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용연수
"그래? 안 오면 어쩔 수 없지. 이번 싸움을 주벽화가 직접 봐야 하는데, 아쉽구나.
오늘 제가 제고를 울려 여러 대신들을 부른 것은 멋진 대결을 직접 보시라고 부른 겁니다. 얼마 전 우연히 이보를 얻었는데 용연비경을 볼 수 있고 단장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보를 통해 단장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대신들은 일제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용연수가 단장산에 있는 건 모두가 아는 일이었다.
"제 생각엔 이황자와 삼황자가 사람들을 데리고 단장산에 도착했을 것 같습니다."
적풍운은 입꼬리를 올리고 냉소를 지었다.
"용연수가 곧 열릴 것입니다. 저는 대신들과 함께 이황자가 이길 것인지 삼황자가 이길 것인지 지켜보고 싶습니다."
대신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그들은 적풍운의 말에서 두 가지 뜻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용연비경에서 대황자와 구황자를 포함한 다른 황자들은 전부 탈락하고 이황자와 삼황자만 남았는데, 둘 다 단장산에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두 번째 의미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백호영, 상도맹이 이황자 송입을 지지하고 봉황영이 삼황자를 지지하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적풍운이 제고를 울려 대신들을 소집한 것은 이황자와 삼황자의 대결에서 이황자가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적풍운이 이렇게 떠들썩하게 굴 이유가 있을까?'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왕노는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 그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적풍운이 왜 이황자에게 이토록 자신만만한 거지?'
"천지 법에 따라 원시 신주는 용연을 호랑이 눈으로 보여달라!"
적풍운은 크게 소리치며 동그란 구슬을 토했다. 구슬에는 여러 마리의 금룡이 헤엄치고 있었다.
이어 그가 손가락으로 구슬을 건드리자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 커다란 수막을 만들었다.
수막에서 거대한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중앙에 검과 같은 산봉우리가 서 있었다.
"단장산이다!"
한 대신이 입을 열었다.
용연비경은 매 세대마다 열렸다. 그래서 대신들도 그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보십시오!"
적풍운이 큰소리로 외쳤다.
수막이 마구 흔들리더니 산꼭대기로 장면이 바뀌었다. 산꼭대기의 호수는 칠색 꽃잎이 나무를 감싸고 있었고 삼황자, 진남, 사망대제, 용호, 이황자, 요극이 보였다.
"정말 이황자와 삼황자요!"
대신들은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적풍운이 진짜로 단장산에서 벌어지는 두 황자의 대결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이를 본 왕노는 좋지 않은 예감이 더욱 강렬했다.
'적풍운, 대체 뭘 하려는 거지?'
* * *
같은 시각, 용연비경 단장산 꼭대기.
분천고국 황실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곳에 아무런 파문도 일으키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적풍운, 왕노, 웅 부 영장 그리고 여러 대신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황자는 표정이 음산했다.
그는 저주판을 움직여 몇백 리 밖의 삼황자를 추적했다. 그러나 삼황자가 허공을 넘어 공격할 줄은 몰랐다.
이황자는 하마터면 다칠 뻔했다.
'셋째는 그동안 잘도 숨었구나. 이런 경지를 그동안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니.'
'이황자?'
진남 일행은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그들은 이황자 송입이 이미 단장산 꼭대기에 왔을 줄은 몰랐다.
"둘째 형님, 수단이 대단하십니다. 용연비경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벌써 단장산을 찾아내셨습니까?"
삼황자는 정신을 차리고 진남에게 눈짓을 하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진남은 알아차리고 눈에 예리한 빛이 반짝였다.
지금 이황자 곁에는 요극밖에 없었다.
그러니 용호와 강벽난이 합류하여 싸운다면 손쉽게 이황자를 이길 수 있었다.
"허허, 너보다야 못하지."
이황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뭔가 알아차린 듯 진남을 보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단청, 지금 공격할 거냐? 너무 서두르지 말기를 바란다. 용연수에 칠색화가 피고 용연과가 열리면 나는 당연히 너와 싸울 거다."
"응?"
진남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황자가 이렇게 겁 없이 구는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떤 비장의 수를 감추고 있는 걸까?'
"나는 자네처럼 말을 꼬아서 하는 자들을 제일 싫어하오. 내 주먹을 받으시오!"
용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성큼 나서더니 사나운 기세가 하늘까지 솟구쳤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뽀글뽀글.
파란색 호수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더니 무언가 느낀 듯 검은 그림자가 몇 개 떠올랐다. 그것들이 풍기는 강한 기운이 주변을 감쌌다.
요황 경지 오 단계의 기운이었다.
삼황자는 안색이 바뀌며 소리 질렀다.
"공격하지 말거라!"
용호는 그 기운을 느끼자 온몸에 오한이 돋고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삼황자는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전에 선배들한테서 들은 말이 있다. 용연수에 칠색화가 필 때면 누구도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걸 어기면 호수를 지키는 요수들은 무력을 사용한 사람을 적으로 여기고 공격하고 죽인다고 들었다."
"이런."
용호는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단장산에서는 날아도 안 되고 공격해도 안 되고 정말 답답하구나!'
"셋째는 박학다식하고 아는 것도 많구나……."
이황자는 입꼬리를 올리고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진남 일행은 이황자를 무시했다.
무력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니 지금은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황자 송입이 말을 배배 꼬아서 한다고 해도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
"삼황자, 칠색화가 핀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진남은 삼황자에게 전음했다.
"용연수를 감싼 칠색 꽃잎을 보았지? 저 꽃잎들이 활짝 피면 용연수에 용연과가 달린다. 그때면 우리는 용연수의 지시대로 용연과를 따러 갈 수 있다."
삼황자는 진남 일행에게 설명했다.
"그렇군요……."
진남은 호수 한가운데를 바라보았다.
용연수를 감싼 칠색 꽃잎은 천천히 밖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전부 피어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진남은 이황자와 요극을 곁눈질했다.
그들은 가벼운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걸 보니 이길 확신이 있는 것 같았다.
'겉보기에 우리는 이황자 일행이 비교도 안 될 만큼 우세이다. 그러나 상황을 보니 이황자와 요극은 어떤 비장의 한 수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진남의 눈이 번쩍했다. 멀리 서 있던 강벽난은 진남에게 은밀한 수신호를 보냈다.
강벽난도 이상함을 눈치챈 게 틀림없었다.
진남은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사색에 잠겼다.
'내 실력을 이황자와 요극은 잘 아는 것 같아. 그러니 뒷길을 마련하고 나를 상대할 방법을 준비했겠지. 나의 비장의 수는 전신의 왼팔이다. 모든 공격을 이겨낼 수 있…….'
진남은 스스로를 분석했다.
이번 대결은 중요했다.
상도맹이 욕심을 내는 이황자의 지도나 용연과는 무척 중요해서 자그마한 실수도 하면 안 되었다.
'비장의 수가 또 있지, 구리거울!'
진남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구리거울에게 신념을 전했다. 만약 구리거울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이번 대결에서 이길 희망도 커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남의 마음속에 있던 모든 것과 싸울 수 있고, 두려울 게 없던 의지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황자가 공평하게 싸운다면 진남은 두려울 게 없었다.
상대방이 수단을 동원한 이상 그도 당연히 수단으로 준비해야 했다. 그는 맞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남은 살짝 우울했다. 중요한 순간에 구리거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전신의 왼쪽 눈과 왼팔을 잘 이용해서 내 실력을 최대로 발휘해야겠어."
진남은 마음을 빨리 가다듬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칼집을 나가기 기다리는 검 같았다.
대결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그의 몸속의 전혈이 들끓었다.
'이황자, 저를 실망시키지 마십시오.'
시간은 조금씩 흘렀다.
산꼭대기에 있는 두 세력은 서로의 존재를 무시하고 가부좌를 틀고 심신을 조절하거나 용연수를 노려봤다.
삼 주 향이 타는 시간이 지나고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달그락, 달그락.
느리고 계란 껍질이 벗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남은 깜짝 놀라서 호수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용연수를 감싸고 있는 칠색 꽃잎이 활짝 펴지더니 꼿꼿하고 보라색으로 물든 생기발랄한 나뭇가지가 드러났다.
사르륵.
마지막 꽃잎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쿵!
용연수에서 엄청난 기운이 풍겼다.
몇십 장에 달하는 용연수는 쑥쑥 자라더니 짧은 시간에 십 장, 이십 장을 돌파하고 하늘을 찌를 듯한 큰 나무가 되었다.
그 커다란 보랏빛 나뭇가지에서 수많은 작은 가지들이 뻗어나갔다.
웅웅웅!
허공에 신비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금색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금연수에 닿았다.
금연수에 천천히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우르릉!
이때 산봉우리 주의의 거대한 호수들이 엄청난 파도를 일으켰다.
파도 속에서 엄청난 경지의 요존들이 솟아올라 용연수를 바라보았다.
크르르!
요괴들이 동시에 포효하는 소리가 하늘을 진동했다.
칠색화가 피자 모든 요수들이 절했다.
* * *
같은 시각 백호성 황궁 금령전.
수막 속에 칠색화가 피자 모든 요수들이 절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대신들은 깜짝 놀랐다.
'용연수에 용연과가 달렸다!'
'이제 용연비경에서 제일 중요한 순간이 되었구나.'
이기는 사람이 태자가 될 수 있었다.
"오늘은 누가 이길지 모르겠다!"
"상황을 보면 삼황자가 이길 확률이 크오!"
"나는 이황자가 반드시 이길 거 같소!"
대신들은 의논하느라 시끄러웠다.
겉으로 보기에는 삼황자의 세력이 이황자보다 강한 것 같았다.
그러나 적풍운이 제고를 치고 사람을 모으는 걸 보면 이황자가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는 것 같았다.
'단지 이황자가 이기고 삼황자가 실패하는 걸 보여주려고 사람을 모은 걸까?'
왕노는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에 저도 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용연비경, 단장산 꼭대기.
진남 등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용연수가 각성하는 순간 이렇게 성대한 광경이 벌어질 줄 예상치 못했다.
잠시 후, 호수의 요수들은 잠잠해지고 포효소리도 사라졌다.
산꼭대기에 우뚝 솟은 용연수만이 엄청난 기운을 풍겼다.
"저게 용연과인가?"
진남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용연수에 금색 열매들이 달렸다.
열매는 크기가 손바닥만 했는데, 겉에는 무늬들이 있고 안에는 엄청난 힘을 담고 있었다.
세어보니 용연과는 무려 아흔아홉 개나 되었다.
"저는 분천고국 이황자 송입입니다. 용연수 선배님을 뵙습니다."
"저는 분천고국 삼황자……."
이황자와 삼황자는 앞으로 나서서 공손한 태도로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했다.
용연수는 분천고국에서 숭고한 존재였다. 그러니 태자라 해도 먼저 인사를 드려야 했다.
철썩.
용연수의 커다란 가지에서 파도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어 나무껍질이 떨리더니 한 쌍의 눈이 나타났다.
용연수가 사람들을 굽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