 만들어졌다.
벽 둘레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이 주위를 밝히고 있었다.
대전에는 크기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며 기운이 다른 법보가 있었다.
대충 훑어보아도 몇천 점이나 되었고, 그 위에 강력한 검의가 가득했다.
대제 거물이라도 그 검의를 강제로 깨뜨릴 수 없었다.
진남은 한번 훑어보고 살짝 놀랐다.
거기에 있는 법보 등은 모두 범상치 않았다.
구석에는 비범해 보이는 불완전한 고검이 있었는데, 마치 검제가 살아있는 듯 짙은 대제지의를 갖추고 있었다.
또 다른 구석에는 큰 창이 있었다.
마치 한 방에 천지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낡은 방울, 허공 깊은 곳에서 온 듯한 쇠사슬, 신의를 품고 있는 낡은 부채, 천급 칠품 무주무혼을 담은 화염지석, 신령 몸에서 나온 듯한 뼈 등등 귀한 법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하룻강아지가 함부로 뛰어드네."
"하하, 무조 경지의 애송이를 들여보내다니."
"얻기 어려운 기회이니 내가 먹을 거야!"
바로 그 순간, 목이 쉬고 날카로우며 광적인 목소리가 대전에서 울려 퍼졌다.
목소리들은 기영들이었다.
법보 등은 모두 마발검신 혹은 다른 양대 검신, 몇몇의 대제 거물들이 태고 금지 등에서 꺼내 의지를 지우지 않고 이곳에 봉쇄해 놓은 것들이었다.
불완전한 고검, 무서운 큰 창, 낡은 방울, 신비한 쇠사슬, 신의를 품은 낡은 부채 등 강한 법보에서 무시무시한 힘이 폭발했다.
그들은 살초로 진남을 죽이려 했다.
무조 경지의 진남이 쳐들어오면서 흉악하고 억울함이 가득했던 기영들이 빠르게 달려들었다.
강렬한 위기감이 진남의 마음속에서 솟아나 빠르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통의 무조 경지 정상급 강자라면 막을 수 없지만 기영들이 마주한 것은 진남이었다.
"날 죽이려고?"
진남은 강력한 전의를 폭발시키며 오른팔을 단천도로 변화시켰다.
"누가 감히 움직이나."
그의 말이 떨어지자 단천도 칼끝에서 수많은 도의가 폭발했다.
"이건……?"
"대단한 칼이다!"
"이건 무슨 칼이야?"
수백 건의 강한 살초를 준비하고 있던 법보들은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칼이 내뿜는 기운과 위압이 너무나 대단했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온 기영임에도 듣도 보도 못한 수준이었다.
팍-!
진남이 왼손을 뒤집자 단천도는 바닥에 꽂혔고 커다란 대전은 완전히 조용해졌다.
어떤 기영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 수천 개의 법보들도 떨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진남이었지만,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단천도는 전신의 오른팔과 단천대제가 모든 능력을 다해 만든 법보였기에 기영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것이 당연했다.
진남은 전의를 거두고 왼쪽 눈을 움직여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한구석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낡은 통 위에 손바닥만한 검은 나무토막이 놓여 있었다.
숨결 하나 없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 검은 나무토막이 바로 창람 나무의 조각이었다.
전소선의 비수 위에 있던 창람 나무의 조각보다 무려 다섯 배나 컸다.
"이것을 연화하면 내 아홉 그루의 무수가 어느 정도로 합쳐질 수 있을까?"
진남은 눈빛이 이글거리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진남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흥분을 진정시켰다.
창람 나무의 조각을 찾은 이상 더 있을 이곳에 필요가 없었다.
그 법보는 현재 강력한 검의에 의해 봉인되어 진남은 가져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반천맹에서 훔치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위명을 찾아가자."
진남은 단천도를 뽑아 들고 대전 오 층으로 향했다.
진남이 떠난 뒤 겁을 먹고 떨던 수천 개의 법보들이 평온해졌다.
기영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들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방금 그게 무슨 칼이었어?"
"엄청 무서웠어."
"설마 신기야? 아니, 신기도 이렇게까지 무섭지 않아."
기영들이 이리저리 떠들고 있을 때 잠잠하던 창람 나무의 조각 위로 푸른 빛이 반짝이다가 사라졌다.
* * *
잠시 뒤, 영보전 오 층 밖에서 위명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진남은 무도규칙을 초월했지만. 지금은 반쯤 불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에 잠겼던 위명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굳었다.
그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상황이야? 왜 괜찮은 거야? 피 한 방울도 보이지 않고 심지어 옷도 찢어지지 않았잖아?'
"위명 전주, 창람 나무의 조각을 사려면 공헌점이 얼마나 있어야 하오?"
진남은 물었다.
"어, 이백만? 아니, 아니다. 총 삼백만 공헌점이 필요하오."
충격을 받은 위명은 약간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삼백만 공헌점?"
진남의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머리가 아팠다.
지금 그가 지닌 공헌점은 사십칠만 오천 개밖에 되지 않았다.
무려 이백오십이만 오천 개나 모자랐다.
만약 반천맹의 방법으로 따진다면 적어도 남천신지의 대제 거물 두 명과 남천신지의 중요한 사람 쉰두 명, 남천신지의 보통제자나 장로 다섯 명을 죽여야 그 많은 공헌점을 얻을 수 있었다.
"안 돼, 창람 나무의 조각은 꼭 얻어야 해. 일단 성라전에 가서 무슨 임무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어떻게 공헌점을 얻어야 할지 생각하자."
마음을 정한 진남은 곧장 떠났다.
"진남은 너무 무서워, 앞으로 어떻게 하든 절대 건드리면 안 되겠어."
위명은 그런 진남의 뒷모습을 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는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반천맹에서 다른 세 대전에 비하면 성라전은 가장 달랐다.
멀리서 보면 무인들이 빛이 되어 대전을 날아들었다.
마찬가지로 대전에서 나오는 무인들도 적지 않았다.
대전은 드나드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무인들은 임무를 받으러 왔거나 임무를 맡기러 온 것이었다.
반천맹에서 공헌점의 쓸모는 너무나도 컸기에 대제 거물도 임무를 받고 공헌점을 벌어야 했다.
진남은 기운을 거두고 조용히 대전으로 들어가 한구석을 택했다.
"또 임무가 세 개 생겼어."
"이번 임무는 쉽지 않아. 두문택(杜文择)은 머리가 나쁘지만 신방 구천오백 위라 상대하기 어려워."
대전에서 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진남도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대전 앞에 크고 작은 임무들이 적힌 커다란 수정이 나타났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정 위에 새겨진 세 개의 빨간 글자 임무였다.
'남천신지 자오대제(子午大帝), 청하대제(淸河大帝), 육합대제(六合大帝)는 육대 금지 중 고난삼림으로 들어가 오묘함을 발견한 것으로 의심된다. 세 대제의 음모를 발견한다면 오십만 공헌점을 주고, 세 대제를 벌하여 죽이면 오백만 공헌점을 준다.'
'사라진 제칠 금지를 찾아 그것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면 이십만 공헌점을 주고 제칠 금지를 찾으면 삼백만 공헌점을 준다.'
'남천신지에 들어가 남천신지의 비밀을 훔쳐내면 그 가치에 따라 공헌점을 준다. 최대 삼백만 공헌점을 준다.'
진남은 혀를 끌끌 찼다.
반천맹의 빨간 글자 임무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지금 진남의 실력에 임무를 받는다면 완성하기는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울 것이었다.
"다른 것도 좀 봐야지."
진남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살펴보는 동안 많은 무인들은 그의 존재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진남도 일일이 답했다.
한 시진이 지난 뒤, 진남은 시선을 거두고 눈살을 찌푸렸다.
빨간 글자 임무가 매우 어렵다면 다른 임무들은 너무 간단했다.
자취를 찾아 남천신지의 사람들을 교살하거나 대제의 종적을 탐문하는 것 등이었는데, 공헌점을 많이 주지 않았다.
최고 임무조차 겨우 십만 공헌점에 불과했다.
진남은 참살 임무에 끌렸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중요한 사람을 죽이겠어. 날 미끼로 남천신지의 강자를 끌어들인다면 적어도 스무 명 정도는 죽여야 해. 그런다면 마지막엔 대제 거물을 낚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음, 일단 성라전 전주를 찾아가 물어봐야겠어."
진남은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