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화 주제 파악도 못 하는 것들
사람들은 안색이 변했다.
그들도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고 어느 정도 신분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대놓고 위협을 가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흥! 건방지군!"
사마공은 콧방귀를 뀌고 경멸하는 눈빛을 드러냈다.
진남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우리 둘과 적이 되려는 거요?"
임비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사람들을 샅샅이 훑었다.
"그럼 나도 사람을 찾아 자네들 신분을 다 알아봐야겠소. 이후에……."
말을 다 하지 않았지만, 뜻은 명확했다.
그의 말에 몇몇은 이를 악물고 신념을 전했다.
임비는 눈이 반짝이더니 열 몇 명의 무인들을 둘러보며 박수했다.
"좋소. 훌륭한 선택을 했소. 참 똑똑하오. 이번 심사가 끝나면 자네들에게 이득을 주겠소. 그런데……. 자네 셋은?"
임비는 진남, 사마공 그리고 다른 무인을 쳐다보았다.
"유영루 사장로의 아들이자 천도문의 내문제자가 작은 심사에 나서서 협박하다니? 허허, 어떻게 위협하든지 나는 이번 심사에 참가해야겠소!"
그 무인은 단호한 시선으로 전혀 양보하지 않았다.
사마공은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드러냈다.
진남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좋소!"
임비는 표정이 굳었다.
오늘 그가 사람들을 위협한 것은 단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단인에게 유영루에서 자신의 지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때문에, 이들 셋이 그의 이름을 듣고도 신경을 쓰지 않은 것에 분노했다.
단인의 두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는 이번에 중요한 일을 처리하러 왔다.
그래서 특수 영패가 매우 중요했다.
물론 그는 실력에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좀 더 쉽게 해결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때,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너희들의 심사관인 위림(衛琳)이다."
짐승 갑옷을 입고 야생미가 흘러넘치는 여인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무조 구 단계라 기운이 엄청났다.
"위림 사저를 뵙습니다."
임비는 공수하고 말했다.
위림은 유영루에서도 지위가 낮지 않았다.
게다가 그 아가씨를 모시는 사람이니 임비는 함부로 하지 못했다.
"위림 사저!"
그때, 임비에게 반박했던 무인이 벌떡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이번 심사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방금 임비와 단인은 연합하여 사람들을 위협했습니다. 권세를 이용하여 우리더러 스스로 심사에서 물러나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임비와 단인은 안색이 변했다.
'저놈이? 감히 폭로하다니!'
하지만 위림은 표정이 한결같았다.
그녀는 임비를 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것도 심사이니 불평하지 말거라."
청년은 당황했다.
임비에게 심사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한 제자들도 흠칫했다.
임비와 단인은 그제야 시름을 놓고 그 청년을 쳐다봤다.
'심사가 끝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이제 심사를 시작하겠다. 나를 따라오너라."
위림은 돌아서서 사람들을 이끌고 편전을 나갔다.
그들은 일 층의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은 널찍했고 스무 개의 꽉 닫힌 청동 문이 있었다.
문에는 수정이 붙어있었고, 거기엔 삼 주 향이 꽂혀 있었다.
"음, 이건……."
스무 개의 문을 훑어본 진남의 눈에 이상한 빛이 드러났다.
스무 개의 문 안쪽에는 삼십 장 높이의 방이 있었고, 중앙에 십 장짜리 못이 있었다.
못에는 세 가지 색의 연꽃이 피어 있었다. 꽃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러나 진남은 아름다움 속에서 커다란 위험을 느꼈다.
"이번 심사는 공평하다. 뒤에 있는 문 안쪽에는 삼채련지(三彩蓮池)가 있는데 위험이 가득하다. 너희들이 할 일은 삼채련지에 들어가서 싸우면 된다. 오래 버티는 사람이 승자이다."
위림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명심하거라. 문 안쪽에 들어서면 무조 나무를 드러내야 한다. 삼채련지는 너희들 무조 나무에 따라 위력을 조절할 수 있다."
"그렇군!"
진남은 금세 깨달았다.
이번 심사는 보기에는 불공평해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전력을 심사하는 것이었다.
"그럼 심사를 시작하겠다. 다들 들어가거라."
위림은 손을 휘둘렀다.
슉-!
무인들은 바로 문을 넘었다.
진남과 사마공이 문 안쪽에 들어서자 음침한 목소리가 둘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너희 둘은 참 멍청하구나. 이번 심사는 반드시 내가 이긴다. 그런데 굳이 반항해서 내 기분을 잡치는구나."
진남과 사마공은 고개를 돌렸다.
임비와 단인이 차갑게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
사마공은 눈을 흘겼다.
'나더러 멍청하다니!'
"나를 욕한 거야?"
임비와 단인은 눈을 찌푸렸다.
'뚱보는 배짱이 크구나!'
"뭐! 욕했다 왜! 그깟 장로의 아들이 뭐가 대단하다고, 고작 제방 구백여 위인 놈이 그리 건방진 거냐? 네 놈이 내 신분을 알면……."
사마공은 화가 나서 보라색 영패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때 위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됐다. 그만하고 들어가거라. 아니면 심사에 실패한 거로 간주하겠다."
사마공은 그 말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는 상관없었지만, 진남까지 피해를 보게 할 수 없었다.
"그만하고 갑시다."
진남은 미소를 짓고, 문 안쪽으로 날아갔다.
임비와 단인은 안색이 변했다.
'감히 우리에게 달려들다니? 설마 대단한 내력이 있는 거야? ……한데, 만약 우리보다 대단한 신분이라면 왜 이 심사에 참가하지?'
"나중에 저자의 신분을 알아봐야겠군!"
둘도 문 안쪽으로 날아갔다.
스무 개의 문 전부에 사람이 찼다.
하지만 심사가 시작되자 열 몇 명의 무인들은 바로 포기했다.
"재미없어."
위림은 그 모습에 한마디 했다.
그녀가 보기에 임비나 단인이나 뚱보나 그리고 다른 무인도 실력이 비슷해 보였다.
특수 영패를 얻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이 정도 실력인 줄 알았더라면 심사관이 되지 말 걸 그랬어.'
위림은 동술을 펼쳐 스무 개의 문을 살폈다.
어찌 됐건 이건 그녀의 책무였다.
스무 개의 문을 살피던 그녀는 문득 속눈썹이 떨렸다.
"어?"
진남은 문 안쪽에 들어간 후 바로 공격하지 않고 삼채련지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위림은 어느 정도까지 싸워야 일 위라고 하지 않았어. 즉,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에 달렸군."
진남은 중얼거렸다.
"그럼, 아예……. 없애버릴까?"
진남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들어오기 전에 그는 왼쪽 눈으로 삼채련지를 살폈다.
못의 깊숙한 곳에 몇 개 무서운 진법이 있었다.
진법들은 서로 엮이어 버티고 있었다.
진남은 전신의 왼쪽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없앨 수 없을지 몰라도 그는 할 수 있었다.
삼채련지의 진법들은 무조 나무에 따라 스스로 힘을 조절했다.
진남이 연못을 없애려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심사를 통해 유영루가 여러 천재의 전력을 알아보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진남은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전력이 강할수록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더 많았다.
"무조 나무, 모습을 드러내라!"
진남은 소리쳤다.
전신의 나무를 드러내지 않고 가장 강한 나무를 드러냈다.
웅- 웅- 웅-
삼채련지는 무언가 느낀 듯 반짝거리며 옅은 빛을 뿜었다.
엄청난 기운이 점점 약해졌다.
"지금이다."
삼채련지의 기운이 안정되자 진남은 발을 굴러 위로 날아올랐다.
쿵-!
그때 변화가 생겼다.
잔잔하던 못에서 연꽃 꽃잎들이 동시에 엄청난 기세로 날아올랐다.
게다가 연꽃잎은 날카로워지고 못의 물은 부글거리더니 커다란 손이 되어 진남을 잡으려고 날아왔다.
순식간에 사방에 살초가 가득해서 어디로도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진남은 이미 예상했던 것처럼 몸을 날렸다.
"베어라!"
외침과 함께 진남의 오른팔에서 엄청난 도기가 나와 공격들을 연이어 부쉈다.
동시에, 그는 몸을 가볍게 움직이고 발을 빠르게 옮겨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했다.
진남은 싸움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진압하라!"
진남은 신념을 주입하며 날아올랐다.
뒤에서 연꽃과 꽃잎 그리고 물이 쫓아왔다.
그의 머리 위에 있던 무조 나무는 엄청난 힘으로 모든 것을 전부 진압했다.
하지만 삼채련지는 보통이 아니었다.
깊은 곳에서 연꽃들이 솟아올라 빠르게 날아왔다.
점점 많은 살초들이 연못에서 깨어났다.
* * *
같은 시각 대전 안.
임비와 단인에게 약속했던 열 몇 명의 천재들은 삼채련지의 위력을 겪은 뒤 고개를 흔들며 심사를 포기하고 나왔다.
심사에서 일 위를 못 하는 것은 속상했지만, 그들은 임비와 단인의 미움을 받지 않는 길을 택했다.
임비도 심사를 포기했다.
그가 심사에 참가한 것은 오로지 단인을 위해서였다.
"그 세 녀석은 아직 심사 중이야."
"하지만 단인과는 견줄 수 없을 테지. 그들에겐 희망이 없을 거야."
"그건 모르지. 임비와 단비에게 맞서는 걸 보니 실력이 좀 있는 것 같아.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지."
"……."
열 몇 명의 무인들은 수군거리며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렸다.
그들이 남은 것은 머리를 숙였지만, 진남 등은 머리를 숙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남 등의 행동과 비교했을 때, 그들은 두려움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머리를 숙이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개를 숙인 것이 못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진남 등이 지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진남 등이 져야 그들은 마음이 편했다.
임비는 그 말들을 듣자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위림을 쳐다봤다.
"위림 사저."
임비는 심호흡하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갔다.
"썩 꺼지거라!"
위림은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휘저었다.
그녀의 두 눈은 여전히 진남이 들어간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임비는 얼굴이 붉어졌다.
위림에게 대놓고 무시당할 줄 몰랐다.
그는 위림이 진남에게 정신이 온통 팔린 걸 몰랐다.
"엄청난 무조 나무구나. 이 정도면 자아무성이었겠지? 게다가 다른 보물도 연화한 것 같아."
위림은 눈에서 빛을 내며 살폈다.
"게다가 동술이 무척 강하구나. 모든 공격을 꿰뚫어 보고 미리 피하다니……."
그녀가 감탄한 것은 진남의 전의였다.
그의 전의는 마치 불꽃처럼 싸울수록 더욱 왕성해졌다.
진남과 비교했을 때 단인은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그러나 단인은 비장의 무기가 많으니 승부는 아직 알 수 없다."
위림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흔들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일 주 향이 되자 두 대문에서 사마공과 비리를 제보했던 청년이 동시에 튕겨 나왔다.
둘은 더 버티지 못했다.
사마공은 그래도 표정이 여유로웠다.
그러나 그 청년은 표정이 잔뜩 어두워졌다.
"저 둘은 버티지 못했어!"
"허허, 어리석은 녀석들. 단인에게 상대가 되지도 않으면서 설치다니? 우리처럼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면 미움도 사지 않지!"
"그러게 말이야."
천재들은 차갑게 비웃었다.
임비도 그 청년과 사마공을 보며 조롱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주제 파악도 못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