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반드시 죽이고 말겠어
“허허, 난 방곤(庞坤)이라고 해.”
방곤은 무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운이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 명성이 자자한 진남을 공로전에서 만나게 되다니.”
“이제 오명일 뿐입니다.”
진남은 웃었다.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 그게……”
방곤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진남이 패배를 인정했을 때 방곤도 그를 무시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진남이 아무런 책임도, 기개도 없고 겁이 많아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진남이 대놓고 말하자 방곤은 당황했다.
“진남, 오늘은 임무 받으려고 온 거야?”
방곤은 즉각 화제를 돌렸다.
진남은 방곤의 뜻을 알 수 없었지만 숨기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방곤 사형, 얼마 전 제가 현령종에서 단약을 빌렸던 일을 잘 알고 있겠지요. 이젠 임무를 받아 단약을 갚아야 합니다.”
“갚으려고 했어?”
방곤은 놀랐다.
얼마 전 진남이 명예 장로를 통해 현령종의 모든 사람에게서 단약을 빌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방곤도 진남의 차용증을 받았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일말의 감상에 젖어 방곤은 진남에게 이백 알의 무왕단을 빌려줬다.
무왕단을 빌려줄 때, 방곤은 진남이 스스로 갚으려 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다.
방곤뿐만 아니라 진남에게 단약을 빌려준 모든 사람들은 진남이 갚으려고 할 줄 몰랐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방곤은 그에게 탄복했다.
“진남, 너의 행동에 탄복해. 임무를 받고 싶다면 여기 하나 있어. 너한테 어울리는 건데 할래?”
“어떤 임무입니까?”
진남의 눈이 반짝였다.
조금 전의 임무가 진남을 설레게 했지만, 그 임무는 너무 위험했다.
“이 임무는 내문 십 위의 한 사형이 반포한 거야. 아주 간단한 건데 요수를 사냥하기만 하면 돼. 초급 요수 한 마리를 사냥하면 선천단 만 알을 준대. 중급 요수 한 마리를 사냥하면 선천단 오만 알을 주고. 고급 요수 한마디를 사냥하면 선천단 십만 알을 줄 거야.”
방곤은 헤헤 웃으며 말했다.
“물론 요수를 사냥할 때에는 요핵(妖核)을 남겨야 해.”
“네?”
진남의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쳤다.
선천 경지 일 단계에서 삼 단계 정도의 초급 요수는 진남의 실력으로 사냥하기에는 수월했다.
만약 초급 요수로 선천단 만 알을 얻을 수 있다면, 진남은 육천 마리만 사냥하면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
만약 중급 요수로 바뀌어도 진남은 쉽게 대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간단했다. 그는 천이백 마리면 빚을 다 갚을 수 있다.
“초급 요수, 중급 요수 사냥은 내 실력으로 충분해. 그리고 요수 사냥으로 실력을 갈고닦으며 전투 경험을 충실히 쌓을 수도 있겠어.”
진남은 기분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는 급히 대답하지 않고 망설이다가 물었다.
“방곤 사형, 내문 사형은 왜 이 임무를 낸 겁니까?”
“그렇게 물어볼 줄 알았어.”
“내문 사형의 신분은 심지어 궁양 사형보다 높아. 그 사형이 지금 대단한 공법을 익히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 그 공법은 요핵을 수없이 먹어야 한대. 그래서 이 임무를 내건 거고. 이 임무 때문에 많은 외문 제자들이 요수 사냥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어.”
“공법을 수련하려고 요핵을 삼킨단 말입니까?”
진남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제가 이 임무를 하겠습니다.”
진남은 마음을 정하고 방곤을 향해 공수하며 간곡히 말했다.
“사형,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작은 일인데 뭘. 별것도 아니야. 어쨌든 구양군 무리들이 좀 너무했어……”
방곤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무던한 그의 인상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진남의 눈은 반짝거렸다. 그는 방곤이 구양군 무리들과 갈등이 있을 줄은 몰랐다.
진남은 마음속 의심을 거두었다. 방곤이 먼저 그에게 말을 걸고 임무를 소개한 것도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적의 적은 친구였다.
“구양군 무리가 현령종을 쥐락펴락하기는 어렵겠군.”
진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방곤과 잡담을 나누다 작별했다. 그제야 그는 공로전 집사 장로에게 가서 정보를 등록하고 임무를 받았다.
임무를 받은 뒤, 진남은 더 이상 머물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자리를 떴다.
“어디 가서 사냥해야지?”
진남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진남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추산이었다.
추산에는 요수가 많았다. 초급 요수, 중급 요수, 고급의 요수가 아주 많아서 사냥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그러나 진남은 추산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옛날과 달리 사대 종문에 이름을 날리는 바람에 암암리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적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또다시 추산으로 간다면 종문의 사람들이 무연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많은 시끄러운 일들이 생길 게 뻔했다.
“참, 용호산맥에 가면 되지. 거기에도 요수가 아주 많아. 게다가 이번 기회에 집에 돌아가 아버지가 어떻게 지내는지 볼 수도 있잖아.”
진남은 두 눈이 번쩍이더니 마음을 정했다.
용호산맥은 추산처럼 명성이 높지 않다. 하지만 요수들이 많고 산맥이 넓으며 수많은 오묘함을 품고 있다.
진남은 어릴 때 용호산맥에서 천둥에 맞아 전신의 혼을 가지게 되었다.
“묘묘 공주와 얘기해 보자.”
진남은 전음표를 꺼내 생각을 집어넣었다.
이내 작고 영롱한 그림자가 허공으로 날아와 말했다.
“하인, 나를 왜 찾아? 내가 아주 바쁘다는 것을 알아야지. 이 시간에도 몇 백만 무왕단이……”
묘묘 공주가 진남 앞에 앉았다. 오밀조밀한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너와 상의할 일이 하나 있어.”
진남은 묘묘 공주의 말을 무시했다.
“요수를 사냥하라는 임무를 받았어. 그래서 현령종을 떠나야 해.”
“뭐?”
묘묘 공주는 목소리를 높이며 사납게 말했다.
“안 돼. 절대 안 돼.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현령종을 떠나다니 무슨 헛소리지?
묘묘 공주는 현령종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단약을 얻을 기회가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진남이 같이 떠나자고 하니 묘묘 공주는 내키지 않았다.
진남은 묘묘 공주의 의견을 무시하고는 설명했다.
“이번에 갈 곳은 용호산맥이야. 거기서 요수를 사냥해야 해. 요수를 사냥해야만 무왕단을 얻을 수 있어.”
“응? 용호산맥이라고?”
묘묘 공주의 안색이 누그러졌다. 그녀는 큰 눈을 굴리기 시작했고 빛이 반짝였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진남은 묘묘 공주의 표정이 느슨해지자 바로 승부수를 던졌다.
“내가 단약을 얻지 못하면 네 빚을 갚지 못할 것 같아. 용호산맥에 가지 않아도 돼. 만약 나한테 빚 갚으라고 하지만 않으면……”
진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묘묘 공주의 얼굴이 굳어졌고 노기등등했다.
“꿈도 꾸지 마. 내 단약은 꼭 갚아야 해. 많은 건 되지만 적으면 안 돼.”
“그렇다면 지금 용호산맥으로 가자.”
진남은 속으로 웃었다. 묘묘 공주는 단약 문제만 꺼내면 다른 건 생각지 못했다.
진남은 이익만을 추구하는 묘묘 공주의 성격을 경멸했다. 하지만 그런 약점을 잡아 공격하면 중요한 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용호산맥에 가도 돼.”
묘묘 공주는 눈을 굴리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용호산맥에 갈 때 몇 가지 임무를 네가 수행해줘야 할 것 같아.”
“임무? 무슨 임무?”
진남은 순간 추산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묘묘 공주는 진남에게 지도를 하나 건넸다. 그 지도를 통해 진남은 팔만 알의 무왕단에 해당하는 팔십 그루의 천정화를 찾았다.
지난번 일을 진남은 의심하고 있었다.
‘묘묘 공주는 여러 가지 영약의 소재를 알 수 있는 강한 비술을 갖고 있지 않을까?’
“만약 추산과 마찬가지로 천정화 같은 것을 찾는 임무라면 할 수 있어. 그런데 나도 요구가 있어. 그중 절반만이라도 가질 거야.”
진남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진남은 큰 빚을 지고 있었다. 단약을 빨리 얻어야만 했다.
“허허.”
묘묘 공주는 냉소를 지었다.
“진남, 잊은 건 아니지? 추산 산봉우리에서 상도맹과 다른 삼대 종문이 너를 공격하려고 할 때 내가 아니었다면 무사히 떠날 수 있었겠어? 난 결코 쉽게 사람을 구해주지 않아. 한 번 구해준 이상 나를 도와서 한 가지 일을 해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
진남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묘묘 공주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진남은 숨을 깊게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네 말이 맞아. 너한테 신세를 졌어. 그럼 용호산맥에서 가서 무상으로 딱 한 번만 도와줄게.”
“그래, 착하네.”
묘묘 공주는 몹시 좋아했다.
“그럼 언제 움직일 거야?”
“지금 바로 가자.”
진남은 현령종 백옥도장을 향해 하산하려 했다.
떠나기 전에 진남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음을 굳혔다.
진남은 떠나기 전에 선노, 궁양, 소냉, 초운을 만나려 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한 끝에 그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진정한 친구라면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을 테고 그가 내린 결정을 믿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이번에 진남이 현령종을 떠난 것은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았다.
진남이 패배를 인정한 뒤 그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내원봉, 제일 정원의 한 남자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남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구양군이었다.
“하하! 사형, 진남이 현령종을 떠났답니다. 제가 보기엔 이제 도저히 현령종에 있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냉봉은 크게 웃으면서 얼굴이 상기됐다.
진남이 패배를 인정한 뒤 그는 금세 유명해졌다. 다른 삼대 종문조차 냉봉이 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진남이 고개를 숙였는지 궁금해했다.
구양군은 미소를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진남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야. 왜 이런 존재가 태상 장로, 명예 장로의 주목을 받는지 모르겠어.”
“진남이 패배를 인정한 뒤에 태상 장로가 크게 화를 내며 실망하셨다고……”
냉봉은 진남을 비웃었다.
“연기일 뿐이야.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구양군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
“그 늙은이는 진남을 매우 중시하고 있어. 그렇지 않다면 무연각의 비밀을 얻었을 때 끝까지 캐물었을 거야. 냉봉, 내 명령을 전해. 군맹을 소집해 진남을 미행해서 해치우라고 전해라.”
“네?”
냉봉은 깜짝 놀랐다. 그는 구양군이 진남에게 직접 손을 쓸 줄 생각지 못했다. 그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진남이 이번에 나갈 때 명예 장로가 동행했습니다. 종주가 나서도 그를 죽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명예 장로가 동행했다고?”
구양군은 반문했지만 음흉하게 웃었다.
“그럼 당분간 서두르지 말자. 조만간 진남이 다시 현령종으로 돌아올 거야. 나에게 덤볐으니 패배를 인정해도 용서할 순 없지. 반드시 죽이고 말겠어.”