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화 포기하길 바라오
"훔치다니? 나는 도제 후계자요. 훔치는 것도 도가 있소."
사마공은 눈을 흘기더니 우쭐거리며 말했다.
"싸우는 것 외에 내가 못 하는 건 없소! 보라색 영패도 내가 위조한 거요. 유영루에서도 몰라보오."
"위조를 했다는 말이요?"
진남은 놀라서 끌끌 혀를 차며 감탄했다.
사마공은 싸움이 아닌 다른 방면에서는 수단이 대단했다.
"자, 지난번에 하나 팔고 하나 남았소. 가져가시오. 수림에 은거하는 무제 강자가 있는데 왕량무제(王良武帝)라고 하오. 보라색 영패는 그자의 후계자라는 뜻이오."
사마공은 보라색 영패를 꺼내 진남에게 건넸다.
진남은 보라색 영패를 받았다.
"흠흠, 중요한 일이나 말합시다."
사마공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전음했다.
"진남, 역천개명을 할 수 있는 지도를 알 거요. 그럼 지도 도박도 알겠지? 유영성에는 지도 도박을 하는 곳이 많소. 자네 동술과 내 수단으로 도박에서 이길 수 있을 거요."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도 도박에 대해 만상 옥간에서 본 적이 있었다.
역천개명을 하는 지도로 도박을 하는 것이었다.
역천개명을 하는 지도가 있으면 그곳에 가보기 전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어떤 기우를 만날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지도들을 대량으로 수집하고 가격을 통일하고 판매했다.
무인들은 지도를 산 후 두 가지 방법으로 확인했다.
하나는 직접 가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람신액(藍神液)'이라고 불리는 이보를 지도에 떨구는 방법이었다.
람신액을 지도에 떨어뜨렸을 때 빛이 강할수록 지도에 있는 기연이 더 강했다.
다만, 람신액은 정확도가 삼 할 정도밖에 안 되었다.
무인들은 람신액을 선택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정확도도 문제였지만 엄청난 기연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제 동술은 꿰뚫어 보는 작용을 하지 지도 도박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진남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허허, 뭘 모르는구먼. 람신액이 왜 삼 할의 확률로 지도에 있는 기연이 얼마나 강한지 판단할 수 있는지 아오? 그건 역천개명 기연을 가진 지도는 천지인과가 묻어있기 때문이오. 강한 기연일수록 묻어있는 천지인과가 더 크오."
사마공은 소리 내어 웃더니 눈이 반짝이며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은 자네의 동술이 천지인과를 보게 만들 수 있소. 물론 자네 눈이 무척 강해야 하오. 아니면 장님이 될 수 있소."
진남의 눈만이 사마공의 요구에 맞아떨어졌다.
"그렇습니까?"
진남은 놀란 눈으로 사마공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이런 수단을 알고 있을 줄이야!'
"지도 도박은 일단 좀 봅시다."
진남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이번에 온 목적은 유영루에 가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중요한 일입니다."
지도 도박은 제정만 벌 수 있었다.
게다가 사마공의 수단은 어떤 제한이 있고 그렇게 대단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진남은 천지의 힘을 모으는 일이 더 중요했다.
"정보를 얻는다고?"
사마공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유영루의 정보는 약간 특이하오. 제정을 사용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오.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오. 그러니 자네가 배경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소용없소. 자네 스스로 얼마나 대단한지가 중요하오. 음……. 어쨌든 먼저 유영루에 가봅시다."
"좋습니다."
진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영루의 규칙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항은 현장에 가서 확인해야 했다.
둘은 성의 중앙으로 사라졌다.
얼마 후, 그들은 하늘 높이 솟은 검은색 커다란 기둥 앞에 도착했다.
"어라? 이건……."
진남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검은색 커다란 기둥은 보이지 않는 힘을 풍겨 마치 쇠사슬처럼 그의 몸을 감쌌다.
"진남, 이건 사방유심대천주(四方幽深大天柱)요. 유영루의 양대 진문 법보 중 하나인데 이미 제기를 넘어 반보 신기에 도달했소."
사마공은 커다란 기둥을 보며 두 눈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이 기둥은 여러 무제 강자들이 공격해도 망가뜨릴 수 없소."
"사방유심대천주?"
이보의 힘이 온몸을 덮자 그는 불편했다.
진남은 심호흡하고 무조의 힘을 온몸에 골고루 실었다.
이보의 기운을 없앤 후 둘은 수정으로 된 길을 따라 사방유심대천주의 일 층에 도착했다.
대천주 밖에는 무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 층에 들어서니 혼잡한 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냐? 왜 아직도 정보를 주지 않는 거냐?"
"나는 세 시진이나 기다렸다. 정보 하나 찾는 게 그렇게 어렵느냐? 돈을 안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늦어!"
"장로더러 나오라고 하거라!"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
대부분 욕을 하는 소리였다.
진남이 살펴보니 대전에 있는 무인들은 거의 무조 경지의 강자들이었다.
오직 유영루의 제자들만이 무성 경지였다.
"허허, 유영루는 이상한 곳이요. 돈을 얼마나 많이 주든지, 경지가 어떻든지 이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모든 것이 소용없소."
사마공은 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눈에 빛이 반짝거렸다.
'정보를 파는 게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방법이구나! 그렇다면 유영루의 만상주(萬象珠)를 훔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거 아니야?'
"두 분, 안녕하세요. 무슨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정보 심사에 참가하러 왔다."
사마공이 담담하게 말했다.
정보 심사란 심사를 통해 특권을 얻는 것이었다.
특권을 얻으면 유영루의 정보를 얻을 때 가격이 싸고 속도가 빠르며 정확도가 더 높아졌다.
일 층의 몇백 명 무인들은 정보 심사에 통과하지 못해서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유영루의 제자는 자연스럽고 의젓하게 말했다.
"유영루의 정보 심사는 사흘에 한 번 열립니다. 한 번에 스무 명만 참가할 수 있는데 두 분께서는 마침 잘 오셨습니다. 지금 열세 명의 도우가 저기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아마 곧 스무 명이 될 것입니다."
"음, 우리를 안내하거라."
사마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무심한 듯 허리의 보라색 영패를 드러내며 말했다.
"우리는 정보 심사라는 것을 처음 참가한다. 그러니 규칙들을 자세히 설명해주기 바란다."
유영루의 제자는 영패를 신경도 쓰지 않고 걸으며 말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스무 명 중 성적이 기준에 부합되고 제일 우수한 한 분이 특수 영패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만 영패를 받을 수 있다고?'
진남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사흘에 한 번 진행하는 심사에 한 번에 스무 명이 참여할 수 있고 그중 한 명에게만 특수 영패를 준다니 보통 귀한 것이 아닌가 보구나.
한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구나. 중주에 무인이 얼마나 많은데. 만일 유영루에서 특수 영패를 함부로 나눠준다면 이미 난리가 났을 것이다.'
유영루 제자의 안내를 받으며 진남과 사마공은 일 층 편전에 도착했다.
편전에는 열세 명의 무인들이 있었지만 조용했다.
숨 쉬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편전의 분위기는 마치 줄을 꽉 비튼 듯 긴장감이 팽팽했다.
진남과 사마공이 편전에 들어서자 열세 개의 시선이 검처럼 날아와 꽂혔다.
그들은 진남과 사마공을 샅샅이 살피더니 안색이 살짝 변했다.
진남의 기운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단하다. 보제사(菩提寺)의 제자, 표묘환부의 제자, 혼난문의 제자, 창우궁(蒼羽宮)의 제자……."
진남은 놀란 표정을 드러냈다.
열세 명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고 전부 이성 세력의 제자들이었다.
그들 중 넷은 천급 삼품 무혼을 가졌고 나머지는 전부 이품 무혼이었다.
그리고 한 명이 무조 칠 단계이고 나머지는 무조 삼 단계였다.
"두 분,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사람들이 다 모이면 심사장에 들어가겠습니다."
유영루의 제자는 인사를 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다들 왜 나를 노려보는 거야?"
사마공은 중얼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에 그는 부담스러웠다.
진남은 그를 흘겨보고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입정(入定, 의식을 집중함) 상태에 들어갔다.
정보 심사는 어떤 내용을 심사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서로 싸우는 것이라면 진남은 불리했다.
여러 비장의 무기를 노출할 수 없으니 무조 칠 단계의 상대가 안 되었다.
그래서 진남은 심신을 조절하고 정신 상태를 최고로 승진시켜야 했다.
그 뒤로 세 명이 더 들어왔다.
그들 셋도 이성 세력에서 왔는데 천급 삼품의 무혼이고 기운이 강했다.
대전의 분위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때, 멀리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인(斷刃) 형, 오늘 마침 잘 왔소. 딱 우리 두 사람이 모자라오. 우리 둘은 유영루와 인연이 있는 것 같소!"
"임(任) 형 말이 맞소."
이어 두 그림자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진남도 따라 고개를 들고 확인했다.
맨 앞에 선 자는 소년이었다.
머리에 자금용관을 쓰고 영광이 반짝거리는 혈색금포를 입고 제위를 뿜고 있었다.
경지는 높지 않았지만, 기세로 보아 내력이 범상치 않았다.
소년의 뒤에는 백의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는 등에 고도를 지고 눈빛이 차가웠다.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뿜었다.
"천도문 제자? 천급 사품 무혼? 무조 오 단계 경지? 저자는 제방 서열이 낮지 않을 것 같다……."
진남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편전 안의 다른 천재들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들은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
그들도 백의 사내의 강한 기운을 느끼고 강력한 경쟁자로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심사관이 곧 올 겁니다."
문 앞의 유영루 제자는 말을 마치고 떠나갔다.
그런데 소년이 발을 굴러 펑 하는 소리를 내더니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진남과 사마공 등은 눈을 찌푸렸다.
'이 자식, 뭐 하려는 거지?'
"여러분, 긴말하지 않겠소. 나는 유영루 사장로의 아들 임비요!"
소년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드러냈다.
'유영루 사장로의 아들이라고?'
'……뭘 하려는 거지?'
임비는 사람들의 표정을 훑어보며 오만하게 말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나의 형제 단인이요. 천도문 제방 팔백구십칠 위고 천급 사품이요. 이번 심사에서 자네들은 이 자를 이기지 못할 거요! 그러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나는 심사가 시작되기 전에 자네들이 시합을 포기하길 바라오!
포기한다면 심사가 끝난 후 내가 크게 보답하겠소! 나는 속이 좁아 포기하지 않는 자들은 유영성에서 조심해야 할 거요!"
그의 말에 사람들은 순식간에 말뜻을 알아차렸다.
'임비는 우리를 협박하여 단인이 일 위를 하게 하려는 거구나.'
"하하, 임 형씨 농담도 잘하오."
단인이라는 제자는 담담한 미소를 짓고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이번에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오.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피해야 하니 부디 체면을 봐서 양보해주길 바라오."
단인은 이어서 말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의 등 뒤에서 고도가 웅웅 진동하며 도의를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