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흑도의 주인
“저 눈빛은 무슨 의미지?”
존자는 양대 성지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그렇게 결국 스스로를 봉인하고 무종 비경으로 변했다.
백 년을 기다려 겨우 회복할 수 있었는데 마침 진남을 만난 것이었다.
마단 존자는 가슴이 답답했다.
‘저 여자애가 왜 날 애잔하게 바라봤지? 설마 무왕 최고 경지인 싸울 힘도 없는 진남을 내가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던 마단 존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웃기지도 않구나.’
“저자들은 너를 공격했던 사람들이다. 저자들은 죽여도 괜찮지?”
마단 존자는 기분이 언짢아 진남이 대답하기도 전에 도망치는 무인들을 쳐다봤다.
그는 손을 뻗어 수많은 빛을 뿜어 그들의 몸을 뚫었다.
무인들의 기뻐하던 표정이 일그러졌다.
‘우리에게 도망가라고 했잖아.’
그들이 미처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몸이 폭발해 혈무가 되어 마단 존자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단 존자는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다.
그의 눈동자는 약간 붉어졌고 진남을 노려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하하, 다시 세상에 나온 내 몸으로 될 수 있는 건 너에게 행운이란다. 이제 너를……”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남이 냉랭하게 말했다.
“마단 존자, 절 도와줬으니 제가 충고 하나 하겠습니다. 제 몸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 년 동안 꾹 참고 당한 고초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잘 생각해 보십시오.”
마단 존자는 황당해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왜 이놈이 거꾸로 날 위협하는 거지?’
‘설마……’
마단 존자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진남과 같은 천재는 양대 성지의 주목을 받았다.
그도 역시 주목을 받을 게 분명했기에, 어떤 수단을 써서 성지에 위험을 알렸을 것이다.
“하하.”
마단 존자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 작은 꼼수를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주천조화(周天造化), 천외화마(天外化魔), 무영무식(無影無息), 사방천기(四方天機), 다 가려라.”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신비한 빛이 섬을 전부 감쌌다.
바깥에서 보면 온 섬이 마치 허공에서 사라져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양대 성지의 봉주라도 널 발견할 수 없을 거다.”
마단 존자가 비웃었다.
‘아직도 성지 중의 강자가 널 구하러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건 망상이다.’
“마단 존자……”
진남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마단 존자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일찍이 당청산에게 소식을 전했기에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올 것이다.
기운을 숨긴다고 하더라도 당청산의 경지로 이곳을 찾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래서 진남은 마단 존자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지금 진남이 상대하고 싶은 사람은 강벽난이었다.
그는 마단 존자와 아무런 원한이 없고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마단 존자가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기를 바랐다.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저에게 손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생각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오기 때문에 존자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진남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단 존자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저를 보내주세요. 저는 계속 상도맹의 사람들을 추격할 겁니다. 존자에 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마단 존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놈 약을 잘못 먹었나? 아직도 보내달라고 협박하다니? 고작 무왕 경지가 무슨 자신감이 이렇게 높아?’
마치 하룻강아지가 허리에 손을 얹고 호랑이를 향해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나도 보고 싶구나. 이 하역에 양대 성주 외에 어떤 대단한 인물이 있는지 말이다.”
마단 존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쓸데없는 소리 작작 하거라. 이제 네 몸을 연화하여 삼켜버릴 거다.”
그가 손을 내밀자 손바닥에서 시커먼 화염이 솟아올랐다.
그 시커먼 화염은 사마파멸진의 화염이 아니라 영혼마화(靈魂魔火)로 영혼을 불태우는 데 쓰였다.
마단 존자가 양대 성지의 추격을 받았던 이유는 그가 싸울 때마다 상대방의 영혼을 불태워 생존의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영혼마화가 진남에 몸에 닿아 세차게 타올랐다.
진남의 안색이 변했다.
영혼마화는 무형무색이었다. 용문금단도 영혼마화를 막을 수 없었다.
“악!”
진남은 안색이 변하고 표정이 일그러지며 비명소리를 질렀다.
영혼마화는 그의 영혼을 태우며 극심한 고통을 일으켰는데 심장을 칼로 갈기갈기 찢는 것보다 더 아팠다.
“하하! 이놈아, 계속 협박해 보거라!”
마단 존자가 소리 내어 웃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잘 나불거리더니 이제는 조용해졌구나.’
“네 몸부터 빼앗겠다.”
마단 존자가 흉악하게 웃었다.
그는 존자의 경지이기에 억지로 몸을 빼앗기엔 경지가 부족했다.
오직 진남의 육체를 삼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즉, 먼저 육체를 차지하고 다음 식해를 빼앗고 영혼을 파괴하면 진남의 의지를 깔끔하게 없앨 수 있었다.
그리고 존자는 마력을 사용하여 진남의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었다.
“무상술(無相術)!”
마단 존자의 석상이 되어버린 몸에 핏빛 무늬가 천천히 번졌다.
무늬는 눈동자에 모이더니 진남을 향해 날아갔다.
쿵!
진남의 몸을 감싼 화염이 순식간에 꺼졌다.
온몸에 구멍이 난 육체가 굳어지면서 감각이 사라졌다.
“아……”
진남은 고통스러워 일그러진 표정이 굳어져 움직일 수 없었다.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도 겨우 목구멍을 비집고 나왔다.
다시 말해 몸은 이제 진남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제 네 식해를 빼앗겠다!”
마단 존자의 얼굴에 비열한 웃음이 점점 짙어졌다.
그의 눈에서 또 두 개의 핏빛이 진남의 식해로 날아들었다.
진남의 식해에 핏빛 사람 형상이 천천히 나타났다.
형상은 마단 존자였다.
“오, 신식이 구백아흔아홉 장이나 돼? 게다가 신식 공법도 수련했구나.”
마단 존자는 깜짝 놀랐다.
예전에 그가 무왕 최고 경지였을 때에도 이렇게 강한 신식이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어? 이건 뭐지?”
마단 존자는 신식의 한 가운데 구리거울이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진귀한 보물이겠구나!”
구리거울은 그 속이 보이지 않았다.
마단 존자는 무척 기뻤다.
진남은 그에게 너무 많은 놀라움과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진남은 육체가 강할 뿐만 아니라 신식도 엄청나게 강했다.
게다가 이렇게 진귀한 보물까지 가지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는 이제 하역의 지존이 될 수 있어. 아니, 상역으로 갈 거야!”
마단 존자는 크게 흥분했다.
그는 대뜸 손을 뻗어 법결을 만들고 쇄신술을 펼쳤다.
촤르륵!
수많은 검은 쇠사슬이 존자에게서 나와 뱀처럼 식해를 덮쳤다.
쿵!
그때, 식해의 가운데 있던 구리거울이 엄청난 위엄을 풍겼다.
차가운 여인의 목소리가 태고 구천에서 전해 왔다.
“무엄하다!”
마단 존자는 대뜸 안색이 변했다.
구리거울의 위엄에 그는 가슴이 떨렸다.
‘혹시 이 구리거울은 지보(至寶)인가?’
구리거울이 풍기는 기운이 너무 강해서 그는 아무런 비밀도 알아내지 못했다.
마단 존자는 거대한 적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러나 수십 번의 호흡이 지나가도록 구리거울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구리거울의 엄청난 힘이 다른 어떤 힘에 막힌 것 같았다.
“하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구나.”
마단 존자는 한눈에 상황을 알아차리고 기뻤다.
그는 재빨리 쇄신술을 사용하여 수많은 쇠사슬로 식해를 묶어버렸다.
오래된 구리거울은 묶인 와중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마단 존자는 시름을 놓았다.
“육체, 신식이 모두 묶였으니 이제 영혼을 파괴하면 된다.”
마단 존자는 진남을 바라보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절세의 인재이다! 이제 이 아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재능과 보물이 다 내 것이 된다!’
“영혼마화, 섭연구허(涉煉九虛), 불타거라!”
마단 존자가 외치자 그의 몸은 화염처럼 활활 타올랐다.
수백 년 전 두 존자에게 쫓길 때 그는 스스로 봉인했다.
이제 많이 회복되었지만, 영혼을 불태우는 술책을 사용하려면 아직 부족했다.
때문에 그는 생명력을 사용하여 힘을 바꿔야 했다.
쿵!
마단 존자의 석고상에서 커다란 영혼마화가 일었다.
처음 일었던 두 화염의 수십 배는 되는 화염이 전부 쏟아져 나와 진남의 몸을 감쌌다.
빛처럼 흐릿한 형상의 진남이 천천히 육체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그는 무척 고통스러워 보였다.
흐릿한 형상은 진남의 영혼이고, 그의 자아의지였다.
“마, 마단 존자… 지금 당장… 멈추십시오…… 아니면……”
진남은 고통스럽게 신음하면서 의념을 전달했다.
“아직도 나를 협박하는 게냐? 불에 타거라!”
마단 존자가 크게 화를 냈다.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군! 아직도 나를 협박하다니?’
존자의 분노가 더해지자 마화가 더 격렬하게 타올랐다.
진남의 영혼은 점점 더 옅어졌는데 언제든 사라질 것만 같았다.
마단 존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기분이 좋아서 미친 듯이 웃었다.
“하하, 진남 봤느냐? 네 영혼을 다 태우고 나면 넌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이제부터 네 재능은 내가……”
마단 존자는 갑자기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표정도 그대로 굳어졌다.
웅웅웅웅!
섬의 위쪽 하늘이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위압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휙!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흑도 한 자루가 허공을 가로질러 섬의 하늘에 나타났다.
살기가 홍수처럼 밀려왔다.
“이건……”
마단 존자는 안색이 변했다.
‘이 흑도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더라?’
왜인지 마단 존자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쿵!
섬 위쪽의 허공이 갑자기 무너지고 부서지더니 그 틈 사이로 노인 한 명이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노인은 허공을 가른 흑도를 손에 쥐고, 깊은 눈동자로 섬을 내려다봤다.
“저놈은 누구지? 내 금제를 부수다니?”
마단 존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마단 존자는 노인의 경지가 엄청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불길한 감이 들었다.
“불에 타거라!”
마단 존자는 서둘러 행동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진남의 육체와 융합하고 보자. 만약 저 노인이 양대 성지의 강자라면 진남과 하나가 된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재능을 높이 사 성지에 가입하라고 할 수 있다. 진남이 죽으면 가치가 없어지고 양대 성지에서도 나를 위해 복수하지 않을 것이다.’
평온한 표정의 노인은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
“너는 누구냐? 나는 당청산이다.”
쿵!
마단 존자는 머리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당, 당청산?’
마단 존자는 그제야 생각났다.
‘흑도가 눈에 익다 했는데 당청산 거였구나!’
“당, 당청산…… 죽지 않았소?”
마단 존자는 정신이 들자 안색이 변하고 동공이 바늘처럼 가늘어졌다.
목소리도 바들바들 떨렸다.
마단 존자는 전에 하역을 휩쓸며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은 이기지 못했다.
그 사람이 바로 당청산이었다.
양대 성지의 봉주들이 온다고 해도 마단 존자는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당청산은 두려웠다.
그의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